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초대석] 아태문인협회 조성민 여행작가, '속리산 산행기'

정혜미 기자
2020-07-09


속리산 천왕봉./사진=조성민 


★속리산입구에 서다

내속리면에 있는 정2품송을 보고 이른 아침에 속리산 입구에 섰다. 속세를 떠난다는 의미를 지닌 속리산은 옛날에는 열두 구비 말티고개를 넘어야만 닿을 수 있는 첩첩산중이었지만, 지금은 도로가 잘 닦여있어 접근이 용이하다. 정2품송·법주사·문장대가 속리산을 대표한다. 길옆에 이십여 그루의 소나무와 울창하게 우거진 숲이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속리산은 최고봉인 천왕봉을 중심으로 비로봉·입석대·신선대·문수봉·문장대 등의 봉우리가 연이어져 있다. 오늘 오르는 속리산 종주 코스는 여기서부터 왕복 18km에 이르는 장거리이다. 신라 헌강왕 최치원이 이곳에 와서 수려한 속리산의 산세를 보고 시를 지었다. 

“도는 사람을 멀리하지 않는데(道不遠人-도불원인/ 사람은 도를 멀리하려 들고(人遠道-인원도)/ 산은 속세를 떠나지 않았는데(山非俗離-산비속리)/ 속세가 산을 떠났다(俗離山-속리산).”


★오리숲에서 느긋한 마음이 들다

속리산 입구부터 입주사까지 거리가 오리(2km)인 오리숲으로 들어섰다. 길 양옆으로 수령이 오래된 소나무·잣나무·편백나무·참나무·떡갈나무가 터널을 이루어 운치를 더한다. 길게 뻗은 숲에서 피톤치드가 뿜어져 나온다는 생각에 시간을 다툴 일 없어 느긋한 마음이 들고 호젓한 기분이 되어 속세를 떠나온 느낌이다. 느긋한 마음으로 자연과 더불어 자유의 몸이 되겠다는 생각에 우거진 숲에 대한 반가운 감정이 샘물처럼 솟아오른다. 길가에 「죽은 나무 역할」이라는 안내판이 눈길을 끈다. 나무가 죽으면 곤충들의 터전이 되고, 시간이 지나면 다시 흙으로 돌아가 토양을 비옥하게 하므로, 죽은 나무는 새로운 숲의 시작이란다. 오리숲속을 걸으며 「윤회」라는 제목으로 시를 지어보았다. 

“흔들리고 흔들리면서, 한 시절 푸르던 나뭇잎들/ 구르고 구르다가, 찬바람과 비에 젖어/ 퇴색되는 이파리, 이승의 끝은 아니다/ 한 계절 후드득 지나면, 다시 부활하는 나무들이다.” 


속리산 저수지./사진=조성민  


★세조길을 걷다

오리숲이 끝나자 세조길로 이어진다. 이 길은 법주사부터 달천계곡으로 이어지는 세심정까지 2.7km이다. 조선 7대 임금인 세조가 복천암에 있던 신미대사를 만나고 요양차 속리산을 왕래하던 길이란다. 세조가 수양대군 시절 세종의 명으로 석보상절 편찬작업에 참여한 인연으로 신미대사를 스승으로 삼았다. 노년의 세조가 지난날 왕위와 권력을 얻기 위해 저질렀던 모든 악행을 참회하고, 스승인 신미대사를 만나 마음의 안정을 얻고자 왕래했던 길이다. 아침 햇살이 나무를 뚫고 쏟아지는 숲은 낭만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계곡의 청아한 물소리는 귀를 즐겁게 하며 맑은 공기가 가슴을 닦아내는 호젓한 길이다. 사뿐하게 떼던 발걸음을 사람의 속눈썹을 닮은 커다란 「눈썹바위」 앞에서 멈췄다. 이 바위는 속리산을 찾은 사람들이 비바람과 한낮의 더위를 피하던 곳으로, 바위 밑 텅빈 곳에 너럭바위가 평상처럼 자리 잡고 있다. 눈썹바위 오른쪽 너머로 물을 가득 머금은 「삼가저수지」가 있다. 천왕봉 남쪽에서 발원한 삼가천이 여러 골짜기의 물을 합수하면서 만수계곡을 이뤄 이곳에 이른다. 기후변화로 농업용수가 부족한 보은군 동남부지역에 안정적으로 물을 공급하기 위해 1997년에 이 저수지가 만들어졌다. 초록빛을 가득 담은 저수지는 물속까지 보일 정도로 맑고 깨끗했다. 저수지 가장자리를 따라 만들어진 덱과 물가로 늘어진 나뭇가지가 조화를 이뤄 환상적인 풍광을 연출한다. 이곳에는 물총새·물까치·노랑턱멧새·노랑할미새 등이 물가에 둥지를 틀고 살아간단다. 세조길을 걷다가 목욕소를 만났다. 이곳은 세조가 목욕을 하여 피부병이 나았다는 곳으로, 작지만 물이 맑고 아늑한 소(沼)다. 목욕소 위쪽을 가로지르는 하얀 바위는 마두암(馬頭岩-말머리바위)이라고 하는데, 세조가 목욕할 때 말 한 마리가 위쪽에서 흙탕물을 일으키며 물을 마시다가 호위장군의 고함치는 소리에 놀아 바위가 되었단다. 


