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초대석] 아태문인협회 조성민 여행작가 '월출산 종주산행기'

온라인뉴스팀
2019-10-11


월출산 암봉들./사진=조성민 여행작가 


★월출산을 스케치하다

새벽 3시에 잠이 깨어 영암온천관광호텔 베란다에서 높이 뜬 반달과 하늘을 촘촘히 수놓은 별들을 바라보며 어릴 적에 별 따고 달 따던 꿈을 떠올리며 월출산을 바라다보았다. 서해바다에 인접해 달을 가장 먼저 맞이한다는 월출산을 오른다는 생각에 잠 못 이루고 아침 7시에 천황사지 주차장에 도착했다.

월출산을 쳐다보니 숲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깎아지른 바위산이고 기기묘묘한 암봉들로 가득찬 거대한 바위 전시장이다. 뾰족뾰족한 성곽모양의 웅장하고 수려한 경관이 매력을 물씬 풍긴다. 너른 평지에 우뚝 솟아 있어 펀펀한 땅에 고깔모자를 덮어 놓은 모양으로 능선과 봉우리마다 기암을 이루고 있다. 사시사철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고 어디서 보든 풍경의 주인이 되며 실수로 카메라 셔터를 잘못 눌러도 작품이 되는 산이라고 한다. 월출산은 기암절벽으로 이뤄진 산세가 금강산과 비슷하다고 해서 “남한의 금감산”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설레는 마음으로 천황사지에서 출발해 도갑사까지 종주산행의 발걸음을 뗀다.


★바람폭포수로 물보라를 맞다

월출산국립공원사무소에서 조금 걸어 올라가자 야영장이 나오고 그 앞에 거북이바위가 있다. 이 바위는 월출산의 정상을 향해 오르려는 거북이의 힘찬 몸짓이 특징이며, 아들을 낳고 싶은 여인이 거북을 어루만지고 기도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신령스러운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이어 시노암길이 나온다. “시”는 윤선도의 시비를 말하고, “노”는 영암아리랑 노래비이며, “암”은 바우제를 의미한다는 표지판이 서있다. 바우제단인 용바위는 높이 8m 폭 9m이다.

신선한 아침공기를 마시며 산을 올라가자 첫 번째 천황사삼거리 갈림길이 나온다. 왼쪽은 천황사를 거쳐 구름다리로 가고 오른쪽은 바람폭포로 가는 길이다. 구름다리를 통해 사자봉으로 갈 예정이었지만, 구름다리부터는 탐방로 보수로 출입이 통제된다고 하여 바람폭포 쪽으로 갔다. 바람골은 사자봉과 장군봉 가운데 있다. 바람이 높다란 암봉에 막혀 위로 솟구치는 먼로풍처럼 바람이 계곡을 따라 위로 올라가는 지형이라 바람골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 계곡에 있는 바람폭포는 높이 15m 암벽에서 떨어지는데 폭포수가 바람에 날려 물보라를 일으킨다. 올라오며 흘린 땀을 식히기 위해 명주실처럼 가늘게 뿌려대는 폭포의 물보라를 한참 동안 맞았다. 옷이 많이 젖었지만 기분이 상쾌하다. 바위에 걸터앉아 산꼭대기를 쳐다보고 있노라니 사각형의 책바위가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아슬아슬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육형제바위에서 출렁다리를 바라보다

비탈길 따라 장군봉 능선에 이르자 육형제바위가 나란히 서있다. 이 비위들은 여섯 형제들이 오순도순 재밌는 이야기를 나누며 우애를 다지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아찔한 절경을 선사하는 능선 앞쪽의 조망데크에서 기암괴석의 기상이 넘쳐흐르는 육형제바위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능선 반대편을 바라보자 지나가려고 했던 구름다리가 가을햇살을 받아 산뜻하고 선명하게 보인다. 사자봉을 걸머진 구름다리의 절경은 환상적이다. 구름다리는 매봉과 시루봉을 잇는 현수교로 34시간 거리를 5분으로 단축시키는 높이 120m 길이 54m 너비 1m로 최대 200명이 양방향 교행이 가능하다고 한다.


육형제바위./사진=조성민 여행작가


★통천문을 비집고 지나다

바람소리 새소리를 벗 삼고 기괴한 모양의 암봉이 어우러져 빼어난 경관을 감상하며 비탈길을 오르고 또 오른다. 바위들이 웅장하고 장엄하여 원기를 북돋아준다. 광암터를 지나 가파른 바윗길을 따라 철계단을 올라서자 통천문에 이른다. 통천문(通天門)은 하늘과 통한다는 문으로, 바위 사이로 한 사람이 지나갈 만한 좁은 바위굴이다. 이 굴은 정상을 눈앞에 두었다고 하여 교만하거나 방심하지 말고 차분하게 전진하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 같았다. 「명확한 목적이 있는 사람은 가장 험난한 길에서도 앞으로 나가고, 아무런 목적이 없는 사람은 가장 순탄한 길에서도 앞으로 나가지 못한다」는 말을 떠올렸다. 몸을 움츠리고 자세를 낮추고 대각선으로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겼다. 시원한 바람이 통천문사이로 몰려와 마음을 상쾌하게 한다. 통천문은 정상을 향한 마지막 관문으로 여기서 100m만 오르면 천황봉이다.


