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초대석] 아태문인협회 조성민 여행작가, 장흥 천관산 산행기


천관산 구룡봉./사진=조성민


천관산에 관한 얘기를 듣다

아침에 천관산도립공원 주차장에서 천관산을 수차례 올랐다는 등반가를 만나 설명을 듣는 행운을 누렸다. 천관산은 부드러운 능선과 그 위로 늘어선 수십 개의 기암괴석이 주옥을 장식한 천자의 면류관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온 산이 바위로 이루어져 봉우리마다 하늘을 찌를 듯 솟아있어 다도해의 풍광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어 찾는 이들이 신선세계에 들어온 듯 감탄이 절로 나오는 곳이란다. 천관산은 호남 5대 명산(지리산·내장산·월출산·내변산·천관산) 중 하나로 호남의 대표적인 억새명산(5만평)이라는 말이 호기심을 더욱 부추긴다.천관산은 동쪽 연대봉과 서쪽 환희대 능선을 용마루 삼아 사방으로 비슷한 길이의 능선을 여러 가닥 뻗어 내린 형세를 갖춘 산이란다. 동쪽 능선 끝자락은 곧장 바다속으로 빠져들만큼 바다와 인접해 있어 천관산 능선 어디서든지 시원하게 펼쳐지는 다도해 풍경을 볼 수 있고, 능선 위의 기암괴석은 마치 자연조형물의 전시장을 방불케 하고, 봄철 동백꽃과 가을철 억새가 아름답기로 유명하단다. 산 밑에서는 급경사로 올라가고 산 정상 부근에서는 완만한 경사를 이룬단다. 천관산에 관한 자세한 얘기를 듣고 나니 등산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장천재에서 등산을 시작하다

등산로 입구에서 다리를 건너 올라가자 고즈넉한 옛날 기와집이 나타난다. 이 집은 호남 실학의 대표학자 위백규가 후학들을 가르치던 장천재이다. 문이 잠겨 있어 집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위백규는 장흥에서 태어나 평생 벼슬을 하지 않고 학문으로만 일생을 보낸 천문지리에 통달했다고 한다. 장천재 앞의 반달모양을 하고 있는 조그만 다리에 서자 키다리 소나무들이 위용을 뽐내는데, 그중에서도 오래된 소나무 한 그루가 약간 기울어진 상태로 서있는 것이 눈길을 끌었다. 장천재에서 등산을 시작해 능선에 솟은 봉우리들을 따라가 정상인 연대봉으로 가는 천관산 등산 3코스가 시작되는 지점이 바로 이곳이다.       


천관산 진죽봉./사진=조성민

 

가난한 마을을 먹여 살린 동백숲

장천재를 지나자 모과나무에 초록색을 띤 모과들이 보인다. 노랗게 익으면 향이 진하겠다는 생각을 하며 걷다 보니 동네사람들이 운동을 할 수 있는 체육공원이 나온다. 체육공원 왼쪽으로는 20만km² 넓이의 단일 수종으로는 국내 최대 규모의 동백군락지가 펼쳐져 있는 곳이다. 하늘을 뒤덮는 울창한 숲으로 햇빛 한 가닥 통과하기 어려울 만큼 동백나무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수십 년 전 동백나무는 이곳 주민들의 생계수단이었다. 마을사람들이 아름드리 동백나무로 숯을 고아 팔고, 동백나무를 땔감으로 사용하여 갱엿을 만들어 팔았으므로, 숯과 갱엿이 이곳 마을사람들의 주된 수입원이었다. 이곳의 동백나무는 대대로 가난한 산골사람들을 먹여 살린 고마운 존재였지만, 무분별한 벌채로 숲이 훼손되어버렸다. 이후 주민들이 창립한 천관산 동백나무보존회와 산림청이 앞장서 다시 짙푸른 숲이 되었는데, 숲을 이룬 동백나무의 수령은 80년 정도란다.     


금강굴을 지나 석선봉-대세봉-천주봉을 보다

비탈길을 한참 오르자 금강굴이 길을 막는다. 크지 않은 굴이지만 등산로 가운데 있어 여기를 통과해야 등산로로 이어진다. 굴속으로 들어가자 웅덩이에 물이 고여 있다. 굴 안이 서늘하여 앉아서 쉬며 피로를 풀었다. 이어 석선(石船)이 나타난다. 안내 표지판에 “큰 돌이 배같이 뱃전밖에 돌 가닥이 있어 사람의 팔뚝만한데 그 끝이 나누어져 다섯 손가락이 되었고 엄지손가락은 길지만 가운데가 작고 차례로 퍼지어 구부러져서 자세히 살펴보면 괴상스럽다.”고 적혀있었다. 이어 대세봉을 만났는데 큰 벽이 기둥처럼 서서 하늘을 찌르는 기세에 눌려 가히 우러러 보지 못하며 나는 새도 능히 오르지 못한다는 돌 봉우리다, 능선에 오르자 건너편에 천주봉이 보인다. 천주봉은 천주(하늘기둥)를 깎아 기둥으로 만들어 구름 속으로 꽂아 놓은 것 같은 형상을 하고 있었다. 


