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초대석] 조성민 여행작가 '팔봉산 산행기', 대륙문인협회 이사장

 

팔봉산 풍경./사진=조성민 


아침에 서울에서 출발하여 8시 30분에 팔봉산 들머리 입구인 팔봉교에 도착했다. 능선을 올려다보니 여덟 개의 봉우리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팔봉산은 작은 산이지만 등산객을 두 번 놀라게 한단다. 높이가 낮은 산이지만 기암괴석과 비경을 갖춘 산세가 아름다워 놀라고, 산에 오르다보면 암릉이 줄지어있어 산행이 어려워 놀란다고 한다. 팔봉산은 여덟 봉우리마다 모두 바위로 되어 있어 역동적이고 스릴이 넘치며, 작고 아담하게 느껴지는 암봉 사이사이로 등산로가 난데다 오르내림이 많은 산세를 지녔다. 오르는 길은 들머리에서 1봉으로 가는 길 뿐이라 등산로는 단출하고, 일방통행이라 올랐다가 내려오고 다시 다음 봉우리로 오르기를 반복하는 재미가 있고. 산세가 아담하면서도 암릉과 암벽 사이로 가파른 오르막과 내리막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산길이 있어 산행의 묘미를 한껏 느낄 수 있는 산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암릉을 타고 1봉을 오르다

 등산로 입구에 「100대 명산 팔봉산」이라는 아치가 걸린 매표소를 지나 조그만 철다리를 건너 숲속으로 들어섰다. 신선한 공기와 순하기 그지없는 산길이라 마음이 저절로 비워지고 맑아지기 시작한다. 나뭇잎 사이를 뚫고 흩어져 내리는 햇살이 잠꾸러기 요정을 깨우려는지 눈부시게 빛난다. 산길 초반부터 나타나는 깔딱고개에 지그재그로 된 계단이 있어 험한 길이지만 걸을만했다. 능선에 올라서자 수월한 길과 험한 암릉을 가리키는 삼거리가 나온다. 오른쪽 암릉길로 가기 위해 장갑을 끼고 철제안전봉과 발 디딤판에 의지해 오르기 시작했다. 턱이 진 급경사 바위 앞에 등산객들이 차례를 기다리며 줄지어 서있다. 차례가 되어 두 팔을 뻗어 튀어나온 바위 끝을 잡고 발에 탄력을 주며 뛰어올랐다. 길이 험한 암릉 구간을 지나 첫 번째 봉우리에 올라서자 마을이 보이는 경치가 일품이다. 1봉에서 사방으로 펼쳐지는 풍광을 둘러보고 2봉으로 가기 위해 좁고 가파른 암릉을 내려갔다. 암릉 타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최고의 코스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상인 2봉에 서다

 1봉에서 내려와 암벽 길로 팔봉산 정상인 2봉(327m)으로 갔다. 2봉 산꼭대기를 3부인당 건물이 차지하고 있다. 3부인당은 400여 년 전 조선 선조 때부터 팔봉산 주변 백성들이 마을의 평안을 빌고 풍년을 기원하며 액운을 예방하는 당굿을 해오던 곳인데, 매년 3월 보름과 9월 보름에 굿을 하고 제사를 올렸다. 3부인은 시어머니 이씨, 딸 김씨, 며느리 홍씨 부인의 신(神)을 의미한다. 이씨 부인은 인자하고 김씨 부인은 마음이 더욱 인자하고 홍씨 부인은 너그럽지 못했다. 당굿을 할 때 이씨가 강신(降神)하면 풍년이 들고, 김씨가 강신하면 대풍이 드는데 홍씨가 강신하면 흉년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굿을 할 때마다 김씨 부인 신이 내려주기를 바랐단다. 3부인당 맞은편의 뷰포인트(view point)인 전망대로 가서 발아래 펼쳐 보이는 대자연의 속살을 사진에 담고 거친 모습의 암봉인 3봉을 바라보았다. 전망대 밑으로 난 비탈길로 내려가는데 높은 산에서나 볼 수 있는 이곳의 암릉 구간에 매력이 넘친다.


홍천강이 펼쳐 보이는 3봉

 2봉에서 내려와 철 계단 2개를 지나 3봉에 올랐다. 3봉은 하늘로 치솟을 듯 우뚝 솟은 암벽을 이루고 있어 언제라도 무너질 것만 같이 위태로워 보이는 바위들로 쌓여있었다. 3봉에 서자 유려한 곡선으로 산을 휘감고 유유히 흐르는 홍천강이 운치를 더한다. 굽이굽이 흐르는 홍천강을 끼고 겹겹이 이어진 팔봉산의 봉우리들은 수반 위의 아름다운 수석들처럼 품격이 있어 보인다. 홍천강의 3면을 품고 있는 팔봉산 능선이 병풍의 그림처럼 활짝 펼쳐진다. 울긋불긋한 단풍이 어느새 온 산을 채워 가을을 한껏 장식하고 있었다. 홍천강의 전망을 시원스레 펼치는 3봉이 일정에 쫓기는 몸에 안식과 여유로움을 준다. 이 봉우리에서 초연히 시간을 지키고 있는 나무들과 입맞춤하며 일상의 무력감에서 벗어나 본다. 하늘의 뜻 거역하지 않고 주어진 굽잇길 마다하지 않고 쉼 없이 묵묵히 갈 길을 가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현명한 사람은 마음의 가르침을 따르며 마음이 머리를 이기려면 가면을 벗어야 마음의 문을 열 수 있다는 생각도 해본다. 어려움과 기쁨이 공존하는 이 산에서 몸과 마음을 다독이며 아낌없이 주는 햇살과 향기로운 나뭇잎들의 마음 그리고 바람의 노랫소리도 들어보는 소중한 시간을 가져보려고 했다.