★천황봉에서 세상 건너는 법을 배우다

땀을 많이 흘리며 월출산 정상인 천황봉(809m)에 올랐다. 정상표지석에 기대어 셀카봉을 눌러댔다. 시계가 12시를 가리킨다. 정상의 너럭바위에 누워 하늘을 쳐다보고 숨을 고르며 “나를 이기는 자는 밝고 강하다”는 말을 되새겼다. 사진촬영을 하는지 드론이 공중에 한참이나 떠다니다가 사라진다. 천황봉에서 내려다보는 사방의 풍경은 여기까지 오르는 노고를 말끔히 씻어준다. 탁 트인 조망이 피로감을 씻어내고 신선이 하늘에서 내려올 듯한 풍경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발아래로 사자봉의 우뚝 솟은 봉우리가 보이고 구정봉 능선에 펼쳐진 아기자기한 바위들의 모습과 향로봉 능선의 굴곡진 흐름은 그저 아름다울 따름이다. 초록에서 누런빛으로 바뀌어 가는 너른 영암벌판과 영암을 휘돌아 가는 영산강이 평화롭게 보인다.

어느 새 자연의 기운이 몸속 가득한 느낌이 충만하다. 경관이 수려한 천황봉에서 홀로 서있어도 외롭지 않은 산의 의연함과 산을 오르며 세상을 건너는 법을 배우게 된다. 참는 마음과 노력하는 마음을 배우고, 바람이 부는 방향이 어디이고 큰 길로 가야할 때, 물러설 때가 언제인지를 깨우치게 된다.


★큰 바위얼굴을 만나 자연의 위대함을 배우다

주능선으로 등산할 때 바람이 많이 분다는 바람재로 향했다. 커다란 암봉 틈사이로 뿌리를 내린 소나무 두 그루가 강인한 생명력을 과시하고 있는 모습을 한참 쳐다보다가 돼지바위와 마주쳤다. 이 바위는 들려진 코와 입과 힘찬 모습이 수퇘지머리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급경사 내리막길이 완만해지더니 남성을 상징하는 남근바위가 보인다. 봄이 되면 남근바위 꼭대기에 철쭉꽃이 피어 생명의 탄생을 나타낸다고 한다. 바람재삼거리에 어마어마한 큰 바위얼굴이 서있다. 집사람이 큰 바위얼굴을 가리키고 미소 지으며 큰 바위얼굴을 닮으라는 암시를 보낸다. 미국작가 너새니얼 호손이 쓴 “큰 바위얼굴”은 장차 훌륭한 인물이 될 것이라는 전설을 어머니에게서 들은 주인공이 날마다 겸허한 마음으로 인간의 형상을 닮은 큰 바위얼굴을 바라보며 꿈과 희망을 키워나간다. 주인공은 계곡이라는 자연에서 항상 자신을 지켜보면서 인자한 웃음을 버리지 않는 거대한 자연의 가르침으로 자연의 논리를 배워 나중에 진짜 큰 바위얼굴이 되었다는 내용이다.

월출산 큰 바위얼굴의 길이는 100m이다. 이 바위는 해가 떠오르는 동쪽을 바라보고 있다. 흐린 날에는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고 언제나 하늘의 빛을 얼굴에 가득 채우고서야 모습을 드러낸단다. 얼굴의 윤곽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시각은 햇살이 눈부신 정오 전후라고 한다. 오후가 되면 바위그림자로 인해 윤곽이 상대적으로 옅어진단다. 큰 바위얼굴이 주는 상징성은 사회적 지위보다는 지속적인 자기성찰이 인간의 위대한 가치를 고양시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베틀굴에서 여인들의 끈기를 엿보다

베틀굴로 올라갔다. 이 굴은 여성의 국부를 닮아 여근바위라고도 한다. 임진왜란 때 근방에 사는 여인들이 난을 피해 이 굴에 숨어서 베를 짰다고 하여 베틀굴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단다. 굴의 깊이는 10m이고 굴속에는 항상 음수가 고여 있어 음혈이라고도 부른다. 베틀굴은 맞은편에 있는 남근바위를 향하고 있어 신비로운 자연의 조화가 경이롭다. 베틀굴 앞에서 굴을 들여다보며 상념에 잠겼다. 베틀은 우리네 할머니 어머니 누나가 씨실과 날실을 엮어 모시나 삼을 가지고 옷감인 베를 짜던 기구이다. 베는 오랜 시간 인내와 끈기로 땀과 정성을 들이는 여인들의 손끝에서 완성된다. 난리 통에도 남편과 자식들의 옷을 만들기 위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산속으로 몸을 숨겨 베를 짜낸 여인들의 부지런함과 지혜가 묻어남을 엿볼 수 있었다.


