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초대석)아태문인협회 조성민 이사장, 홍도/흑산도 여행기


(홍도, 사진=조성민) 


(여행 첫째 날)


★홍도를 지르밟다

목포에서 250여리 떨어진 섬, 급경사의 산지로 이루어진 섬, 해질 무렵이면 섬 전체가 붉게 물드는 섬을 향해 간다. 여객선 유리창으로 와보고 싶던 섬이 눈에 들어온다. 천혜의 절경을 머리에 이고 있는 섬이 햇빛을 받으며 현란한 몸매를 맘껏 뽐낸다. 억겁의 세월 동안 해풍과 파도를 견딘 기기묘묘한 바위들을 등에 짊어진 섬이 요지경이 된다. 목포연안여객터미널에서 쉬지 않고 2시간 반을 달려온 쾌속선이 홍도 선착장에서 엔진을 멈춘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다리를 직각으로 올렸다 내리며 낙도를 힘차게 내려밟았다. 홍도를 만났다는 설레임으로 가슴이 벅차오른다.



★깃대봉을 오르다

선착장에서 조금 걸어가자 흑산초등학교 홍도분교가 나타난다. 아담한 교정 축구장에는 파란 인조잔디가 깔려있고 농구장은 주황색 우레탄이 깔려있다. 학교 정문에서 오른쪽 길로 접어들어 해넘이 전망대가 있는 곳으로 올라갔다. 이곳에서부터 정상으로 이어지는 등산로가 시작된다. 산을 한참 오르니 정상을 1km 남겨놓은 곳에 벤치를 만들어놓은 쉼터를 만나 심호흡을 하며 땀을 식혔다. 벤치에 잠시 앉아 쉬고 또 걸으니 숨골재 표지판이 보인다. 옛날에 한 사람이 절구공이로 쓸 나무를 베다가 실수로 이곳에 빠뜨렸는데, 다음 날 물고기를 잡던 중 전날 빠뜨린 나무를 발견하여, 이때부터 이곳을 ‘바다 밑으로 뚫려있는 굴’이라 하여 ‘숨골재’라고 했단다. 등산로는 대낮인데도 그늘이 져 어두컴컴하다. 동백나무의 군락이 숲을 이루어 그늘터널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아직 지지 않아 듬성듬성 보이는 붉은 동백꽃으로 눈길이 자주 간다. 이른 봄에는 동백꽃들이 만발해 가관이었을 것이다. 정상을 500m 남겨놓은 내리막 오르막길 사이에 1935년까지 숯을 구웠다는 ‘숯가마 터’ 팻말이 보인다.


땀을 많이 흘리고 나서 드디어 홍도의 최고봉우리 깃대봉에 올랐다.『깃대봉 365m』라고 쓰인 표지석이 이곳까지 올라오는 동안의 피로감을 한꺼번에 날려준다. 사방을 천천히 둘러보며 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천혜의 빼어난 절경, 맑고 푸른 바닷물의 신비한 빛깔,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홍도 바다는 천연색 물감을 뿌려놓은 듯 예쁘다. 풍광이 아름답고 바다와 육지가 접하는 해안선은 언제 보아도 사람들의 마음을 자극할 수 있는 정겨움이 묻어난다. 홍도는 자연이 빚어낸 아름다운 암석의 조각공원이다. 억겁의 세월을 통해 바다와 해풍과 시름하고 시달리며 빚어낸 명물이다.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자태를 뽐내며 환상의 비경을 토해낸다. 깃대봉 표지판 앞쪽에 “흑산도, 태도, 가거도”를 가리키는 표지판을 따라 세 섬 쪽을 조망했다.



