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초대석] 아태문인협회 조성민 여행작가 '남한산성 성벽일주기'

온라인뉴스팀
2019-09-06


남한산성.(사진=조성민)


남한산성의 역사를 스케치하다

한여름 14시에 남한산성 로터리주차장에 도착하여 행궁으로 갔다. 행궁은 능행이나 휴가시의 임시거처, 전란시의 피난처 등으로 임금이 머물던 곳이다. 남한산성의 광주행궁은 병자호란 때 인조가 항전한 곳이다. 행궁을 둘러보고 남한산성을 스케치 해보았다. 남한산성은 오랜 세월동안 풍상을 겪었는데도 옛날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조선시대에 종묘와 사직을 갖춘 행궁이 있어 국가전란 시에 임시수도 역할을 담당했던 산악군사행정도시였다. 성안은 넓고 평탄하고 수량이 풍부하여 80여 군데 우물과 45개 연못이 있는 큰 규모의 산성이었다. 남한산성은 동문(좌익문) 서문(우익문) 남문(지화문) 북문(전승문)의 4대문과 동장대 서장대(영조 때부터 수어장대) 남장대 북장대 외동장대의 5장대, 연주봉옹성 장경사신지옹성 제1남옹성 제2남옹성 제3남옹성의 5옹성, 16개의 암문(비밀문), 125개소의 군포(초소건물)를 갖추고 있었다. 1636년(인조 14년)에 발발한 병자호란 당시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47일 동안이나 청나라에 항전할 수 있었던 것은 성 외부는 급경사를 이루어 적의 접근이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산성이 갖출 수 있는 좋은 방어시설을 구비했고, 성 내부는 경사가 완만하여 넓은 경작지와 물을 갖춘 천혜의 전략적 요충지였기 때문이다.


북문에서 법화골을 응시하다

행궁에서 북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한낮의 뙤약볕이 따갑다. 비가 온 뒤라 계곡물이 굉음을 내며 쏟아 내리는 물줄기가 마음을 시원하게 한다. 북문에 도착하자 담쟁이가 문 위 벽에 달라붙어 정겨움을 더한다. 북문 가운데 서자 나무들이 울창하여 앞을 내다볼 수 없었지만, 하남시 상사창동의 법화골 쪽을 응시했다. 병자호란 때 우리 군사 300여 명이 북문을 열고 나가 법화골에 주둔해있던 청나라군을 공격했으나 적의 계략에 빠져 전멸당했는데, 이 전투가 ‘법화골전투’이다. 이 전투의 참패로 조선군대의 사기는 땅에 떨어지고 조정은 척화와 화의의 갈등 속에서 인조는 성을 나가 항복의 예인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 : 세 번 절하고 절할 때마다 세 번씩 머리를 땅에 찧는 청나라 의식)를 갖추어야만 했다. 그 후 1779년(정조 3년)에 성곽을 개보수할 때 북문도 개축되었는데, 정조는 전쟁에서 다시 패하지 말고 이기자는 뜻으로, 북문을 전승문(全勝門)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북문누각을 이리저리 살펴보고 성벽 길을 따라 올라갔다.


연주봉옹성에서 여러 도시를 조망하다

성벽 길을 따라 올라가자 제5암문이 보인다. 암문은 적의 눈에 안 띄게 작게 만들어진 문으로 성 밖으로 드나드는 비밀문이다. 이 비밀문은 전투 시에 성내로 출입할 수 있도록 옹성과 본성의 성벽이 만나는 곳에 설치되어 있다. 옹성은 본성을 방어하기 위해 본성 둘레에 쌓거나 성 밖으로 돌출 부분을 만들어 쌓은 작은 성이다. 암문을 통해 연주봉옹성으로 갔다. 연주봉옹성은 돌출된 높은 봉우리에 설치되어 전망이 아주 좋았다. 사방을 빙 둘러보았다. 성남시 송파구 제2롯데월드빌딩 강동구 남양주시가 내려다보이고, 특히 제3기 신도시에 포함되어 개발이 추진 중인 하남시 춘궁동과 교산동 일대가 잘 보였다. 들어갔던 암문으로 다시 나오자 “숯과 매탄터” 표지판이 서 있다. 매탄터는 숯을 묻어놓은 곳이고, 숯은 농성의 필수연료이다. 농성은 공격해온 적군이 물러설 때까지 성에서 버티는 전술인 지구전이다. 남한산성에는 농성을 대비해 사용할 연료를 성 내부에 비축해 놓았는데, 보관이 용이하고 연기가 나지 않는 최적의 연료가 숯이라는 것이다. 난국을 타개하는 선조들의 지혜가 돋보이는 부분이다. 매탄터에서 숲길을 내려와 서문을 만났다. 임금은 행궁에서 남쪽을 바라보며 국정을 살폈는데, 서문이 우측에 있어 우익문이라고 한다. 서문은 4대문 중 규모가 가장 작은 문으로, 인조가 청나라에 항복하러 삼전도로 향할 때 지나간 문이다. 산성에서 삼전도(송파)로 가는 가장 빠른 길로 연결되는 문이기 때문이었다.


