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초대석] 아태문인협회 조성민 여행작가, '고흥 팔영산 산행기'



팔영산 두류봉./사진=조성민


★팔영산에 가다

이른 아침에 고흥 광역버스터미널에서 팔영산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탔다. 택시기사가 팔영산을 자주 오른다고 하면서 가이드를 시작해 귀를 기울였다. 팔영산은 여덟 개 봉우리가 한려수도를 향해 일직선으로 솟아 어깨를 견주고 다도해 물살에 함께 출렁이며 조화를 이룬단다. 팔영산은 기암괴석이 많고 산세가 험준해 멀리서 보면 천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어 시간과 위치에 따라 시시각각 그 자태와 용모를 현란하게 바꾼단다. 또 이 산은 해발고도가 높지 않지만 산행 내내 험한 암봉들과 더불어 바다와 섬들을 만끽할 수 있어 등반을 하는 동안 지루하지 않단다. 택시에서 내려 등산로로 들어서자 오솔길 양옆으로 자란 나뭇잎들이 나무터널을 만들어 운치를 더하고 장마철에 콸콸 흘러내리는 계곡물 소리가 산속의 적막을 깬다. 온몸에 열기가 밸 때쯤 흔들바위가 나타난다. 흔들바위는 마당처럼 꼼짝하지 않는다하여 마당바위라고 불리기도 하고, 힘센 어른이 밀고 당기다 보면 큰 바위가 흔들리는 것을 볼 수 있어서 흔들바위라고 불린다는 안내문을 보고 쉼터에서 얼음물로 갈증을 해소했다. 등산로에는 야자껍질 매트가 곱게 깔려있는데 빗물을 흠뻑 먹어서 진한 황톳빛을 띠고 있어 푸른 숲과 대비돼 길이 훤하다. 가파른 비탈길로 바뀌는 곳에는 나무계단으로 연결되었다가 야자매트길로 변하더니 다시 나무계단이 나타나 산행에 묘미를 돋운다. 드디어 팔영산 여덟 개 봉우리 중 1봉인 유영봉 밑에 도착하자 사진을 곁들인 안내판이 있다. “팔영산 팔봉은 기러기가 날아가는 것 같기도 하고, 물고기를 나란히 꿰어놓은 것 같다. 구름 가운데 우뚝 솟아 기특한 자태를 뽐내며 봉우리가 서있다”는 팔봉에 관한 내용을 메모했다.


★유영봉(1봉)에서 광활한 산을 둘러보다

신비의 그림자를 닮았다는 유영봉에 올랐다. 다섯 뼘 높이의 앙증맞은 「유영봉 491m」 라고 쓰인 표지석과 어깨동무를 하고 셀카봉으로 사진을 찍었다. 꽤 넓은 암반으로 이루어진 봉우리는 짙은 녹색의 숲 가운데서 고고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발밑을 내려다보니 수직 절벽이 까마득해 오금이 저려 반사적으로 뒷걸음을 쳤다. 10km²의 광활한 팔영산은 숲이 무성해 운석이 떨어져도 나뭇잎 위에 살포시 내려앉을 것 같은 융단 물결처럼 보드랍게 펼쳐져 있었다. 앞을 바라보자 낭만적으로 보이는 철계단이 놓인 성주봉이고 우측으로는 고흥 땅, 좌측으로는 선녀봉이다. 


★성주봉(2봉)에서 철계단의 고마움을 알다

유영봉에서 내려와 2봉인 성주봉으로 갔다. 낭만적으로 보이던 철계단을 막상 오르려고 하니 만만치가 않다. 그래도 철계단이 있으니까 암벽을 용이하게 오를 수 있다는 생각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철계단을 오르다 밑을 내려다보니 암벽에 녹슨 쇠사슬과 손잡이가 보인다. 이 계단이 놓이기 전에는 등산객들이 암벽을 잡고 디뎌가며 이 봉우리를 어렵게 오른 흔적들이다. 철계단이 없던 시절에 비하면 지금은 암벽을 오르기가 무척 수월하다. 암벽에 이 계단을 설치하기 위해 열악한 여건에서도 묵묵히 일한 인부들이 있어 편하게 절벽을 오를 수 있다는 게 여간 고마운 게 아니다. 철계단을 타고 오르며 멋진 풍광을 즐기다 보니 성주봉(538m)이다. 호쾌한 기분이다.

