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초대석] 가거도 여행기, 조성민 여행작가/한양대 로스쿨 명예교수


가거도항./사진=조성민 


(여행 첫째 날)


★최서남단 가거도를 가다

목포연안여객선터미널에서 아침 8시 10분에 가거도행 쾌속선을 탔다. 가거도는 목포에서 뱃길로 233km 떨어진 4시간 30분 거리에 있는 우리나라 국토의 최서남단에 있는 절해의 고도이다. 가거도는 ‘가히 사람이 살만한 섬’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고 또한 뱃길이 워낙 멀고 험해서 ‘가도 가도 뱃길이 끝나지 않는 섬’이라고도 부른다. 가거도는 최서남단에 있어 우리나라에서 해가 가장 늦게 지는 섬이다. 옛날에는 가거도 주민들이 육지를 가려면 돛단배를 타고 남풍을 받아 이틀 낮밤을 갔다가, 돌아올 때는 북풍을 등에 지고 돌아와야만 했다. 만일 역풍이 불거나 안개가 끼면 바다 위에서 일주일이고 열흘이고 닻을 내리고 노를 저어가며 파도를 헤쳐가야만 했던 섬이다.

목포항에서 출발한 쾌속선이 목포-비금도·도초도-다물도-흑산도-상태도·중태도-하태도를 거쳐 가거도를 향해 질주를 한다. 비금도항 앞에는 도초도가 마주 보고 있는데, 비금도와 도초도를 연결하는 937m의 연육교(서남문대교)가 놓여있다. 상태도와 중태도에는 쾌속선이 정박할 수 있는 시설이 없어서인지 두 섬의 바다 중간에 배가 정지를 하자, 고깃배가 와서 사람들을 옮겨 타게 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하태도부터 가거도까지 사이에는 섬이 없어 파도가 더 높이 친다. 12시 20분에 가거도항에 도착하여 조금 걸어가자 흑산면 가거도 출장소 앞에 「국토 끝섬 가거도」 표지판이 반긴다. 출장소를 찾아가 섬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가거도는 하나의 산을 이루고 있고 섬 전체가 사시사철 푸른빛을 띤 숲이 울창해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움에 취하는 비경의 섬이란다. 마을은 1구(대리), 2구(항리), 3구(대풍리)의 세 개 자연부락으로 이루어졌다. 세 개 어촌마을에 500여 명의 주민이 거주하는데, 출장소와 초등학교가 위치한 1구에 밀집되어 있단다. 가거도는 내륙에서 볼 수 없는 때 묻지 않은 고요함과 섬마을의 고즈넉함이 묻어나고, 자연과 바람이 하나가 되는 섬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섬 전체가 절벽으로 형성되어 웅장하며 주변 해역의 수심이 깊고 해저가 대부분 암초지대로 이루어져 있단다. 우리나라 최서남단에 위치해 국토 끝단을 지키는 영토이자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풍부한 생태환경 등을 가진 보물 같은 섬을 돌아본다는 생각에 마음이 상당이 들떴다.


★가거8경

점심식사를 마친 후에 식당주인에게 가거 8경에 관해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⓵ 제1경은 「독실산 정상」이다. 이곳은 구름과 해무가 산허리를 두른 반공중에 떠서 손을 들면 옥빛하늘이 잡힐 듯하고, 한발 내디디면 수평선의 쪽물이 묻을 듯한 신비로운 곳이란다. ⓶ 제2경은 「장군봉과 회룡산」으로 이 섬의 설화를 형성한 곳으로 1구 마을을 품에 안고 있단다. ⓷ 제3경은 「돛단바위와 기둥바위」이다. 돛단바위는 두 개의 적벽이 물 위에 떠있어 마치 돛을 달아놓은 것 같은 모양의 바위이다. 풍랑에 떠밀려온 미남 청년에게 반한 여신이 사랑을 고백했으나 거절당하자, 풍랑을 일으켜 배가 전복되고 돛이 바위가 되었다는 설화가 전해 온다. 기둥바위는 회룡산 북서해안에 있는 산암으로 구성된 수평전라면을 따라 형성된 바위이다. ⓸ 제4경은 「섬등반도절벽과 망부석」으로, 섬등반도가 망부석을 감싸주고 있는 듯한 경관이 조화를 이룬단다. ⓹ 제5경은 「구곡앵화와 빈주암」이다. 구곡앵화는 독실산으로부터 뻗어 내려온 V자형의 골짜기 안에 크고 작은 아홉 골이 있는 곳으로, 봄철에 살구꽃 풍경이 일품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빈주암은 장엄한 절벽과 경관이 어우러져 그림 전시장에 들어선 듯한 느낌을 준단다. ⓺ 제6경은 「소등일출과 망향바위」다. 소등은 ‘밝아 오는 산비탈’이라는 뜻으로 이곳에 해가 뜨면 장관을 이루고, 소등의 산비탈 바위 속에서 솟아오르는 차가운 약수는 만병에 효험이 있다하여 인기가 높단다. ⓻ 제7경은 「남문과 고랫여」이다. 남문은 항리마을에서 동쪽으로 돌아가면 용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가 남대문을 닮았다 하여 남문이라 부른다. 고랫여는 수직기둥모양의 암석인 시스택(sea stack)으로 썰물 때만 수면 위로 나타나는 작은 바위섬인데, 파도가 치면 숨쉬기 위해 물 밖으로 나오는 고래처럼 떠오른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⓼ 제8경은 「국흘도와 칼바위」로, 대국흘도·소국흘로도·개린도·두역여·기문여를 일컫는다. 가거8경 중에서 먼저 독실산을 오르기로 했다.

