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초대석] 아태문인협회 조성민 여행작가, 두타산 산행기



두타산성터를 지키는 소나무./사진=조성민 


40년 만에 개방된 베틀바위 산성길

두타산(1,353m)은 강원도 동해시와 삼척시의 분수령으로 두 고장을 대표하는 산이다. 두타산은 부처가 누워있는 형상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두타는 인간사의 모든 번뇌를 털어 없애고 물질을 탐하지 않는 맑고 깨끗한 불도를 수행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 항상 조용한 곳에 머무르고 의식주에 얽매이지 않으며 번뇌의 티끌을 털고 도에 정진하는 것이다. 두타산은 청옥산과 한 산맥으로 산수가 아름다워 사계절 등산코스로 인기가 높은 곳이다. 두타산의 베틀바위 산성길은 40년 만인 2020년 8월 1일에 개방된 베틀바위와 두타산성을 잇는 코스이다. 두타산이 품고 있는 여러 봉우리 가운데 하나인 베틀봉은 그동안 일반인 출입이 통제되어 개방되기 전까지는 거친 바위를 타는 리지등반이나 암벽등반을 즐기는 사람들만 다니던 길이었다. 이곳은 접근 불가의 험준한 지형 너머에 있는 베틀바위로 연결되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바위길 곳곳에 안전시설을 설치해 명품탐방로가 만들어졌다는 보도를 접하고 호기심에 들뜬 마음으로 두타산을 찾아갔다.


금강송 군락지로 들어서다

두타산 베틀바위를 오르기 위해 아침 8시 30분에 무릉계곡 주차장에 도착했다. 매표소를 지나 들머리인 신선교를 건너자 삼거리가 나오고 베틀바위 산성길 표지판이 왼쪽을 가리킨다. 숲길로 들어서서 향긋한 솔내음이 정신을 맑게 해주는 학이라도 노닐 것 같은 아름다운 금강송 군락지인 소나무길을 걸었다. 금강송은 몸매가 주홍색으로 미끈하게 뻗어 미인송으로 불리는 수종이다. 소나무는 우리 민족에게 유난히 친근한 나무로 알려져 있다. 배고픈 시절에는 송기를 벗겨 허기를 때웠고 송홧가루로 떡을 빚었고 솔가리와 장작은 땔감으로 사용했다. 쭉쭉 뻗은 자태로 기품을 넘치게 하는 금강송 군락지를 걸어가자 넓은 구덩이 안에 장작더미를 A자형으로 세워놓은 「숯가마터」가 나온다. 옛날에 이곳에 자생하는 울창한 참나무를 잘라 모아 숯가마에 쌓고 숯을 구워 내다판 선조들의 삶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현장이다.