환희대가 천연수석전시장을 만들어내다

 다리품을 많이 판 후에 드디어 대장봉에 올랐다. 천관산도립공원 주차장에서 오르는 길과 구룡봉 쪽 능선이 합류하는 초원 같은 봉우리가 대장봉이고, 대장봉 정상의 석대조망처가 환희대이다. 환희대 조망이 곧 환희란 말을 실감케 한다. 여기에 오르는 사람들이 성취감과 기쁨을 맛보게 된다는 곳이 환희대이다. 대장봉은 책바위가 네모나게 깎아져 겹쳐있어 만권의 책이 쌓여있다는 것에서 이름 붙여졌고, 환희대는 기쁨이 가득한 곳으로 천관산의 기암괴석을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이다.

환희대에 서면 이름 그대로 눈앞에 기암괴석들이 장관을 이루고 그 밑으로는 부드러운 산등성이와 계곡을 뒤덮은 초록 숲이 암반들과 신비스럽게 어울리고 정상 쪽으로 억새능선이 길게 펼쳐있어 가슴이 미어지도록 아름답고 신비스런 모습을 자아낸다. 환희대에서 뻗어 내려간 능선 곳곳에 정교하게 조각된 작품들이 올라앉아 있어 거대한 천연수석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환희대는 특이한 기암들이 유난히 밀집한 곳이라 천연수석전시장의 백미라는 것이 산악인들의 공통된 평이다. 


천관산에서 조성민 교수./사진=조성민


헛된 것을 버리라는 진죽봉

환희대에서 구룡봉으로 향했다. 구룡봉은 산길이 끝나는 곳이라 갔다가 되돌아 나와야 한다. 삼거리의 표지판이 좌로는 구룡봉, 우로는 진죽봉을 가리킨다. 진죽봉을 오르려면 구룡봉을 다녀와서 다시 우회를 해야 하므로 아쉽지만 진죽봉에 서는 것을 포기하기로 했다. 그런데 구룡봉으로 가는 오솔길 옆에 진죽봉 안내판이 보여 기분이 너무 좋아 큰소리로 야호를 외쳤다. 진죽봉에 오르지는 못하지만 멀리서 바라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천만다행이었다. 계곡 건너편을 바라보자 대나무처럼 삐죽삐죽 솟아 있는 바위의 형상인 진죽봉이 요새처럼 우뚝 서있다. 진죽봉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갑자기 숙연해 지면서 다음과 같은 마음이 들었다. 일반인이 생각하는 좋은 사람이란 잘난 사람보다 따뜻한 사람을 좋아하고, 멋진 사람보다 다정한 사람을 좋아하며, 똑똑한 사람보다 친절한 사람을 좋아하고, 훌륭한 사람보다 편안한 사람을 좋아하며, 대단한 사람보다 마음을 읽어주는 사람을 좋아하고, 말을 잘하는 사람보다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을 좋아하며, 겉모습이 화려한 사람보다 마음이 고운 사람을 좋아하고, 모든 걸 다 갖춘 사람보다 부족해도 내편이 되어주는 사람을 좋아한다는 말을 떠올렸다. 진죽봉이 헛된 것을 버리고 마음 비우며 소박한 삶을 살라는 메시지를 강하게 던진다는 느낌을 받고, 두 손을 모아 경건한 마음으로 한참 동안 묵상을 했다. 

    

구룡봉을 기어오르다

구룡봉으로 가는 산자락은 키 작은 잡목으로 덮여있었다. 화창한 가을 날씨에 이름 모를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와 시원스레 울어대는 매미소리가 발걸음에 힘을 실어주었다. 환희대에서 남서쪽으로 600m 떨어진 구룡봉 앞에 안내판이 서있다. 바위 꼭대기에 아홉 마리의 용이 머리를 맞대고 노닌 바위형상이 아름답고 크기가 다른 수십 개의 발자국이 남아 있으며 물이 고인 채 마르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구룡봉 꼭대기로 올라가기 위해 바위를 타기 시작했다. 바위를 오르는데 힘이 부쳐 한 번에 오르지 못하고 무릎으로 기어올랐다. 바위를 뛰어넘고 또 기어오르기를 여러 차례 한 후에 가까스로 오르자 정상은 40m 넓이의 평평한 바위였다. 바위 꼭대기 가장자리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자 수천 길 낭떠러지로 오금이 저려 아찔해 바위 가운데로 와 먼 곳을 바라보자 구룡봉은 다도해와 어우러져 한 폭의 수채와 같은 멋진 풍경이 전개되었다. 세상을 발아래 둔 것처럼 광활하게 펼쳐진 들판과 바다가 펼쳐놓은 파노라마에 마음이 풍요로워진다. 너럭바위에 누워 멍하니 높은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데 시원한 바람에 눈이 저절로 감겨온다. 눈을 감고 편안하게 누워 있다가 일어나 바위를 보았다. 커다란 암반 위에 크기가 다른 수십 개의 둥글게 패인 구덩이마다 물이 고여 있었다. 구룡봉에서 내려와 다시 환희대로 되돌아갔다. 