★몽돌을 만드는 파도는 쉬임이 없다

깃대봉에서 내려와 초등학교 뒤편쪽으로 내려가 몽돌해변으로 갔다. 해변에 들어서자 길옆에는 매끈하고 반들반들한 수박만한 크기의 몽돌들이 놓여있다. 파도가 치는 물가로 내려가자 계란처럼 생긴 몽돌들이 바닷물에 멱을 감고 있었다. 파도가 “처얼썩 처얼썩” 노래를 부르며 쉬지 않고 돌의 표면을 다듬고 있었다. 모난 돌들이 파도에 매질을 당하는 모습을 보며 시련이라는 말을 떠올렸다. 시련은 가장 큰 축복이고 시련이라는 선물은 인격을 갈고 닦아 주며 힘들게 고생할 때야말로 절호의 기회다. 고난만큼 사람을 강하게 키우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때는 순풍이 불고 있을 때다. 고난과 시련은 자신의 능력과 가능성을 시험하는 과정일 뿐이다. 그 과정을 통해 더 숙련되고 성숙한 인간으로 변모하는 법이다. 밀려왔다 떠내려가는 파도에 장단을 맞추어 자갈밭 길을 힘주어 걸었다. 밀려오는 바닷물에 신발 젖는 줄 모르고 걸으니 수백 길 수직절벽이 길을 막는다. 몽돌해변을 돌아 나왔다. 석양에 지는 붉은 노을이 바다의 푸른 색깔과 조화를 이루어 뿜어내는 낭만적인 분위기에 옴짝달싹 못하고 서 있었다.


★홍도둘레길에서 박새와 친구가 되다

몽돌해변에서 고개를 넘어와 서쪽에서 펼쳐지는 낙조의 파노라마를 등에 걸머지고 홍도둘레길을 걸었다. 오른쪽으로 홍도연안여객선터미널 간판이 보이고 산비탈에 조성된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땅거미가 지고 먼바다에는 배 한 척이 불을 밝히고 있다. 배에 탄 사람들은 오늘도 밤을 지새우며 만선의 노래를 부르리라. 홍도 앞바다의 풍광을 즐기며 걷고 있는데, 숲에서 다람쥐 빛깔을 띤 통통하게 살찐 박새 한 마리가 앞장서 간다. 곧 날아가겠지 하며 새를 따라가는데도 새는 피하지 않고 친구가 되어준다. 외딴 섬에 사는 새라서 누군가 그리운가보다 라는 생각을 했다. 귀엽고 앙증맞은 새에게 “반갑다, 안녕”하고 인사를 보냈다. 새도 답례를 하는 듯 ‘폴짝폴짝’ 뒤며 발 앞쪽에서 흥을 돕는다. 오랜만에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힐링의 시간이다. 박새가 50여m나 길동무를 해주더니 해안가로 날아간다. 더 어두워지기 전에 집을 찾아가는가 보다. 새와 헤어지고 홍도둘레길을 되돌아 나와 숙소에 짐을 풀었다.



(여행 둘째 날)

★홍도해안 절경에 반하다

과거에 매이지 않으려는 듯 붉은 태양이 동녘 바다 너머에서 얼굴을 빼꼼히 내밀기 시작한다. 현재에서 미래로 흐르듯 홍도 바다 위로 솟는 태양은 마침내 해맑은 모습으로 온 천지를 달구기 시작한다. 새로운 삶을 위해 오늘 하루도 최선을 다하는 다짐으로 희망 주는 태양을 향해 두 팔을 번쩍 쳐들었다. 갯내음이 풍기는 상큼한 아침이다. 홍합라면으로 조반을 하고 홍도 33경을 유람하는 배에 올랐다. 홍도해안의 깎아지른 절벽에 오랜 세월 동안 바람과 파도에 깎여 형언할 수 없는 절경이 홍도 33경이다. 유람선 2층에 앉아 바다를 응시했다. 파도가 없어 바닷물이 아롱져 마음이 푸근하다. 유람선이 홍도를 끼고 시계방향으로 물살을 가른다. 뱃고동이 울린 지 얼마 되지 않아 돛대바위 형제바위 유방바위가 눈에 들어온다.