베틀바위 비경에 탄성의 느낌표를 찍다

비탈길을 한참 오르자 회양목 군락지 안내판이 보인다. 베틀바위 일원에 퍼진 회양목은 강원도 회양 지역에서 많이 자라는 암수한그루 상록활엽관목으로 3월에서 5월 사이에 노란 꽃이 핀단다. 척박한 석회암을 자양 삼아 오랜 시간 인고하며 굳건하게 커가는 회양목의 모습은 인간을 닮았다. 회양목 군락지를 지나자 급경사의 계단이 나타난다. 다리가 아파 쉬엄쉬엄 발걸음을 떼며 가까스로 베틀바위 전망대에 올랐다. 전망대에 서자마자 눈앞에 하늘을 찌를 듯이 삐죽 솟은 거대한 기암절벽이 펼쳐진다. 수직바위가 교대로 나타나며 풍경 하나하나가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거대한 암봉으로 이루어진 베틀바위(550m)가 눈에 띤다. 창검처럼 솟아 압도적이면서 기이한 경관을 보여주는 두타산 최고의 전망이며 베틀바위 경관의 규모는 거대하고 입체적이라 장엄하기까지 하다. 높은 바위와 수직 벼랑이 기막힌 경관을 만들어내고 무릉도원이 발아래 깔려 있다. 베틀바위의 비경을 보는 순간 탄성의 느낌표가 절로 찍혔다. 탄성의 울림은 오랫동안 숨어있던 이곳에 왔다는 설렘이면서 경이로운 자연 앞에서 왜소해지는 겸허함이었다. 베틀바위에는 하늘나라 질서를 위반한 선녀가 벌을 받고 내려와 무릉계곡에서 삼베 세필을 짜고 잘못을 뉘우친 뒤 승천했다는 전설이 있다. 선녀가 비단을 짜기 위해 어마어마한 바위를 베틀로 사용했나 보다. 베틀바위 전망대에서 절경을 두루두루 감상하고 비탈길로 베틀바위 정상으로 향하는데 왼쪽으로 두타산이 빚어내는 비경이 이어진다. 바위틈에 자라는 나무들을 보며 자연의 경이로움을 찬양했다. 전망대에서 200m를 오르자 키다리바위가 우뚝 서있는데 「미륵바위」다. 깊은 골을 굽어보는 베틀바위 정상에 일부러 세운 듯이 서있는 미륵바위는 등을 돌린 미륵의 형상을 쏙 빼다 닮았다. 미륵바위를 배경으로 셀카봉을 수차례나 눌렀다.


거북바위에서 부지런함을 배우다

베틀바위에서 두타산성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두타산성길은 산허리를 휘감으며 S자형으로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오솔길에는 널따란 돌이 깔려있어 걷기에 편안했다. 쌓인 낙엽을 밟으며 걸을 때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 몸에 열기를 식혀준다. 높은 나무를 휘감은 굵은 다래넝쿨이 숲길 가운데로 드리워져 있다. 넝쿨을 두 손으로 꽉 잡고 공중에 매달려 타잔처럼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하며 잠시나마 재밌는 시간을 가졌다. 수도골로 내려가자 「거북바위」와 「산성12폭포」가 보인다. 거북이 모습을 하고 있는 바위가 계곡을 굽어보고 있는 형상에 생동감이 넘친다. 거북바위를 보고 있노라니 느림보 거북이와 잽싼 토끼의 경주가 떠오른다. 토끼의 목표는 거북이를 이기는 것이고, 거북이 목표는 골인점에 도달하는 것이다. 앞서 달리던 토끼가 뒤돌아보니 거북이 모습이 보이질 않자 자만심에 빠져 낮잠 자다가 그만 거북이에게 지고만 얘기다. 목표의 차이는 열등한 재능의 한계를 뛰어넘어 강렬한 자신감으로 엄청난 결과를 초래한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거북이 바위 위쪽에 산성 12폭포가 자리하고 있다. 12개의 폭포가 연이어 쏟아져 내리는 폭포 자태를 이름 붙인 것이다. 가파른 암반을 타고 떨어지던 폭포의 옥빛 물줄기가 추위를 견뎌내지 못하고 꽝꽝 얼어붙은 모습이 이채롭다.


백곰바위./사진=조성민 


백곰바위에서 참아내는 법을 다짐하다

산길을 내려오자 큰 바위들이 널 부러져 있는 「두타산성터」가 나온다. 두타산성은 신라 피자왕 23년(102년)에 북쪽능선의 험준한 산지와 깊은 계곡을 최대한으로 이용해 쌓은 포곡식 석성이다. 그 후 조선 태종 4년(1414년)에 삼척부사 김맹윤이 높이 1.5m 둘레 2.5km의 산성을 다시 쌓았고, 선조 25년(1592년) 임진왜란 때 많은 사람들이 이 산성으로 피난을 온 곳이다. 지금은 두타성의 자취는 없고 돌무더기만 남아있었다. 전망이 좋은 곳에 있는 커다란 바위에 뿌리를 뻗고 하늘을 향해 강인한 생명력을 과시하는 명품 소나무가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는 모습이 예뻤다. 소나무 옆에는 뒤에서 본 모습이 백곰의 형상을 닮은 「백곰바위」가 지키고 있다. 곰은 우리민족이 고대로부터 신성시한 동물이며 권력과 재물을 상징한다. 단군신화에 나오는 곰은 인내심이 강하다. 인간이 되기 위해 환웅이 주는 쑥과 마늘을 먹으며 햇빛을 보지 않고 동굴 속에서 3주간을 버텼다. 백곰바위에서 곰의 인내심을 배워야한다는 생각을 하고 이를 실천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용추폭포와 쌍폭포를 구경하다