★세심정에서 마음을 씻다

세조길이 끝나는 곳에 세속을 떠나 산에서 마음을 씻는다는 정자가 있었던 세심정(洗心亭)에 도착했다. 세심정은 현실의 문제, 즉 사업·직장·가정문제 등 복잡하고 힘든 일들을 저 산 밖에 내려놓고 이곳에서는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들과 앞에 보이고 느껴지는 것들을 즐기라는 뜻이란다. 지금 내게 주어진 것은 오늘뿐이고 내일을 앞당겨 쓸 수도 없고, 지나간 어제를 끌어다 부활시킬 수도 없다. 바로 이 순간에 몰입하는 것이 중요하다. 바로 지금 이순간 (Present) 이야말로 세상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소중한 선물이다. 공기와 물처럼 소중한 것은 언제나 평범하기 그지없는 것들이다. 공기와 물이 우리 건강을 좌우하듯, 누구에게나 주어진 “현재”라는 평범한 선물이 우리 일생을 좌우하는 소중한 선물이라는 것을 세심정에서 다시 한번 되새겼다. 세심정터를 흐르는 계곡으로 갔다. 눈을 감고 머리를 맑게 하면서 “강하고 딱딱한 모습보다는 부드럽고 유연한 모습이 중요하며, 이루어질 수 없다고 생각되는 것을 추구하고, 노력하고 인내하는 삶은 언젠가는 꽃을 피우며, 남을 도우면 받지 않으려고 해도 다시 내게로 오며, 남을 귀하고 여기고 교만에서 멀어져야 한다”는 다짐을 했다. 눈을 뜨자 다리 옆에 제법 커다란 돌절구 2개가 보인다. 「세심정 절구」는 이곳 지형을 이용한 물레방아 형태로 곡식을 빻아 음식을 만들었다. 이 절구가 만들어졌던 시기에 속리산에서 공부하길 원하던 사람들이 여기에서 제공되는 음식을 먹었고, 또 그들을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제공되었다고 한다. 세심정에서 본격적인 속리산 등산로가 시작되는 갈림길이다. 왼쪽으로 가면 문장대이고(3.3km) 오른쪽으로 가면 천왕봉이다(3.4km). 


★문장대를 향하다

 세심정 갈림길에서 문장대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조금 걸어가자 고려 31대 공민왕과 이조의 세조가 다녀갔다는 복천암이 나온다. 갈증을 없애려 용바위골 휴게소에 들러 산에서 내려오는 약수를 마셨다. 등산로 따라 하늘을 향해 뻗어나간 나무를 오르내리는 다람쥐가 웃음을 준다. 숲속에 울려 퍼지는 산새들의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며, 가파른 비탈길로 이어지는 깔딱고개에 올랐다. 냉천휴게소를 지나 계곡물에 세수를 하고 흘러내리는 물을 두 손으로 담아 마시며, 오랜만에 그 무엇에도 방해받지 않은 시간을 가졌다. 싱그러운 산이 호젓함을 넘어 스트레스로 억눌린 마음을 어루만져 준다. 이런 것이 등산을 하는 매력인가 보다. 문장대가 가까워질수록 산의 경사가 점점 가팔라지며 돌계단이 머리 위로 길게 놓여있다.


 ★문장대 절경에 반하다

황소걸음으로 느릿느릿 걸어 4시간 만에 문장대(1,032m)에 이르자, 깨끗하고 흰 화강암들이 단애를 만들었다. 이곳을 세 번 오르면 극락에 갈 수 있다는 속설을 지닌 문장대는 바위가 하늘 높이 치솟아 흰 구름과 맞닿은 듯한 절경을 이루고 있어 운장대라고도 한다. 기암괴석이 풍화되어 여러개 암석들로 겹쳐있는 문장대는 천왕봉과 서로 마주보고 있는 거대한 암봉이다. 수직 절벽으로 치솟은 문장대를 쳐다보자 돌을 일부러 조각해 쌓아놓은 것처럼 예술작품이다. 표지석 뒤에 놓인 여러 개의 철계단을 지나 문장대 꼭대기에 올라섰다. 넒은 바위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는 문장대는 기암괴석의 백미를 이루었다. 여기에 오르기 전에는 보이지 않던 바위봉우리들이 360도 파노라마로 펼쳐지고, 문장대에서 바라보는 능선들이 힘 있게 솟구쳐있어 위세가 당당하다. 제멋대로 울퉁불퉁 솟은 바위들이지만, 광활한 산과 하모니를 이루어 바라보는 눈을 호강시킨다. 문장대 남쪽으로 칠형제봉-문수봉-신선대-입석대-비로봉-천왕봉이 줄지어 서있다.