팔봉산에서 본 홍천강./사진=-조성민 


해산굴을 드러누워 통과하다

3봉에서 4봉으로 가기 위해 철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자 두 갈래 길이 나온다. 구름다리를 건너 쉽게 가는 길과 계단을 내려가 해산굴을 빠져나가는 힘든 길이다. 망설이다가 계단으로 내려가 수직 바위를 타고 오르자 눈앞에 경사지고 비좁은 삼각형 모양의 바위 통로가 앞을 가로막는다. 4봉은 봉우리 자체보다 오르는 길에 난 해산굴을 통과하는 과정이 몹시 어렵지만 호기심과 흥미를 불러일으키므로 팔봉산 등산의 하이라이트란다. 해산굴은 좁은 바위 틈새를 통과하는 어려움이 출산의 고통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사람 하나 간신히 들락날락할 정도로 비좁기 때문에 밑에서 받쳐주고 위에서 끌어주지 않으면 산행초보자는 빠져나오기 어려운 곳으로 바위틈을 통과할 때마다 10년 젊어진다고 하여 장수굴이라고도 한다. 앞에서 통과하려는 사람이 배낭을 벗어 바위굴 밖으로 올린 다음에 노련하게 오른다. 뚱뚱한 사람은 빠져나가기 어렵고 날씬한 몸매라야 빠져나갈 수 있으므로 이곳을 빠져나가는 사람은 건강할 수밖에 없다는 농담을 한다. 심호흡을 한 후에 굴속을 비집고 올라가 배낭을 밖으로 올리자 위에서 어느 분이 받아준다. 굴 입구에서 엎드려 기어 올라가려고 시도했으나 그러질 못했다. 이번에는 바위에 드러누워 양쪽 발로 번갈아 암벽을 밀면서 어깨를 좌우로 조금씩 비틀자 위쪽으로 몸이 조금씩 빠지기 시작한다. 마지막 굴을 빠지는 단계에서 힘쓰기가 어려웠는데 위에 있던 어느 분이 도와주어 간신히 빠져나왔다. 해산굴을 통과했다는 성취감에 앙증맞은 4봉표지석을 보자 즐거움이 배가되었다.  


5봉 바위에서 만추를 즐기다

좁고 가파르고 거친 암릉이지만 오르내리는 재미가 여간 쏠쏠한 것이 아니다. 철계단을 올라 5봉 표지석 앞에 앉아 만추의 절경이 물씬 묻어나는 먼 산을 둘러보았다. 첩첩의 산들이 만든 능선이 끝없이 펼쳐지며 수려한 경관이 마음을 쇠락하게 한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에서 내려다보이는 강물을 바라보며 가을을 노래해 보았다. 「가을바람이 세월의 어귀에서 소리 내며 낙엽을 하나둘 떨군다. 산을 누비며 빛으로 날아드는 새들이 근심을 덜어주고 무엇을 얻기 위해 또다시 하늘을 가로지르는 저들의 삶을 올려다보며 혼자가 아닌 저들과 낄낄거리며 날고 싶어 가슴에 만추를 그득 담는다. 녹 익은 단풍 물결로 수놓은 팔봉산은 때 묻지 않은 풍경으로 겸허함과 사랑을 알려주고 작은 고민도 덜어주는 가을산은 영원한 인생의 벗」이라는 시를 짓고 기지개를 켜며 일어서서 6봉으로 향했다.


저력을 보여주는 절벽 위의 노송

만추의 절경이 물씬 묻어나는 산길 따라 내려갈 때 추수를 끝낸 들녘의 풍경이 평화롭게 보인다. 6봉으로 가기 위해 커다란 바위 사이를 연결하는 구름다리로 지나갔다. 구름다리는 길게  패인 골을 지나는 수고를 덜어주고 운치를 더한다. 6봉에 올라 봉우리 주위를 둘러보자 민낯을 드러낸 소나무 가지들이 얽히고설켜 있다. 절벽 위에 고고하게 서있는 노송은 암릉의 아름다움을 더하는데, 바위 틈새로 파고들어 뿌리를 내린 모습은 생명에 대한 한없는 경외감을 뿜어내고 있다. 영겁의 세월 속에서 모진 풍파를 이겨내고 굳건히 서있는 노송의 저력에 신비스러움이 느껴진다. 노송 아래로 휘돌아 나가는 강물을 바라다보면 물결을 치고 솟아오른 강바람이 물 내음을 머금은 채 얼굴을 어루만져 주는 것 같은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았다. 소나무는 정숙하고 엄숙하며 과묵하고 고결하며 기교가 없고 고요하며 변함이 없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는 생각을 했다.