두타산성터에서 무릉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은 돌이 많은 가파른 비탈길이라 발끝에 힘을 주고 조심스레 걸었다. 여러 차례 쉬면서 무릉계곡을 만나는 삼거리까지 내려왔다. 무릉계곡은 두타산과 청옥산을 배경으로 이루어진 곳으로 입구인 호암소부터 시작하여 상류에 있는 용추폭포까지 4km의 화강암계곡을 일컫는다. 수많은 기암괴석과 절경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는 무릉계곡은 태고와 신비와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왼쪽 길로 무릉계곡을 따라 산 위쪽으로 1km를 걸어 올라가 「용추폭포」를 바라볼 수 있는 철다리 한가운데에 섰다. 용추폭포는 청옥산에서 발원한 물이 흘러내리며 3단의 단애에 세 개의 폭포를 만든 삼단폭포이다. 상·중단 폭포는 항아리 모양이고, 하단폭포는 둘레가 30m의 검은 웅덩이를 이룬다. 조선시대 때 가뭄이 들면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냈단다. 하단 오른쪽 암벽에 정조 21년(1797년) 12월에 용의 덕을 바라보면서 삼척부사 유현준(조선 후기의 문장가이자 서화가)의 글씨로 용추(龍湫)를 석각했다는 안내문이다. 용추폭포를 보고 뒤로 돌아 고개를 젖혀 높은 산봉우리의 정상을 올려다보자, 발가락 모양이 뚜렷한 「발바닥바위」가 눈에 들어온다. 발바닥은 사업 성공을 상징한다는 안내문을 읽었다. 용추폭포 밑에 있는 「쌍폭포」로 갔다. 두타산과 청옥산에서 내린 물줄기가 쌍폭에서 하나가 되는데, 두 개 물줄기의 발원지가 다른 것이 특색이다. 가운데가 움푹 패인 바위의 양쪽에서 두 개의 폭포가 물을 쏟아낸다. 왼쪽 폭포는 두타산 정상과 박달계곡에서 발원한 물이 층층이 쌓인 계단을 타고 선녀의 모시처럼 투명하게 흐르고, 오른쪽 폭포는 청옥산과 고적대에서 발원한 물이 용추폭포를 거쳐 떨어진다. 쌍폭포 아래엔 절벽 사이의 아담한 못인 「선녀탕」이 있는데, 쪼개진 듯 갈라져 있는 큰 바위 사이로 계곡물이 흐른다. 선녀탕 옆으론 수직으로 늘어선 암석들의 조화가 병풍을 펼쳐놓은 모양의 「병풍바위」와 용맹스러운 장군의 얼굴을 닮은 「장군바위」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장군바위에서 한참을 내려오자 학들이 바위에서 둥지를 틀고 놀았다는 「학소대」가 보인다. 무릉계곡 능선과 계곡을 사이에 두고 양지쪽은 학소대, 음지쪽은 베틀바위가 자리하고 있다. 여름철에는 상류의 동굴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학소대를 지나 암반위로 물이 미끄러지듯 떨어져 볼거리를 제공한다.

