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털도사' 이두호 화백, 대한민국 만화계의 살아있는 역사

정혜미 기자
2019-01-23


뉴스리포트 1월호

이두호 만화가./사진=이문중 기자 


[뉴스리포트=정혜미 기자] 대한민국 만화계의 거장 이두호 화백의 만화에는 친숙함이 있다. 민초의 고단한 삶을 굵은 획으로 그려내 동양적 조형감을 연출해내기 때문이다. 이러한 친숙함 속에서 펼쳐지는 유쾌하지만 날카로운 서사는 읽는 이로 하여금 높은 경지의 해학을 느끼도록 한다. 이두호 화백은 1969년 소년중앙 창간호로 데뷔한 이후 50년 가까이 '덩더꿍', ‘객주’, '임꺽정', '머털도사' 등 기념비적 작품 들을 그려냈고, 지금까지 '타협 없는 고집'을 목숨처럼 지키며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확장해가고 있다.


바지 저고리 작가 이두호 


이두호 화백은 원래 화가를 꿈꿨다. 하지만 밥벌이로 만화계에 발을 들여놓게 됐고, 1969년 소년중앙 창간호에 '투명인간'을 연재하면서 본격 만화가로서의 삶을 시작한다. 

"소년중앙 편집부와 인연이 닿아서 창간호부터 참여하기 시작했지만 서양화가의 꿈을 가지고 있던 저에겐 만화가 이두호라는 모습이 마땅치 않았습니다. 10년간 만화를 그리면서 스스로에게 불만을 갖고 있다가 80년대 초에 같은 화실을 쓰던 한희작 작가에게 대필을 부탁했습니다." 

이두호 화백은 2년간 만화를 놓고 유화에 집중하게 된다. 그러나 유화 캔버스는 그에게 원하던 답을 주지 않았고, 결국 다시 펜을 잡고 만화를 그리기 시작한다. 이후 전업 만화가의 길로 들어서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하기 시작한다. 그 나름의 영역을 만들어 재미와 작품성 모두를 추구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원래 역사물을 좋아했기에 역사물을 다루기로 했고, 만화를 그릴 때 참고할만한 사료나 유적이 많 이 남아있는 조선시대로 한정했습니다. 조선시대 전문 만화가, 남들이 바지저고리 작가라고 부르게 된 계기죠."


이두호 화백은 역사 만화가로서 본격 활동을 시작하면서 직업에 자부심을 갖게 됐고, 만화에 완전히 몰입해 작품활동에만 집중했다. "만화에 푹 빠져 작업에만 몰입할 수 있었던 건 2년간 서양화에 집중하면서 미련을 떨쳐낸 게 크다고 생각됩니다. 이 덕분에 제가 잘하고 제가 사랑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게 됐으니까요."

다작을 통해 저력을 갈무리한 이두호 화백은 진심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만 그리겠다는 일종의 '작가 선언'을 하게 된다. 기왕 만화가의 길에 들어선 이상, 스스로에게 당당한 작품만 그리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제가 이렇게 선언하고 정말로 내키는 것, 그리고 싶은 것만 손대기 시작하니 신문이나 잡지 편집부에서 배가 불러 사람이 변했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그런 불평도 순간이었고 1년 정도 지나니 저에게 전적으로 권한을 맡겨 지면을 할애하고 싶다는 요청이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 

작가로서 실력과 콘텐츠의 독특함과 재미가 없었다면 이러한 시장의 변화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을 것이다. 만화시장이 이두호 화백 작품의 특별함을 인정하기 시작하자 그는 작가로서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치며 독자적인 영역을 더욱 굳히고 확장해 나갈 수 있었다. "제가 그리고 싶은 것만 그리겠다는 신념은 앞으로도 변치 않을 것입니다. 시장의 요구에 굴복한 만화는 그리고 싶지 않습니다."


