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현 칼럼] 글을 두드리다

수필가 김국현(金國鉉)


글은 쓰는 게 아니라 두드리는 것이다.나는 요즘 글을 작성할 때 스마트폰에서 다운로드 받은 ‘메모’ 앱을 주로 이용한다. 소재가 떠오르고 주제가 정해진 후 글에 들어갈 내용이 생각날 때마다 글자판을 두드린다. 몇 차례 작업을 이어가다보면 메모장에 글이 차곡차곡 쌓이고 한 편의 글을 작성할 준비가 된다. 메모장에 모인 글은 나의 이메일로 보내서 문서작성 프로그램으로 초안을 잡는다. 이제 본격적인 글 작업이 시작되는 것이다. 메모하는 것 중 어떤 부분도 펜이나 연필을 사용하지 않고 처음부터 탈고할 때까지 글자판만 두드리다 끝난다. 그러니 예전처럼 글을 ‘쓴다’고 하기가 어색해지고 실제와는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글을 두드린다는 말은 ‘북을 두드리다’와 같이 작가의 생각이나 사상으로 세상에 공명을 울린다는 의미와, ‘문을 두드리다’처럼 독자의 마음을 열고 서로 소통한다는 뜻을 가진다. 두드리는 것은 게으른 사람을 깨우거나 꿈을 이루기 위한 용기를 주고 인생의 답을 찾는다는 긍정적인 의미도 있다. 어느 자폐아의 아버지 이야기다. 아버지의 눈물겨운 헌신과 인내로 자폐증을 앓는 딸의 마음의 문을 두드려 마침내 굳게 닫혔던 딸의 마음을 열고 내면의 소리를 듣게 되는 기적을 보았다. 당나라 시인 가도(賈島)가 ‘승퇴월하문(僧推月下門)’이라는 시구를 지을 때는 당대의 문장가인 한유(韓愈)의 조언으로 ‘밀 퇴(推)’를 ‘두드릴 고(敲)’로 바꾸었다.


시인 조병화와 소설가 박경리의 문학관에 들른 적이 있다. 거기에는 예외 없이 작가의 친필 원고를 유리 상자에 넣어 전시하고 있다. 원고지에는 펜으로 쓰고 지우고 고치고 그 위에 또 쓰면서 종이의 여백까지 빈틈없이 글자로 채워져 있다. 나는 원고지를 바라보며 참으로 힘든 과정을 거쳐야 걸작이 나오는 거라 짐작해 보았다. 김홍신 작가는 대하소설 ≪대발해≫를 쓸 때 꼭 만년필을 사용했다. 집필을 마칠 즈음에는 만년필 세 자루의 펜촉이 다 닳을 정도였고 고개가 아파 부황 을 뜨면서 작업했다고 한다.


나는 초등학교 때 국어시간이면 원고지를 구해서 수업 준비를 하곤 했다. 그땐 물자가 부족한 시절이라 원고지가 무척 귀했다. 원고지는 주로 시나 산문을 쓸 때 사용했는데, 띄어쓰기나 맞춤법 훈련에는 더없이 좋은 도구였다. 초안을 잡은 후 수정하는 작업도 원고지에서 이루어진다. 맞춤법까지 끝내서 한 편 쓰고 나면 붉은 색의 줄과 네모 칸에 내가 좋아하는 여러 가지 색깔의 구슬을 골라 제 자리에 하나씩 채우는 기분이 들었다. 종이에 글을 펜으로만 작성하는 것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있다. 복잡한 성능을 가진 기계 사용을 어색해 하거나 능숙하지 못한 까닭이기도 하고, 글을 직접 쓰는 것이 사색하고 창조하는 과정에 도움이 되기 때문일 수도 있다.


펜으로 글을 쓸 때는 글 쓰는데 신경을 써야 하기에 시간이 걸리고 마음에 여유가 별로 안 생긴다. 하지만 기계로 작업을 하면 화면에 글의 전체를 살필 수 있어 다음 작업하기에 편리하고, 글 내용을 수정하고 편집하기가 한결 수월해진다. 글을 두드리면 펜으로 종이에 쓸 때보다 주변이 깔끔해서 좋다. 필기도구를 일부로 준비할 필요가 없고, 작업이 끝나면 바로 다른 일에 매진할 수도 있다. 그런데 두드리기만 하다보면 손가락 놀림만 능숙해질 뿐 손으로 쓰는 글자체가 예전 같지 않다. 간혹 간단한 메모를 해서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거나 서류에 자필 서명할 때 글쓰기가 어색해지기도 한다. 둘 다 손으로 하는 것이지만 기계를 사용하면 어쩐지 글 작업이 대수롭지 않게 여겨질까 걱정이 된다. 편지도 컴퓨터로 인쇄된 것보다 친필로 쓴 게 글 쓴 이의 체취가 묻어 있어 정다운 느낌이 들지 않는가.


기계로 글을 작성하고 전달하는데 익숙하다보니 이러다 다음 단계는 어떻게 될까 궁금해진다. 예전에 어느 영화에서 사람들이 눈빛을 교환하며 텔레파시로 대화하는 장면을 본 적 있다. 그 영화대로라면 미래에는 글을 쓸 필요가 없고 하물며 두드리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올 수 있다. 말이 필요 없으니 상대방을 배려하는 인간적 수고나 애틋한 정이 없어지고 오직 정신세계만 남게 된다. 이 얼마나 삭막한 세상인가. 글을 두드리면 편리한 건 사실이지만 자칫 인간성이 상실될 거라는 염려를 한다면 지나친 기우일까. 기계로라도 사람이 직접 수고해서 글 작업하는 게 그나마 나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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