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초대석] 오대산 산행기, 조성민 여행작가/한양대 로스쿨 명예교수

오대산 설경./사진=조성민 


오대산에 물들다

오대산을 오르기 위해 아침 8시에 월정사매표소를 통과했다. 오대산은 백두대간 중심에 솟아 있으며, 주봉인 비로봉(1,563m) 호령봉(1,516m) 상왕봉(1,491m) 두로봉(1,421m) 동대산(1,433m)의 다섯 봉우리가 펼쳐져 있다. 고도가 비슷한 다섯 봉우리가 막 잎을 벌리고 피어난 연꽃봉오리를 닮은 산이다. 높은 봉우리들은 어느 한 곳도 모나지 않는 부드러운 능선이며, 계곡은 험하지 않고 온순한 모양새로 맑은 물이 골짜기를 따라 오대천 계곡으로 흐른다. 오대산은 1975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돼 2개 지구로 나뉜다. 하나는 오대산을 이루는 다섯 봉우리와 그 사이의 여러 사찰들로 구성된 평창의 월정사지구, 다른 하나는 노인봉(1,388m)을 중심으로 하는 강릉의 소금강지구다. 오대산은 가을에는 단풍, 겨울에는 눈꽃이 환상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단풍의 절정은 10월 중순경 일시에 불타오르는 것이 일품이며 색상이 뚜렷하고 진한 것이 특징이란다. 월정사에서 상원사에 이르는 계곡과 비로봉에 이르는 길이 오대산 최고의 단풍코스다. 또 오대산의 겨울 설경은 주봉인 비로봉에서 상왕봉을 잇는 능선의 싸리나무와 고사목 군락지에 핀 상고대가 절경을 이룬단다. 이처럼 단풍과 설경을 자랑하는 오대산은 다섯 개의 봉우리가 조화를 이뤄 연꽃과 같은 모양으로, 하모니의 지혜가 그 이름에서부터 깃들어 있은 산이다. 연꽃은 진흙이 깊으면 깊을수록 더욱 함초롬히 꽃을 피우고, 더러운 곳에서 피어나지만 그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항상 맑고 정갈한 자태를 지닌다. 물속에 떨어진 연꽃 씨는 오랜 세월이 지나도 썩지 않고 그대로 있다가 인연이 닿으면 언젠가는 반드시 움을 티어 꽃을 피우는 저력을 지니고 있다. 부질없는 탐욕을 다스리고 평정심을 구한다는 자세로 언제나 맑고 정갈한 자태를 지키는 오대산 정상을 향해 힘찬 발길을 내딛었다.


오대산 섶다리./사진=조성민


전나무 숲길을 지나 섶다리를 목격하다

월정사 일주문에서 시작되는 전나무 숲길은 아름다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수령이 200년이 넘는 키다리 전나무 2,000여 그루가 길 양옆에 빼곡히 도열한 채 촘촘히 어깨를 맞대고 하늘 높은 줄을 모르고 있다. 오대산 전나무 숲은 천년의 숲으로 광릉수목원의 전나무 숲, 변산반도 내소사의 전나무 숲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전나무 숲으로 꼽힌다. 오대산 전나무 숲의 특징은 ⓵ 사람이 가장 행복을 느끼는 해발 700m 위치에 있고, ⓶ 전나무 숲 옆에 음이온을 발생시키는 오대천이 흐르고 있으며, ⓷ 원적외선을 함유한 황톳길로 맨발체험이 가능하고, ⓸ 울창한 전나무 숲에서 나오는 피톤치드로 삼림욕하기에 좋은 건강하고 아름다운 생명의 숲이란다. 전나무 숲길을 천천히 달리다가 늘씬한 몸매를 뽐내고 있는 전나무들을 사진에 담았다.월정사를 지나자 계곡을 가로지르는 섶다리가 눈에 띤다. 섶다리는 나룻배를 띠울 수 없는 얕은 강에 잘 썩지 않는 물푸레나무로 다리기둥을 세우고 참나무로 만든 다리상판 위에 솔가지로 섶을 엮어 깔고 그 위에 흙을 덮어 만든 다리다. 섶다리는 해마다 가을걷이가 끝나는 시기에 마을사람들이 함께 모여 다리를 만들어 겨우내 강을 건너다니다가, 여름이 되어 홍수가 나면 떠내려가므로 이별의 다리라고도 한다. 전국 각지에 있는 섶다리를 소개한 사진을 인터넷에서 본 적은 있으나, 실물을 만나게 되어 즐거움이 충만했다.