월출산에서 조성민 교수 부부./사진=조성민 여행작가 

 

★구정봉에서 신비로움을 느끼다

천황봉 서북쪽 아래에 있는 큰 바위얼굴의 정상인 구정봉(738m)에 올랐다. 봉우리 꼭대기에 물동이 같은 9개의 웅덩이가 파인데서 구정봉이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 이 웅덩이는 지질학적으로는 오랜 세월의 풍화작용으로 형성된 풍화혈로 큰 것은 지름이 3m 깊이 50cm이고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질 않는다고 한다. 전해지는 전설에 의하면 옛날 월출산 아래 구림마을에 도술에 능한 동차진이라는 청년이 살고 있었다. 이 젊은이가 이 봉우리에서 함부로 도술을 부리는 것을 본 옥황상제는 공명심과 만용이 부를 화를 경계하여 아홉 번 번개를 쳐서 죽였다. 그때 생긴 번개자국이 아홉 개의 웅덩이가 되었다고 한다.


구정봉에서 바라보는 바위능선은 기괴한 암봉이 어우러져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빙 둘러선 능선은 온통 바위산이다. 깎아지른 듯한 희멀건 바위들이 깊은 계곡을 에워싸고 있다. 온산을 덮고 있는 수없이 엉켜져 있는 바위들은 하나하나가 자연이 깎아놓은 조각 작품이 되어 산수화를 펼쳐놓은 듯 마음의 평안을 준다. 얼기설기 실타래처럼 얽혀있는 기암괴석 사이로 등산로가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만하다. 구정봉정상 아래 신령스런 바위가 떨어질 것 같으면서도 떨어지지 않아 영암(靈巖)이란 지명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생각해서인지 월출산에는 바위꼭대기에 아슬아슬하게 얹혀 있어 마음 졸이게 하는 바위들이 많은 것 같다는 느낌이다.


★미왕재 억새밭에서 가을을 만끽하다

구정봉에서 미왕재로 발걸음을 옮기자 오솔길이 나타난다. 속 깊은 산길이 포근하고 산들바람이 한낮의 청량감을 더해간다. 비탈길을 한참 내려오자 미왕재 억새밭이 나타난다. 미왕재는 본래 숲이었으나 산불이 나면서 나무가 불에 타고 억새가 자라면서 군락을 이루었다. 그래서 원래 지명인 미왕재와 더불어 억새밭이라고 불린단다. 억새밭 한가운데 서자 가을바람은 헛된 일 쫒지 말고 소박하게 살라 속삭이고, 억새는 은빛물결로 시선을 잡으며 마음을 비우고 즐겁게 사는 것이 지혜로운 삶이라고 속삭이는 것만 같다. 햇살이 빛의 예술을 연출하는 미왕재의 익어가는 가을을 가슴에 그득하게 담아 가던 길을 재촉한다.


월출산 마을 전경./사진=조성민 여행작가  


★도갑사에서 종주산행을 마치다

미왕재에서 도갑사로 내려가는 홍계골은 경사가 완만하고 나무가 울창해 삼림욕이 저절로 되었다. 산을 내려오다가 페트병에 계곡물을 담아 머리에 쏟아 붓자 온몸이 시원하다. 상쾌한 기분으로 기름매미 울음소리에 장단을 맞춰 한동안 걷자 눈앞에 월출산 종주산행이 끝나는 도갑사가 보인다. 기쁜 마음에 브라보를 외치며 집사람과 하이파이브를 했다. 드디어 도갑사에 도착했다. 도갑사는 신라 말기 풍수지리학의 대가인 도선국사가 창건한 사찰로 규모가 제법 커보였다. 대웅전과 5층 석탑을 지나 해탈문에 들어섰다. 이 문은 괴로움과 헛된 생각의 그물을 벗어나 아무 거리낌 없는 진리의 깨달음을 얻는다는 문이다. 탐욕 분노 어리석음의 번뇌에서 벗어나 아집으로부터 해방되어 경건한 마음으로 생활하겠다는 다짐을 하고 문을 나섰다.

오전 7시부터 오후 4시까지 9시간을 오르고 내리고를 반복한 동쪽인 천황사지에서 서쪽인 도갑사로 이어진 월출산 종주산행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천황사지 주차장-거북바위-용바위-바람폭포(책바위)-육형제바위-통천문-천황봉-돼지바위-남근바위-바람재-큰 바위얼굴-베틀굴-구정봉-미왕재 갈대밭-도갑사로 이어지는 9km의 긴 여정은 벅찬 것이었지만 어려움을 참아가며 끝까지 완주한 집사람에게 감사한다. 힘들었던 월악산 종주산행이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준 선물보따리를 안고 서울행 KTX를 타기 위해 나주역으로 향하는 마음은 어느 새 나비가 되었다.


글/조성민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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