 

팔영산 암반./사진=조성민


★생황봉(3봉)에서 바위를 베고 눕다

팔영산 세 번째 봉우리 생황봉(564m)으로 갔다. 이곳은 바람이 불면 바람의 흐름에 따라 생황 소리가 난다는 봉우리다. 그런 생각이 들어서 그런지 어디선가 생황 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올 것만 같은 스산한 분위기다. 생황은 17개의 가느다란 대나무 관대가 통에 둥글게 박혀 있는 악기다. 국악기 중 유일하게 두 가지 이상의 음을 내고, 대나무 통에서 나는 맑고 부드러운 소리가 듣는 이들을 매료시킨단다. 봉우리에 불어오는 바람이 얼굴을 스쳐와 몸이 노곤해져 배낭을 내려놓고 바위를 베개 삼아 눕자 너무나 편안하다. 바위베개가 스폰지베개 이상으로 푹신하게 느껴져 눈이 절로 감기며 생황 생각에 빠져든다. 생황이라는 악기는 중국 삼국시대에도 있었다. 후한 말기 중앙집권체제가 흔들릴 때 권력을 찬탈한 동탁이 공포정치를 펼쳤다. 한나라 조정의 원로대신 왕윤이 미인계를 이용하여 동탁을 제거하고자 했다. 왕윤이 동탁을 집으로 초대하여 연회를 베풀고 중국 4내 미녀 중 한 사람인 그의 양녀 초선을 불러 생황연주에 맞추어 춤을 추게 한다. 잔잔하고 은은한 생황소리가 방안에 가득해질 때, 그녀가 두 팔을 휘저어 춤을 추니 동정호에 봄을 나는 기러기요, 버들잎을 스치는 제비 같으며, 느릿느릿 멈추어 서면 아름다운 누각에 걸린 흰구름이요, 바람에 흔들리는 한 떨기 고운 꽃이었다. 이 광경을 보던 동탁은 얼이 빠져나간다. 이처럼 아주 오랜 옛날에 생황이 연주되는 장면을 떠올린 후에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사자봉(4봉)에서 상생을 배우다

사자가 바다를 향해 내달리는 형상의 봉우리인 사자봉(578m)에 올랐다. 사자 목에 걸터앉았다고 생각하니 타잔이 된 기분이 들어 이솝우화를 떠올렸다. 사자가 잠자고 있을 때 쥐가 사자의 발 앞으로 뛰어가다가 잡혔다. 쥐가 사자에게 언젠가는 당신을 도울 수 있을지도 모르니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백수의 왕 사자는 하찮은 쥐가 어떻게 도울 수 있겠느냐며 웃었으나 쥐를 놓아주었다. 다음 날 사자가 사냥꾼의 그물에 걸려 놀라서 살려달라고 울부짖었다. 이 소리를 들은 쥐가 달려와 그물을 끊어 사자가 풀려났다. 사자와 쥐가 모두 행복했다. 복잡한 사회일수록 우리는 상대방을 위해 살아야 한다. 이것이 나의 인생을 사는 것이고 최고의 보람된 삶이기 때문이다. 상대방에게 필요한 말이 우러나오면 소통이 되는 것이고, 여기서부터 상생(相生)이 시작된다. 내가 소중한 것과 같이 다른 사람도 소중하므로, 서로 도우며 살아야 한다. 상생은 공동체주의의 관점을 적극적으로 확대한 것이다. 이를 통해 모든 사람들은 서로 공동의 망으로 연결된다. 사람의 정은 공생의 원천이고 정을 통해 삶의 보람과 낙을 찾을 수 있다. 상생의 원리를 사자봉에서 새삼스럽게 느끼면서 다음 봉우리를 향해 걸었다. 