선재길에서 마음에 평화가 일렁이다

오대산의 너른 품 한복판에 천년 고찰 월정사와 말사인 상원사가 있는데, 두 사찰을 잇는 길이 선재길이다. 선재길은 숲내음이 가득한 이십 여리 옛길로 월정사에서 시작해 상원사에서 끝난다. 1960년대 두 사찰 사이에 도로가 나기 전부터 스님과 신도들이 오가던 비밀스러운 숲길이다. 한동안 ‘천년 옛길’로 불리다가 국립공원공단과 월정사가 옛길을 복원하면서 2013년부터 ‘선재길’이란 새 이름표를 달았다. 선재길이란 명칭은 화엄경에 나오는 구도자인 ‘선재동자’에서 이름을 빌려왔단다. 선재동자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수행자를 바른길로 인도하는 선지식(불교지도자) 53명을 차례로 찾아갔는데, 마지막으로 보현보살을 만나 진리의 세계에 들어가게 되었다. 선재길은 선지식을 찾아 돌아다니던 젊은 구도자가 걸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신의 못남과 어리석음 그리고 마땅히 가야할 길을 깨우쳐 준다는 이 길에서 마음에 평화가 일렁거렸다.


비로봉과 상왕봉을 잇는 능선./사진=조성민


중대 사자암과 적멸보궁을 보다

상원사주차장에서 배낭을 걸머메고 산비탈로 들어섰다. 오대산에는 평범한 대지로 둘러싸인 오대(동대 서대 남대 북대 중대)에 암자들이 있는데, 중대 사자암을 중심으로 동대 관음암(동쪽 동대산), 서대 수정암(서쪽 효령봉), 남대 지장암(남쪽 기린산), 북대 미륵암(북쪽 상왕봉)이다. 오대산 다섯 봉우리 사이마다 위치한 암자들은 연꽃잎처럼 뻗어 올라간 봉우리에 감싸이듯 들어서 있다.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길목에서 중대 사자암을 만났다. 사자암은 가파른 비탈을 그대로 활용하여 계단처럼 층층으로 건물을 지었다. 계단식 5층 구조로 지은 사자암의 다섯 지붕은 비로봉을 중심으로 솟아오른 오대산 다섯 봉우리를 의미한다. 사자암 오른쪽의 돌계단을 올라 적멸보궁으로 향했다. 이 길은 정상인 비로봉에 이르는 등산로와 연결된 길이다. 적멸은 번뇌의 불꽃이 꺼진 상태로 열반의 경지에 든 것을 의미하고, 보궁은 보배스러운 궁전이다. 적멸보궁은 사찰이지만 불상을 모시지 않는 곳으로 부처님의 진실사리(돌아가면서 남긴 사리)를 모신 법당이다. 적멸보궁은 오대산 상원사, 태백산 정암사, 설악산 봉정암, 영월 사자산 법흥사, 양산 통도사 등 전국 5곳에 있다. 이 중에서 오대산 적멸보궁이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태백산 정암사 적멸보궁을 제외하고는 신라시대 자장율사(590-658년)가 당나라에서 귀국할 때 가져온 것을 봉안한 것이다. 정암사 적멸보궁에 봉안된 사리는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1544-1610)가 왜적의 노략질을 피해서 통도사의 것을 나누어 봉안한 것이다.


비로봉을 향해 본격적인 산행을 하다

적멸보궁으로 가는 삼거리 우측으로 오솔길이 있는데, 눈이 깔려있어 아이젠을 신었다. 눈을 밟을 때마다 ‘뽀드득 뽀드득’하는 소리에 발걸음이 신난다. 비로봉으로 오르는 길에는 우람한 나무들이 등산객을 맞고 있었는데, 세월의 풍파를 견디지 못하고 통째로 쓰러진 나무들이 신기하고 해괴한 모양을 하고 있다. 뿌리 채 뽑힌 나무가 커다랗고 둥근 모양의 뿌리를 하늘을 향해 벌렁 누운 채 따스한 태양 볕을 만끽하고 있다. 이번에 처음으로 준비한 스틱으로 계단을 짚어가며 한참을 오르자 드디어 비로봉(1,563m)에 도착했다. 오대산의 여러 봉우리들이 내려다보여 사방을 조망했다. 그런데 칼바람이 기승을 부리며 온몸을 얼어붙게 해 오랫동안 서있을 수가 없었다. 정상 표지석만 두 팔로 껴안고 다음 코스인 상왕봉을 향해 비탈길을 내려갔다. 길에 수북이 쌓인 눈이 녹지 않아 등산화를 덮는다. 한겨울에는 비로봉에서 상왕봉 사이에 활짝 핀 상고대가 겨울 정취를 물씬 풍긴다는 글을 많이 읽고 기대를 잔뜩 하고 왔는데, 지금은 겨울의 끝자락이라 상고대가 보이질 않아 아쉬운 마음에 맥이 풀렸다. 상고대는 영하 이하로 기온이 떨어질 때 안개나 습기가 나무에 얼어붙어 생긴 하얀 눈꽃으로 나무서리(樹霜)라고도 한다. 강풍이 불어오는 산마루에서 바람막이가 되는 나무그루터기에 앉아 따뜻한 커피와 호빵으로 점심을 했다. 상왕봉으로 가는 능선에는 ‘주목군락지’라는 표지판이 여러 곳에 서있었고 평탄한 길이라 걷기에 좋았다.


