21개의 검색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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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현 칼럼] 발트의 길
수필가 김국현(金國鉉) 전 한국지방재정공제회 이사장/전 행정자치부 인사국장 현 한국철도시설공단 비상임이사 북유럽 발트 연안의 리투아니아 시골 도시인 샤울레이 교외에는 십자가 언덕이 있다. 아픈 딸의 회복을 바라는 아버지가 이곳에 처음으로 십자가를 세웠다는 주장도 있지만, 조국의 독립을 위해 희생된 군인들의 넋을 기리려는 뜻으로 시작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이곳에는 세계 각국에서 온 여행자들이 하루에 수천 개의 십자가를 꽂으며 각자의 소원을 빈다고 한다. 우리일행이그곳에도착했을때는땡볕이라꽤무더웠다.예수님의십자가상이중앙광장에우뚝솟아있고,그뒤로제법큰길과여러갈래의샛길을따라양쪽으로크고작은십자가들이빼곡히들어차있었다.어떤곳은자리가없어십자가위에걸쳐있기도하고심어둔십자가그늘아래에조그만십자가들이모여있기도했다.언덕에적당한자리가없는탓에그아래들판에새터가조성된지오래다.언덕정상에올라서니눈시울이뜨거워져더이상걸을수도없었다.십자가를심은뜻이각자의소망을이루고자함인가,오직하나님을사모하고찬양하기위함인가.어찌하던그들의소원이너무나간절하여나는경건한마음으로하나님께기도하고경배할따름이다. 한때지역주민들이십자가를세는작업을시도해보았지만그숫자가워낙많아중도에포기하였다.대략백만개는될거라짐작만할뿐이다.십자가언덕에는리투아니아민족의꺼지지않는저항의식과민족정신이늘어나는십자가와함께지금도살아숨쉬고있다.리투아니아는에스토니아와라트비아와함께발트3국을구성하는데,우리에게잘알려진백만송이장미의원곡은그이웃나라인라트비아에서나온것이다.구소련의강압적통제속에서독립된나라를꿈꾸며지어진곡으로,원곡의제목은마리냐가준소녀의인생이다.가사는민족을지키는신인마리냐가소녀에게지혜는주었지만해방된조국땅에서살아가는진정한행복을얻는방법은가르치지못했다는내용이다.구소련에대한라트비아민족의저항의식을대표하는곡인셈이다.이노래는한지방도시의노래자랑대회에서중년의여인과어린소녀가듀엣으로불러서세상에처음알려진곡인데,애절한곡조의노래소리는지금도나의심금을울리곤한다. 그런데1989년이곳발트국가에서전세계인들의가슴을뭉클하게한노래혁명(singing revolution)이일어났다.거의600여km의도로에총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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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현 칼럼]노숙자의 꿈
[뉴스리포트 4월호] 수필가 김국현(金國鉉) 겨울 혹한에 온 세상이 얼어붙고 사람들은 몸을 외투 속에 깊숙이 파묻은 채 총총 걸음으로 분주하다. 서울역 지하도에 남대문경찰서로 나가는 통로 뒤로 여러 갈래의 줄이 길게 늘어섰다. 마치 갯벌 속에서 분탕질을 한 시커먼 문어발 같다. 끝이 어딘지 보이지도 않는다. 거기에는 노숙자 행색을 한 노인 수백 명이 오전 내내 목을 빼고 기다리고 있었다. 어디서 그리 모였을까. 대열에서 이탈하지 않으려고 모두 초조하게 앞만 바라보고 있다. 마음씨 좋아 보이는 할머니에게 물었다. 할머니, 지금 뭐하려고 여기 서 계세요? 할머니는 주름이 깊은 눈꺼풀을 깜박이며 대답했다. 나도 몰라. 남들이 서 있으니 나도 따라 서 있어. 그 연유가 더욱 궁금해졌다. 나중에 알고 보니 꽃동네에서 생활이 어려운 분들에게 겨울 외투를 공짜로 나눠준다는 소문을 듣고 사방에서 몰려온 사람들이다. 꽃동네는 한 사람도 버림 받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어느 신부님이 설립한 복지시설의 이름이다. 웅성거리는 기척이 들리는가 싶더니 앞쪽에서 몇 사람이 뛰어 나가자 줄이 잽싸게 흐트러지며 서로 먼저가려고 난리다. 어떤 이는 절뚝거리며 뛰어가고 어떤 사람은 앞 사람 어깨를 움켜잡으려 허우적댄다. 두 눈을 부릅뜬 건 분명 생존의 몸부림이었다. 나는 하마터면 몰아치는 인파 속에 휘말려 바닥에 넘어질 뻔했다. 노숙자는 우리 사회의 병들고 어두운 그림자이다. 사업에 실패하여 살 집을 잃었던지 변변한 직업 하나 없어 수입이 바닥났거나 질병을 앓고 가족에게 버림받은 사람들이다. 이 현상은 모두 사회 안전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당연한 귀결임에 틀림없다. 나도 찬바람 부는 겨울날 산기슭에서 하룻밤 노숙을 한 적이 있다. 군 복무 중에 작전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잠자리가 여의치 않으니 극한 상황에서 무엇을 못할까. 부끄러움이나 창피한 것도 없었다. 동네 논바닥에 눕혀 둔 볏단을 한 아름씩 짊어지고 평평한 나무 아래에 둥지를 텄다. 겨울 밤하늘이 그리 멀고 아득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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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현 칼럼] 번제(燔祭)
수필가 김국현(金國鉉) 영화 항거: 유관순 이야기를 보았다. 3.1만세운동 이후 일본 헌병에 체포되어 서대문 형무소에서 1년여 간 옥살이를 하다 방광파열과 영양실조로 순국한 유관순 열사의 마지막 삶을 그린 영화다. 유관순은 옥사에서 갖은 고문과 핍박 속에서도 일제와 당당히 맞선 진정한 용사였다. 그녀는 세 평 남짓한 좁은 감방에서 30여 명의 죄수들과 함께 지냈다. 속옷도 없이 옷 한 벌로 사계절을 보내며 다리가 붓지 않으려고 온종일 방을 돌고 잠도 번갈아가며 자면서 서로 감싸 안으며 차디찬 겨울을 견뎌냈다. 그녀는 만세를 시킨 사람은 바로 일본 때문이다라고 하며 스스로가 죄수임을 거부하였다. 최후의 일인까지, 최후의 일각까지 떳떳하게 외치라고 하면서 감방에서도 만세운동을 주동했다. 이 영화는 차가운 시대 상황과 조국 독립을 향한 뜨거운 가슴이 한데 어우러진 독특한 구성과, 죽는 순간까지 일제 침탈에 저항한 열사와 그 주변 인물들의 민족의식을 펼쳐보임으로 관객들이 숨을 죽이며 감동하기에 충분한 작품이다. 성경에는 번제(燔祭)라는 말이 나온다.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께 올리는 제사에 살아있는 소나 양을 잡아서 태우는 의례가 있었다. 