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초대석]조성민 여행작가/한양대 로스쿨 명예교수 '월악산 산행기'

월악산 가을빛./사진=조성민


월악산의 가을빛깔을 느끼다

월악산을 오르기 위해 아침에 수안보상록호텔에서 택시로 제천시 덕산면 수산리 마을 입구에서 내려 멀리서 산을 쳐다보면서 가을빛에 젖어들었다. 월악산은 충북 충주시 제천시 단양군과 경북 문경시에 걸쳐 있는 산이다. 달이 뜨면 정상인 영봉에 걸친다하여 월악산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설악산 치악산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악산 중 하나로 산세가 험해 오르기 힘든 만큼 오르는 내내 산이 주는 아름다움과 성취는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한다. 월악산은 북쪽으로 남한강을 끼고 남쪽으로 험준한 백두대간을 두른 중원지역은 천혜의 지형 때문에 예로부터 이 산을 장악하는 자가 한반도를 지배했다는 것이 역사적인 교훈이다. 바위의 위용이 웅장한 봉우리가 많은 월악산에도 어느새 단풍이 들어 온 산의 나뭇잎이 붉게 물든 만산홍엽의 비경을 보여준다. 산세가 험준하고 기암이 어우러져 예로부터 신령스럽게 여겨지는 산 위에도 가을이 널부러진 높은 산을 쳐다보며 걷는 산촌 길에 부는 가을바람이 청량감을 더해준다. 누렇게 익은 벼들이 베어져 햇빛을 쪼이기 위해 논두렁과 논바닥에 가지런히 놓여있고, 마을 뒷산에는 토종 벌통이 겨울을 준비하고 있다. 길옆 뒷마당의 감나무에는 홍시가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만 같고 사과밭에는 아직 따지 않은 사과들이 주렁주렁 달려있어 이 가을을 풍성하게 한다. 가을빛이 살포시 내려앉은 평화로운 산촌을 지나며 즐거운 산행을 시작한다.


보덕암 등산코스를 타다

마을입구에서 산으로 연결되는 길을 따라 걸어가자 보덕암 주차장이 나온다. 오늘 월악산 산행은 풍광이 좋다는 보덕암 코스를 택했다. 보덕암-하봉-중봉-영봉-신륵사삼거리-송계삼거리-마애불-덕주사로 이어지는 코스이다. 들머리에서 산행준비를 하고 마음을 다잡았다. 보덕암 왼편으로 난 영봉 탐방로를 따라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이 길을 통해 영봉으로 오르려면 험한 비탈을 넘고 또 넘어야 하므로 오르막길을 쉬엄쉬엄 걸었다. 앞만 보고 부지런히 등산로를 따라갈 때 바위 옆에 있던 커다란 소나무가 지난 태풍에 뿌리 채 뽑혀 다른 나무 위에 포개져 엎드려있다. 쓰러진 소나무를 안쓰럽게 생각하고 있을 때, “내가 넘어진 건 강풍 때문이 아니라 땅속으로 뿌리를 더 깊게 내리지 못했기 때문이에요”라며 남을 탓하지 않겠다는 속삭임이 들려왔다.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며 걸어가는데 너럭바위에 있던 다람쥐가 눈을 마주치며 “웃음은 만복의 근원입니다”라는 듯이 입을 쫑긋거린다. 몸에 땀이 배이기 시작하는데 숲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며 “지나간 일을 되뇌이지 말고 이 산에서 다 날려버리세요”하는 암시를 준다. 한여름에 무성한 잎을 키운 사리나무들이 “우리들은 보잘 것 없지만 살아있다는 자체만으로도 환희를 느낍니다. 무엇보다 건강이 최곱니다”라고 속삭인다. 숲 사이로 햇빛이 스며들 때 회백색의 고사목이 “후회 없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현재 하는 일에 몰두해야 합니다”라는 메시지를 던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길을 오를 때 자연이 주는 많은 깨달음에 두 손을 모아 감사한 마음을 하늘에 올렸다.


