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초대석] 조성민 여행작가/아태문인협회 이사장, 태백 여행기

온라인뉴스팀
2020-03-09



황지연못./사진=조성민  


(여행 첫째 날)

★낙동강의 발원지 황지연못

청량리에서 중앙선 기차를 타고 양평-원주-제천-영월을 거쳐 태백역에서 내렸다. 태백은 산이 많고 골이 깊은 곳이라 산소(O2)도시로 알려져 있다. 렌트카를 몰아 낙동강의 발원지인 황지연못으로 갔다. 황지는 태백시를 둘러싼 연화산(동) 함백산(서) 태백산(남) 매봉산(북)의 줄기를 타고 물이 모여 연못을 이뤘다. 황지는 상지(上池) 중지(中池) 하지(下池)로 이루어졌는데, 상지에서는 하루 5,000톤의 샘물이 솟구쳐 나온다. 상지에서 쏟아져 나오는 샘물 덕분에 겨울인데도 황지천으로 물이 힘차게 내닫는다. 황지연못에서 솟구치는 물은 구문소를 지나 을숙도(부산)까지 1,300리(510km)를 흘러 남해로 간다. 옛적에 노랭이 황부자가 시주를 거부하고 노승을 박대하자 천벌을 받아 황부자 집터는 상지, 방앗간터는 중지, 동시터(화장실터)는 하지로 변했다는 전설을 전하는 연못가에 설치된 그림 이야기가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한강의 발원지 검룡소

대덕산 골짜기에 있는 한강의 발원지인 검룡소를 찾아갔다. 주차장에서 입구로 들어서자 산길에 쌓인 눈이 등산화를 덮는다. 눈길에 발걸음을 뗄 때마다 “뽀드득 뽀드득” 하며 장단을 맞추고, 계곡 따라 흘러내리는 물소리는 봄을 재촉하는 것 같다. 눈 구경을 실컷 하며 걸을 때, 일직선으로 곧게 뻗은 낙엽송들이 하늘을 덮는다. 눈길 따라 쉬엄쉬엄 1.5km를 오르자 검룡소가 숨겼던 얼굴을 빼꼼이 내민다. 용이 꿈틀거리는 모습의 검룡소는 폭 5m 둘레 20m의 둥그스름한 샘으로, 하루 2,000톤의 지하수를 석회암반을 뚫고 용출한다. 검룡소 위에 계곡이 길게 이어지는데도 물이 전혀 흐르지 않는 것이 신기하다. 검룡소에서 솟은 맑은 물을 두 손에 담아 마시자 온몸에 활력이 넘친다. 20세기 후반에 배달민족의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룬 한강의 기적이 시작된 검룡소를 여러 번 쳐다보고 비탈진 산길을 내려오며 휘파람을 불었다.


바람의 언덕./사진=조성민 


★바람의 언덕이 전기를 만들다

태백에서 임계로 이어지는 피지고개로 갔다. 피지고개는 물이 세 갈래로 갈라지는 곳이라 하여 삼수령(三水嶺 )이라고도 한다. 삼수령에 비가 동쪽으로 떨어지면 오십천이 되어 동해로 흘러가고, 남쪽으로 떨어지면 낙동강이 되어 남해로 흘러가고, 북쪽으로 떨어지면 한강이 되어 서해로 흘러간다. 삼수령에서 급한 비탈로 이어지는 길이 매봉산(1,303m) 바람의 언덕으로 올라가는 입구이다. 산꼭대기로 올라가자 길게 늘어진 능선을 따라 9기의 풍력발전기가 위용을 자랑하며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바람이 많이 불고 풍력발전기 때문에 이 능선을 바람의 언덕이라고 부른다. 바람의 언덕 아래엔 넓은 경사면인 30만평 규모의 고랭지배추밭이 펼쳐진다. 1962년에 경사지를 개간해서 고랭지배추를 재배하기 시작했는데, 배추가 단단하고 맛이 좋단다. 배추가 한창인 여름철엔 장관을 연출한다고 한다. 바람의 언덕의 매력은 풍력발전기와 고랭지배추밭에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발길을 돌렸다.


★용연동굴의 이무기 눈물과 용의 침실

우리나라에서 최고지대인 해발 920m에 있는 용연동굴로 갔다. 연못 속의 용이 계곡을 따라 하늘로 승천했다고 하여 ‘용연’이라는 이름을 지녔다. 동굴길이는 843m로 4개의 광장과 2개의 수로로 구성된 순환형 수평굴이다. 3억 년 전부터 생성된 이 동굴에는 고드름처럼 생긴 종유석과 동굴바닥에서 돌출되어 올라온 석순 그리고 석화 동굴진주 등의 생성물이 많다. 동굴 따라 어둠 속으로 들어가며 번뇌를 벗어던지려고 차분한 마음을 가졌다. 터벅터벅 걸어가자 여의주를 얻지 못한 ‘이무기의 눈물’ 종유석이 보인다. 이무기 눈물의 종유석은 승천 못한 통한을 자아내고 있어 기울어진 태양처럼 빛을 잃었다. 조금 더 걸어가자 ‘용의 침실’ 석순이 보인다. 이것은 성취의 희열을 담아내며 어떠한 일이라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치는 것만 같은 기세다. 중앙으로 들어가자 폭 50m, 길이 130m의 대형광장과 리듬분수를 휘황찬란하게 밝히는 네온사인이 황홀한 광경을 연출하고 있다. 신비스런 동굴의 생성물들을 다 돌아본 후에 가파른 계단을 통해 밖으로 나왔다.