동물의 피는 속죄(贖罪)의 의미를 가졌고 태우는 것은 그 향기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뜻이 있었다. 그 중에도 번제란 버리는 것 없이 전부를 태우는 제사로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바치는 완전한 헌신과 희생을 상징한다. 그 후 신약 시대로 접어들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시고 인간의 죄를 대신 지심으로 동물을 죽여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는 끝이 났다. 이처럼 번제에는 반드시 희생 제물이 따른다. 십자가를 지고 돌아가신 예수님이 희생 제물이고 십자가는 번제단(燔祭壇)이었다. 역사적으로도 어려운 상황에 처한 민족이나 인류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몸과 마음을 바친 분들이 있다. 아프리카 선교사로 노예를 해방시킨 영국의 리빙스턴, 생명을 경외한 의사 슈바이처, 인도의 평화주의자 간디는 고난당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구제한 위대한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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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현 칼럼]내 이름은 산천어
수필가 김국현(金國鉉) 강원도 깊은 산기슭에 자리 잡은 양식장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그때만 해도 우리는 행복했다. 어미에게서 헤엄치는 기술을 배우고 때맞춰 던져주는 먹이를 즐겼다. 그러던 사이에 비늘도 자라고 유선형의 아름다운 몸매에 살도 적당히 올랐다. 주인이 외출한 날에는 우리끼리 뷰티 축제를 열었다. 순서에 따라 몸을 한 바퀴씩 돌기도 하고 은빛 비늘이 햇빛에 반짝이면 꼬리를 흔들어 보이며 서로를 격려했다. 물 위로 스며드는 계절의 향기도 즐기고 나무에 앉은 새들과도 동무되어 노닐다가 지나가는 구름 그림자를 따라 다니며 빠끔빠끔 입질도 했다. 바람에 이는 물결이 지느러미에 닿을 때면 부드러운 감촉으로 기분이 참 좋았다. 어느덧 우리들의 보금자리에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가 싶더니 물 위로 낙엽이 쌓이면서 서서히 추위가 닥쳐왔다. 우리는 물 속 깊은 곳으로 파고들며 잠을 청해보기도 했다. 그러다 언제부턴가 먹이를 한 끼도 못 먹는 날이 거듭되었다. 배가 고프지만 참았다. 어느 아침나절 머리로 그물망이 던져진 이후 우리들의 고난 여행은 시작되었다. 난데없이 나타난 물차에 태워진 채 쉬지 않고 출렁이는 물결 따라 이리저리 부딪히고 흔들리며 정처 없이 떠났다. 곁에 있던 친구는 한쪽 구석으로 휩쓸려가고, 나도 자세를 바로잡으려 애를 써 보지만 몸을 가누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차가 정지하고 한참 잠잠하다 싶더니 갑자기 문이 열리고 우리들은 물에 휩쓸려 속절없이 바깥으로 쏟아졌다. 나는 하마터면 미끄러져 얼음 바닥에 나뒹굴 뻔했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물고랑 사이로 쏜살같이 들어가 한숨을 돌리며 서늘한 물속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먹잇감을 찾는 맹수마냥 눈알에 광채가 났다. 이제 배불리 먹을 것도 생기고 자유를 찾아 넓은 세상으로 나아간 줄 알았다. 그 안이 바다 속 같기도 하고 흐르는 강물인가 싶기도 했다. 수많은 사람들의 노리개 감이 되었다는 건 꿈에도 몰랐고 여기가 죽음의 축제장인 건 상상도 하지 못했다. 바로 곁에 있던 친구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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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현 칼럼] 혼자 걷는 길
수필가 김국현(金國鉉) 설악산의 오색 주전골에 겨울비가 내린다. 강원도 산간에 대설경보가 내렸기에 내일이면 함박눈이 오기를 은근히 기대했었다. 간밤에 호텔 발코니로 나와 하늘을 맞았다. 누가 밤하늘에 파스텔로 그림을 그려놓았나. 달빛은 구름 속에 잠겨 희읍스름하고, 산은 부드러운 곡선 아래로 검회색을 띠고 희멀건 하늘과 대조를 이루었다. 분명 뭐가 오긴 올 모양이었다. 비가 오는 산행길은 혼자이기에 자유롭다. 한참을 올라가도 사람 하나 볼 수 없다. 깊고 넓은 산이 온통 나를 위해 길을 내주었다. 나는 움직이는 한 점이 되어 장엄한 파노라마 속으로 깊숙이 들어간다. 작은 가슴 떨림이 한 줄기 바람을 타고 길을 따라 흐른다. 어렴풋한 내 그림자가 개울가 바위 위에 그려졌다. 나도 자연의 한 부분이 되는 순간이다. 주전골에는 잿빛 하늘과 안개구름을 배경으로 수많은 수채화가 거대한 화실을 꾸몄다. 출발 때는 비보다 눈이었으면 싶었지만 산에 오를수록 비가 오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산 위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개울물 소리와 어울려 내 가슴 속으로 촉촉이 스며든다. 나뭇가지마다 빗방울이 송이송이 맺혀 떨어질 줄 모른다. 꽃 봉우리가 오를 때까지 기다리다 자리를 내 주려는 건가. 으스름한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모습이 영롱하기 그지없다. 얼음 밑으로 녹수(綠水)가 새 길을 내며 졸졸 흘러간다. 깊은 겨울 산에도 봄이 오려나 보다. 계곡을 따라 걷다 보니 우뚝 솟은 바위가 홀연히 나타난 나그네를 반긴다. 독주암이다. 산 정상에 한 사람만 앉을 자리가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바위 군데군데 이끼 낀 것이 거친 풍파를 이겨낸 훈장 같다. 선녀탕이 발아래에 가지런히 누워있다. 누가 선녀들 옷가지를 훔칠까 싶어 우람한 바위가 주름을 잔뜩 잡으며 곁을 지키고 서 있다. 물이 흐르다 고이고 또 흐르다 고인 형상은 물소리가 선녀의 단꿈을 깨울까봐 조심스러운 까닭인가. 산을 오르며 숨이 가빠오지만 내 가슴이 뛰는 건 자연의 신비에서 얻은 감동 때문이다. 주전골은 계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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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현 칼럼] 마중물
