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초대석] 아태문인협회 조성민 여행작가, 강화도 여행기


강화도 마니산./사진=조성민 


(여행 첫째 날)


★강화도에서 야생화를 떠올리다

아침 햇살을 가르며 김포를 지나 강화대교를 건넜다. 강화도는 서울의 절반 크기인 300km²로 제주도 거제도 진도 다음으로 네 번째 큰 섬이다. 썰물 때는 수 km에 달하는 갯벌이 섬 전체를 둘러싼다. 해안선의 1/4에 해당하는 북쪽은 군사보호시설로 통행이 자유롭지 못하다. 민통선 안쪽 해안은 개발이 덜 되어 자연이 잘 보호되어 있어 고즈넉한 시골 풍경이 잘 간직되어 있다. 강화바다는 한강 임진강 예성강이 합류한다. 강화도는 한강 하구에 있고 고려의 수도인 개성, 조선의 수도인 한양과 가까워 위기 때마다 커다란 사건이 많이 일어났지만 우리 민족의 저력으로 위기를 잘 극복했다는 생각에 야생화를 떠올려 보았다. 야생화는 누가 돌봐 주지 않아도 추위를 꿋꿋이 이겨 자신의 생명을 키워낸다. 어떤 환경에도 적응할 수 있는 내성(耐性)을 스스로 키워온 야생화처럼 우리의 삶도 시련과 고통을 통해서만 강한 사람이 될 수 있다. 꿈을 이루는 비결은 끊임없는 도전과 인내가 필요하다. 실패와 역경은 신이 내린 선물이다. 역경이 다가오면 인내력으로 맞붙어서 싸워야 한다. 싸우다 보면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되어 자신도 모르게 강해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교동도를 향해 달렸다.


★시간이 거꾸로 가는 교동도를 만나다

강화도와 교동도를 잇는 교동대교는 4.44km로 2014년 7월에 개통되었다. 교동도는 자동차로 갈 수 있는 최북단의 섬으로 북한과 거리가 불과 2.6km이고, 강화도의 또 다른 섬으로 47.2km²로 백령도의 면적과 비슷하다. 교동도는 분단 이전에는 황해도 연백 사람들이 수시로 드나들었으나, 전쟁 때 연백에서 피란 온 북한 주민들이 돌아가지 못해 작은 촌을 만들어 사는 곳으로 시간이 멈춰버린 섬-망향의 땅이다. 교동도로 들어가 먼저 여행안내소인 “교동제비집”으로 갔다. 제비는 교동도의 상징으로 오랜 세월 교동주민들에게 기쁨과 위안을 주었다고 한다. 피란민이 많았던 교동도에서는 제비가 고향의 흙을 물고와 지은 집이라고 생각하며 고향에 계신 부모님 얼굴이 있다고 믿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교동제비집을 둘러보고 옆에 있는 대룡시장으로 갔다. 6.25 때 연백군에서 교동도로 피란 온 사람들이 고향에 다시 돌아갈 수 없게 되자 생계유지를 위해 고향에 있는 연백시장을 본떠 골목시장을 만들었다. 골목길이 이어져 있고 교동도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다. 관광객 유치를 위해 1970년대의 시장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었다. 북한 땅을 가까이 볼 수 있는 교동망향대로 갔다. 바닷가에 끝없는 철조망이 있어 분단의 현실을 실감케 한다. 이곳에서 강을 사이에 두고 있는 북한까지는 지척이다. 망원경으로 강 건너 북한 땅을 보았는데 흐린 날씨라 잘 보이질 않는다. 맑은 날에는 연백군 비봉산과 남산이 보이고 북한주민들의 생활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망향대에서 고구리 회개산 중턱에 있는 연산군유배지로 갔다. 교동도는 과거 왕조의 도읍지와 가깝기 때 문에 격리와 감시가 수월하고 또한 섬이라는 제약으로 도주가 어려워 왕과 왕족의 유배지로 오랫동안 사용되어왔다. 연산군은 교동도로 유배되어 달아나지 못하도록 가시가 많은 탱자나무로 울타리를 치고 포졸들이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감시하는 위리안치(圍籬安置)의 형벌을 받았다. 


