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초대석] 조성민 아태문인협회 여행작가, '거문도 여행기'

정혜미 기자
2020-05-11

거문도(서도_고도_동도)./사진제공=조성민 


★거문도를 찾아가다

아침에 여수연안여객선터미널에서 거문도행 쾌속선(줄리아 아쿠아호)을 탔다. 거문도는 남해에 위치한 절해의 고도로 여수시와 제주도의 중간지점에 있는 섬이다. 거문도는 큰 문이 되는 섬이라는 이름으로, 예부터 동아시아 뱃길의 중심역할을 했고, 일찍부터 뱃길을 통한 문물과 문화교류를 활발하게 했다. 배의 창가에 앉아 허공을 나는 갈매기를 응시하며 바람에 맞서 높이 날기를 바랬다. 여수항에서 출발하여 햇빛을 왼쪽 어깨로 메고 끝을 가름할 수 없는 물길을 따라 나로도-송죽도-초도를 경유해 2시간 20분 동안 300여리(114km)를 달려온 쾌속선이 거문도항에서 닻을 내렸다. 거문도는 동도, 서도, 고도의 세 섬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고도가 거문도의 중심지이고, 통상 거문도라고 하면 고도를 가리킨다. 세 개의 섬이 병풍처럼 에워싸고 있는 거문도항은 물결이 잔잔한 천혜의 항이고 섬 주위의 경치와 잘 어울리는 미항이다.


★불탄봉에서 거문도항을 사진 찍다

거문도항에서 내려 고도와 서도를 연결하는 삼호교로 갔다. 삼호교를 건너 우회전을 하여 덕촌리 마을회관을 지나 불탄봉 이정표가 가리키는 대로 돌담 사이에 난 샛길을 따라 올라갔다. 마을 뒷산의 경사진 암반지대를 넘어서자 오솔길이 나타나고, 산을 오를수록 산과 바다가 어울려 펼치는 풍광이 장관이다. 푸른 녹색으로 단장한 봄기운을 들이키며 산행을 할 때, 여러 곳에서 산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마음을 평온하게 해준다. 산마루의 KBS 중계탑에 이르자, 매 한 마리가 봄바람에 실려 공중을 선회한다. 왼쪽으로 뻗어있는 비탈길로 올라가자 잘 자란 소나무에 「불탄봉 195m」라고 쓰인 표지판이 매달려 있다. 불탄봉은 산에 불이 자주 나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을 떠올리며 바다를 향해 설치된 불탄봉 전망대에 섰다. 고도와 거문도항이 눈앞에 선명하게 드러나 이를 배경으로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거문도_어촌마을./사진제공=조성민 


★억새군락지에서 망중한을 즐기다

불탄봉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내리막길이다. 길 양옆에는 누런 빛깔을 띤 억새들이 고개를 숙이고 가을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가을에는 억새꽃이 만발하여 이곳을 찾는 발길이 끊이질 않을 것이다. 산야의 경치를 감상하며 한참을 내려와 커피를 마시자 갈증이 없어지고 쇠락한 마음이다. 상쾌한 기분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파랗게 돋아난 쑥과 연두색 찔레나무가 누런 억새와 색상의 조화를 이루어 싱그러움을 더해준다. 나무 넝쿨 사이로 이름 모를 야생화가 피어있다. 어떤 환경에도 적응할 수 있는 내성을 키워온 야생화처럼 우리의 삶도 사련과 고통을 통해서만 강인하게 되고, 역경이 다가오면 인내력으로 맞붙어서 싸워야 하며, 싸우다 보면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되어 자신도 모르게 강해질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야생화 옆 작은 나뭇가지에 산새 한 마리가 앉아 떨어지지 않게 균형을 잡으려고 꼬리를 상하로 움직이며 시소 타는 모습이 너무 귀엽다. 눈앞에 전개되는 바다를 조망하자, 갯바위에서 바다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한가로이 보이고 바다엔 낚싯배가 5척이나 떠있다.


★기와집몰랑 정상을 밟다

불탄봉에서 1.7km를 가자 신선바위와 유림해변으로 갈라지는 삼거리 표지판이 나온다. 돌계단을 오르자 깎아지른 바위 절벽이 이어지고 멀리 거문도등대를 바라보니 산 아래 멋진 단애가 눈을 호강시킨다. 해안의 웅장하게 솟은 바위벽은 세로로 골골이 깊게 파여 있어 오묘한 모습을 보인다. 기와집몰랑의 정상에 섰다. 바다에서 산을 바라보면 산마루의 이어진 모습이 기와집 지붕을 닮아 기와집몰랑이라고 부르는데, 몰랑은 산마루를 뜻하는 남도 사투리다. 기와집몰랑이 있는 능선 길은 바다 위를 걸어가는 느낌이다. 바다 쪽이 직벽에 가까운 기암절벽 아래에 푸른 바다가 넘실거리기 때문이다. 바위 능선을 따라 걸으며 사방에 펼쳐진 거문도바다를 빙 둘러보자 짙푸른 바닷물과 하얀 파도가 조화를 이뤄 바다의 정감을 새롭게 한다.