수필가 김국현(金國鉉) 요즘 행정부나 정치권에서 마중물이라는 말을 종종 사용한다. 정부 예산을 확보하는 명분이나 정책의 타당성을 설명하고 국민의 동의를 얻기 위해서다. 예를 들면 남북협력기금이 남북 간 경제협력을 위한 마중물이라는 논리이다. 마중물이란 원래 땅속에 있는 지하수를 끌어올리기 위해 펌프에 붓는 물을 말한다. 샘물을 마중하러 가는 물이라는 뜻이다. 어릴 적 할머니가 사시는 큰댁 마당에는 펌프가 있었다. 펌프에서 나오는 물은 늘 맑고 깨끗하여 주로 식수로 쓰였는데, 더운 여름날 등목을 하면 그리 시원할 수 없었다. 겨울 추위에 바닥이 얼어있으면 그 위에 더운물을 붓기도 하고, 한동안 쓰지 않고 두었을 때는 물을 바가지째로 부어 펌프질을 여러 번 해야 물이 나왔다. 나는 하얀 물방울을 튀기며 콸콸 쏟아지는 모습이 신기하기도 했지만, 위에서 넣은 물이 어디로 갔는지 늘 궁금했다. 아무래도 지하수를 뿜어내고는 자신은 땅속에서 사라지거나 새로 나온 물에 섞여 흘러나오다가 바깥으로 버려지는 것 같았다. 완전한 자기희생의 실천자인 셈이다. 그러고 보니 정부나 정치권에서 사용하는 마중물이라는 용어는 본래의 의미를 다소 과장해서 사용하는 건 아닌가 싶다. 세상의 마중물이 되라는 교훈적인 말이 있다. 여행 중에 어느 가족이 가평 인근에서 마을에 버려진 펌프를 찾았다. 펌프에 펌프질을 하여 물이 나오는 모습에 신기해하는 어린 손자들에게 할아버지가 얘들아, 마중물 같은 사람이 되어라고 말했다. 얼마나 순수한 바람인가. 마중물이 되려면 무엇보다 남을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 손자들이 그럴 수 있기를 할아버지는 간절히 소망했을 것이다. 부부의 경우도 이와 같다. 자신보다 배우자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참 부부의 모습이다. 어느 연예인의 주검 앞에서 미망인이 조문객들을 향해 아내에게 잘하세요. 그러면 기쁨이 옵니다.라고 했다. 남편에게 얼마나 한이 되었으면 그런 말을 했을까. 마음이 닫혀있는 사람이 자신의 아픈 감정을 위로하거나 공감해주면 가슴 속 응어리를 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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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현 칼럼] 아름다운 합창
수필가 김국현(金國鉉) 모든 참석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치며 소리 높여 노래를 부른다. 인도자를 따라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높이 들고, 흥에 겹거나 기쁨이 넘치는 자들은 가벼운 율동으로 춤을 추기도 한다. 그들이 진심으로 믿고 경배하는 한 분을 찬양하기 위함이다. 그곳에는 두려움이나 근심 걱정 같은 세상일은 들어올 틈이 없다. 오직 하늘나라의 소망이 있을 뿐이다. 기도를 멈추지 마라 눈앞의 상황이 마음을 눌러도/ () 너의 모든 게 불리해도 너는 기도를 계속해라/ 기도를 멈추지 마라 내가 너의 그 모든 상황을 바로 역전시키리니/ () 내가 모든 걸 지켜보고 있으니 바로 역전되리라 (중략) 찬양 소리가 성전을 가득 메웠다. 그분이 있는 곳까지 울려 퍼질 것 같다. 아니, 지금 이곳에 그들과 함께하며 흐뭇한 미소로 내려다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모든 이들은 그분이 자기들이 부르는 찬양을 듣고 있다고 믿는다. 어쩌면 금방이라도 하늘 문이 열리고 여기로 내려오실 것만 같다. 기도회 참석자들은 얼추 삼천 명이 넘을 듯하다. 빈자리 하나 없고 계단이나 강대상에도 성도들로 가득 찼다. 노인들도 있고 아이들도 눈에 띈다. 남녀노소에 구분이 없다. 가족과 같이 온 사람이나 교회 성도들과 함께한 이도 있고, 혼자 온 사람도 제법 많지만 외로움을 느낄 겨를이 없다. 합창은 찬양에서 시작해서 부르짖는 기도로 이어진다. 찬송가는 기도에 곡을 붙인 것이니 기도하는 마음으로 찬양할 때 더없이 아름다운 소리가 난다. 기도는 곡조가 없는 찬양이고 찬양은 곡조가 있는 기도라 했다. 그들은 소리 높여 찬양을 했고 또 기도했다. 다른 순서가 이어질 때까지 쉬지 않고 불렀다. 인도자가 중지하지 않는다면 밤이 새도록 할 기세다. 그들은 무엇을 바라고 또 무엇을 구하려는가. 분명 자신의 유익보다 나라의 번영과 그분의 영광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다. 몇 해 전 미국에서 잠시 머물 때 현지인들이 다니는 교회 예배에 참석한 적이 있다. 모든 성도들이 일어나서 춤을 추며 온몸으로 그분을 찬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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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현 칼럼] 감자 심는 날
