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초대석] 무등산 산행기, 조성민 여행작가/한양대 로스쿨 명예교수

무등산 옛길./사진=조성민 


무등산 스케치

무등산(1,187m)은 광주광역시와 화순군 담양군을 경계로 하는 산으로 하나의 거대한 덩어리처럼 보인다. 무등산은 높이를 헤아리기 어렵고 견줄만한 상대가 없어 등급을 매기지 못한다는 뜻이다. 산세가 도시를 감싸고 있어 광주사람들은 무등산을 어머니 산이라고 부른다. 무등산 산길은 험하지 않고 부드러우며 전체적인 산세는 산줄기와 골짜기가 뚜렷하지 않고 마치 커다란 둔덕과 같이 하나만 보이는 산으로 홑산이다(여려 겹으로 된 산은 겹산). 펑퍼짐한 흙산이지만 천태만상의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천왕봉을 중심으로 널려있어 산의 경관을 돋보이게 한다. 무등산은 백악기에 화산활동으로 솟은 용암이 식으면서 만들어진 살아있는 자연사 박물관이라고 일컬어진다.


무등산 옛길을 걷다

무등산을 오르기 위해 원효사 주차장에 도착하여 09시에 옛길로 들어섰다. 무등산에는 옛사람들이 걸었던 길을 복원한 1구간부터 3구간까지 옛길이 숨어있다. 산수동에서 원효사까지 1구간(7.75km), 원효사에서 서석대까지 2구간(4.12km), 장원삼거리에서 환벽당까지는 3구간이다(11.3km). 서석대로 가기 위해 「무등산옛길 2구간」 이정목을 따라 걸었다. 울창한 원시림이 나무터널을 만들어내는 숲길에는 며칠 전에 내린 눈이 녹지 않아 미끄러워 조심스레 발자국을 떼었다. 바람소리를 음악반주 삼아 휘파람을 불며갈 때 조릿대 군락지가 나타난다. 조릿대(산죽)는 전국 각처의 산중턱에 무리지어 자라는 상록성 식물로 줄기는 1-2m로 낮게 자라고 잎은 10-25cm로 가지 끝에서 2-3매씩 나와 자라며 가장자리에는 가시 같은 잔 톱니가 있다. 꽃을 한번 피우고 나면 지상부는 시들게 되고 땅속줄기만 남게 되는데, 이 땅속줄기가 얽히고설켜 토양과 물의 유실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는 설명문을 읽었다. 조금 더 걸어가자 「제철유적지」가 나온다. 여기는 옛날부터 돌에서 철을 제조했던 곳이다. 주검동(鑄劍洞)이라고도 불리는 이 일대 계곡은 임진왜란 때 충장공 김덕령 장군이 창과 칼을 만들고 무술훈련을 하던 장소이다. 옛길을 걷다보니 물통거리를 마주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초가지붕을 얹은 우물터가 남아있었다는데 지금을 볼 수가 없어 아쉬웠다. 물통거리는 무등산 나무꾼들이 땔감이나 숯을 구워 나르던 길로, 깊은 숲속에 자리 잡아서 옛날에 이곳을 지나던 사람들에게 좋은 쉼터가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


목교에서 아이젠을 신다

숲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오자 산 능선에 자리한 「목교」에 도착했다. 숲속에서 온화하던 바람이 갑자기 강풍으로 돌변한다. 쉴 새 없이 불어대는 칼바람에 산길을 오르며 등에 밴 열기로 벗어 제쳤던 파카를 다시 입고 배낭에서 아이젠을 꺼내 등산화에 겹쳐 신었다. 목교탐방안내소를 지나 세찬 바람을 맞으며 숨이 깔딱깔딱 넘어갈 만큼 가파르다는 깔딱고개로 발을 내디뎠다. 아이젠 덕분에 눈길을 걷는 것이 한결 수월해졌다. 급경사 비탈길에서 숨이 차 한동안 헉헉거리다가 드디어 광주시가지가 한눈에 보이는 서석대 전망대에 섰다. 길게 패인 주상절리를 빙 둘러보고 초연히 시간을 지키고 있는 나무들과 입맞춤하며, 시간에는 세 가지 성질이 있다는 것을 떠올려보았다. 시간은 한번 지나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 순간성, 같은 시간에는 두 가지 일을 못하는 단일성 그리고 오늘이 생일이라면 다음 해에 다시 돌아오는 연일성(連日性)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며 일상의 무력감에서 벗어나본다. 