해안절벽./사진제공=조성민 


★신선바위에서 신비로움을 느끼다

기와집몰랑을 지나 신선바위로 가는 길에 돌탑들이 있다. 구들장으로 써도 좋을 듯한 납작납작한 돌로 쌓인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이 탑들은 고기잡이를 떠난 남편을 기다리며 안녕을 기원하던 섬 아낙들의 간절한 소망이 담겨있단다. 돌탑을 지나 신선바위가 보이는 전망대에 섰다.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조망이 시원하고 장쾌하다. 매끈하게 휘어져 뻗어 나간 해안선을 바라보며 가없이 펼쳐진 수평선을 가슴에 퍼 담았다. 전망대 밑으로 높이 솟아오른 바위가 보이는데 신선바위다. 바위 정상은 바둑판처럼 평평하다. 주변 경관이 너무 수려하여 이곳에 반한 신선이 매일 하늘에서 내려와 바둑을 두고 풍류를 즐겼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신선바위는 긴 수염의 백발노인이 금방이라도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내려올 듯한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여기서 펼쳐지는 하늘과 바다가 합작한 푸른 경계선 너머에는 어떤 미지의 세계가 펼쳐있는지 궁금증을 남기고 보로봉으로 향했다.


★365계단을 내려가다

보로봉에 올라 배낭을 내려놓고 떡으로 요기를 했다. 창공을 올려다보니 새털구름이 산을 오르느라 무거워진 몸을 가볍게 해준다. 노고와 활력이 공존하는 숲에서 몸과 마음을 다져본다. 아낌없이 주는 햇살을 껴안고 짙은 내음의 솔잎 향기와 더불어 바람소리를 음미하며 참선을 했다. 배낭을 다시 메고 등산로 따라 쉬엄쉬엄 내려오자 돌로 만들어진 급경사의 365계단이 나타난다. 계단은 인생길과 같아서 계단을 오를 때도 어렵지만 내려갈 때도 용이하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람은 누구나 꿈을 가지고 살아가며, 어떤 꿈을 꾸느냐에 따라 방향이 달라진다. 꿈은 자신의 존재에 가치를 부여하고 인생의 바다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나침반의 역할을 한다. 이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신의 잠재력을 발견해야 한다. 잠재력은 목표를 이루는 가장 기본적이고 큰 원동력이 된다. 목표는 커야 성취감도 있고 자신의 능력을 극대화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발걸음을 한 계단씩 뚜벅뚜벅 떼자 어느새 365번째의 마지막 계단을 내디뎠다.


거문도 등대./사진제공=조성민 


★목넘어를 건너다

365계단을 내려오자 바다 사이의 물길을 끊어놓은 바윗길이 나타난다. 보로봉과 수월산을 잇는 갯바위 지대인 목넘어이다. 목넘어란 이름은 태풍이나 해일이 발생할 때 바닷물이 넘나든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물이 넘나든다는 뜻의 수월산(水越山)이라는 명칭도 목넘어에서 비롯되었다. 잔잔한 바다를 보료 삼아 편안히 누워있는 수월산 바닷가에 거문도등대가 있다. 이 목넘어가 없었다면 바닷물이 들어차서 서도에서 수월산으로 가기 위해서는 배를 타야만 했을 것이다. 감사한 마음에 평탄한 바윗길을 놔두고 일부러 바위를 타고 올라갔다가 폴짝 뛰어내리고 바위 사이의 간격이 있는 곳에선 넓이 뜀뛰기를 했다. 중간에 있는 커다란 웅덩이에서 손을 씻으며 넉넉한 마음을 가지려고 바위들을 향해 웃음을 터뜨리며 시를 지었다.『자신을 극복하는 데서 웃음이 비롯되고, 웃음은 어떤 상황이건 즐기는 것/ 즐김은 좋은 것을 생각하고 관조하는 것/ 그래서 웃으면 긍정적 사고가 생기고, 긍정적 사고는 마음을 다스린다/ 현명한 사람은 마음의 가르침을 따르며, 마음으로 사는 사람만이 성공할 수 있다/ 마음이 머리를 이기려면 가면을 벗어야 마음의 문을 열 수 있다.』