수필가 김국현(金國鉉) 밀레의 작품 중에 감자 심는 사람들이라는 그림이 있다. 소 한 마리가 바구니에 담긴 아기 곁을 지키고, 밭에서는 부부가 농사일을 하고 있다. 남편은 땅을 파고 아내는 감자를 심는다. 그 그림이 세상에 나오자 사람들은 가난을 떠 올렸다고 한다. 그 당시 감자는 동물 사료로 쓰였는데 이 부부가 빵 대신 감자를 식탁에 올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겐 비록 가난하지만 한 가정의 단란하고 행복한 모습이 보일 뿐이다. 내가 어린 시절, 시골 과수원 밭에서 키운 감자와 고구마를 광에 넣어두었다가 온 가족이 겨우내 꺼내 먹었다. 연탄불에 구워 먹기도 하고 쌀이 귀한 탓에 감자로 끼니를 때울 때도 있었다. 나는 감자를 무척 좋아했다. 삶은 감자 중에 크고 잘생긴 놈을 서너 개 골라 그릇에 담고 짓이겨 평평하게 하고는 숟가락으로 한 숟갈씩 떠서 먹는 맛이 일품이었다. 그런데 그 감자를 내가 직접 심었다. 그건 정말 행운이었다. 농부가 농사짓는 모습이 그리 보기 좋을 수 없었는데, 내게도 마침 기회가 왔다. 내가 사는 동네에 은퇴자들로 구성된 사회봉사단이 있다. 그 모임에 가입하고 나서 얼마 지난 후 텃밭 가꾸기 행사에 참여하였다. 단원 중 한 분이 희사한 밭에서 추수한 감자와 고구마를 교회나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일이다. 텃밭은 비행장 건너편 산 중턱에 있는데 예전에 자갈이 많아 버려진 땅을 일구어 제법 밭 모양을 갖추었다. 겨울 동안 황폐하고 단단해진 밭을 갈고 감자를 심었다. 삽과 곡괭이로 땅을 파서 고랑을 내고 흙을 올린 후 그 위에 거름을 얹고 흙과 섞어 봉긋하게 예쁜 이랑을 지었다. 씨감자를 준비했다. 종자상회에서 박스로 구입하여 크기에 따라 싹이 상하지 않게 등분을 한다. 거름을 묻은 이랑을 비닐로 씌운 후 윗부분에 구멍을 내어 씨감자를 하나씩 넣고 흙을 덮는다. 거기에 물을 주면 작업이 끝난다. 처음 해 보는 일이라 만만치 않았다. 서투른 삽질과 곡괭이질로 허리가 아프고 어깨도 쑤셨다. 서로 도우며 함께 하다 보니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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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현 칼럼] 꽃보다 단풍
수필가 김국현(金國鉉) 곤지암 인근의 화담숲에서 가을을 맞았다. 꽃이 단풍이고 단풍이 꽃이었다. 어쩌면 단풍이 꽃보다 아름다웠다. 화담숲은 자연과 사람이 어우러진 결실이다. 동산에서 자라던 수목의 풍광을 살리면서 그 사이로 작은 화단을 조성하여 초화(草花) 정원과 하경(夏景) 정원, 이끼원 등을 꾸몄다. 화담숲에는 모두 400여 종의 식물들이 자라는데, 그 중 수국과 국화와 구절초가 가을꽃의 명맥을 잇고 있다. 언덕배기에 형형색색의 국화를 가꾸고 오솔길을 따라 하얀빛이 영롱한 구절초를 심은 정원수의 마음이란 봄에 핀 꽃이 금세 지는 게 서운하여 그 때의 아쉬움을 달래고 싶은 까닭이리라. 가을 단풍 속에 있노라니 봄이 언제 왔는지 까마득하여 기억이 가물거린다. 군데군데 피어나는 들꽃이 옛 친구를 만난 듯 반갑기 그지없다. 작은 마디마다 뿌리를 내밀어 돌담을 타고 오르거나 전나무 줄기를 따라 올라가던 담쟁이덩굴도 널찍한 이파리가 하나같이 홍조 띤 얼굴을 하고 있다. 자신의 생존을 담벼락과 나무줄기에 의존하고 있어 부끄러운 것인가. 곁눈질하며 숨고 싶지만 어디로도 몸 하나 숨길 데가 없다. 어쩌면 아무 생각 없이 계절을 즐기며 주변과 동화되려는 떳떳함이 엿보이기도 한다. 벚나무는 꽃이 예쁜 나무였다. 이른 봄 흰색 비단 가루를 지천으로 뿌려놓은 듯 화사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하지만 가을에 물든 잎이 꽃보다 예쁘다. 봄에 꽃 피웠던 시절을 못 잊어 겨울이 오기 전에 다시금 온 몸을 아름답게 가꾸려는 것이리라. 그러기에 벚나무는 인생의 황혼으로 접어드는 나에게 용기와 도전의 마음을 북돋운다. 서리를 맞으면 붉어진다는 낙상홍은 또 어떤가. 핏빛처럼 붉디붉은 이파리는 남다른 열정으로 세상을 뜨겁게 달구었다. 가을은 단풍의 계절이기에 꽃이 피는 봄과 사뭇 다르다. 봄은 자신감을 가지고 아름다움을 마음껏 드러내는 젊은 아가씨 같다. 꽃들은 다른 꽃을 시샘도 곧잘 한다. 하지만 가을은 갈색과 옅은 노란색으로 물들어 점잖으면서도 마음을 내려놓은 나이든 아저씨 모습이다.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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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현 칼럼] 매창을 그리다
수필가 김국현(金國鉉) 세상에는 사랑을 소재로 하는 가요나 문학 작품이 참 많다. 그중에 사랑하면서도 서로 만나지 못해 마냥 그리워하다 죽음을 맞는 사연은 듣는 이에게 안타까움을 준다. 그건 실제 일어난 일이기도 하고 작가의 상상력으로 창조되기도 하지만, 진실한 사랑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고 작품의 배경이 된 풍경이 궁금해지기도 한다. 북유럽에 있는 노르웨이는 음악이 있고 사랑과 낭만이 넘치는 곳이다. 여행 중에 솔베이지의 노래의 무대이자 작곡가 그리그의 고향인 오타(Otta)를 들렀다. 양지바른 산자락의 작은 마을인데 그 앞으로 작은 개울이 송네 피오르로 향해 굽이쳐 지나간다. 깊은 산마루의 빙하가 녹은 맑은 물이 시내가 되었다. 내가 타고 가던 버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으며 그걸 즐겨 부르던 대학시절의 풋풋한 추억이 되살아난다. 이루지 못한 사랑의 상처를 가요로 승화시켰지만 곡조가 그윽하고 아름다워 들을수록 여운이 남는 곡이다. 겨울 지나고 봄 돌아오면 봄 돌아오면 그 여름이 시들어 세월 흐르네 세월 흐르네 그대 돌아오리 오리라 오리라 나의 그대여 나 기다리겠네 우리 약속했듯이 그대 기다리리 (중략) 이 노래는 그리그가 극작가인 입센의 부탁으로 작곡한 페르귄트 모음곡 중 일부에 해당하는 것으로, 서정적이고 슬픈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가난한 농부 페르귄트는 아름다운 소녀 솔베이지와 사랑하여 결혼을 약속한 후 돈을 벌기 위해 집을 떠나고, 십여 년의 갖은 고생 끝에 지친 몸으로 고향에 돌아온다. 하지만 어머니가 살던 오두막집에는 사랑하는 솔베이지가 백발이 되어 혼자 페르귄트를 맞는다. 늙고 병든 페르귄트는 솔베이지의 무릎에 누워 조용히 눈을 감는데, 솔베이지도 꿈에 그리던 페르귄트를 안고 이 노래를 부르며 연인을 따라간다. 만남과 이별은 사랑의 진수(眞髓)다. 이별이 죽음 때문이라면 그 사랑은 더욱 애달프다. 노르웨이에 페르귄트와 솔베이지의 사랑이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유희경과 매창의 사랑이 있다. 두 이야기는 모두 기약 없는 기다림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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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현 칼럼] 피아노
