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초대석] 조성민 여행작가, 단양8경 여행기


도담삼봉의 경관/사진=픽사베이 


도담삼봉의 매혹에 빠지다

계절이 바뀐 3월 초하룻날서울을 출발해 남한강과 소백산맥 줄기가 만들어낸 단양8경을 유랑하기 위해 중앙고속도의 바람을 가른다테마여행을 즐기기 위해 비경의 자태를 자랑하는 단양8경을 향해 달린다어릴 적 소풍가는 날처럼 설레임으로 가득 차서 장거리 운전인데도 피로감을 잊은 채북단양 나들목을 빠져나와 어느 새 첫 번 째 여행지에 도착했다.

시계가 정오를 알릴 때 산과 물과 조화를 이루어 매혹을 더하는 도담삼봉과 조우했다세 봉우리가 남한강 물줄기의 수면을 뚫고 솟아올라 시선을 사로잡는다오랜 세월이 중봉남봉북봉으로 뾰족하게 만든 세 개의 봉우리는 신비로움을 더해 이곳의 명물이 되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중봉 끝자락에 서있는 육각정자는 그윽한 운치를 자아내며 시간이 멈춘 듯 옛 풍경을 간직하고 있었다도담삼봉은 남한강의 비단물결을 허리에 휘감고 신비롭고 고혹적인 매력을 뿜어내 보는 이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석문의 풍경 속으로 빠져들다

도담삼봉 옆에 야트막한 산의 경사가 급하다지그재그로 놓인 계단을 오르니 정자가 쉬어가라고 손짓한다정자 난간에 서서 굽이굽이 휘어진 남한강을 바라보고 심호흡을 하며 기지개를 켰다발길을 옮기자 오솔길에 굵은 소나무 뿌리가 흙을 헤집고 뻗어 나와 감흥을 더해준다비탈길을 내려가 전망대에서 강 쪽을 응시하자커다란 대문 모양의 구름다리 돌기둥이 눈을 호강시킨다유심히 보니 강변에 수십 척 돌기둥이 서로 마주보고그 기둥 위에 돌다리가 걸려 있는 석문(石門)이다지각변동으로 석회동굴이 붕괴되고 동굴천장 바위에 너비 20m 크기의 넓은 구멍이 뚫려 구름다리 모양이 되었다

전망대에서 네모난 돌문을 통해 강물을 바라보았다파란 강물과 건너편 동네 위에 하늘을 떠도는 구름이 햇살에 부딪쳐 사라진다초연히 시간을 지키고 있는 석문 위의 나무들과 입맞춤 하며 오랜만에 일상의 무료함에서 벗어난다. 3월의 봄바람이 이곳에 오른다바람소리가 후회 없는 삶을 살기 위해서 현재에 몰두하라는 메아리로 쏟아진다이 메아리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한계에 부딪쳐도 이상을 동경하는 지혜와 용기를 북돋아주며 허기진 잠재력을 일깨워준다바위를 뻥 뚫은 석문을 통해 자연이 만들어낸 그림 같은 풍경 속으로 빠져들어 한참 동안 망중한을 즐겼다.

사인암 앞에서 기념촬영./사진제공=조성민  


사인암에서 여유를 찾다

도담삼봉을 뒤로 하고 내비게이션이 가리키는 대로 사십오 리를 달려가자덕절산 줄기의 큰 개울가에 무 자르듯이 잘라놓은 50m 높이의 수직 바위봉인 사인암이 반긴다몇 년 전에 사진작가인 지인이 작품으로 만들어 준 것을 보면서 신기하다고 생각했었는데여기에 와서 그 실물을 보니까 감회가 새롭다절도 있고 장엄한 자태를 뽐내는 사인암은 사각형의 두부모를 쌓아 놓은 듯한 반듯한 무늬를 가지고 있었다그 머리 위에 노송을 키우고 있어서 절도와 끈질긴 생명력을 동시에 보여주는 한편의 파노라마를 보여 주었다사인함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은 후에 개울에 놓인 다리를 건너 사인암 뒤쪽으로 갔다

사인암과 덕절산 절벽사이에 앙증맞은 암자가 냇물의 기운을 머금고 봄기지개를 켠다좁은 돌계단을 오르는 길에 번뇌의 물결로 마냥 혼란스럽다암자 앞에 서서 마음을 비우고 모든 번뇌를 잊게 해달라고 두 손 모았다수련하는 마음으로 끊어진 듯 이어지는 삶의 곡예 속에 귀를 열어 열반의 세계로 가는 동반자가 되어본다기쁨과 슬픔이 공존하는 바윗길에서 몸과 마음을 다독이며 아낌없이 주는 햇살을 바람의 노래로 들으며 사인암과 작별했다.