★거문도등대 앞에 서다

목넘어를 건너자 동백나무로 덮인 비탈길이 기다린다. 상큼함을 보태는 동백나무들이 자생하고 있고 산책로가 정갈하게 단장되어 특유의 호젓함이 묻어났다. 등대로 이어지는 길 입구에 “강하고 찬 바닷바람에 잘 견디는 식물”을 소개하는 게시판이 눈길을 끈다. 이곳에 자라는 식물들은 잎이 두텁고 연분에 강한 갯고들빼기·갯까치수염·해국 등이 바닷가환경에 잘 적응하며 살아가고 있단다. 길을 따라 걸을 때 온통 하늘을 가리는 동백나무숲 여기저기서 봄의 정령들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동백나무의 시퍼런 기운이 스며들어 색다른 운치가 풍기는 나무터널은 시공을 초월하는 별천지가 되었다. 얇은 돌판이 깔린 숲길에 취해 걷자 어느새 등대로 들어가는 문이 나온다. 등대의 넓은 마당은 붉은 벽돌이 깔려있어 산뜻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거문도등대는 1905년 4월에 건립되어 현재까지 115년 동안 남해안의 뱃길을 밝히고 있다. 좌측에 옛날 등탑이 서있고, 우측엔 새 등탑이 서있다. 남해안 최초로 불을 밝혔던 구 등탑은 6.4m로 100년 동안 제 역할을 다하고 한쪽에 서있다. 새 등탑은 2006년 6월에 높이 33m로 백색 육각형의 나선형 계단으로 만들어져 새천년의 몫을 다하고 있다. 등대에서 해풍을 맞으며 끊어질 듯 이어지는 삶의 곡예 속에 마음을 텅 비우려고 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높은 세계가 있어 귀를 열고 자연과 동반자가 되어보려고 애를 썼다. 저를 위해 드러내지 않는 침묵의 기도 소리가 바다로 흩어지는 것을 느끼며 발길을 옮겼다.


거문도 항./사진제공=조성민 


★관백정에서 멀리 보이는 백도를 그리다

구 등탑과 새로운 등탑 사이에 있는 샛길을 통해 6각형 정자인 관백정으로 갔다. 다도해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고 깎아지른 암벽들이 자웅을 겨루며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난간 가운데에 거문도에서 동쪽으로 28km 떨어진 백도를 감상하기에 좋은 곳이라는 커다란 표지판이 서있다. 표지판에 멀리 보이는 상백도와 하백도를 가리키는 그림이 있다. 표지판이 가리키는 것처럼 백도가 선명하게 보인다. 근래에 코로나 여파로 관광객의 발길이 뚝 끊겨 백도관광유람선 운행이 정지되었다는 얘기를 거문도항 직원에게 들었을 때 무척이나 아쉬웠다. 그래서 이곳에서 백도를 바라보며 방송과 유튜브에서 보아온 것을 머릿속에 오버랩 시키며 백도에 관한 내용을 그려보았다. 백도는 39개의 무인군도로 이루어졌고, 멀리서 보면 섬 전체가 온통 하얗게 보여 붙여진 이름이다. 백도는 천연비경을 담고 자연 그대로를 간직한 아름다운 곳으로 정평이 나있다. 상백도에는 등대가 있고 웅장하고 아름답다, 하백도에는 서방바위가 가운데 우뚝 서있고 갖가지 전설을 간직한 바위들이 촘촘히 모여 아기자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백도는 시시각각 새로운 모습과 아름다움을 선사하고, 인간의 천태만상을 흉내 낸 돌조각 작품들이 절경을 선사한다. 이렇듯 백도는 푸른 바다를 배경 삼아 세월의 풍상을 깎고 다듬어놓은 기암괴석들이 기교 부리지 않는 모습 자체로 억겁의 세월을 자랑한다. 거센 바람과 파도가 끊임없이 몰아치는 절해의 고도, 당장이라도 승천할 듯 모든 얽매임을 벗어던진 암석들이 있는 백도를 가보지 못한 아쉬움을 남긴 채 관백정을 돌아 나왔다.


★서도를 한 바퀴 돌다

거문도등대에서 나와 차도를 따라 거문도항으로 향하는 도중에 유림해변을 만났다. 말굽자석의 모양을 띤 해변 양쪽에는 바윗돌로 이루어지고 해변 중앙이 백사장이다. 해변에 앉아 바닷바람을 맞으며 오늘 지나온 일정을 회상해 봤다. 거문도항-삼호교-불탄봉-억새군락지-기와집몰랑-신선바위-보로봉-365계단-목넘어-동백터널-거문도등대-관백정-백도를 바라봄-유림해변을 계란모양을 그리며 시계 반대 방향으로 종일토록 걸었다. 메모지를 꺼내 다음과 같이 적어 내려갔다.『거문도 여행이 끝날 즈음 아! 하는 순간,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뿌리째 흔들리는 마음의 미로다/ 굽이치는 해안의 기암괴석 그리고 나를 반기는 갈매기들이 “바다를 쉽게 탐하지 말라 한다”/ 바다는 “좀 더 쉬었다 가세요” 한다/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는 멈추지 않는 자연의 소리에 서둘러 떠날 수가 없는 마음이다. 』


글/조성민 한양대 로스쿨 명예교수, 아태문인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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