수어장대에서 역사의 숨결을 느끼는 조성민 교수.(사진=조성민)


수어장대의 숨결을 느끼다

서문에서 남한산성 옛길을 따라 성남시와 송파구 방면을 두루 보면서 걸어가자 이정표가 수어장대를 가리킨다. 장대는 지휘관이 올라서서 지휘하도록 높은 곳에 쌓은 대로서, 지휘와 전투를 위해 군사목적으로 지은 누각건물이다. 수어장대는 서문과 남문 사이에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지휘소 겸 감시시설로 5군영 중 수어청 수장인 수어사(남한산성 방위총사령관)가 있던 곳으로 5장대 중 현존하는 유일한 건물이다. 수어장대 마당에 서자 2층 누각 위에 한자로 “守禦將臺” (수어장대) 현판이 선명하게 들어온다. 수어장대는 청량산 정상에 자리 잡고 있어서 성 내부뿐만 아니라 인근 주변까지 바라볼 수 있는 명당이다. 병자호란 당시에 청나라와의 전투를 지휘하기 위해 산성과 삼전도 벌판을 호령하며 숨 막히는 순간을 보냈을 수어사의 마음은 활화산을 떠안고 있는 절박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수어장대를 나와 내리막길을 조금 내려오자 오른쪽에 제6암문이 있어 들어가 보니 앞에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데, 호란 당시에 청나라군이 주둔하고 있는 삼전도를 감시하고 있었던 것처럼 보였다. 소나무 옆에 있는 이정표가 유일천약수터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남문현판을 보다

4개 성문 중 가장 큰 문인 남문에 도착했다. 남문은 남한산성의 정문 격으로 유일하게 “至化門” (지화문)이라는 현판이 남아 있다. 병자호란 당시에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피난 올 때 이 문으로 들어왔다. 남문은 전에는 자동차가 통행을 했던 곳인데, 옆쪽에 산성터널이 생겨 지금은 사람들만 통행하고 있다. 남문을 지나 오르막 오솔길로 들어섰다. 왼편 언덕배기에 주먹만 한 돌로 쌓아 올린 돌탑 수십여 개가 산 경치와 잘 어울린다. 탑의 숫자를 헤아리다 헷갈려 그만두고 비탈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흙길이라 걷기에 편했다. 나무숲이 그늘로 햇빛을 가려 서늘했다. 계속되는 급경사 길을 한참 올라가자 샛노란 들국화가 등산길을 예쁘게 장식한다. 화려한 빛깔의 꽃길이 끝나는 곳에 남장대 터가 나타난다. 펀펀한 땅에 커다란 주춧돌 20여 개가 정사각형으로 놓여있다. 벤치에 앉아 얼음을 깨물며 온몸에 흐르는 땀을 식혔다.


남장대터 지나 비탈길에서 즐거워하다

남문에서 시작된 오르막길이 남장대터를 조금 지나고 부턴 내리막길이라 저절로 발걸음이 빨라진다. 오르막길에 비해 내리막길은 상대적으로 수월했다. 사뿐한 발걸음에 “산들바람이 산들 분다”로 시작되는 산들바람 노래를 휘파람으로 부는데, 나비 한 마리가 왼손 등에 앉는다. 날아갈까 봐 내려가던 길을 멈추고 서 있었다. 이번엔 고추잠자리가 어디서 날아왔는지 모자챙에 앉는다. 마네킹처럼 꼼짝 않고 서 있으니 나비와 고추잠자리가 한참 동안 손등과 모자에 앉아 있다가 숲속으로 날아간다. 숲속에서는 가는 여름이 아쉬운지 매암매미 말매미 기름매미 쓰람매미 들이 목청을 돋으며 이별의 노래를 부른다. 매미들의 울음소리가 피로감을 시원하게 씻어 내린다.


송암정의 전설을 연상하다

내리막길을 즐겁게 걷다 보니 산 밑에 제11암문(동암문)이 나타나고 성벽이 끊기며 차도가 나타난다. 차도를 건너 동문으로 갔다. 동문은 행궁 왼쪽에 자리 잡고 있어 좌익문이라고도 하는데 4대문 중 가장 낮은 곳에 있다. 동문을 지나 급 비탈을 치고 오르자 송암정터 표지판이 길옆에 서 있다. 10m 높이의 바위 절벽에 아름다운 소나무와 정자가 있었던 곳이라 솔바위 정자라는 의미를 지닌 송암정이 있었던 곳이다. 송암정은 전설을 가지고 있다. 황진이가 금강산에서 수도를 하다가 하산하여 이곳을 지나는데, 남정네 여러 명이 기생들과 음주가무를 즐기고 있었다. 그 중 술에 취한 한 남정네가 황진이를 희롱하려 하자, 황진이는 오히려 불법을 설파했다. 이때 감명을 받은 한 기생이 절벽으로 뛰어내려 자결을 했다. 그 후 달 밝은 밤에는 송암정에서 노랫소리와 통곡소리가 들려왔단다. 바위에 자라던 소나무가 있었는데, 정조가 여주 능행길에 이곳을 지나가다가 소나무에게 벼슬을 내려 대부송이라 불렸다고 한다. 그 대부송은 현재는 고사목이 되었고, 그 옆에 소나무 한 그루가 푸르름을 뿜어내며 서 있다.