상왕봉에서 돌탑에 돌을 얹다

눈 덮인 비탈길을 한참 걸어 상왕봉(1,491m) 표지석 앞에 섰다. 상왕봉은 오대산의 두 번째 높은 봉우리다. 표지석 옆에 누군가가 돌탑을 예쁘게 쌓아놓았다. 간절한 마음으로 이 탑을 쌓았을 것이며 간절하게 원하는 마음은 아름다운 것이고, 또한 돌탑은 많은 사람이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끌어올린 애원을 담아내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간절한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것이므로, 한 세상 소망을 얻기 위해 떠돌다가 쓰러졌을 누군가를 위해 잘생긴 돌 하나를 돌탑 위에 올려놓고 세찬 비바람을 잘 견디기를 기원했다. 오대산은 천혜의 원시림을 그대로 간직한 자연박물관이라는 생각에 이 산의 하얀 속살을 들여다보려고 애를 쓰며 여기에서 묵은 때를 씻어내고 청정무구한 마음을 가져보기를 바랐다.


조성민 교수./사진=조성민


두로령과 소명골에서 마음을 다지다


비탈을 내려와 상왕봉·북대사·두로령으로 갈라지는 삼거리로 왔다. 갈림길에서 두로령을 향해 오를 때 하이얀 세상을 연출해낸 자연은 그저 위대하고 경이로우며 신비롭게 여겨졌다. 두로령 산길에서 욕심도 부러움도 모두 벗어 던지겠다고 마음을 다져보았다. 자연과 인간이 공생하는 자연의 생명력이 살아 순 쉰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기 때문이다. 머리를 숙이고 누군가 앞서 걸어간 발자국을 겹쳐 걸으며 세상을 더 배우려는 다짐을 했다. 눈을 들어 사방을 바라보자 새들의 노래가 멎은 겨울 숲으로 따스한 햇살이 스며든다. 북풍 칼바람에도 명주실 뽑아 하얀 옷을 지어 입은 두로령에서 섬김과 비움을 실천해야 한다는 각오를 다졌다. 그리고 험준한 산길에서도 내일의 희망을 잃지 않기 위해 동안거를 거부하고 눈처럼 하얀 꽃으로 꿈을 가꾸겠다는 다짐도 했다. 두로령에서 북대사로 가는 길은 모든 구간이 내리막길이다. 북대 미륵암을 지나 넓은 임도로 들어섰는데도 눈이 녹지 않았다. 길이 부드럽게 휘어질 때마다 소명골의 깊은 골짜기가 발아래로 아찔하게 보인다. 널따란 길을 걸으며 깊은 심호흡으로 시간을 놓아버리려고 애써본다. 산행을 통해 마음을 채우기보다 비워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비움의 미학은 마음을 살찌우고 인생을 풍요롭게 한다는 말과 산행의 기쁨은 복잡한 인간 생활에서 자연이 주는 지혜를 얻는 것이라는 말을 떠올렸다. 임도를 따라 이 생각 저 생각을 하자, 오랜 시간을 걸어 내려오는 데도 지루하지가 않았다.


상왕봉./사진=조성민


상원사 동종에서 소리의 향을 느끼다

두로령에서 북대사를 지나 소명골을 내려와 상원사 동종을 보러 갔다. 상원사 동종은 우리나라 종 가운데서 가장 오래되고 아름다우며 청아한 소리가 일품이란다. 이 동종은 신라 성덕왕(725년)때 만들어졌다. 조선 태종 시대에 불교가 박해를 받자 안동으로 옮겨졌다가 예종 원년(1469년)에 상원사로 다시 옮겨졌다. 깊은 역사와 아름다움을 지닌 동종을 이리 보고 저리 보며, 끊어진 듯 이어지는 바람소리 들으며 하늘의 음성을 들으려고 미세한 실핏줄 돋워 청력을 키워보았다. 동종을 보고 앞으로 나오자 흰 보드판에 「天音回香」이라고 한자로 네 글자가 쓰여 있다.

“천음회향”, 즉 ‘하늘의 소리가 울려 향기롭다’는 뜻이다. 머물지 않는 시간들이 현상을 관통하며 만들어내는 사유하는 존재가 무엇일까라고 자문할 때, 동종을 칠 수는 없지만 그 천상의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여 발걸음을 뗀다. 가슴 속에 울리는 종소리를 뒤로하고 오대천을 가로지르는 다리 위에서 오늘 지나온 여정을 뒤돌아보았다. 상원사주차장-중대 사자암-적멸보궁-비로봉-상왕봉-두로령-북대 미륵암-소명골-상원사로 원점회귀 하는 14km의 산행이었다. 스틱 네 개를 함께 공중으로 올리면서 “오대산 파이팅”을 외치고 영동고속도로를 향해 바람을 갈랐다.


글/조성민 한양대 로스쿨 명예교수, 대륙문인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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