조성민 부부교수./사진=조성민 


★나룻부리항시장을 둘러보다

외포리 선착장으로 갔다. 이곳은 석모대교가 개통되기 전 외포리와 석모도를 오가던 나루터이다. 여기서 자동차를 싣고 석모도로 갈 때 마치 배 시간을 아는 것처럼 수백 마리의 갈매기들이 달리는 배를 졸졸 따라와 관광객이 던지는 새우깡을 앞다투어 재빠르게 낚아채 가곤 했던 곳이다. 석모대교를 건너 나룻부리항시장으로 갔다. 석모대교가 생겨 배의 왕래가 끊겼기 때문에 선착장을 대신해 시장이 생겼다. 예전 부두 자리에 시장이 올망졸망 형성되어 흥밋거리를 북돋운다. 옛 석모도 선착장(나룻부리항)은 배가 다니며 갈매기와 함께 어우러졌던 추억의 장소를 기억하기 위해 전망데크를 만들어 놓았다. 전망데크에서 석모도 선착장 앞에 보이는 무인도인 대섬을 향해 카메라 셔터를 여러 번 눌러댔다.


★민머루해수욕장을 거닐다

주위환경이 뛰어난 민머루해수욕장으로 갔다. 물이 빠져나갔던 갯벌에 밀물 시간이 되어 물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잔잔한 파도가 햇살에 아롱져 겨울바다의 분위기를 한층 더할 때, 창공에서 힘찬 날갯짓을 하는 갈매기들을 바라보며 시를 지었다. 

“넓은 하늘을 차지하고도 석모도 한 귀퉁이에서 만난 우리! 시작도 끝도 없이 한 곳을 향해 너는 높이 날아야 하고 나는 힘차 달려야 한다. 언제나 변함없이 파도와 바람에 맞서 높이 날아오를 수 있을까? 물결의 하얀 포말이 우울한 생각을 지우며 파도로 부서진다.”


★눈썹바위에서 석모도 앞바다를 눈에 담다

통일신라 선덕여왕 때 회정대사가 창건한 낙가산(236m) 중턱에 자리 잡은 보문사를 찾았다. 보문사는 낙산사의 홍련암, 남해금산의 보리암과 더불어 3대 해수관음기도도량이다. 절 입구부터 가파른 언덕을 걸어 올라가서 얼굴 모습이 제각기 다른 오백나한을 보았다. 법당을 지나 계단을 따라 산꼭대기에 있는 눈썹바위로 갔다. 눈썹처럼 생긴 커다란 너럭바위 덕분에 위에서 떨어지는 눈비를 가릴 수 있다. 눈썹바위 아래 거대한 관세음보살상이 조각되어 있다. 눈썹바위에선 석모도 앞바다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장화리 해넘이마을에서 낙조를 즐기다

보문사에서 외포리 선착장으로 나와 해안도로를 따라 장화리의 일몰을 보기 위해 부지런히 달렸다. 해변과 산길을 돌고 돌아 해넘이마을 주차장에 도착했다. 바닷바람에 손이 많이 시리다. 십여 분을 걸어가자 수백 미터의 방파제에 많은 사람들이 횡렬대열로 일몰을 보기 위해 서 있었다.  드넓은 갯벌은 만조가 되어 파도가 힘찬 소리를 내며 하루를 마감하고 있다. 저무는 해는 하루의 갈무리이자 새로운 과정을 알리는 준비과정이다. 붉은 노을로 물든 강화의 섬들과 바다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마음이 차분해지고 내일을 향한 에너지가 분출하는 것만 같다. 낙조가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가슴까지 다가와 마음을 물들이고 바다 속으로 풍덩 빠져버린다.


강화도 장독대./사진=조성민 


★밴댕이마을

해가 떨어진 후 강화도에서 큰 포구인 후포항의 밴댕이마을로 갔다. 후포항은 전에는 선수포구라고도 불렸단다. 후포항은 조수간만의 차가 커서 물살이 세고 갯벌이 기름져 밴댕이 포구라고 별칭이 부쳐질 만큼 밴댕이가 담백하고 맛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밴댕이 전문식당으로 가서 밴댕이무침과 밴댕이완자탕을 시켰다. 처음 먹어보는 밴댕이 맛이 고소했다. 밴댕이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여 주인에게 묻자, 접시에 손바닥만한 밴댕이 한 마리를 가져와 보여준다. 밴댕이는 그물에 걸린 순간 분을 삭이지 못해 온몸을 떨다 금방 죽어버리므로, 밴댕이를 잡는 어부조차도 살아있는 밴댕이를 보기 힘들 정도로 성질이 급한 고기이다. 그래서 속이 좁은 사람을 “밴댕이 소갈딱지”라고 한다.