팔영산 성주봉./사진=조성민


★오로봉(5봉)에서 신선의 삶을 배우다

4봉에서 5봉 사이는 직선거리로 50m로 아주 가까운 곳이다. 어렵지 않게 다섯 신선이 노닐었다는 전설이 깃든 오로봉으로 갔다. 오로봉에 서자 신선들은 어떠한 삶을 살았길래 행복했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그들은 항상 무언가 부족한 듯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넘치면 고마운 줄 모르고 넘치는 것이 모자란 것만 못하기 때문이다. 조금 모자란 데서 소중함과 고마움을 알게 되는 것이 세상 이치이다. 남보다 적게 가지고 있어도 기죽지 않고 생의 기쁨과 순수성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야말로 진짜 부자일 것이다. 행복의 비결은 만족할 줄 알면서 사는 데 있다. 자신이 처한 현실에 감사하면서 사는 사람이 있고, 늘 못마땅해서 불만 속에 사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불만에 차서 불평을 하면서 찌푸리고 신경질 부리는 사람은 잘못된 삶을 사는 것이다. 우리는 조그만 것에도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사람한테서는 감미로운 장미향이 풍기기 때문이다. 

    

★두류봉(6봉)을 쩔쩔매며 넘다

오로봉을 내려와 두류봉 앞에서 위를 쳐다보았다. 달걀을 세워놓은 모양의 수직암벽의 바위산이다. 앞으로 고꾸라질 것 같은 봉우리의 기울기에 압도되어 두려움이 앞선다. 이 봉우리를 넘어야 팔영산 종주산행을 마칠 수 있다. 어떻게 해서든지 두류봉을 넘겠다는 생각으로 급경사에 설치된 철제난간을 잡고 수직절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칼처럼 날카로운 바위들을 밟으며 한발 한발씩 내디뎠다. 조심스럽게 암벽을 오르다가 뒤를 돌아다보자 고소공포증으로 정신이 아찔하다. 가슴이 떨리고 힘이 빠져 얼른 고개를 돌렸다. 지형이 너무 험준해 계단을 설치할 수가 없는 곳인가 보다. 철제난간과 쇠사슬 손잡이에 의지해 올라갔다. 중간쯤 올라왔을 때 발을 디딜 곳의 바위 간격이 좀 벌어진 곳이라 쉽게 내디딜 수가 없었다. 자신감을 잃어 올라온 길을 되돌아가야만 하나 하는 생각이 들자 난감하다. 

어떻게 해서든지 이 어려움을 극복해야겠다는 절박함에 두 팔로 난간을 꽉 잡고 심호흡을 했다. 잠시 후에 두 손목에 힘을 잔뜩 주고 오른쪽 다리를 가슴 위까지 올려 바위에 걸치고 왼쪽 다리에 탄력을 주니까 몸이 위로 쑥 올라갔다. 계속해서 난간을 잡고 엉금엉금 기어서 수직에 가까운 절벽을 간신히 통과했다. 바위에 걸터앉아 올라온 암봉을 내려다보니 저곳을 어떻게 올라왔나 할 정도로 아찔한 절벽이다. 5봉에서 6봉까지는 200m로 그리 멀지는 않지만, 가장 강렬한 암릉코스로 가장 힘들고 어려운 코스이다. 두 팔에 너무 힘을 주고 긴장해서 그런지 팔 근육에 통증을 느꼈다. 두류봉(596m)에 서서 큰 소리로 야호를 힘차게 외치자 “절실히 원하면 정상에 오를 수 있다”며 메아리가 여울진다. 상쾌한 기분으로 두류봉을 내려올 때는 계단이 설치되어 있어서 겅중겅중 발걸음을 떼었다. 