천관산 대세봉./사진=조성민


억새능선에서 가을을 가득 담다

환희대에서 정상인 연대봉으로 이어지는 길은 억새밭이다. 환희대에서 바위잔치가 막을 내리고 억새천국이 시작되는데, 산 위쪽 능선의 기암괴석과 암봉 사이에 평탄한 초원지대가 펼쳐져 기암괴석과 억새가 절묘하게 어우러져 사람들을 불러 모은단다. 억새밭을 걸을 때 억새가 마음을 넉넉하게 하며 얼굴에 웃음꽃을 피우게 한다. 산 아래는 푸른 바다가 떠있고 산 위에는 은빛 능선이 펼쳐져 있는 곳에 억새가 산들바람에 온몸을 부대끼며 춤을 춘다. 은빛억새가 은은한 느낌으로 수수한 듯 황홀한 가을낭만을 뿜어내, 억새밭에 앉아서 가을을 가득 담아내자 왠지 모르게 가슴이 뭉클해진다. 억새 숲을 스치는 바람소리가 파도소리만큼이나 상쾌함을 준다. 억새의 너울거림이 이곳의 정취와 여유로움에 흠뻑 빠져들게 한다. 가을로 젖어 들어가는 억새들이 바스락거리며 물결처럼 파도치는 모습은 금방이라도 산을 찾은 이들을 삼켜버릴 것만 같다. 옥색의 가을하늘과 소슬바람에 일렁이는 억새가 기쁨의 탄성이 절로 나오게 한다. 이곳 억새군락지의 능선은 경사가 완만해 걷기에 편안했다. 연대봉 쪽에서 넘어온 가을바람에 억새들이 고개를 숙였다 일으켰다 하는 군무는 비단결같이 부드럽고 아름다웠다. 소박한 저만의 빛깔로 이곳을 은색으로 뒤덮은 억새의 너울거림을 보면서 가을 산의 정취와 여유로움을 물씬 느꼈다. 이곳으로 부는 억센 바닷바람과 햇볕에 잘 구워지는 억새빛깔이 유난히 곱게 느껴지는 이곳을 걸으며 가을을 담고 또 담았다. 


연대봉의 봉수대에 서다

다도해가 빚어낸 아름다운 억새향연의 황홀감에 취해 걷다 보니 어느새 천관산 정상인 연대봉(723m)에 올랐다. 정상을 밟았다는 기쁨에 힘들게 올라와 쌓인 피로가 싹 가셔진다. 사방을 둘러보자 천관산은 기암괴석이 많으면서도 산세가 부드럽다는 생각을 했다. 정상석 뒤로 네모반듯하게 쌓아 올려진 봉수대가 있다. 이 봉수대는 고려 의종 때 설치되어 외적이 침입했을 때 이 지역을 지키는 우리군사들에게 알리기 위해 봉황불이나 봉황연기를 올렸던 곳이다. 중앙 계단을 통해 봉수대로 올라갔다. 천관산 아래로 끝없이 펼쳐진 다도해 풍광이 360도 펼쳐진다. 봉수대에서 바라보는 다도해의 막힘없는 조망이 일품이다. 동쪽으로는 고흥·소록도와 거금도이고, 남쪽으로는 완도 앞바다이고 그 뒤로는 청산도와 보길도이다. 서쪽으로는 땅끝마을 해남이고 그 뒤편으로 진도이다. 유사시에 이곳 봉수대에서 밤에는 불로, 낮에는 연기를 피우면 이 지역의 먼 곳에 있는 여러 관아에서도 쉽게 위기상황이 발생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최적의 지대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안사에서 산행을 마치다

연대봉에서 천관산도립공원 주차장 쪽으로 하산하는 길은 내리막길이라 산행이 수월했다. 나무들의 키가 크지 않아 내려갈 때의 조망도 좋았다. 산을 오를 때보다는 하산할 때가 쉬는 횟수가 많이 줄었다. 내려오다 보니 돌이 나무처럼 생긴 정원암이 보인다. 사모봉 동쪽 삼십보 거리에 있어 흡사 정원석을 방불케 하는 경관을 이루고 있단다. 빠른 걸음으로 비탈길을 내닫자 양근암이 보인다. 등잔바위 등을 올라 봉황암과 갈림길 못 미친 곳에 높이 15척 정도의 깎아 세운 듯 남성을 닮은 큰 돌이 오른쪽 건너편 여성을 연상케 하는 금수굴과 서로 마주보고 서 있으니 자연의 조화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는 안내판의 설명이다. 한참을 내려오자 계곡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해 발걸음에 위안을 준다. 부지런히 산길을 내려오자 아주 조그만 절인 장안사가 나온다. 호수를 통해 흐르는 약수를 받아 하산 길의 갈증을 해소했다. 천관산 3코스에서 등산을 시작해 1코스로 하산하는 천관산 산행을 마치고 걷는 발걸음이 사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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