수필가 김국현(金國鉉) 추석날 큰아들 집에 모처럼 가족들이 모였다. 저녁을 먹고 나니 모두가 보는 앞에서 손녀가 피아노를 친다. 비발디의 사계 중 가을이다. 몇 달 동안 연습한 솜씨를 앙증맞은 두 손으로 뽐내 보인다. 피아노는 나에게 추억의 악기이자 동경의 대상이다.고등학교 2학년 음악 시간에 피아노 실기시험이 있었다. 과제로 주어진 곡은 연습곡인 바이엘 46번이었다. 내 순서가 되어 피아노 건반 위에 두 손을 올려놓는 순간 두런거리던 친구들이 일순간 조용해졌다. 차분하게 시작하여 악보에 따라 연주를 무난히 마쳤다. 반에서 두 손으로 곡을 연주해보인 학생은 나 하나뿐이었다. 나는 그 당시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했는데, 안집의 대문 옆 문간방에 풍금이 있어서 방과 후 근 한 달 동안 열심히 연습했다. 지금도 한 반 친구들이 나를 만나면 그때 그 기억을 되새겨 주곤 한다. 그 곡을 유튜브로 들었다. 내가 연주하던 그때의 숨소리와 손가락 놀림이 세월을 가로질러 초로(草露)에 묻힌 나에게 풋풋한 추억으로 전해온다. 이 곡은 후반부에 잠시 변화되는 부분을 빼면 사분의사 박자의 비슷한 멜로디가 반복되면서 곡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며칠 전, 비가 오던 아침나절에 러시아의 작곡가 야로슬라브 니키틴의 피아노곡 비의 왈츠(Waltz in the Rain)를 감상했다. 피아노 건반 소리 하나하나가 빗방울처럼 내 가슴 위로 떨어진다. 악보에 따라 연주자가 손가락 끝을 고부려 두드리는 건반이 고요한 내 마음을 톡톡 건드린다. 피아노 음률이 그토록 정겨울 수 없다. 곡을 듣고 있노라면 빗소리와 함께 비 내리는 정경이 연상된다. 비는 바깥에서 오지만 빗소리는 가슴속을 흘러내려 내 안으로 깊숙이 스며든다. 그런데 그 곡은 예전에 내가 배운 연습곡의 연주 패턴과 유사하다. 연주자의 왼손은 사분의사 박자의 반주를 반복해서 이어가고 오른손은 멜로디를 맡아서 분위기를 이끈다. 이 곡처럼 단순하면서도 서정적인 멜로디를 가진 피아노곡 중에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 1악장과 비창 2악장, 쇼팽의 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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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현 칼럼] 3분 드라마
수필가 김국현(金國鉉) 요즘 우리나라는 트로트 열풍에 휩싸였다. 텔레비전에는 트로트가 좋아 보이스 퀸 미스 트롯이 절찬 중에 방영되고 있다. 시청률은 웬만한 프로를 훨씬 능가한다. 가수와 관중들이 한마음으로 즐기면서 박수를 치고 흥에 겨우면 일어나 춤을 춘다. 미스 트롯 대회에 이어 미스터 트롯 경연이 펼쳐졌다. 스타가 되는 관문이기에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가수나 가수 지망생들이 구름같이 몰려드는 꿈의 무대이다. 대회는 유소년부와 현역부 등 그룹별로 나누어 예선을 치르고 팀별 대항과 맞수 대결 그리고 결승전으로 이어진다. 출연자들의 경연이 진행될 때마다 당락의 결과로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이곳은 공개된 장소에서 심사위원과 방청객이 한 몸 되어 트롯 맨을 발굴하는 축제의 현장이다. 피겨의 여왕 김연아는 피겨는 7분의 드라마이며, 13년의 꿈과 땀과 열정을 짧은 순간에 보여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단 7분에 승부수를 던지는 것이다. 가요에도 3분 드라마가 있다. 노래 한 곡을 부르는 3분 동안 자신의 실력을 마음껏 발휘해야 한다. 일 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다. 나는 가수가 꿈인 시절이 있었다. 수많은 관중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꿈도 종종 꾸었다. 가수 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가수 생활이 얼마나 힘든 삶인지, 그런 건 상관하지 않고 오직 노래 부르는 게 좋았고 노래하는 가수들이 참으로 부러웠다. 어릴 때 꿈이지만 아직 희망을 버리지 않았기에 지금도 꾸는 꿈이다. 나는 가요 중에도 트로트를 유달리 좋아했다. 내가 트로트를 처음 접한 건 나이 5살 때였다. 철도역에 근무하시는 아버지를 따라 누나와 함께 한적한 시골집에서 살았다. 틈만 나면 누나에게서 옛날 노래를 배웠다. 내가 처음 알게 된 노래가 명국환씨가 부른 아리조나 카우보이였는데 가사 내용도 모르면서 끝까지 부를 줄 알았다. 초등학교 봄 소풍 때 보물찾기에 이어 장기자랑 순서가 되면 선생님과 친구들 앞에서 갈고닦은 실력을 뽐내 보이곤 했다. 집에서도 혼자 있으면 쉬지 않고 흥얼거렸다. 그때 즐겨 부르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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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현 칼럼] 떠난 자와 남은 자