★칠성봉(7봉)과 적취봉(8봉)을 오르다

칠성봉으로 가는 등산로는 바위들이 없는 오솔길이라 발걸음이 편안했다. 봉우리 밑에서 왼쪽 비탈길에 설치되어 있는 계단을 따라 올랐다. 곧이어 하늘로 통한다는 사각문인 통천문이 나온다. 양쪽 바위기둥 위에 거대한 바위가 얹어져 석문이 만들어졌다. 통천문을 지나자 공깃돌 모양의 커다란 바위들이 널브러져 있는 곳을 지나 칠성봉(598m)에 우뚝 섰다. 7봉인 칠성봉은 여덟 개 봉우리 중에서 제일 높은 곳이다. 주상절리처럼 서있는 바위들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7봉에서 400m를 걸어 8봉인 적취봉(591m)에 올라 주변을 둘러보았다. 시원한 조망에 가슴이 후련해진다. 산바람을 맞으며 장쾌한 능선에 눈을 담자, 가깝고 멀리 있는 바위봉우리들이 세상사를 잊게 만드는 망중한을 선사해 초연히 시간을 지키고 있는 나무들과 입맞춤하며 일상의 무력감에서 벗어난다. 먼 곳을 바라보니 고흥 앞바다를 막아 농경지로 만든 해창만방조제가 한여름의 바닷물을 껴안고 있다.


팔영산에서 조성민 한양대 로스쿨 명예교수./사진=조성민

 

★깃대봉(정상)에서 산딸기를 맛보다

 적취봉에서 내려와 깃대봉으로 향했다. 깃대봉으로 가는 길은 편안한 육산이다. 길은 유순하고 굴곡이 거의 없는 평탄한 산길이다. 헬기장을 지나 정상이 보이기 시작하자 괜스레 즐거운 마음이다. 깃대봉을 오르며 뒤를 돌아다보자 팔봉산 봉우리들이 일렬로 길게 늘어서 있는 능선이 보인다. 공룡들처럼 생긴 능선이 완만한 곡선을 이루고, 여러 봉우리에서 뻗어 내린 푸른 산자락이 다도해 앞바다까지 흘러 들어간다. 팔영산은 각 봉우리마다 각기 색다른 모습과 풍경을 담고 있어서 더욱 아름답게 다가온다. 팔영산 능선을 배경으로 사진을 정성스레 찍었다. 드디어 팔영산 정상인 깃대봉(609m)에 올랐다. 깃대봉에 오르자 새로운 풍경과 낯선 느낌이 모두 좋다. 점점이 떠있는 섬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남해바다는 아기자기하다. 깃대봉을 보고 사진을 찍으러 숲이 우거진 곳으로 가자 길가에 빨갛게 익은 산딸기들이 수줍어한다. 그  중에서 제일 탐스런 딸기를 타서 먹자 계절의 싱그러움이 입안에 가득 퍼진다. 어릴 적 고향 뒷산에서 먹었던 그 맛과 똑같아 잠시나마 동화 속으로 빠져들었다.


깃대봉에서 내려와 탑재를 거쳐 능가사 쪽으로 하산하기 시작했다. 바윗길을 따라 내려오는 길에는 수령이 오래된 편백나무 수십만 그루가 자라고 있다. 미끈하게 쭉쭉 뻗은 편백나무들이 한 폭의 풍경화를 그려내고, 바람이 편백나무 숲속을 헤집고 불어와 짙은 향기를 코끝까지 전해주어 깊은 호흡을 하며 편백의 독특한 향을 맘껏 들이마셨다. 편백나무들이 울창한 등산로에는 “아는 것이 적으면 사랑하는 것도 적다”(레오라르도 다빈치)는 것과 같은 많은 명언들이 적힌 팻말이 눈길을 끌었다. 편백나무 숲에서 탑재를 지나자 계곡물이 앞다퉈 흘러내린다. 시원한 계곡물에 세수를 하고, 사뿐한 걸음으로 내려와 야영장을 지나 주차장에서 팔영산 종주산행을 마쳤다. 


글/ 조성민 한양대 로스쿨 명예교수, 아태문인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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