두타산 산행중인 조성민 교수/사진=조성민

무릉반석에서 신선이 되다

학소대에서 삼화사를 지나 무릉반석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금란정」에 도착했다. 「무릉반석」은 1,500평의 넓은 크기로 하나의 바위덩어리다. 이 반석에는 천여 명의 사람들이 앉을 수 있는 하얀 너럭바위로 석장암이라고도 한다. 두타산과 청옥산의 깊은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시리고 맑은 계류가 오랜 세월 갈고 닦아 넓고 반듯한 반석을 만들었다. 겨울인데도 무릉반석 위로 맑은 계류가 흘러내리고, 깎아지른 암벽이 소나무와 어울린 절경이 일품이고, 드넓은 바위바닥과 바위 사이를 흘러서 모인 연못의 광경에 선경에 도달할 것 같은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금란정 난간에 기대어 무릉반석을 바라보며 일상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걸림 없는 한 줄기 바람이 되어 훨훨 날고 싶어 다음과 같은 상념에 잠겼다. “골 깊은 계곡과 기암괴석들이 솔향기 섞인 절경을 연출하여 황홀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앉을 수 있는 흰 너럭바위가 사계절의 수채화를 그려내고, 심곡의 맑은 계류가 장구한 세월 갈고 닦아 널따란 암반을 만들어놓았으니, 구절초 한 잔 마시며 일상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싶다. 얼기설기 엮인 삶을 한 줄기 바람이 풀어주길 바라며 너울거리며 걷다가 속으로 닦는 마음 한구석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일어나 터벅터벅 걸으며 무릉계곡의 시작점인 「호암소」는 호랑이가 건너뛰다 빠져 죽은 소(沼)라는 전설을 떠올렸다. 옛날 도술에 능한 고승이 이곳을 지날 때 호랑이가 해치려 하자 신통력을 발휘하여 소를 훌쩍 건너뛰었다고 한다. 그러자 호랑이도 뒤따라 건너뛰다가 소에 빠져 죽었단다. 그 후 삼척부사 김효원이 이 소를 호암소라 불렀다고 한다.


신선교로 원점 회귀하다

아침에 시작하여 오후 3시까지 6시간 반 동안 등산을 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낸 하루였다. 광활한 두타산과 청옥산이 한눈에 들어올 땐 못할 일이 없을 듯 싶었고, 산줄기 따라 산봉우리에 발을 내딛는 순간엔 성취욕으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 아늑한 분위기를 만들어낸 금강송들과 수십 년간 베일에 싸여 있다가 요염하게 속살을 드러내 기암 절경으로 탄성의 느낌표를 찍게 한 베틀바위 그리고 골 깊은 계곡과 화강암, 청량한 물과 폭포들이 아름드리 숲과 어울려 절경을 이룬 무릉계곡이 준 푸짐한 자연의 선물을 가득 품은 시간이었다. 신선교-베틀바위산성길-금강송 군락지-숯가마터-회양목 군락지-베틀바위전망대-베틀바위정상(미륵바위)-수도골-거북바위-산성12폭포-백곰바위-용추폭포-쌍폭포-선녀탕-병풍바위-장군바위-학소대-삼화사-무릉반석-금란정-신선교 코스의 등산을 즐겁고 유쾌하게 끝냈다는 기쁨이 충만하여 두타산을 여러 차례 뒤돌아보았다.


저작권자 © NEWS REPORT(www.news-report.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0




상호명 : 뉴스리포트 NEWS REPORT 사업자번호 : 728-34-00398  발행인 : 정혜미 편집인 : 정연우 청소년보호책임자: 정혜미

주소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15-16(국회대로 66길 23) 산정빌딩 7층 ㅣ 이메일 : korea_newsreport@naver.com

대표전화 : 02-761-5501 ㅣ 팩스 : 02-6004-5930 ㅣ 등록번호 : 서울, 아 05234 등록일 : 2018.06.04

뉴스리포트의 모든 콘텐츠(영상, 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며, 무단 전재와 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

COPYRIGHT © 2018 뉴스리포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