하선암에서 벌렁 누워 하늘을 보다

사인암을 보고나서 아름다운 계곡과 암반으로 소문난 선암계곡으로 갔다. “하선암표지판이 보인다발길을 냇가로 향하자 커다란 바위들이 개울에 너부러지며 바위박물관을 만들었다하선암 옆에 30m의 너럭바위가 눈에 띠었다물위로 솟은 바위들을 징검다리 삼아 껑충껑충 뛰어 너럭바위로 발을 디뎠다펀펀하고 개구리가 움츠리고 있는 모양을 하고 있는 너럭바위에 큰 대()자로 벌렁 누웠다딱딱한 암반인데도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구름 한 점 없는 파란하늘에 시름이 녹아내린다마음의 휴양소에서 한 잔의 차를 마시는 느낌이 들어 깜박 잠이 들었다단잠을 자고 눈을 뜨자 가슴 속에서 형언할 수 없는 뜨거운 열정이 불끈 솟아나서 벌떡 일어섰다몸에 날개가 달린 듯이 가벼워져 너럭바위를 사뿐히 뛰어내려 개울을 다시 건너왔다

집채 만 한 여러 개의 바위가 서로 의지하며 쓰러지지 않고 서있는 모습을 재미있어하며 보고 또 보았다산새들도 재미있는지 지저귄다산과 들을 누비며 날아다니는 새들이 근심을 덜어준다먹잇감을 구하기 위해 또 다시 하늘을 가로지르는 새들의 발자취를 올려다보며 저들과 함께 낄낄거리며 날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같았다.

  

중선암에서 돌탑을 쌓다

선암계곡 가운데에 있는 중선암으로 갔다태고 적부터 바람이 다듬고 계곡이 씻어낸 하얀 바위들이 어우러진 그곳에는 커다란 바위들이 하얀 속살을 드러내며 미끈한 몸매를 과시하고 있었다바위들을 타고내리며 하류 쪽으로 내려가다가 봄이 되어 불어난 시냇물을 건널 수가 없었다어렵사리 온 길을 되돌아가 흔들다리를 건너 개천 길을 따라 걸으니 너무 편했다자갈길과 계단과 황톳길로 이어지는 길이라 그런지 신발에 바퀴를 난 느낌이었다한참을 걸으니 거대한 바위가 물줄기를 가로막아 쌍룡폭포를 이룬 것이 눈에 띤다폭포수가하얀 물거품을 일으키며 몸을 던진다폭포수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정처 없이 꿈을 찾아가지만떠남을 아쉬워하지 않으며 만남을 위해 만들어가는 시간 속에서 하얗게 부서지며 새로워진다는 생각을 했다.   

폭포를 반환점으로 내려가던 길을 다시 올라오는 길에 사람들이 쌓아올린 탑 무더기를 보았다집사람이 재미있어하면서 정성스레 돌탑을 쌓는다머리 위 나뭇가지에서 귀여운 새 한 쌍이 지저귀자집사람이 서툰 휘파람으로 새소리를 흉내 낸다돌짝길인데도 정겨움이 물씬 묻어나는 시간이다.


 상선암에서 계곡정신을 배우다

중선암을 둘러보고 나서 산길 위로 올라가자 길옆에 상선암이 보인다개천 물살로 세월에 다듬어진 미끈한 암반들이 계곡에 자유 분망하게 포진하고 있다암반 사이를 계곡물이 길을 만들며 흐르다가 커다란 암반을 타고 넘으며 하얀 포말을 뿌려대며 낭떠러지로 뛰어내린다계곡은 가뭄이 들어 세상이 모두 타들어가도 마르지 않는 곳으로세상의 모든 것이 말라도 마르지 않는 정신을 가지고 있다낮은 곳으로 임하는 계곡의 정신이야말로 가장 강하게 살아남을 수 있는 경쟁력을 지닌 원천이다

계곡의 정신은 강하고 딱딱한 모습보다는 부드럽고 유연한 모습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부드럽고 겸손한 것이 강하고 교만한 것보다 경쟁력이 있다꽃처럼 아름다운 사람이 되려면 품격을 갖추어야 하고 이를 유지하기해서는 물의 겸손을 배워야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물은 언제나 낮은 곳으로 흐르지 결코 거슬러 올라가는 법이 없다물은 환경에 적응하고 포용하기 위해 일직선으로 흐르지 않고 굽이쳐 흐른다물은 더러운 물체를 씻어주는데이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관심을 가지기 위함이다겸손이란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높이는 것이며상대를 높여줄 때 비로소 자신도 높아진다는 생각을 했다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계곡정신을 일깨워준 상선암을 내려오며 뒤를 돌아보고 여러 번을 돌아보았다.