문장대 조성민./사진=조성민 


★신선대를 바라보다

자연이 만들어낸 암석 예술의 진수인 문장대를 뒤로 하고, 산 능선을 따라 신선대로 향했다. 바위를 그대로 깎아 만든 계단을 지나 숲 사이로 난 길을 아무 생각 없이 땅만 보고 터벅터벅 걷다가 등산로로 뻗어있는 나뭇가지에 머리를 찧을 뻔했다. 아찔한 순간이었지만 끝없이 우거진 숲과 끝을 알 수 없는 산길을 오르락내리락하며 걷는 마음은 여유로웠다. 한참을 걸어 신선대 휴게소에 도착했다. 칡즙을 마시며 등산로로 연결되지 않은 골짜기 뒤의 신선대를 바라봤다. 백학이 날고 백발이 성성한 신선들이 담소를 나누던 봉우리라는 신선대는 웅장하지만 헐겁지 않고 아기자기하면서도 압도하는 풍광을 그려내고 있다. 산수화 병풍을 펼쳐놓은 듯 신비로움을 자아내는 신선대를 한참 동안 쳐다보고 발길을 옮겼다.


 ★입석대와 비로봉을 지나다

입석대 부근을 지나는데 무성한 나뭇잎들로 가려져 잘 보이질 않는다. 숲 틈새로 언뜻언뜻 보이는 건빵 모양을 한 직사각형의 암반이 입석대이다. 길가에 안내 표시가 있었으면 좋을 거라는 생각을 하며, 비로봉 쪽으로 향했다. 비로봉(1,032m)은 진표율사가 속리산에 온 다음 날 아침 새벽 방안에서 좌선하고 있는데, 별안간 밝은 빛이 방문 가득히 비쳤다. 깜짝 놀라 방문을 열었더니 맞은편 봉우리에서 눈부신 햇살이 오색 무지개를 띄고 사방팔방 비추고 있었다. 대사가 황급히 합장배례를 하고 그곳으로 달려가 보니 비로자나불(부처의 전신-광명을 의미함)이 암석에 앉아 있다가 서쪽 하늘을 향해 구름을 타고 떠났다고 하여 이곳을 비로봉이라고 했단다. 내리막길에 암석 사이에 자란 키다리 소나무가 위용을 자랑한다. 나뭇가지를 사방으로 뻗어 부채처럼 활짝 펴고 나를 보란 듯이 서있다. 거북등 같은 껍질을 지닌 이 소나무는 장구한 세월에도 윤기를 잃지 않고 싱그러움으로 활기를 주어, “노병은 죽지 않고 사라져 갈 뿐이다”라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비로봉 능선 길은 암릉이 군락을 이룬다. 산길 따라 커다란 바위들이 웅장한 모습을 자랑하고 저마다의 자태를 뽐내며 열병식을 한다. 남녀 한 쌍이 풍광이 빼어나지만 아슬아슬하게 보이는 암반 위에서 온갖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는다. 젊음을 발산시키는 모습이 보기에 좋았다. 비탈길을 내려가자 커다란 바위가 길을 막아 석문을 만들어 그 사이로 지나가게 한다. 석문 속이 서늘해 바위에 기대고 앉아 망중한을 즐겼다.


 속리산 청왕봉./사진=조성민


★천왕봉에서 오유지족의 뜻을 새기다

비로봉 암릉을 지나 천왕봉으로 가는 길은 좁고 조릿대나무들이 오솔길 양옆으로 무성해 등산객들이 교행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등산로 입구에서 6시간 반을 지나 속리산 정상인 천왕봉(1,058m)에 올랐다. 만세를 부르고 나무그늘에 앉아 땀을 식혔다. 석문에서 여기까지 오는 동안 온통 숲으로 덮여있었는데 천왕봉은 바위들로 이루어져 있다. 천왕봉은 삼파수(三派水) 봉우리로 한강·금강·낙동강의 분기점이다. 천왕봉에 내린 빗물이 동쪽으로 떨어지면 낙동강, 서쪽으로는 한강, 남쪽으로는 금강의 세 갈래로 갈라진다. 천왕봉에서 광활한 속리산을 내려다보며 오로지 만족할 줄 안다는 “오유지족(吾唯知足)”의 뜻을 새겨보았다. 오유지족은 스스로 족한 줄을 아는 일이지만,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말이 아니라 조그만 일에서 행복을 찾아야한다는 말로 새겼다. 

“욕심은 부릴수록 더 부풀고, 마음은 가질수록 더 거슬리며, 원망은 보탤수록 더 분하고, 아픔은 되씹을수록 더 아리며, 괴로움은 느낄수록 더 깊어지고, 집착은 할수록 저 질겨지기 때문에 부정적인 일들은 모두 지우는 게 좋다. 지워버리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마음이 편안해 지면 사는 일이 언제나 즐겁다. 사랑은 베풀수록 더 애틋해지고, 몸은 낮출수록 더 겸손해지며, 마음은 비울수록 더 편안해지므로, 평범한 일상생활에서도 언제나 감사함 마음으로 즐겁고 밝게 사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라는 것을 되새겼다. 천왕봉에서 두 손 모으고 묵상을 한 후에 법주사 쪽을 가리키는 길따라 하산했다. 


글/조성민 한양대 로스쿨 명예교수, 아태문인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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