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현 칼럼] 아우라지

수필가 김국현(金國鉉)


정선의 아우라지에서 하룻밤을 지냈다. 

밤하늘에 별들이 총총하다. 아리랑에 담긴 민초들의 세상 이야기가 하나씩 하늘로 올라가 밤을 새워 영롱한 빛을 비춘다. 구슬픈 곡조가 창공을 맴돌다 가까이서 혹은 멀리서 메아리가 되어 내 가슴을 울리고, 나는 별들이 품은 사연을 따라가다 새벽잠을 설쳤다.    내가 묵은 방에서 강여울이 빠끔 내려다보인다. 저 강은 오래전 나룻배를 젓던 뱃사공들의 애환이 깊이 서린 곳이다. 그들은 해당화 피는 고을의 산수(山水)와 가족 간의 인연을 노래하며 세상 근심을 가사에 실어 강물에 흘려보냈다. 어떤 이들은 홍수로 강을 건너지 못한 동네 처녀가 건넛마을 총각을 그리워하며 부른 아라리를 목청껏 소리하였다.

   

  아우라지 뱃사공아 날 좀 건네주게/ 싸리골 올동박이 다 떨어진다/    

  떨어진 동박은 낙엽에나 쌓이지/ 사시장철 임 그리워 난 못 살겠네 (…)

            

돌다리 끝에서 한 할아버지를 만났다. 송천이 어느 쪽인지 묻는 나그네의 물음에 입가에 싱긋한 주름을 지어 보이며 오른쪽 물줄기를 가리킨다. 물살이 잔잔하고 맑아 푸른빛을 띤 채 기암절벽의 장관을 거울처럼 그려 내고 있다. 구름다리로 향하는 소나무 숲 아래에서 솔갈비를 수레에 한가득 싣고 가는 할머니도 만났다. 원래는 강 건너편에 살다가 다리 너머로 이사 간 지 오십 년이란다. 사는 게 어떠냐고 여쭈니 반가운 듯 수줍은 듯 쪼그라든 미소를 지으며 도시로 간 아들 자랑으로 손등에 힘이 솟는다. 어쩌면 이 두 사람은 예전 아리랑에 나온 처녀 총각이 환생한 듯싶다. 양 쪽 강둑에 서서 서로를 바라보고만 있는 처녀상과 총각상에 새겨진 표정이 그들의 젊었을 때 모습처럼 느껴진다. 

  

고장 사람들이 옛 모습을 재현하려고 처녀상이 바라보는 쪽으로 돌다리를 만들어 놓았는데 그곳을 지나는 물살은 소리도 제법 크다. 처녀 총각의 애타는 가슴이 우는 소리인가, 옛 사람들이 애달픈 삶의 무게를 못 이겨 내는 소리인가. 돌다리를 건너면서 나는 처녀상이 궁금하여 자꾸만 뒤를 돌아다본다.  언덕 위에 올라서니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대관령과 삼척 하장에서 발원한 두 물줄기가 이곳에서 한데 어우러져 거침도 없이 흐른다. 송천은 산을 휘돌아 유유히 흐르지만, 들을 가로지르는 구슬천은 물살이 제법 세다. 아우라지는 높은 하늘 아래 굽이쳐 흐르는 강 위로 한없이 광활하니 이곳 사람들의 즐겁고 슬픈 온갖 사연을 모두 품어 낼 수 있었으리라. 

  

하지만 강물은 서로 어우러져 하나가 되었는데, 그곳에 살던 청춘 남녀는 어찌하여 서로 헤어져 만날 날을 애타게 기다려야만 했던가. 차라리 한 길 물줄기만 흘렀으면 뗏목을 띠울 수도 없고 홍수로 물이 넘치지도 않았으련만, 강물이 합쳐져 큰 강이 된 연유로 둘이 갈라져야 했다. 물은 한 곳으로 어울리는데 바로 그곳에서 이별의 슬픔이 있어야 할 건 무엇이란 말인가. 마음을 달래며 정선 시내에서 가까운 아라리촌에 들렀다. 거기에는 싸리나무 울타리 사이로 난 마을길을 따라 정선 아리랑이 쉼 없이 흘러나왔다. 

  

   우리 집의 서방님은 (…)/ (…) 지게 위에 엽전 석 냥 걸머지고/ 

   강릉 삼척에 소금 사러 가셨는데/ 백봉령 굽이굽이 부디 잘 다녀오세요 


   사랑인지 안방인지 난 몰랐더니/ 잠자리하고 보니 맨봉당이로다/ 

   봄철인지 갈철인지 나는 몰랐더니/ 뒷동산 도화춘절이 날 알려 주네


   (…)/ 이내 몸이 웃는 뜻은 정들자는 뜻일새/ 

   우리야 연애는 솔방울 연앤지/ 바람만 간시랑 불어도 똑 떨어진다 


아리랑 가사는 이별 이외에도 부부 간의 애틋한 사랑을 묘사하거나 세월 흐르는 걸 꽃피는 모습에서 깨닫는 여유도 펼쳐 보인다. 남녀 간의 풋사랑도 재미나게 그렸다. 역시 그랬다. 세상을 휘돌아 내려온 강물과 더불어 수많은 사연이 쏟아져 나왔고, 사연이 가사가 되어 아리랑 곡조에 맞추어 긴 세월 동안 이어진 것이다. 그러면 어찌하여 이곳 아우라지에서 아리랑이 나왔을까. 어떤 인연이 있어 그곳에서 걸출한 우리의 곡조가 생겨났더란 말인가. 그 청춘 남녀의 사랑 이야기가 너무나 애절하여 후세 사람들이 소리로 그들을 위로하려고 지은 건 아닐까. 아우라지에는 이별의 슬픔을 함께 하다 강도 물이 말랐다. 나는 어느덧 그 둘을 나룻배에 함께 태우고 바다가 바라보이는 남쪽을 향해 노를 젓는 뱃사공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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