 (여행 둘째 날)

 

한양대 조성민 교수 부부./사진=조성민 

 

구담봉을 기어오르다

아침 10시에 구담봉과 옥순봉 주차장에 도착했다배낭을 메고 등산로 따라 발걸음을 떼었다길 양옆으로 빽빽하게 들어선 소나무들이 곧고 크게 잘 자랐다는 생각을 하는데머리 위에서 귀여운 새 한 마리가 나뭇가지 사이를 폴짝폴짝 뛰며 지저귀는 소리에 마음이 청아해진다산마루에 오르자 손가락 모양을 한 이정표가 우측으로 구담봉 600m, 좌측으로 옥순봉 900m라고 가리킨다먼저 구담봉을 오르기도 했다험한 바윗길을 오르내리는데 여간 힘 드는 것이 아니었다급한 경사를 내려갈 때는 두 손에 힘을 주며 미끄럼을 탔고오를 때는 길옆으로 뻗은 나뭇가지를 잡아당겼다

구담봉으로 이어지는 길은 마치 야생마 같아서 울퉁불퉁한 바위들이 이리저리 너부러져 쩔쩔 매며 걸었다한참을 오르자 깊은 브이(V)자 계곡 저 편에 구담봉이 보인다거북이가 등을 보이고 서있는 모양의 바위산으로 암벽등반가가 아니면 올라갈 수 없는 곳처럼 보였다다행히 수직계단이 에스(S)자 형으로 놓여있었다고소공포증으로 계단을 걸어 올라가지 못하고 거북이처럼 두 손으로 엉금엉금 기어올랐다다행이 계단에 고무가 깔려있어 손바닥이 아프지는 않았다정상에 오르자 커다란 돌 판에 구담봉 330m라는 표지석이 반겨준다깎아지른 듯 장엄하게 치솟은 기암절벽을 이루는 구담봉의 조망이 짜릿한 쾌감을 선사한다멀리 내려다보이는 강물 위를 교차하는 두 척의 유람선이 한가로이 보인다


옥순봉 정상의 돌판을 껴안다

구담봉에서 내려와 산마루에서 옥순봉으로 발길을 내딛었다평탄하게 뻗은 길이라 안도가 되었다등산로에 솔잎과 느티나무 낙엽이 깔려있어 걷는 감촉이 좋았다사방에서 조심스레 어둠에서 탈출하는 생명들이 무거운 흙더미를 밀치며 쏘옥 얼굴을 내미는 것만 같다일상에서 벗어나 한껏 봄을 전하는 눈부신 하루 중에 산속의 향기로운 유혹을 이길 수 없어 허리를 쭈욱 펴고 걷는다옥순봉으로 가는 등산로는 길이 잘 들여진 순한 말처럼 걷는 데 힘들지 않았다계곡 또한 깊지 않는 유(U)자 형이라 순탄했다지나온 계곡이 어느 새 한 폭의 풍경화로 변한다.    

돌고 돌아가는 길을 쉬엄쉬엄 걸어서 정상에 오르자 옥순봉 286m라고 새겨진 돌판을 보았다이제 단양8경을 다 둘러봤다는 성취감에 기분이 짜릿했다너무 반가워 돌판을 껴안았다한참 껴안고 있을 때옥순봉 돌판이 초심을 잃지 마세요초심은 순수한 마음이고 배우는 마음이며 어린아이의 마음이고 첫사랑의 마음입니다라고 속삭여준다흐트러진 마음을 다잡았다옥순봉에서 내려와 산 밑으로 내려오니 시계가 오후 1시 30분을 가리킨다구담봉과 옥순봉을 3시간 30분 동안 등반을 했는데도 몸이 가뿐하다


  장회나루에서 유람선을 타다

장회나루에서 흥겨운 노랫소리를 들으며 600명이 탈 수 있는 유람선에 올랐다선미(船尾)로 올라가서 오전에 올랐던 구담봉을 응시했다산위에서 바라보는 광경과 산밑에서 바라보는 광경은 확연히 달랐다구담봉을 받치고 있는 물위에 솟아있는 바위들의 거대함과 웅장함에 놀랐다유람선 엔진소리가 시간을 더해갈 때 오른 쪽에 있는 금수산을 보라는 안내방송이다바위산을 이루고 있는 금수산은 부드러운 암석의 물결이 섬세함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었다이번엔 왼편을 보라는 방송이다배타기 전에 바로 보았던 저 옥순봉은 푸른 봉우리가 죽순처럼 솟아있어 붙여진 이름이다대나무처럼 곧추세운 듯한 암봉들의 솟구치는 매력에 다시 한 번 빠져든다남한강변의 절경을 보여주며 항해하던 유람선은 제천의 청풍나루를 돌아 장회나루로 귀항하여 1시간 30분의 여정을 마무리했다


장회나루의 청결하고 산뜻한 식당으로 가서 산채비빔밥을 먹었다곱씹을수록 입안에 퍼지는 산나물 맛은 어머니의 뜨거운 사랑의 손맛이다시골의 맛을 느끼며 어머니와의 시간들이 가슴을 뚫고 지나간다지금은 눈물겨운 모습도 목소리도 보고 들을 수 없지만놓지 못하는 그리움이 새록새록 떠오른다집사람과 1박 2일의 단양8경 테마여행을 마치고 새털처럼 가벼워진 마음으로 서울을 향해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글/조성민 한양대 로스쿨 명예교수, 아태문인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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