뒤이어 조그만 배가 지나가도 될 만큼 넓은 구멍이 뚫린 홍도 제1경인 남문바위가 눈을 즐겁게 한다. 이어 벽에 기대놓은 듯한 병풍바위가 나타난다. 그리고 이곳으로 유배를 온 선비가 홍도가 좋아 일생동안 가야금을 타고 여생을 즐겼다는 실금리동굴이라며 이곳 토박이인 해설사가 홍도자랑을 한다. 네모난 바위가 커다란 바위 위에 위태롭게 걸쳐있어 금방이라도 덜어질 것 같은 모양을 한 아차바위가 보인다. 유람선이 엔진을 한참 돌리자 네모져 하늘을 향해 뻗치는 기둥바위가 바다를 장식하고 있다. 관광객들이 모두 오른 쪽을 보고 있는데 해설사가 이번에는 바다 쪽인 왼편을 보라고 한다. 주전자 같이 생긴 바위가 있는데 손잡이가 없는 주전자바위라고 너스레를 떤다. 이어서 고릴라바위가 나타나고, 거북이가 미소 지으며 바다에서 육지로 올라가는 거북바위가 나타난다. 하루 낮 저녁으로 다른 모습으로 변한다는 만물상바위 그리고 탑바위, 콜라병바위가 차례로 나타난다. 이번에는 독립문과 유사한 독립문바위가 나타난다. 많은 사람들이 독립문바위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한참 후에 엄지손가락을 닮은 엄지바위가 위풍당당하게 서 있다. 모양이 독특하고 아름다운 홍도의 대표적인 33개의 바위들인 홍도 33경의 절경에 반해서 2시간 30분 동안 이어진 시간이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다.


★흑산도를 일주하다

홍도 여행을 마치고 탄 여객선이 30여 분을 고속질주하자 흑산도가 반긴다. 예리항(흑산도 항)은 천혜의 항구로 상당히 크고 아름다웠다. 마침 흑산도 홍어축제가 열리고 있어 행사장을 둘러보고 흑산도를 일주하는 버스를 탔다. 바닷가가 잘 보이도록 해안가를 따라 버스가 내달린다. 얼마를 가다가 기사가 버스를 멈추고 길옆에 있는 커다란 나무를 보라고 한다. 자세히 보니 나뭇가지 2개가 서로 붙어 한 개가 되어 다시 2개로 뻗어가는 연리지였다. 부부의 좋은 금실을 상징하는 나무이다. 집사람에게 연리지를 보라고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집사람이 빙긋이 웃는다. 얼굴을 마주보며 하이파이브를 했다. 조금 더 가다가 버스 안에서 370년 된 팽나무를 보면서 “우리 건강하게 생활해요” 하고 집사람이 말한다. 달리던 버스가 12굽이 길을 오르기 위해 기어를 변속한다. 실타래가 이리구불 저리구불 휘어있는 소라 모양의 비탈길이다. 중간지점의 비탈에 버스가 멈추더니 기사가 오던 길을 내려다보라고 한다. 아찔한 비탈길에 모두 탄성을 지른다. 12굽이 길을 올라 흑산도의 최고전망대인 상라봉에서 내려 멀리 발아래 보이는 흑산도를 조망했다. 흑산도 앞바다와 버스가 출발한 예리항이 보이고, 저 멀리 장도와 홍도가 한 폭의 동양화를 그려내고 있다.