추전역./사진=조성민 


★추전역을 노래하다

싸리밭골 언덕에 있는 추전역으로 갔다. 골짜기 안쪽에 화전을 많이 일구어 묵밭이 많고 그 묵밭에 싸리나무가 많이 자라서 싸리밭골이라 하는데, 한자로는 추전이다. 역으로 가자 「추전역 한국에서 제일 높은 역 855m」라는 기념석이 우뚝 서있고, 기관차 1량 석탄운반용 광차 3량이 있었다. 추전역은 석탄산업이 호황이던 시절에 태백의 무연탄 수송을 위해 만들어진 역으로, 지금은 기차가 서지 않는 폐역이다. 추전역을 본 후에 시 한 편을 남기고 발길을 돌린다. 

꼬부랑꼬부랑 첩첩 산골길 최고지대의 추전역/‘싸리밭골’ 옛 이름을 딴 두메산골 도우미가 된 추전역은 오늘도 고독한 길손을 맞이한다/무언가를 위해 몸짓으로 말하는 기도는 높은 곳을 향해 오르기만 하고/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혼돈의 가슴이 자꾸만 푸른 숲에 부딪히며/발길을 되돌리게 한다./바람소리 새소리를 가슴에 담으며/추전역의 햇살이 한곳에 모여 웃고 있는 것을 보고 너무 멀리 온 것을 알았다.


★통리 오일장에 생기가 넘치다

매달 5가 들어가는 ‘5일·15일· 25일’ 세 날만 장이 열리는 통리 오일장으로 갔다. 생각보다 규모가 제법 크고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도회지처럼 먹거리·볼거리· 즐길거리가 별로 없는 시골에서는 오일장은 좋은 친구이고 사교장이다. 시골 오일장은 삭막한 세상에서도 정이 느껴지는 곳이고 활기가 넘치고 생기가 넘치는 곳이다. 도로변에 좌판을 깔고 골동품 과일 버섯 등 각종의 물건을 파는 모습이 흥미를 돋운다. 겨울 점퍼들이 걸린 좌대를 지나자 여러 사람들이 빙 둘러서서 오뎅을 맛있게 먹는 모습이 정겨움을 더한다. 포장마차에서 막걸리를 마시며 수다를 떠는 사람들을 지나치자 호미, 괭이, 삽 등 여러 가지 농기구를 파는 곳에 눈길이 간다. 이제 곧 봄이 되면 이 농기구들의 쓰임새가 많이 있을 것이다. 그 옆에 몇백 명이 먹을 수 있는 국을 끓여낼 수 있는 국밥집의 커다란 가마솥이 이채롭다. 안쪽으로 더 들어가자 어시장이 펼쳐진다. 수조에서 산오징어를 꺼내 회를 치는 주인의 손놀림이 꽤나 빠르다. 생선이 진열 된 좌판에서 큰 대구를 집어든 시골아낙의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피어오른다. 마침 오늘이 태백의 통리 장날이라 구경을 실컷 하는 행운을 잡았다.


구문소./사진=조성민 


★상장동 벽화마을과 구문소를 둘러보다

탄광산업이 활발하던 1970년대 광부들이 살던 광산사택촌이 있었던 상장동으로 차를 몰았다. 석탄산업의 호황으로 태백에는 한 때 10만 명이 넘는 인구가 살 정도로 그 당시에는 잘 사는 지역으로 통했었다. 대졸초임이 5만원 하던 시절 광부는 월 20만원을 받았다고 한다. 그 후 탄광산업의 쇠퇴로 인해 광부들이 떠난 마을에 탄광촌의 삶의 애환과 추억이 붙어 있는 테마로 구성된 탄광이야기 마을로 탈바꿈 한 곳이 상장동 벽화마을이다. 담벼락마다 탄광촌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벽화들에서 정겨움이 묻어난다. 광부들이 막장에 들어가는 모습, 탄을 캐고 두부와 김치로 점심을 맛있게 먹으며 즐거워하는 모습, 갱차로 무연탄을 실어나르는 모습, 손자를 안고 웃을 띠고 있는 할아버지 모습, 호황을 누리던 시절 지나가는 개도 10,000짜리를 물고 다니는 광부 헬맷을 쓴 강아지 그림이 너무 재미가 있다. 벽화마을을 본 후에 황지연못의 물이 20km를 달려 높은 계곡을 만나 암반을 뚫고 지나면서 석문을 만들고 소(沼)를 이룬 구문소(求門沼)로 가서 둘러보았다.