서석대에서 천왕봉을 올려다보다

산봉우리에 특이하게 주상절리 바위가 솟은 「서석대」는 그 규모가 엄청났다. 서석대는 1-2m의 너비의 돌기둥이 50여m에 걸쳐 동서로 빼곡히 늘어서 있는 주상절리가 장관이었다. 주상절리는 화산이 폭발할 때 치솟은 거대한 돌기둥으로, 고온의 용암이 분출한 후 지표에서 냉각되는 과정에서 수축하여 다각형(5각형 또는 6각형)으로 무수하게 갈라지면서 형성된 것이다. 서석대는 8,500만 년 전에 형성된 주상절리로, 풍화가 덜 되어 병풍모양으로 펼쳐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해발 천 미터가 넘는 고지대에 광대한 주상절리가 있는 곳은 세계적으로 극히 드물기 때문에, 무등산은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지질공원이 되었다. 서석대는 동쪽에서 서쪽을 향해 서있어서 저녁노을이 물들 때 햇빛이 반사되어 수정처럼 반짝거린다 하여 ‘서석의 수정병풍’이라고도 불린다. 이러한 장엄한 풍광은 보고 또 보아도 신비하고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서석대 전체를 한 장의 사진에 담아보려고 여러 방향으로 각도를 잡아보았으나 규모가 커서 일부만을 찍을 수밖에 없었다. 자연이 빚어놓은 위대한 작품인 서석대를 바라보며 인간은 한없이 작은 존재라는 걸 실감했다. 서석대 위쪽으로 빙 둘러 올라가자 표지석에 『서석대(瑞石臺)』라고 한자로 씌어있었다. 무등산 3개 봉우리에는 군사통신시설이 있어 통행이 금지되어 갈 수가 없다. 그래서 사실상 서석대(1,100m)가 무등산의 정상역할을 하고 있다. 가까운 곳에 있는 최고봉인 천왕봉을 가지 못하는 것이 아쉬워 눈이 시리도록 바라만 보았다. 무등산 정상은 천왕봉(1,187m) 지왕봉(1,180m) 인왕봉(1,145m) 3개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 천왕봉에 올라서면 광주뿐 아니라 담양 영암 나주 순창 등 호남 일원이 한눈에 들어오고 맑은 날엔 지리산도 조망된다고 한다. 지왕봉 꼭대기에는 의병장 김덕령 장군이 무술을 연마하고 담력을 길렀다는 뜀바위가 있다고 한다. 인왕봉은 세 봉우리 중 가장 낮으며 서석대에서 가장 잘 보이고 주상절리가 멋진 풍경을 그려내고 있었다.


무등산에서 조성민 교수./사진=조성민 


승천암에서 백마능선을 바라보다

서석대와 입석대 중간에 기묘하게 생긴 바위로 용이 승천했다는 「승천암」을 만났다. 이 바위에 스님과 사슴과 이무기에 관한 전설이 전해진다는 안내판이 서있다. 옛날에 이무기에 쫓기던 산양을 스님이 암자에 숨겨주었다. 어느 날 스님의 꿈에 이무기가 나타나 스님의 훼방으로 산양을 못 잡아먹어 승천하지 못했다며 종소리가 세 번 울리지 않으면 스님이라도 잡아먹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런데 얼마 후 종소리가 들려와 이무기가 용이 되어 승천했고 스님도 무사했단다. 산양이 은혜를 갚은 아름다운 이야기에 가슴이 뭉클해짐을 느끼며, 승천암 맞은편에 있는「백마능선」을 바라보았다. 백마능선은 장불재에서 낙타봉 안양산으로 이어지며 높이 800-900m 길이 2.5km에 이르는 미끈한 능선이다. 백마의 잔등을 닮은 능선이며 억새모습이 백마의 갈귀와 비슷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봄철에는 진달래 가을철에는 억새가 유명하단다.

 

입석대에서 마음을 다지며 시를 짓다

승천암에서 장불재로 내려가는 길에 멋들어지게 생긴 바위들이 눈길을 끈다. 높이 20m의 돌기둥 40여 개가 둘러서 있는 주상절리대인 「입석대」이다. 반달모양으로 둘러서 있는 것이 이색적인데, 풍화가 덜된 병풍 모양과 달리 풍화가 많이 진행되어 기둥모양이 되었다. 입석대는 바위기둥들이 한 묶음씩 간격을 두고 길게 늘어서 있었고, 바위 마디들이 중간중간 끊어져 있어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만 같아 아슬아슬해 보이는 것도 있다. 대자연이 깎아놓은 듯한 풍경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여린 마음을 다지기 위해 입석대 앞에서 눈을 감고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 『오랜 세월 풍화작용을 겪은 입석대처럼/ 우리의 삶도 시련한 통해서만 강한 사람이 될 수 있다/ 꿈을 이루는 비결은 끊임없는 도전과 인내가 필요한 것/ 실패와 역경은 신이 내린 선물/ 역경을 뛰어넘기 위해 우리는 존재한다/ 역경이 다가오면 인내력으로 맞붙어 싸워야 한다/ 싸우다보면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되어 자신도 모르게 강해질 수 있다/ 기다리며 가는 길마다 끊임없는 풀무질이 필요하다/ 잠긴 마음의 문을 여는 열쇠가 필요한데 그것은 바로 어떤 환경에도 적응할 수 있는 내성이다.』