수필가 김국현(金國鉉) 베트남 여행 중에 들어본 헬로우 베트남이 지금도 내 귓전에 맴돈다.노래 가사가 슬픈 곡조를 따라 흐르고 내 가슴은 노래 속에 흠뻑 젖어든다. () 내가 아는 것이라곤/ 코폴라 감독의 헬리콥터가 굉음을 울리는 전 쟁 장면 뿐이야/ 언젠가는 그 땅을 밟아보겠어/ ()/ 언젠가는 널 찾아 가겠어/ 안녕 베트남이라 전하기 위해 () 이 곡은 벨기에 국적을 가진 가수가 조상들의 고국인 베트남을 그리워하며 부른 노래이다. 외국곡이지만 베트남 국민들의 애국심과 자부심을 일깨워준다. 가수는 베트남 전쟁 직후 작은 배에 몸을 싣고 조국을 탈출한 보트 피플(boat people)의 후손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 당시 보트 피플이 100만 명에 달하고, 해외로 도피 중 사망한 베트남인이 수십만 명에 이른다. 남북이 북베트남 정권에 의해 통일된 후 공산화 과정에서 인권유린과 탄압이 이어지고 주로 지식인과 부유층, 반공주의자와 관료들이 보트 피플의 대열에 합류하였다. 베트남에는 떠난 자를 보낸 슬픔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들은 남은 자로서 떠난 자들의 몫을 떠안고 산다. 약 20년간 이어진 전쟁으로 베트남 국민 중 전사한 군인과 민간인 사망자가 100만 명이 훨씬 넘고, 통일 후 재교육 중에 처형된 남베트남인을 합치면 통일 과정에서 모두 200만 명에 가까운 베트남인이 사망했다. 오랜 전쟁 탓에 베트남 남자들은 언제 전쟁터에 불려갈지 몰라 일터나 가정의 일상은 여성 중심으로 이루어진 지 오래다. 청소차에 매달린 청소부나 시장의 가게를 지키는 이도 여자들이 많고, 아기를 앞뒤로 안고 업고 다니는 오토바이 기사도 여자다. 어깨에 걸친 광주리에 수십 통의 수박을 싣고 가는 여자도 보이고, 하노이 도심지에 우뚝 솟은 성당에서 간절히 기도하는 신자들도 여인들이다. 길모퉁이에서 복권을 파는 여자 옆에 쪼그리고 앉아 돈을 세거나 길거리에서 삼삼오오 앉아 놀고 있는 사람들은 영락없는 남자들이다. 그런 강인한 여인 중에 하롱베이 해변에서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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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현 칼럼] 글을 두드리다
수필가 김국현(金國鉉) 글은 쓰는 게 아니라 두드리는 것이다.나는 요즘 글을 작성할 때 스마트폰에서 다운로드 받은 메모 앱을 주로 이용한다. 소재가 떠오르고 주제가 정해진 후 글에 들어갈 내용이 생각날 때마다 글자판을 두드린다. 몇 차례 작업을 이어가다보면 메모장에 글이 차곡차곡 쌓이고 한 편의 글을 작성할 준비가 된다. 메모장에 모인 글은 나의 이메일로 보내서 문서작성 프로그램으로 초안을 잡는다. 이제 본격적인 글 작업이 시작되는 것이다. 메모하는 것 중 어떤 부분도 펜이나 연필을 사용하지 않고 처음부터 탈고할 때까지 글자판만 두드리다 끝난다. 그러니 예전처럼 글을 쓴다고 하기가 어색해지고 실제와는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글을 두드린다는 말은 북을 두드리다와 같이 작가의 생각이나 사상으로 세상에 공명을 울린다는 의미와, 문을 두드리다처럼 독자의 마음을 열고 서로 소통한다는 뜻을 가진다. 두드리는 것은 게으른 사람을 깨우거나 꿈을 이루기 위한 용기를 주고 인생의 답을 찾는다는 긍정적인 의미도 있다. 어느 자폐아의 아버지 이야기다. 아버지의 눈물겨운 헌신과 인내로 자폐증을 앓는 딸의 마음의 문을 두드려 마침내 굳게 닫혔던 딸의 마음을 열고 내면의 소리를 듣게 되는 기적을 보았다. 당나라 시인 가도(賈島)가 승퇴월하문(僧推月下門)이라는 시구를 지을 때는 당대의 문장가인 한유(韓愈)의 조언으로 밀 퇴(推)를 두드릴 고(敲)로 바꾸었다. 시인 조병화와 소설가 박경리의 문학관에 들른 적이 있다. 거기에는 예외 없이 작가의 친필 원고를 유리 상자에 넣어 전시하고 있다. 원고지에는 펜으로 쓰고 지우고 고치고 그 위에 또 쓰면서 종이의 여백까지 빈틈없이 글자로 채워져 있다. 나는 원고지를 바라보며 참으로 힘든 과정을 거쳐야 걸작이 나오는 거라 짐작해 보았다. 김홍신 작가는 대하소설 ≪대발해≫를 쓸 때 꼭 만년필을 사용했다. 집필을 마칠 즈음에는 만년필 세 자루의 펜촉이 다 닳을 정도였고 고개가 아파 부황 을 뜨면서 작업했다고 한다. 나는 초등학교 때 국어시간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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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현 칼럼] 버스킹에 빠지다
수필가 김국현(金國鉉)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의 고장인 이탈리아 베로나(Verona)에서 버스킹이 열렸다. 어느 방송사 주관으로 우리나라 젊은 가수들로 구성된 패밀리밴드와 제작팀이 거리 공연 녹화를 위해 유럽의 유명 관광지를 돌아다녔다. 그 일정의 하나로 며칠 전 사랑과 낭만이 깃든 베로나에 도착한 것이다.그들은 공연 전날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근교의 작은 언덕에 올랐다가 다리 위에서 마이웨이를 연주하는 현지 피아노 버스커를 만났다. 밴드는 아름다운 풍경과 음악에 마음이 동하여 그 자리에서 즉석 공연을 펼쳤다. 피아노 반주에 맞춰 악단은 바이올린을 켜고 가수는 노래를 불렀다. 우연히 그곳을 찾은 관광객들은 예상치 못한 멋진 공연에 흐뭇한 박수를 보냈다. 버스킹의 감동은 낭만과 자연스러움에 더하여 기획의 즉흥성에 있다. 그날 방송을 보던 나는 마치 내가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거리 공연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젊은 가수들에게 세상은 드넓은 공연장이다. 스튜디오를 통째로 들고나와 답답한 실내에서 탁 트인 광장으로 무대를 옮기는 것이다. 대중과 가까워지고 싶어서다. 광장에서의 버스킹은 시간과 장소에 얽매이지 않아서 좋고 관객만 있으면 대만족이다. 가수와 청중이 한마음 되니 감동도 깊고 넓다. 오다가다 만났으니 서로에 대한 의무감도 없고, 금전적으로 빚진 것도 없다. 언제든 싫증나면 떠나면 된다.요즘 서울의 도심 골목이나 지하철 역사 안에서 가난한 여행객들이 악기 연주하는 모습이 가끔 눈에 띤다. 악사들은 헤진 바구니나 남루한 모자를 앞에 두고 바이올린과 팬플룻 따위로 작은 음악회를 연다. 대부분 행인들은 갈 길이 바빠 무심히 지나치지만 어떤 곳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기도 하다. 관중들은 이국적인 음악 선율에 심취하면서도 악사들의 편안한 의상과 순수하고 밝은 표정이 마냥 좋은 것이다. 버스커들은 가난한 예술가이기에 그날 번 돈으로 한 끼 식사를 하고 누추한 잠자리를 구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듯하다. 그들에게 배부른 게 무슨 소용이고 궁궐 같은 잠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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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현 칼럼] 3분 드라마(2)