월악산과 마을./사진=조성민


하봉에서 충주호를 내려다보다

등산로를 따라 한참 오르며 갈증을 없애기 위해 물을 많이 마시고 쉬기를 여러 번 반복하자, 눈앞에 수직암벽의 봉우리가 나타난다. 철 계단을 지난 후에 수평으로 난 산길이 나타나더니 다시 나선형의 철 계단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드디어 등산로 나들목과 정상의 중간지점에 있는 하봉전망대에 올랐다. 이곳에 오르자 전망이 탁 트여 마음이 호쾌해진다. 청명한 날씨에 쏟아져 내리는 햇살이 따가웠지만 서늘한 가을바람이 몸의 열기를 식혀준다. 산 밑보다 산위의 단풍이 더 짙게 물들어 울긋불긋한 옷으로 산을 치장한 4계절의 변화가 신비스럽게 느껴졌다. 하봉에서는 월악산의 그림자를 담고 있는 충주호가 한눈에 들어왔다. 파란하늘을 이고 쪽빛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충주호 수면이 평화로운 한 폭의 풍경화를 그려낸다. 충주호와 어우러진 월악산의 산경이 멋스러워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충주호의 풍경은 압권이었다. 월악산 산행의 묘미는 충주호와 어우러진 절경을 감상하는 데 있단다. 충주호 물결을 시야 가득히 관망할 수 있고, 사방으로 펼쳐진 장엄한 산맥의 파노라마를 가득히 품는다. 셀카봉으로 이 봉우리와 잘 어우러지는 충주호를 배경으로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충주호는 1985년에 저수면적 97.7km²의 충주댐이 건설되면서 만들어진 인공호수이다. 충주호는 충주시 종민동, 제천시 청풍면, 단양군 도담삼봉 일대까지 뻗쳐있다. 충주댐 저수면적의 30%는 충주시, 59%는 제천시, 11%는 담양군에 속해 있다. 그래서인지 하나의 호수를 두고 충주시에서는 충주호, 제천시에서는 청풍호, 단양군에서는 단양호라 부르고 있는데 공식명칭은 충주호이다. 3개 자치단체는 공원개발, 유람선운행, 케이블카, 수상레포츠, 셔틀버스 등의 관광자원으로 호수를 여러 각도에서 활용하고 있다.


월악산과 중봉./사진=조성민


구름다리를 건너 중봉으로 가다

하봉에서 파랗게 보이는 충주호의 자연미술관을 실컷 구경한 후에 중봉으로 향했다. 내리막오르막이 계속되는 산길이지만 월악산이 높고 경사도가 매우 가팔라 걷는 동안에 좌우 어느 쪽을 보아도 광활하게 펼쳐지는 풍광에 취해 힘든 줄을 몰았다. 가다가 뒤돌아보면 수려한 암봉 능선 아래도 펼쳐지는 호수와 어우러진 단풍 길이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중봉으로 가는 내내 눈이 호강을 하여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하봉을 중간쯤 내려오자 중봉으로 가는 길의 절벽 사이에 놓인 구름다리와 중봉 모습이 어울려 비경을 연출한다. 절경의 모습에 한동안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내리막과 오르막으로 된 협곡을 이어주는 구름다리는 편리할 뿐만 아니라 시각적으로도 보기 좋고 미적으로도 아름다웠다. 구름다리를 건너 한참 걸어 중봉으로 오르기 직전의 계단 옆의 돌기둥 사이에 걸린 바위가 석문을 만들어 볼거리를 만들어주는데, 금방이라도 굴러 떨어질 것만 같아 아슬아슬하게 보인다. 중봉에 오르자 하봉을 바라보는 경치가 일품이었다. 넓은 데크가 깔려있는 전망대에는 망원경이 설치되어 있었고 비상용 휴대폰 충전기가 마련되어 있는 것이 이채로웠다.

월악산에서 조성민 교수./사진=조성민


거대한 비위봉우리인 영봉에 서다

중봉을 넘어 비탈진 산길을 힘들게 걷고 나자 수직에 가까운 철 계단이 나타난다. 마지막 단계를 오르며 밑을 내려다보니 아찔하게 보이는 광경에 다리가 후들거리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난간을 잡고서서 똑바로 걷지 못하고 두 손으로 계단을 집고 호랑이 걸음으로 엉금엉금 기어오를 때 식은땀이 났다. 드디어 월악산 정상인 영봉에 올랐다. 둥그런 바위 돌에 새겨진 영봉(1,097m) 글자에 마음이 벅차오르며 감격스러웠다. 월악산의 주봉인 영봉의 암벽 높이는 150m 둘레 4km인 거대한 암벽덩어리이다. 영봉을 중심으로 깎아지른 듯한 산줄기가 길게 뻗어있다. 하늘을 향해 솟구친 기암이 장엄하다. 정상에서 굽어보는 조망은 기대이상으로 엄청났다. 주변조망이 압권으로 영봉 사방으로 펼쳐진 모습은 말 그대로 한눈에 바라볼 수 없을 정도로 아득하게 멀고 넓어서 끝이 없는 일망무제였다. 정상 맞은편에 제법 너른 곳이 있고 벤치가 놓여있다. 많은 등산객들이 싸가지고 온 음식으로 점심을 맛있게 들고 있다. 배낭에서 바나나 두 개를 꺼내 먹었다. 차를 마시며 발밑을 내려다보니 바위절벽에 늘어선 푸른 소나무의 기개가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다. 기품이 느껴지는 소나무는 높은 봉우리에 올라오느라 고단한 몸에 안식을 가져다주었다. 소나무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마음에 평안이 찾아왔다. 시시각각 구름마저 달라지는 풍광에 잠시나마 눈을 뗄 수 없는 황홀경에 취했다. 땀 흘리며 다리 아프게 오른 정상에서 바라보는 멋진 산의 경치는 진통 뒤에 뒤따르는 세상의 이치가 산을 지키는 것과 같아 마음에 이는 꽃향기가 더 짙게 느껴졌다. 영봉에서 한참 동안 사방을 조망하고 하산하기 위해 배낭을 다시 멨다.