이두호 만화가./사진=이문중 기자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 ‘덩더꿍’

이두호 화백은 본격 만화작업에 매진하면서 ‘암행어사 허풍대’와 ‘바람소리’ ‘내이름은 장바우’ 등 에 이어 84년부터 히트작 ‘머털도사’ 시리즈를 내놓았다. 또 사당패의 애환을 그린 ‘황톳길’과 ‘어름산 이’, 조선의 야사를 재미있게 그린 ‘가라사대’와 ‘덩더꿍’ 등을 냈고 김주영의 소설 ‘객주’를 만화로 엮어냈다. 특히 덩더꿍은 이 화백이 사회 비판적 시각과 권선징악의 믿음을 투영해 색다른 결말을 창조 한 첫 작품이기에 그에게 더 의미가 깊다. "

세조의 계유정난을 곁에서 도운 홍윤성이란 인물이 있습니다. 김종서를 참살할 때도 동행했고, 황보인, 김종서 등 당대 원로대신들을 살해하는데 직접 손을 쓴 세조의 고굉지신이었죠. 역사상으로는 예종, 성종대까지 권력을 누리고 천수를 다 누리지만, 저는 홍윤성을 그렇게 편히 보내고 싶지 않았어요. '독대'라는 천한 인물을 만들어 홍윤성을 죽이고 독대 본인도 효수되는 운명으로 재창조했습니다."

홍윤성의 포악했던 행실에 분노한 이두호 화백은 홍윤성에게 학대당하는 민초들의 고통과 분노를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한편, 홍윤성 아들의 노리갯감이자, 홍윤성에게 부모를 죽임당한 '독대'가 결국 복수에 성공한다는 내용은 당시 독자들에게 큰 반응을 얻었다. 특히 죽음으로 마지막을 장식하는 '독대'의 기구한 삶은 덩더꿍의 비극적 카타르시스를 극대화했다.

이두호 만화가./사진=이문중 기자 


만화는 엉덩이로 그리는 것

이두호 화백은 버릇처럼 "만화는 엉덩이로 그린다"는 말을 강조했다. 만화는 재능도 중요하지만 끈기와 근성이야말로 훌륭한 만화가를 만드는 최고의 미덕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두호 화백의 잔소리 아닌 잔소리는 후학들에게 많은 영향을 줬고, 특히 그가 시작한 '지옥캠프'는 신예들을 발굴하고 경합을 유도해 재능과 끈기를 겸비한 만화가로 탈바꿈 시키는데 큰 자극제가 되고 있다고 한다. 

"세종대 교수로 부임해 학생들과 함께 작업하는 생활이 대단히 좋았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한 학기 동안 실기 시간이 많아 봐야 40시간 정도 밖에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이론을 소홀히 할 수 없으니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 했죠. 그래서 탄생하게 된 것이 지옥캠프입니다." 

이두호 화백은 방학 시작과 동시에 학생들을 데리고 수양관을 빌려 1주일간 캠프를 열었고 치열하게 작품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했다. 세종대 만화학과 학생들은 이두호, 이현세 화백과 합숙하면서 '천국 같은 환경에서, 지옥같은 마감을' 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나온 단편 만화들은 '지옥캠프'라는 이름을 달고 옴니버스 형식으로 대중들에게 소개된 바 있 다. 네이버 웹툰을 통해 지옥캠프를 접한 독자들의 반응 중에는 충실한 콘티와 탄탄한 기본기를 높게 평가하는 사례가 많으며, 출신 유명 작가로는 '꽃가족' 국중록이 대표적이다. "만화는 엉덩이로 그리는 것입니다. 지금은 10박 11일로 기간이 확장됐죠. 이현세 화백 주도로 전국 만화가 지망 대학생들 중 희망자들의 콘티를 사전에 접수해 블라인드 형식으로 최종 100명을 선정합니다. 실전에서 재능을 갈고 닦는 기회도 되 겠지만, 고된 철야작업을 통해 만화가로서 끈기를 몸으로 익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두호 만화가./사진=이문중 기자 


하나를 그려도 독창적으로

이두호 화백은 요즘도 영감을 얻기 위해 야외 사진 촬영과 스케치를 즐긴다. 특히 최근에는 소나무로부터 많은 영감을 얻어 작품 소재로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의 소나무를 보면 자유가 느껴집니다. 마음 내키는대로 뻗어나간 소나무 가지가 제 심정과 꼭 닮아 있다고 생각해요. 그늘에 앉아 잘생긴 소나무 한 놈을 정해 그리면서 구불구불한 가지로 메시지를 넣기도 하면서 나름의 창작 요소를 집어 넣습니다." 

이두호 화백은 앞으로 전국을 돌며 우리 강산의 아름다운 것들을 모두 화폭에 담는 작업을 계속해갈 것으로 기대된다. 항상 시대와 소통하며 대중의 응어리 맺힌 속내를 과감히 화폭에 담아온 이두호 화백의 순수한 열정이 후배 작가들에게 전해지길 바라며, 궁극적으로 대한민국 만화산업의 철학 적 발전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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