 

가거도 송년우체국./사진=조성민


★독실산을 오르다

식당에서 트럭을 타고 독실산 정상아래 헬기장까지 갔다. 독실산은 후박나무를 비롯해 상록수가 울창한 신안군의 크고 작은 840여 개 섬의 최고봉이다. 우리나라 섬의 산 중에서 600고지를 넘어가는 산은 제주도의 한라산(1,950m), 울릉도의 성인봉(984m), 가거도의 독실산(639m)이다. 독실산은 우리나라 섬 중에서 3번째로 높은 산이다. 배낭을 걸머지고 계단을 따라 올라가는데 고산지대의 식물들이 자생하고 있어 아름다운 난대림을 그대로 만날 수 있었고, 자연의 때 묻지 않은 원시 그대로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었다. 정상에 올라 「독실산 해발 639m」라고 적인 앙증맞은 정상석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섬의 모습은 그림 같은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사방에 펼쳐진 수평선을 밑그림으로 만재도, 진도, 태도, 흑산도, 홍도 등이 멀리서 아름다움을 뿜어낸다. 독실산을 중심으로 형성된 22km에 달하는 가거도의 해안선은 온통 기암절벽에 둘러싸여 자연성곽을 방불케 한다.


★울창한 숲길 따라 항리마을로 내려오다

독실상 정상에서 400m를 내려오자 전망 좋은 곳과 섬등반도 갈림길 표지판이 서 있다. 왼쪽 길을 따라 「전망 좋은 곳」을 찾아갔다. 전망대에 서자 탁 트인 풍광에 끝없이 펼쳐지는 넓고 푸른 바다가 마음을 즐겁게 한다. 전망대까지 200m를 갔다가 다시 돌아 나와 섬등반도 쪽으로 내려갔다. 독실산은 육지에서 워낙 멀리 떨어져 있고 험한 산이라 사람의 손길이 많이 닿지 않아 수백여 종의 난대원시림을 형성하고 있어 생물학적 가치가 높은 산이다. 울창한 숲길에는 신비로움으로 가득 차 있는 느낌을 받았다. 산 곳곳에 바위와 나무에는 이끼가 푸른색 카펫을 깔아놓은 것처럼 야성미가 넘쳐흐르며 쉽게 길을 내주지 않았다. 대낮인데도 숲속으로 햇볕이 들어오지 않아 컴컴했다. 등산로에는 후박나무의 낙엽이 수북이 쌓여있어 여간 미끄럽지가 않았다. 게다가 비탈진 너덜길을 갈 때는 길 찾기가 어려워 조난을 당할 것만 같아 불안했다. 다행히 등산로에 밧줄이 메어 있어 이를 따라 조심스레 내려갔다. 가슴까지 웃자란 수풀을 헤치며 힘겹게 내려오는데 빨간빛을 띤 산딸기가 식욕을 자극한다. 산딸기를 여러 개 따서 입에 넣자 달콤한 맛이 갈증을 없애준다. 산을 거의 내려오자 수 미터 길이의 갈대가 지붕을 만들어 햇볕을 가린다. 그늘에 앉아 물을 머리에 부어 더위를 식혔다. 갈대숲을 지나자 푸른 바다로 뻗은 섬등반도가 눈앞에 전개된다.


가거도에서 조성민 교수./사진=조성민 


★섬등반도 능선 길을 걷다

독실산을 내려오자 가거도 북서쪽 해안절벽에 자리 잡은 향리마을에 다다랐다. 향리마을은 섬등반도가 있어 유명세를 더한다. 섬등반도 입구에는 빨간색이 선명한 「가거도 송년우체통이」이 서 있다. 우체통에 1년간의 편지가 모이면 연말에 한 번 배달해 준다고 한다. 우체통을 지나 섬등반도로 이어지는 길로 들어섰다. 섬등반도는 총길이 1km의 작은 반도로 초원으로 뒤덮인 곳으로, 섬 동쪽으로 뻗어 내린 반도형 지형이 태양을 향해 헤엄쳐 가는 커다란 거북이 모양을 하고 있다. 기암벽으로 이루어진 암봉과 병풍처럼 펼쳐진 해식애가 장관을 이루고 있다. 산길을 따라 올라가는데 해풍이 강하게 불어 몸 가누기가 쉽지 않았지만, 시원한 바닷바람이 원기를 북돋아 주었다. 산마루에 올라 탁 트인 섬등반도 능선 길을 따라 걷자 사방이 잘 보인다. 섬등반도는 가거도 절반 이상이 조망되는 천혜의 장소이고 최고의 비경을 보여주는 곳이다. 사방 어느 곳을 바라보든 눈을 뗄 수 없는 경이로움이 있었다.「섬등반도 전망대」에 서자 멀리 오동여, 검은여, 구글도, 개린도와 가거도 등대가 보인다. 섬에는 “여”와 “도”가 있는데, 바위섬을 “여”라 부르고, 나무가 자라는 섬을 “도”라 부른다. 전망대에서 서쪽 바다를 한동안 바라보자 감개가 무량하다. 섬등반도는 우리나라에서 해가 가장 늦게 지는 곳으로 마지막 일몰을 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가거도등대와 등대관리원 숙소./사진=조성민 