장경사를 둘러보고 동장대터에 오르다

성벽 길을 따라 오르고 내려와 인조가 승군들의 거처를 마련하기 위해 건립한 주위가 호젓한 장경사를 만났다. 집사람이 들려보자고 하여 경내로 들어가 물욕에 팔리는 마음을 없앤다는 “무심당” 건물 앞에 섰다. 기둥에 “성 안내는 그 얼굴이 참다운 공양구요, 부드러운 말 한마디는 미묘한 향이로다. 깨끗하며 티가 없는 진실한 그 마음이 언제나 한결같은 부처님 마음 일세”라는 문수보살 계송이 적혀있었다. 마음이 차분하고 숙연해졌다. 장경사에서 비탈길을 따라 제2암문으로 들어가 장경사신지옹성을 보았다. 암문을 다시 나와 산을 오르자 성을 지키는 초소건물이 있었던 군포지가 나온다. 산성 내에 백이십여 개의 군포가 있었다고 한다. 다시 급경사의 비탈길을 지나 동장대터에 올랐다. 동장대는 남한산성에 주둔하던 수어청에 소속된 5영 중 좌영장을 지휘하던 곳이다. 동장대처 한 가운데 커다란 느티나무 여섯 그루가 직사각형으로 직립하고 그늘을 만들며 운치를 더해 준다. 돌에 걸터앉아 냉커피를 마시며 성벽 쪽을 바라보니 하얀 표지판이 보여 가까이 가자 ‘남한산성 여장’이라고 씌어 있다. 여장은 성 위에 낮게 쌓은 담으로 몸을 숨겨 적을 향해 총이나 활을 쏘는 시설이다. 여장에서 성벽 밑을 내려다보며 심호흡을 하고 하늘을 쳐다보며 눈을 감았다.


북문에서 조성민 교수 부부.(사진=조성민)


숲 터널을 지나 벌봉에 서다

동장대터의 암문을 통해 본성 밖으로 나와 봉암성과 한봉성 쪽으로 향했다. 우뚝 솟은 바위봉우리인 벌봉을 중심으로 능선 따라 2km 뻗은 봉암성은 곳곳이 허물어져 있었다. 벌봉 쪽 등산로는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기 때문에 한적하고 능선 길은 완만했다. 숲을 따라 좀 걸어오니 한봉과 벌봉으로 갈라지는 삼거리가 나온다. 벌봉으로 향하자 울창하게 우거진 나무들이 숲 터널을 이루어 어두컴컴하고 시원하다. 고즈넉하고 조용한 숲길을 거닐며 오니 벌봉표지만이 보인다. 허물어진 성벽을 따라 급경사를 오르니 남한산의 최고봉인 벌봉(497m)이 가로 막는다. 바위봉우리인 벌봉에 섰다. 남한산성의 서쪽내부와 동쪽성벽이 훤히 내려다보이고, 검단산 예봉산 천마산이 보인다. 석양이 붉게 물들어 서울의 남산 쪽 하늘을 바라보니 환상적이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서녘하늘을 향해 셀카봉을 연속해서 눌렀다. 벌봉에서 바라다 보이는 풍광이 마음을 넉넉하게 한다. 벌봉을 둘러보고 동장대터 밑의 암문으로 다시 나왔다.


남한산성 성벽길.(사진=조성민)


성벽둘레길에서 교훈을 얻다

북문으로 향하는 내리막길 막바지에 제4암문(북암문)이 있고 조금 더 가자 제1군포터가 나온다. 성벽은 소나무들의 사열을 받으며 길에 이어지고 있다. 급경사의 성벽 길을 지나 평탄한 길을 터벅터벅 걸어오자 성벽일주의 출발점이었던 북문에서 능선길이 끊어진다. 북문에서 산성로터리로 내려와 카페에서 팥빙수를 시켜놓고 5시간에 걸친 성벽일주의 여정을 뒤돌아보았다. 북문-제5암문-연주봉옹성-서문-수어장대(청량산정상)-제6암문-남문-남장대터-동암문-동문-송암정터-장경사-제2암문-장경사신지옹성-군포지-동장대터-봉암성-벌봉-제4암문-제1군포터-북문으로 일주를 한 것이 뿌듯했다. 남한산성을 한 바퀴 돌면서 성벽둘레길에 산성과 더불어 영광과 아픔을 함께 했던 소나무들과 함께 걷는 여정이 너무나 즐거웠다. 산성의 버팀목이자 등산객들의 그늘이 되어주는 소나무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솔향기 속에는 그윽하면서도 아픈 역사의 향기가 스며드는듯하여 아리다.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이고 미래를 대비하는 거울이라는 생각을 하며, 배낭을 메고 주차장으로 나오자 어느새 땅거미가 졌다.


글/조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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