수필가 김국현(金國鉉) 방송 프로그램은 1편이 끝나고 이제 2편으로 이어진다. 그건 분명 이야기로 구성된 서사시적 프로로서, 흐뭇한 미소 없이는 볼 수 없고 뜨거운 눈물 없이는 들을 수도 없는 한 편의 드라마다. 1편이 신선한 감동의 시작이었다면 2편은 성숙된 감동의 전개이다. 드디어 일곱 명의 트롯맨이 탄생했다. 예선과 결선의 치열했던 경쟁에서 살아남아 영예의 자리에 올랐다. 그들은 경연을 통해 나날이 성장했고, 프로정신과 순수성을 잃지 않았다. 그런데다 여느 정치인이나 성공한 자들처럼 교만하지 않고 한결같이 겸손한 자세를 가졌기에 더욱 돋보인다. 그들에게는 대중적 인기와 명성보다 오직 청중들의 사랑과 노래에 대한 열정이 있을 뿐이다. 요즘은 매주 목요일 밤만 되면 여지없이 텔레비전 앞에 앉는다. 사랑의 콜센터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보기 위해서다. 시청자들의 전화가 방송국에 접수되면 그 중에 출연자들이 번호를 선택하고 전화를 연결해서 지명된 가수가 신청곡을 직접 불러준다. 이번 주는 가정의 달을 맞아 효도를 주제로 가요 경연을 펼쳤다. 트롯맨들은 어머니와 함께 출연해서 모자간에 애틋한 사랑을 보여준다. 대다수가 아버지를 일찍 여의었거나 와병 중에 있다. 노래하는 가수나 들어주는 어머니나 바라보는 시청자나 눈물에 젖은 회한이 가슴과 가슴으로 전해진다. 가족이란 기쁜 일이 있을 때 빈자리가 더 쓸쓸하고 허전한 법이다. 그러기에 슬플 때 흘리는 눈물보다 기쁠 때 흘리는 눈물이 더 깊고 짜다. 마법의 성을 신청한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죽은 아들을 빼어 닮았다는 가수를 지명하여 아들이 생전에 즐겨 불렀던 노래를 듣고 싶어 했다. 가수는 눈시울을 붉히며 노래를 불렀고, 어머니는 노래를 듣는 내내 울먹이고 흐느꼈다. 그녀는 노래 덕분에 살아갈 용기를 얻었다고 가수에게 감사했고, 가수도 서슴없이 아들이 되어주겠다고 화답했다. 올해 81세 할머니는 어린 가수의 노래를 들으며 무척 큰 위로를 받는다면서, 돌아가신 어머니를 위해 불효자는 웁니다를 신청했다. 그 가수는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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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현 칼럼] 진도 여행기
수필가 김국현(金國鉉) 진도는 다도해의 비경과 명량해협인 울돌목이 있는 곳이다. 여행 출발 전날, 낯선 여정에 대한 기대감으로 잠을 설쳤다. 아침 하늘은 더없이 청명하고 꽃바람과 다순 햇살도 예사롭지 않다. 가방을 꾸리는 동안 한줄기 상큼한 바다 내음이 코끝을 스치고 지나간다. 이제 진도행 천 리 길로 접어든다. 해남이 땅끝이라지만 육상으로 갈 수 있는 우리 영토의 서남쪽 맨끝에는 진도가 있다. 진도는 예로부터 강직한 선비들의 유배지요, 일본과 몽고군 등 외세를 죽음으로 물리치고, 세월호의 슬픔을 가슴에 안고 있기에 빈손으로 방문하기에는 자못 스스럽다. 이번 여행으로 나라 사랑의 뿌듯한 마음을 가슴에 새기고 문화 예술의 멋과 맛까지 알게 되려니 구경만 하고 돌아온다면 진도에 빚만 지게 될 것 같다. 하지만 여행이란 빈손으로 갔다가 추억을 한 아름 안고 돌아오는 거라는 말에 위안 삼는다. 진도는 곳곳이 명승지다. 진도의 상징인 진도대교와 진도타워, 울돌목과 강강술래터 등 이순신 장군 유적지를 비롯해 소치(小痴) 허련 선생의 화실인 운림산방, 진돗개 테마공원과 분양지, 바다가 아름다운 세방 낙조와 신비의 바닷길, 다도해 관광지인 관매도와 도리산 전망대, 그리고 팽목항이 있다. 거기다 미스트롯 가수인 송가인은 예향의 고장 진도 사람들의 자랑이다. 그녀는 진도의 풍속과 음률을 한 몸에 받아 국민가수가 되었다. 이제 아리랑 마을이 조성되면 진도아리랑과 씻김굿, 강강술래를 전승하는 훌륭한 문화 탐방지로 자리 잡을 것이다. 첫 번째 기착지는 진도대교, 멀리서 홀연히 달려온 나를 다정한 손길로 반기며 길을 활짝 터 주었다. 그 아래를 흐르는 명량해협의 폭이 좁아 먼바다를 바라보던 잠깐 사이에 훌쩍 넘어간다. 다리를 건너면 바로 왼쪽 편 언덕 위에 장군처럼 우뚝 서 있는 진도타워에 오를 수 있다. 타워 전망대에서 바라본 울돌목의 소용돌이가 시공을 초월하여 하얀 포말을 그린다. 이순신 장군이 외로운 육신에 혼을 다 바쳐 싸웠던 바로 그 역사적 현장이다. 400여 년 전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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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현 칼럼] 땅끝에서
수필가 김국현(金國鉉) 해남의 땅끝에 적막감이 돈다. 바다와 산과 하늘 모두가 침묵하고 있다. 산들바람에 파도는 치지 않고 잔잔한 물결만 인다. 그 흔한 갈매기 한 마리 날아오지 않는다. 이곳은 한반도의 최남단, 삼천리금수강산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바다와 육지가 처음 만나는 곳이기에 내 마음도 덩달아 숙연해진다. 어저께 저녁, 이곳 땅끝마을에 도착하여 바닷가 숙소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마을에는 모텔과 민박, 식당, 주차장과 관광시설이 들어차 있어 사람들로 붐비는 여느 도회지 같다. 고즈넉한 어촌 풍경을 상상하고 왔는데 토착민들이 살았던 흔적도, 시골 마을에 흔히 있는 살림집도 찾아보기 어렵다. 해물해장국으로 이른 조반을 먹고 땅끝을 찾아 길을 나섰다. 가는 길은 해변에 있어 왼쪽으로 바다를 끼고 돈다. 평지라 걷기 편하고 기분이 상쾌하다. 전망대로 향하는 모노레일 탑승 구역을 지나 오솔길을 이십여 분 걸어가면 바닷물이 찰랑이는 육지의 끝이 보이고, 그 위에 땅끝탑이 있다. 탑으로 향하는 나무 계단을 내려가는데 조금 전 마을에서 만난 다른 일행들과 마주쳤다. 나를 알아보고 구경 잘하고 가세요 하기에 모두 다 가버리면 제 사진은 누가 찍어 줘요? 하며 농담을 걸었더니 아래에 몇 사람 두고 왔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너스레를 떤다. 