장불재 고갯마루를 지나다

입석대를 내려와 천왕봉 남쪽에 있는 드넓은 고개마루인 「장불재」로 갔다. 장불재(919m)는 옛날에 화순군 이서면 사람들이 광주를 오가기 위해 넘던 고개이다. 용추계곡의 긴 골짜기를 길골로 부르고 그 골위에 있는 고개라 하여 장골재라 부르던 것을 장불사가 생기면서 장불재라고 부른단다. 장불재는 억새밭을 이루고 있는 백마능선으로 이어지며 서석대 안양산 중머리재를 이어주는 곳이다. 장불재 표지석에서 뒤로 돌아 내려온 곳을 바라보자 왼쪽에 서석대 오른쪽에 입석대가 아스라이 보인다. 장불재는 주상절리대인 서석대와 입석대를 동시에 바라볼 수 있는 가장 좋은 장소로 알려져 있다. 이정목이 “중머리재 2km”라고 가리키는 산 밑으로 이어지는 내리막길로 들어섰다.


광주천을 이루는 샘물을 마시다

비탈길을 내려오다 더덜지대를 만났다. 너덜은 돌들이 깔려있는 산비탈을 말하며 오랜 세월 침식과 풍화의 흔적을 담고 있다. 돌들이 작은 평야를 이루듯 만들어진 너덜지대는 주상절리가 오랜 세월 깨지며 산 능선을 타고 모여진 산물이다. 넓은 산골짜기에 바위무더기로 이색적인 풍경을 자아내는 모습을 사진에 담느라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분주했다. 장불재에서 500m 떨어진 샘골에 도착했다. 오솔길에 「광주천 발원지」표지판이 있어 계곡 쪽에 있는 옹달샘을 찾았다. 장불재에서 생성된 물이 이 샘골에 모여 지면으로 흘러나오는데, 이 샘이 광주천 발원지가 되는 곳이다. 샘골은 옛날 화순 동북 사람들이 장불재를 넘나들 때 목을 적시던 곳이다. 목이 말라 두 팔로 돌을 집고 엎드려 샘물을 마셨다. 물이 목을 시원하게 추겨줄 때 상큼한 기분이 들었다. 이 작은 샘에서 흘러나온 물이 용추계곡을 따라 흐르다 용추폭포에서 힘차게 떨어져 제2수원지에 잠시 머물다가 광주천(24km)으로 흘러 호남의 젖줄 영산강에 합류한다.


배경 백마능선./사진=조성민


중머리재로 하산하다

중머리재와 중봉과 장불재로 갈라지는 용추삼거리를 지나 초원지대인 「중머리재」에 도착했다. 중머리재는 나무 한 그루 자라지 않는 것을 스님의 머리에 비유하여 부르는 이름이다. 고갯마루 한가운데서 길 찾는 것이 헷갈려 화순 방향인 용추폭포 쪽으로 내려가다가 길을 잘못 들었다는 느낌이 들어 되돌아와 ‘증심사 2km'라고 쓰인 이정표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하산하기 시작했다. 내리막에 눈이 남아있어 뜀뛰듯이 바윗돌만 골라 걷는 것이 만만치가 않았다. 발끝에 힘을 주며 조심스레 발걸음을 내디뎠다. 계속되는 비탈길을 내려오다가 450년 된 높이 28m 둘레 4.8m의 느티나무인 당산나무를 만났다. 당산나무는 마을의 수호신으로 모셔 동네사람들이 제사를 지내는 나무이다. 웅장하고 위엄 있는 멋진 자태를 뽐내는 느티나무는 등산객들의 안전과 건강을 지켜주는 나무이기도 하다. 고목을 바라보면서 하늘을 이불 삼고 대지로 침대 삼고 산을 베개로 삼아 탐욕을 구름 속으로 날려버리는 자족하는 삶을 영위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비움의 미학은 인생을 살찌운다는 생각을 하며 길을 재촉했다.


무등산에서 본 광주시가지./사진=조성민


긴 하산 길을 거쳐 증심사를 지나 이번 산행의 날머리인 「무등산 국립공원 증심사 탐방지원센터」를 만나 ‘브라보’를 외쳤다. 시계가 17시를 가리킨다. 원효사-무등산옛길 2구간-제철유적지-물통거리-목교-서석대-승천암-입석대-장불재-광주천발원지-너덜지대-용추삼거리-중머리재-당산나무-증심사-무등산국립공원관리사무소까지 10.6km의 거리를 8시간 동안 즐겁고 보람된 산행을 했다는 생각에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등산화를 닦을 수 있는 수도시설을 이용한 후에 택시를 타고 지하철역에서 내려 서울행 KTX를 타기 위해 광주송정역으로 향하는 마음은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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