★대풍리마을을 보다

대풍리마을(3구) 앞에 서자 수평선이 한눈에 들어오고 가파른 해안절벽 사이로 파도가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부서진다. 바닷가 급경사를 따라 집들이 서 있는 모습이 예쁘게 보이는 어촌마을이지만, 억센 바닷바람을 고스란히 받아 오랫동안 견뎌야 했을 것이다. 3구 마을은 가거도에서도 오지로 몇 년 전만 해도 도로가 없어서 흑산군 가거도출장소가 있는 대리마을(1구)을 다녀오려면 배를 이용했단다. 마을 사람들은 미역채취를 주업으로 삼으며 살았다. 가파른 지형 탓에 바다에서 채취한 미역과 배로 들여온 생필품을 도르래를 이용하여 마을까지 끌어올렸다. 지금은 도로가 생겨 전보다는 편리한 생활을 해나가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어촌이지만, 그 내면에는 외롭게 삶을 이어온 섬사람들의 노고가 숨어 있는 곳이다.


★가거도 등대에서 설명을 듣다

대풍리 인근 북쪽 해안에 있는 가거도 등대로 갔다. 등대에서 30여 년을 근무한다는 등대관리원으로부터 등대 역사와 시설물 현황, 등대 역할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 가거도 등대는 1907년에 무인등대로 축조되어 1935년에 유인등대로 증축되어 서해남단을 오가는 선박들의 길잡이 역할을 했단다. 파란 하늘 아래 새하얀 등대가 포인트가 되어 가거도 전망을 내려다볼 수 있는 경치가 빼어난 곳이다. 백색등탑은 7.6m로 야간에 15초마다 번쩍거리는 등대불빛은 38km에서도 볼 수 있다고 한다. 지금도 서해와 동지나해 및 외해에서 우리나라 서남해안으로 들어오는 선박들에게 위치를 확인해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등대 앞에는 무인도인 대국흘도와 소국흘도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섬에 사는 새들의 울음소리가 ‘구쿨구쿨’ 들린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대국흘도는 희귀조류들의 서식지로 바닷새인 습새와 바다제비가 둥지를 틀고 번식하고 있어 자연생태계를 보존하기 위해 사람들의 출입이 금지된 곳이라고 라고 한다.




섬등반도 능선길./사진=조성민 


(여행 둘째 날)


★동개해수욕장에서 몽돌 씻기는 소리를 듣다

아침에 가거도항 옆에 있는 동개해수욕장으로 갔다. 길지 않은 해변이지만 몽돌이 깔려있어 파도가 섬을 향해 몰려올 때마다 ‘촤르르 촤르르’ 하는 소리가 마음을 상쾌하게 해주었다. 해변 끝자락에 있는 동개바위는 바다를 응시하며 이 섬을 지키는 수문장의 역할을 하는 것 같았다. 이번 여행의 원래 계획은 오전에 가거도를 더 둘러보고 오후배로 만재도에서 1박을 하려고 했으나, 풍랑주의보가 내려져 다음날에는 목포에서 배가 들어오지 않는다고 하여 부득이 다음 일정을 취소해야만 했다. 아쉬움을 안고 08시 10분에 목포로 가는 배를 탔다.


★만재도를 지나 목포항으로 돌아오다

가거도에서 쾌속선이 1시간을 달려 만재도항에 정박했다. 만재도에 내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이곳에 내리면 며칠 동안 발이 묶일 수가 있어 선미로 나와 카메라 셔터를 수없이 눌러댔다. 만재도는 마구산 밑에 바다를 바라보며 50여 호의 집들이 돌담 속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섬이다. 해변에서 바라보면 집들이 지붕만 빼고 모두 돌담 속에 숨어 있단다. 태풍과 바람을 막기 위해서인데, 마을에 만들어진 돌담길이 예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재도를 뒤로하고 달리는 쾌속선이 중간 기착지 없이 목포항으로 직항하여 가거도에서 3시간 30분 만에 도착했다. 우리나라 최서남단에 있는 가거도를 돌아본 것이 너무나 뿌듯한 마음에 용산행 KTX를 타러 목포역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새털처럼 가벼웠다.


글/조성민 여행작가, 한양대 로스쿨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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