(여행 둘째 날)

★주목군락지에서 신령스런 분위기를 느끼다

 백두대간의 중앙부에 솟아있는 민족의 영산이고 겨울산의 백미인 태백산을 종주하기 위해 아침에 택시를 타고 유일사 입구로 갔다. 싸락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차도를 따라 걸어 올라가자 마지막 민가가 나온다. 등산객들이 아이젠을 신는 것을 보고 지난밤에 태백 시내에서 구입한 아이젠을 착용했다. 처음 신어본 것이라 어색했지만 얼어붙은 눈길에도 미끄럽지가 않아 좋았다. 날씨가 추워 털모자로 귀를 덮고 걸었다. 한참 올라 자동차도로가 끝나는 곳에 있는 휴게소에서 배낭을 벗어 내려놓는데, 난간에 놓인 과자부스러기를 먹는 박새가 사람들이 다가가는데도 날아가지를 않는다. 겨울에 먹을 것이 없으니까 사람들이 준 것을 먹는 것에 익숙해져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가 보다. 경이롭다는 생각을 하며 배낭을 걸머졌다. 오른쪽 비탈길로 100m를 내려가면 유일사인데 왼쪽 오르막길로 들어섰다. 태백산은 암봉이 적고 경사가 완만해 오르기가 수월한 산이지만, 눈이 얼어붙은 산길을 걷는 것이 어려웠다. 발품을 많이 팔자 주목군락지가 나타난다. 수령이 오래된 수천그루의 주목들이 태백산의 호위무사가 되어 능선을 에워싸고 있다. 주목은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을 간다’는 속까지 붉은 나무이다. 수령이 오래가고 목재가 단단해 잘 썩지 않는다. 흰 눈으로 덮인 태백산에 주목이 하늘을 찌르고 있는 장면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지난 세월의 흔적을 아낌없이 보여주는 주목의 늠름한 자태가 신령스런 분위기를 맘껏 풍긴다.

 

★장군봉과 천제단에 서다

태백산 정상인 장군봉(1,567m)에 올랐다. 백설로 덮인 산에 고사목과 주목이 장관을 이루는데 내리는 눈발이 시야를 가려 겹겹이 쌓인 장쾌한 능선들을 감상할 수가 없다. 산꼭대기에는 강풍이 불어와 뺨이 얼얼하고 손이 무척이나 시리다. 배낭에서 스웨터를 꺼내 입었지만 정상의 매서운 바람이 빨리 내려가라고 등을 떠밀어 천제단으로 갔다. 천제단은 옛사람들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돌을 쌓아 만든 제단이다. 둘레 27m, 폭 8m, 높이 3m의 자연석으로 쌓은 원형 돌제단으로 그 주위는 꽤 넓은 광장이 펼쳐져 있다. 천제단 옆에 「太白山」이라는 표지석이 위풍당당하게 서있다. 혹독한 추위로 모두 쩔쩔매고 있는데 투명한 비닐을 타원형으로 낮게 바람막이를 만든 등산객 여러 명이 그 속에서 유유자적하며 점심을 먹고 있는 모습에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태백산 주목나무./사진=조성민 

    

★문수봉 돌탑이 장관을 이루다

천제단에서 문수봉으로 가는 길은 내리막 빙판이지만 아이젠 덕분에 수월하게 내려갈 수 있었다. 나뭇가지들마다 새하얀 눈으로 뒤덮인 태백산의 경치를 사진으로 남겼다. 내리막길이 끝나자 이내 오르막길이 나온다. 오랜 시간을 걷고 날씨가 추워 봉우리를 향해 오르는 발걸음이 천근만근이다. 걷다가 힘이 들면 허리를 90도 구부리고 숨을 몰아쉬는 쉬는 것을 수차례 반복한 후에 가까스로 문수봉에 다다랐다. 문수봉(1,517m)은 온통 커다란 바위들로 이루어진 특이한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여기저기에 수행자의 치성이 깃든 돌탑들이 쌓여있었다. 문수봉에서 조금 더 가니까 소문수봉이 나온다. 이곳도 역시 바위들로 이루어진 봉우리이다. 소문수봉에서 당골계곡을 따라 내려갔다. 여기서부턴 오르막이 없는 가파른 내리막길이다. 길고 긴 당골계곡을 따라 내려오는데 고목이 된 나무들이 수없이 쓰러져 아무렇게나 뒹굴로 있었다. 종일 눈길을 걸어 당골광장에 도착했다. 유일사 입구-유일사-주목군락지-장군봉-천제단-문수봉-소문수봉-당골계곡-당골광장-석탄박물관까지 11km의 겨울 태백산 종주산행을 마쳤다. 뿌듯한 기분을 안고 태백역에서 청량리로 가는 마지막 기차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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