(여행 둘째 날)


★전등사에서 마음을 정갈하게 하다 

아침에 전등사 동문을 통해 경내로 들어갔다. 나무들이 울창한 오솔길을 걸어 올라가자, 400년 된 커다란 느티나무가 깊고 넓은 가지를 뻗어 마음을 평안하게 보듬어준다. 대웅전은 굵은 기둥에 유연하고 날렵한 처마가 곡선을 이루며 하늘을 향해 활짝 들려져 있는 모습이 멋스럽다. 건물 처마의 네 귀퉁이에 벌거벗은 여인이 쪼그리고 앉아 두 팔로 지붕을 받치고 있는 “나부상(裸婦像)”은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대웅전을 건축하던 목수가 주막집 주모와 정분이 났다. 공사대금으로 받은 돈을 주모에게 맡겼는데, 공사가 끝날 때쯤 주모가 돈을 챙겨 달아났다. 화가 난 목수가 주모의 모습을 닮은 나체상을 만들어, 법당의 네 귀퉁이에 올려 지붕을 받치게 했다. 목수가 자신에게 못된 짓을 한 주모를 벌하고, 그 죄를 씻어주고자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개과천선하라는 의미란다.」 오랜 세월을 견딘 전각에서 은은한 아름다움과 기풍이 배어 나온다. 대웅전 옆 바위에서 졸졸 흘러나오는 샘물을 바가지에 받아 마시자 달다. 세 모금을 마시자 상쾌한 기분이다. 범종을 보았다. 범종의 울림은 사람들이 이 소리를 듣고 생로병사의 고통에서 벗어나 해탈하도록 기원하는 부처님의 음성이란다.


★마니산을 종주하다

마니산 주차장으로 갔다. 마니산은 한라산과 백두산의 중간지점에 있는 기(氣)가 세기로 유명한 명산이다. 배낭을 메고 등산화 끈을 졸라맸다. 매표소를 지나 아스팔트길을 따라 걸었다. 한겨울인데도 계곡물이 우렁찬 소리를 내며 기운을 북돋아 준다. 바위를 타고 흐르던 물이 얼어 고드름이 열려 옛날 어릴 적 초가지붕에 달린 것을 보는 것 같아 정겹다. 한참을 걸어 개미허리를 지나자 계단길이 나온다. 다리가 아파 계단을 뚜벅뚜벅 오르는데, 집사람이 날랜 걸음으로 앞서 나간다. 산등성이에서 기다리던 집사람과 함께 걸어 정상부근의 참성단에 도착했다. 참성단은 단군왕검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곳으로, 해마다 개천절에 제례를 올리고 전국체육대회가 열리면 성화를 채화하는 곳이다. 참성단 옆에는 소사나무가 돌로 된 석축 사이에 인상적으로 서있었다. 


커피를 마시고 바윗길로 올라가「마니산 472.1m」정상목을 껴안았다. 정상에서 보는 푸른 하늘과 발아래 펼쳐지는 들판과 바다가 조화를 이뤄 한 폭의 풍경화를 그려낸다. 정상에서 함허동천등산로로 접어들었다. 조금 가자 숙종 43년(1717)에 강화유수 최석황이 참성단을 새로이 보수한 후 그 내용을 기록한「참성단 중수비」가 나온다. 마니산 정상에서 삼각점봉우리로 이어지는 등산로는 험한 암릉길이라 절벽 곳곳에 로프가 쳐져 있었다. 어렵게 삼각점봉우리에 서자 기암괴석과 바다가 힘든 발걸음을 위로하고 명품 소나무가 자태를 뽐내고 서있다. 내리막길을 내닫자 함허동천로와 정수사로 갈리는 삼거리가 나온다. 등산로가 험하지만 풍광이 좋은 정수사로 가는 길을 택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쉬엄쉬엄 걷자 정수사 주차장에 도착했다. 마니산 입구에서 정상에 오르고 정수사까지 3.9km인 마니산 종주를 마쳤다. 정수사는 보문사, 전등사와 더불어 강화도 3대 고찰의 하나이다. 택시를 불러 마니산 관광단지 주차장으로 왔다.


강화도 장화리 일몰./사진=조성민 


★홍염천에서 여행을 뒤돌아보다 

마니산을 쳐다보며 길게 늘어진 산능선을 따라 종주를 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강화도와 김포를 잇는 초지대교를 건너면서 이번여행에 강화대교 교동대교 석모대교 등 강화도에 있는 4개의 큰 다리를 건넌 것에도 의미를 부여했다. 김포 대명항 부근에 있는 홍염천으로 가서 온탕에 몸을 담갔다. 뜨거운 온천수가 피로를 풀어준다. 노천탕으로 나가 파란 하늘을 보며 강화도일주 여행을 뒤돌아보며 다음과 같은 생각을 떠올렸다. 

“과거보다 더 발전된 현재를 원한다면 과거에서 배워야 한다. 자신의 부족함이나 결점으로 인해 발전에 장애가 되었다면 모자라는 것을 채우고 잘못된 것을 고치며 생활해야 한다. 미래를 설계하고 이를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가장 소중한 선물은 현재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의 해답을 스스로 찾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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