내려가 보니 과연 한 가족과 청년 둘이 벌써 와 있다. 어머니에게서 이곳 이야기를 전해 듣던 아이들은 한반도 조각물이 거꾸로 서 있는 걸 무척 신기해한다. 나는 청년들에게 사진 몇 장을 부탁했다. 뱃머리처럼 생긴 조형물 끝에서 영화 타이타닉의 주인공이 된 듯 두 팔을 활짝 펴고 시원한 해풍을 맞았다. 심호흡하는 내 가슴에 화사한 햇볕이 우수수 내려앉는다. 자연을 벗 삼아 배를 타고 먼 항해를 시작하는 기분이다. 땅끝은 육지로 가는 시발점이자 바다로 나아가는 출발선이다. 그러기에 땅의 끝은 세상의 중심이지 결코 끝이 아니다. 간밤에도 으스름한 달밤이 지나고 여명이 깃드는 새벽녘까지 땅끝에는 어둠 속에서 적멸(寂滅)의 공포감이 엄습해 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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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현 칼럼] 서해의 일출
수필가 김국현(金國鉉) 이른 봄 한가한 날에 당진의 왜목마을에서 하룻밤을 지냈다. 서쪽 바다에도 해가 뜬다. 숙소에서 바라보는 바다 건너편에서 붉은 해가 떠오른다. 여기는 이름 그대로 왜가리 목처럼 지형이 남북으로 가늘고 길게 뻗어 바다를 동서로 나누고, 해안이 동쪽으로 튀어나와 있어 동해안처럼 일출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새벽의 여명이다. 칠흑 같은 장막이 옅어지면 숨어있던 세상이 조금씩 드러난다. 수평선과 맞닿은 하늘에 주홍빛이 어리는가 싶더니 바다에도 데칼코마니처럼 붉은색 물감이 풀어져 물이 들기 시작한다. 어저께 석문산으로 넘어갔던 해가 밤을 샌 뒤 이곳의 바다 끝자락으로 올라와 초승달 같이 납작한 이마를 빼꼼 내민다. 가슴이 벅차고 숨이 막힌다. 살아가면서 이처럼 자연경관에 감동받은 적이 얼마나 있었던가.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눌러보지만 순간의 장면만 담을 뿐 부활의 명증을 기억하기엔 역부족이다. 어젯밤 나는 마을의 해변을 거닐었다. 봄기운에 바람은 아직 차가운데 수평선은 어둠 속에 감춰져 있고 하늘 한 편으로 달무리가 졌다. 청량한 갈매기 울음소리가 간간한 파도 소리와 어울리니 배경 음악이 있는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젊은이들이 모래톱에서 개구쟁이처럼 바다를 향해 폭죽을 터트렸다. 그들에게 밤은 새벽을 기다리는 여망의 대상일 뿐이었다. 해가 오를수록 붉은 빛이 드넓은 하늘을 짙게 물들이고, 밤새 어둠 속에 잠들었던 바다가 부스스 깨어나고 있다. 해가 온 몸을 동그랗게 들어낼 즈음엔 해변에서 물끄러미 바라보던 갈매기도 날개를 보듬는다. 갈매기는 아침 바다 위로는 높이 날지 않고 활강만 한다. 새 아침을 맞는 상쾌한 기분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어서다. 왜가리 형상의 조형물인 새벽왜목이 바다에 발을 담그고 있는데, 갈매기들과 길동무 되어 금방이라도 꿈을 향해 먼 바다로 힘차게 날아갈 모양새다. 어느새 해변에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이고 저마다의 소원을 빌며 아름다운 정경 속에 가슴을 적신다. 캠핑 족들도 이른 기상을 하고 텐트 문을 연지 오래고, 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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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현 칼럼] 나의 행복론
수필가 김국현(金國鉉) 바람이 선들선들 불어온다. 늘 앞 베란다 창문만 열고 지내다가 오늘은 부엌 쪽 문을 열었더니 서늘한 바람이 기다렸다는 듯 집안으로 은근슬쩍 뛰어든다. 거실과 방을 기웃거리다 앞쪽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맞장구치며 한바탕 놀고는 뒤따르는 바람에 떠밀려 슬며시 사라진다. 요즘 같은 무더위에 시원한 바람을 맞으니 어느 산 속 오솔길의 벤치에 앉아 있는 기분이다. 열어 둔 창문 사이로 푸른 산과 구름도 또렷이 보인다. 아! 행복하다. 내가 집에 머무는 것 자체로 행복감을 느낀 게 언제였던가. 시인이자 소설가인 헤르만 헷세는 행복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공포와 희망의 지배로부터 자유롭고, 감정이 완벽하게 현재의 상태여야 한다고 했다. 오늘처럼 바람 한 점으로 행복을 느끼는 것은 과거나 미래에 대한 회한과 두려움 없이 오직 지금 이 순간을 즐길 수 있기에 가능하다.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하기 위해 산다. 가난한 사람은 가난을 벗어나면 행복할 거라 믿고, 실업자는 버젓한 회사에 취직하면 행복해질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목적을 이룬다고 반드시 행복한 건 아니다. 만족하지 못하니 그런 것이다. 어느 아파트 경비원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고 주민의 행복을 최고의 선으로 여기며 그들을 돕는 일에 몰두하다 보니 표정이 무척 밝아졌다고 한다.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게 자신이 행복한 비결인 셈이다. 내가 즐겨 다니는 산책길은 도심 속의 외딴 시골길 같다. 탄천 둔치와 도로 사이에 숲길을 내고 바닥에 가마니를 깔았다. 길 양 옆으로 나무가 우거져 계절마다 색다른 풍경을 자아낸다. 요즘처럼 신록의 계절이면 초목들이 싱그럽고 푸르러 걸음에 힘이 절로 난다. 오늘은 돌계단 사이에 핀 노란 들꽃을 보았다. 지난봄 어느 날인가 씨앗이 바람을 타고 날아와 계단에 떨어진 뒤 회오리바람 한줄기에 돌 사이 벌어진 틈새로 굴렀다가 몇 톨 안 되는 흙에 간신히 뿌리를 내렸으리라. 돌 틈 사이를 비집고 나오느라 허리가 굽고 이파리 하나 자라게 할 겨를도 없이 꽃을 피우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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