숲에서 낙엽 비를 맞다

영봉에서 신륵사 삼거리-송계삼거리로 쪽으로 하산하기 시작했다. 영봉에서 하산하는 길도 꽤 가팔랐다. 경사가 심한 계단을 내려가면서 월악산의 가을빛깔을 감상하는 재미에 흠뻑 빠져 거북이걸음을 걸었다. 길가에 핀 함박 웃는 야생화가 가을을 찬미하는 노래를 부르는 것만 같아 가파른 산길에서 힐링의 시간을 가졌다. 한참 내리막길을 지나 신륵사 삼거리에서 송계삼거리 방향으로 우회전을 하자 오르막길이다. 산길을 걸을 때 땅위로 드러난 나무뿌리의 모습에서 힘찬 생명력이 느껴져 지쳤던 발걸음에 원기가 다시 솟아난다. 송계삼거리에서 덕주사로 가기위해 오르막을 오르자 헬기장이 나타난다. 헬기장에서 영봉을 바라보자 정상에서 볼 수 없었던 바위봉우리가 거대하게 보여 절경을 이룬다. 다시 수많은 급경사 계단 길을 내려와 마애불 근처 바위에 걸터앉아 쉬고 있는데 갑자기 바람이 불어와 낙엽이 “쉬-익 쉬-익” 하는소리로 머리 위로 떨어지며 「낙엽 비」를 만든다. 우연찮게 낙엽 비를 맞게 되어 이 산에서 가을을 흠뻑 느낄 수 있었다. 낙엽 비로 숲길에 쌓인 낙엽을 밟으며 가을은 감성의 계절이라는 것이 새삼스럽다. 낙엽 비가 생활에 쫓겨 무뎌지고 닫힌 감성의 빗장을 열어 메마른 감정을 촉촉이 적셔주는 것을 실감했다.

월악산에서 본 충주호./사진=조성민

마애불을 보고 감로수를 마시다


이정표를 따라 마애불을 찾아갔다. 마애불은 거대한 암벽에 조각된 13m 높이의 불상이다. 마애불의 전설에 의하면 경순왕이 왕건에게 나라를 건네자 (경순왕 9년 : 935년) 마의태자와 동생 덕주공주 일행이 신라의 국권 회복을 위해 병사를 양성하고자 금강산으로 가던 중 문경의 하늘재에 이르러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그날 밤 왕자는 관음보살을 만나는 신기한 꿈을 꾸었는데, “이곳에서 서쪽으로 고개를 넘으면 서천에 이르는 큰 터가 있으니, 그곳에 절을 지어 석불을 세우고 북두칠성이 마주보이는 자리의 영봉을 골라 마애불을 조성하고 억조창생에게 자비를 베풀라”고 했다. 다음 날 서쪽 고개를 넘은 마의태자와 덕주공주 일행은 그곳에 석불을 세우고 북두칠성이 마주 보이는 최고봉 아래에 마애불을 조성했다는 전설이다. 마애불을 보고난 후에 왼쪽에 서있는 마애불과 같은 크기의 소나무를 지나 약수터로 갔다. 마애불 옆 삼각형 모양의 바위 아래 깊은 곳 석벽에서 감로수가 흘러나온다. 공간이 좁아 엎드려서 바가지에 감로수를 떠 마시니 감미로운 맛이다. 지갑을 꺼내 감사함을 표하고 가던 길을 다시 갔다.


덕주골에서 월악산 산행을 마치다

이번 산행의 날머리인 덕주사에 도착했다. 덕주사는 신라 진평왕 9년(586년)에 월악사라는 이름으로 창건되었는데, 신라가 멸망한 후 경순왕의 자녀인 마의태자와 덕주공주가 불교에 입문하면서 망국의 한을 달래기 위해 마애블을 조성한 후 덕주사로 개칭하였다고 한다. 덕주골을 따라 내려오자 학소대가 눈에 띤다. 학소대는 송계8경(팔랑소-1경, 와룡대-2경, 망폭대-3경, 자연대-4경, 수경대-5경, 학소대-6경, 월광폭포-7경, 영봉-8경) 중 하나이다. 학소대는 송계계곡물이 흘러내리면서 물이 휘감아 도는 곳에 있는 기암이다. 이곳 주위에 덕주산성이 있는데, 덕주산성의 동문(덕주루) 옆에 자리하고 있다. 예로부터 이곳에 학이 많아 학소대라고 불렀다고 한다. 학소대를 보고 덕주교를 건너자 수경대가 나타난다. 수경대는 신라시대부터 제사를 지냈던 곳이다. 직사각형의 제법 너른 반석이 있고, 반석 앞부분 측면에 한자로 수경대(水鏡臺)라고 새겨진 글씨가 선명하게 보였다. 암반 옆에는 소가 있는데 물이 깨끗하고 맑아보였다. 덕주골을 걸어 나와 월악산 산행을 잘 마쳤다는 생각에 행복한 마음으로 가득 찼다.


글/조성민 한양대 로스쿨 명예교수, 대륙문인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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