 

7봉에서 지나온 봉우리들을 바라보다

급경사에 계단이 없어 손잡이와 발판을 이용해 암벽을 타고 올랐다. 암벽을 올라갈수록 고소공포증에 가슴이 벌렁거렸지만 한편으로는 기분이 좋았다. 7봉에 올라 지나온 여섯 봉우리를 뒤돌아보았다. 각 봉우리들은 그리 멀지 않은 거리이지만, 봉우리들을 넘나드는 암릉길은 철계단이 설치되어 있을 정도로 산의 크기에 비해 매우 험준하고 가팔랐다. 암릉 구간은 아슬아슬 하지만 날카로운 봉우리와 경치가 비례해 감탄사를 절로 유발케 하는 예쁜 산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가파른 암릉길로 이어지는 산봉우리를 오를 때마다 사방으로 보이는 수려한 조망이 눈을 호강시키며 즐거움을 듬뿍 안겨주었다. 봉우리마다 내리막길에서는 숨을 고르고 오르막길에서는 속도를 조절하며 여기까지 왔다. 팔봉산은 오르막내리막이 반복되어 기막힌 풍경뿐만이 아니라 암봉에 올랐을 때의 성취감도 함께 선사한다. 암봉을 여러 차례 넘어 넘어오면서 실패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포기라는 생각을 하며 마지막 봉우리를 향했다.  


팔봉산에서 조성민 교수./사진=조성민 


직벽으로 우뚝 솟은 8봉

 8봉으로 오르는 길에 “팔봉산 등산로 코스 중 8봉은 가장 험하고 안전사고가 자주 일어나는 곳이니 등산에 풍부한 경험이나 체력이 없거나 부녀자·노약자는 현 시점에서 하산을 권유”하는 안내판이 있고, 그 밑에는 하산 코스 안내판이 보인다. 가장 험한 코스라 그런지 몇몇 사람들은 힘들다며 8봉을 우회하여 산 밑으로 내려간다. 8봉으로 오르는 길로 들어서서 수직에 가까운 철사다리를 타고 오를 때 다리가 후들거려 뒤로 넘어질까봐 두 팔에 힘을 주었다. 철사다리를 올라 두근거리는 가슴을 달래기 위해 바위에 기대앉아 물을 마셨다. 싸늘한 바람이 얼굴을 시원하게 해주어 안정감을 되찾았다. 이어 나타나는 암벽 길에서는 철제 손잡이를 부여잡고 발 디딤판을 디디고 숨을 몰아쉬며 한 발짝씩 엉금엉금 기어올라 간신히 마지막 봉우리인 8봉에 섰다. 홍천강이 휘잡고 돌아가는 끝 봉우리가 8봉이다. 하늘을 찌를 듯 솟구쳐 있는 봉우리와 단애를 이루고 있는 기암절벽은 굽이치는 물줄기와 조화를 이뤄 한 폭의 풍경화를 그려낸다. 대자연의 조화가 경이롭고 신비롭다는 생각과 여덟 봉우리 종주를 끝냈다는 생각에 뿌듯한 기분이 들어 저절로 콧노래가 나왔다. 8봉을 뒤로하고 하산하기 시작하자 급전직하의 아찔한 길이 길게 이어진다. 어깨넓이의 안전봉이 길 양옆에 설치되어 있고 길 가운데는 철 발판이 설치되어 양팔에 힘을 주면서 미끄럼을 타듯이 수직에 가까운 바탈길을 30분 동안 내려오자 홍천강이 반긴다. 


홍천강변 따라 원점 회귀하다

햇빛에 반사되어 아롱지는 홍천강물이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홍천강은 여덟 봉우리의 비경과 기암괴석을 자랑하는 팔봉산을 안고 흐른다. 길이 143km의 홍천강은 물과 백사장이 어우러져 팔봉산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조연이다. 산을 내려와 데크로 깔려있는 홍천강변길로 들어서자 커다란 바위가 걸려있어 머리를 숙이고 지나가야 했다. 등산을 마쳤다고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하라는 메시지를 던진다는 생각을 했다. 조금 걸어가자 밧줄로 연결된 흔들다리가 나타나는 데 발판이 투명해 강바닥이 다 보인다. 바람 부는 갈대가 춤추는 강변길 따라 걷을 때, 비단결처럼 부드럽고 솜털을 간질이는 듯 물에 감기는 강바람이 갈대를 춤추게 한다. 갈대숲이 있는 여울목에는 센 물살이 좔좔 소리를 내며 발걸음에 리듬을 타게 한다. 갈대숲을 지나 아침에 출발했던 등산로 입구로 원점회귀를 했다. 몸은 고되고 힘들었지만 마음은 부자가 되어 홍천강과 어우러진 팔봉산을 가슴 가득히 담고 5시간의 등산을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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