바다와 섬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뒤를 돌아다보니,『흑산도 아가씨』노래비가 서 있다. “…못 견디게 그리운 아득한 저 육지를, 바라보다 검게 타버린 검게 타버린 흑산도 아가씨” 라는 가사를 지닌 이 노래는 흑산도를 전국에 널리 알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 오래전에 많이 들었던 노래다. 대중가요의 위력을 이 노래비에서 실감하며 버스에 올랐다. 버스가 비탈길을 한참 내려가고 다시 오르막길을 서행할 때 기사가 바닷가의 바위를 보라고 한다. 마리마을과 비리마을 사이의 해안가 바위에 구멍이 뚫렸는데 한반도지형을 빼닮았다. 파도가 만들어낸 해식동인데 경이롭고 신기하게 보였다. “지도바위”를 통해 보는 바다는 바람이 일면 바람을 타고, 파도가 치면 파도를 타는 넉넉한 마음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아무런 구애를 받지 않는다. 바다는 해탈의 경지를 일깨워주는 스승이라는 생각을 했다. 버스가 이번에는 해안절벽에 놓인 교각이 없는 다리, 소위 하늘도로를 달린다. 듬성듬성 서 있는 절벽들이 교각 역할을 대신한 것이다. 내리막길을 한참 가다가 소장도 바닷가에 정차를 한다. 이곳은 청정지역이고 물살이 셀뿐만 아니라 물이 깨끗해 전복이 자라는데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단다. 그래서 이곳이 전복양식장으로 유명하단다.


다시 고갯길을 만났는데 한다령이다. 이곳 역시 경사가 심하고 구부러진 현상이 심했다. 이어 바람이 심한 사리마을을 지난다. 사리마을은 정약용의 둘째 형인 정약전의 유배지이다. 한양에서 벼슬을 하다가 천주교도들이 핍박을 받았던 시기에 이곳으로 귀양 와서 바다에 관한 연구를 한 책인 자산어보를 쓴 곳이다. 버스가 자연적 방파제 역할을 하는 7형제바위 앞에 정차한다. 몇몇 사람들이 차에서 내려 기념촬영을 한다. 달리던 차가 다시 멈추더니 뒤편 산을 보라한다. 산마루에 바위가 걸렸는데 하루방바위다. 제주도의 하루방과 너무 닮은 모양에 모두들 박장대소를 한다. 산비탈을 내려오니 소사리 마을이 나타나는데, 이곳은 산속에 있어 바다가 보이지 않는 마을이란다. 이어 구문여바위가 보이는데, 이곳의 소나무는 소금기에도 죽지 않고 사는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소사리 마을을 지나자 바다에 그물이 많이 쳐져 있었다. 유명한 멸치어장이다. 2시간에 걸친 흑산도 일주를 보면서 이곳에 잘 왔다는 생각을 했다. 흑산도여행이 추억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는 생각에 뿌듯한 기분이다.


★흑산도에 미소의 폭탄을 퍼붓다

이틀 동안 홍도와 흑산도를 여행했는데 시간이 꽤 오래 지난 것 같은 느낌이다. 짧은 시간에 여러 곳을 재밌고 보람 있게 다녀서 그런가 보다. 목포로 가는 배를 기다리는 동안에 예리항 휴게실에 앉아 눈을 감고 이틀 동안의 여정을 되돌아보았다. 홍도를 지르밟았을 때의 짜릿한 기분, 깃대봉을 오를 때 여러 가지의 좋은 생각들, 몽돌해변에서 쉼없이 활동하는 파도와 시련을 통해 모난 돌들이 몽돌로 변화하는 자연의 이치, 홍도 33경을 돌아보면서 비경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교훈이 활동사진처럼 돌아갔다.


흑산도에서 보낸 반나절 동안에 연리지의 상징인 사랑의 의미, 수백 년을 살아온 후박나무의 건강에 대한 암시, 12굽이길과 한다령이 보여주는 은근과 끈기, 상다봉의 매력과 노래비의 위력, 지도바위에서 배운 해탈의 경지 등이 머리 속을 감돈다. 이 모든 추억들이 앞날의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줄 것이다. 목포행 여객선에 몸을 싣고 배가 항구를 빠져나가기 위해 뒷걸음칠 때, 흑산도를 항해 잘 있으라며 손을 흔들고 또 흔들었다. 이틀간 강행한 여행으로 몸은 피곤하지만 풍요로운 마음에 미소의 폭탄을 흑산도에 퍼부었다.


글/조성민 한양대 로스쿨 명예교수, 아태문인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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