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현 칼럼] 버스킹에 빠지다

수필가 김국현(金國鉉)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의 고장인 이탈리아 베로나(Verona)에서 버스킹이 열렸다. 어느 방송사 주관으로 우리나라 젊은 가수들로 구성된 패밀리밴드와 제작팀이 거리 공연 녹화를 위해 유럽의 유명 관광지를 돌아다녔다. 그 일정의 하나로 며칠 전 사랑과 낭만이 깃든 베로나에 도착한 것이다. 그들은 공연 전날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근교의 작은 언덕에 올랐다가 다리 위에서 <마이웨이>를 연주하는 현지 피아노 버스커를 만났다. 밴드는 아름다운 풍경과 음악에 마음이 동하여 그 자리에서 즉석 공연을 펼쳤다. 피아노 반주에 맞춰 악단은 바이올린을 켜고 가수는 노래를 불렀다. 우연히 그곳을 찾은 관광객들은 예상치 못한 멋진 공연에 흐뭇한 박수를 보냈다. 버스킹의 감동은 낭만과 자연스러움에 더하여 기획의 즉흥성에 있다. 그날 방송을 보던 나는 마치 내가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거리 공연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젊은 가수들에게 세상은 드넓은 공연장이다. 스튜디오를 통째로 들고나와 답답한 실내에서 탁 트인 광장으로 무대를 옮기는 것이다. 대중과 가까워지고 싶어서다. 광장에서의 버스킹은 시간과 장소에 얽매이지 않아서 좋고 관객만 있으면 대만족이다. 가수와 청중이 한마음 되니 감동도 깊고 넓다. 오다가다 만났으니 서로에 대한 의무감도 없고, 금전적으로 빚진 것도 없다. 언제든 싫증나면 떠나면 된다.  요즘 서울의 도심 골목이나 지하철 역사 안에서 가난한 여행객들이 악기 연주하는 모습이 가끔 눈에 띤다. 악사들은 헤진 바구니나 남루한 모자를 앞에 두고 바이올린과 팬플룻 따위로 작은 음악회를 연다. 대부분 행인들은 갈 길이 바빠 무심히 지나치지만 어떤 곳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기도 하다. 관중들은 이국적인 음악 선율에 심취하면서도 악사들의 편안한 의상과 순수하고 밝은 표정이 마냥 좋은 것이다. 버스커들은 가난한 예술가이기에 그날 번 돈으로 한 끼 식사를 하고 누추한 잠자리를 구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듯하다. 그들에게 배부른 게 무슨 소용이고 궁궐 같은 잠자리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비용과 장소 걱정 없이 좋아하는 곡을 연주하고 타국 사람들과 음악으로 소통하는 재미가 쏠쏠하기만 하다.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로부터 갈채를 받으면 상상 이상의 행복감을 느끼리라. 이것이 세상 부러울 게 없이 진정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아가는 모습이다. 

  

한국식 버스킹의 시작은 길거리에서 펼쳐지는 남사당패의 풍물놀이와 각설이 타령이다. 그들이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온 건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다. 어린 시절 남사당패가 꽹과리와 징 소리를 앞세워 동네 어귀로 들어오면 온 마을이 덩달아 들썩였고, 나는 친구들과 재미 삼아 그 뒤를 졸졸 따라다니곤 했다. 그들이 우리 집 마당에 들어서서 한바탕 놀고 나면 어머니는 꼭두쇠에게 돈과 곡식을 듬뿍 올렸다. 그들이 떠난 뒤에도 내 가슴에 소리의 여운이 오랫동안 남았다. 얼마 전 베트남에서 우리나라 트로트의 해외 버스킹이 처음으로 시도되었다. 최고의 스타들로 팀을 만들어 사전 준비도 잘했지만 막상 시간이 되자 가수들 모두 공연이 실패할까 염려되어 자못 초조해했다. 다행히 청중들이 많이 모이고 반응도 좋아 출연자들은 가수 생활 중에 최고로 감동적인 무대였고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고 자평했다. 말은 잘 통하지 않았지만 청중들은 “좋아요. 예뻐요. 멋져요. 한 곡 더 부탁해요”라고 소리치며 마음껏 즐기고 행복해했다.

 

나는 외국을 여행하면서 거리 공연을 가끔 본다. 그 중에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 있는 모짜르트 생가 앞의 전자 오르간, 리투아니아 빌뉴스 광장에서 듣던 바이올린 연주, 베트남 안자산(安子山) 사찰 경내의 전통악기 연주가 지금도 귓전에 맴돈다. 장소가 문화와 전통이 깃든 명승지에다 음악 장르가 그곳 분위기에 걸맞아 관광객들의 시선을 끌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거리 공연은 관객들이 각기 다른 취향을 가졌기에 공연단 특유의 장르로 소통하려면 남다른 용기가 필요하다. 버스킹은 외로움과 싸우면서 사람들의 무관심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무던함이 있어야 하고, 자신의 연주에 귀 기울이는 한 두 사람의 박수에도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공연뿐 아니라 그림 전시나 연기와 문학 작품도 대중들의 관심을 얻지 못하면 실망스럽고 서운한 감정이 들기 쉽다. 하지만 내가 만난 버스커들이 연주에만 몰두하는 모습은 진정으로 예술을 사랑하는 자로서 손색이 없다.


인생도 결국은 버스킹이 아니던가.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즉석으로 자신의 모든 걸 보여주는 거리 공연처럼, 인생살이는 태어나면서 연습할 겨를 없이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바로 연기를 시작하고, 재방송이란 게 없으니 어쩌다 실수해도 다시 하거나 시간을 되돌리지 못한다. 넓은 대지에서 활개 치며 남들의 시선을 독차지하다가 때로는 소외되어 한없이 초라해지기도 한다. 광장에서 한바탕 놀고 나면 공허한 자리만 남기고 떠나는 나그네 같은 것이 우리네 인생이다. 지혜로운 자의 삶은 남의 시선에 쉽게 흔들리지 않고 소박해도 마음만은 부자처럼 살면서, 그런 자신을 지극히 사랑해야만 하는 외로운 버스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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