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현 칼럼] 떠난 자와 남은 자

수필가 김국현(金國鉉)


베트남 여행 중에 들어본 <헬로우 베트남>이 지금도 내 귓전에 맴돈다. 노래 가사가 슬픈 곡조를 따라 흐르고 내 가슴은 노래 속에 흠뻑 젖어든다.


(…) 내가 아는 것이라곤/ 코폴라 감독의 헬리콥터가 굉음을 울리는 전 쟁 장면 뿐이야/ 언젠가는 그 땅을 밟아보겠어/

 (…)/ 언젠가는 널 찾아 가겠어/ ‘안녕 베트남’이라 전하기 위해 (…)


이 곡은 벨기에 국적을 가진 가수가 조상들의 고국인 베트남을 그리워하며 부른 노래이다. 외국곡이지만 베트남 국민들의 애국심과 자부심을 일깨워준다. 가수는 베트남 전쟁 직후 작은 배에 몸을 싣고 조국을 탈출한 보트 피플(boat people)의 후손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 당시 보트 피플이 100만 명에 달하고, 해외로 도피 중 사망한 베트남인이 수십만 명에 이른다. 남북이 북베트남 정권에 의해 통일된 후 공산화 과정에서 인권유린과 탄압이 이어지고 주로 지식인과 부유층, 반공주의자와 관료들이 보트 피플의 대열에 합류하였다.


베트남에는 떠난 자를 보낸 슬픔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들은 남은 자로서 떠난 자들의 몫을 떠안고 산다. 약 20년간 이어진 전쟁으로 베트남 국민 중 전사한 군인과 민간인 사망자가 100만 명이 훨씬 넘고, 통일 후 재교육 중에 처형된 남베트남인을 합치면 통일 과정에서 모두 200만 명에 가까운 베트남인이 사망했다. 오랜 전쟁 탓에 베트남 남자들은 언제 전쟁터에 불려갈지 몰라 일터나 가정의 일상은 여성 중심으로 이루어진 지 오래다. 청소차에 매달린 청소부나 시장의 가게를 지키는 이도 여자들이 많고, 아기를 앞뒤로 안고 업고 다니는 오토바이 기사도 여자다. 어깨에 걸친 광주리에 수십 통의 수박을 싣고 가는 여자도 보이고, 하노이 도심지에 우뚝 솟은 성당에서 간절히 기도하는 신자들도 여인들이다. 길모퉁이에서 복권을 파는 여자 옆에 쪼그리고 앉아 돈을 세거나 길거리에서 삼삼오오 앉아 놀고 있는 사람들은 영락없는 남자들이다.


그런 강인한 여인 중에 하롱베이 해변에서 본 여자 뱃사공이 단연 으뜸이다. 그녀는 우리 일행을 태운 배의 좁은 뱃머리에 서서 바다에 길 잠긴 두 개의 노를 유유히 저었다. 야자나무 잎으로 만든 전통 모자인 논(Nón)을 구릿빛 얼굴에 눌러 쓴 채 먼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노를 저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전쟁터에서 잃은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지낼 수도 있고, 여행객들의 즐거워하는 모습에 행복한 마음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의 묵묵한 무표정이 애수에 찬 것처럼 보이는 건 베트남의 슬픈 역사 때문일 것이다.


전시에 폐허가 되었던 하노이는 전쟁이 남긴 흔적과 상처가 조금씩 아물어가고 있었다. 시내 곳곳에 현대식 건물이 들어서고 거리 양쪽으로 가옥들이 즐비하다. 시골로 가는 도로 주변의 들판에는 벼농사 뒤에 남은 밑동들이 거름이 되기를 기다리고, 떠난 자가 남긴 토양을 남은 자가 기름지게 하며 다음 계절의 수확을 준비하고 있다. 이곳이 바로 경제적 부흥을 바라는 꿈과 희망의 나라 베트남이다.


베트남은 오랜 세월 중국의 지배를 받아 한자 문화권을 형성하며 유교 사상이 짙고, 최근에는 프랑스와 일본 등 외세의 침략을 받은 게 우리 역사와 유사하다. 영토가 기다랗게 남북으로 뻗은 것이 우리와 닮았고 순박하고 정이 많은 사람들의 정서가 같다. 벼농사를 하는 것도 그렇고 논 일을 도맡은 누렁이 소가 작지만 반갑다. 불교 성지인 옌뜨에서 하노이로 가는 도로변에 한 무리의 억새가 하늘거리고, 케이블카가 올라가는 산 중턱에는 남산의 적송을 닮은 소나무가 자라며, 여자들이 툇마루에 앉아 자수를 놓는 모습이 또한 닮았다. 안자산(安子山) 사찰 화분에 가득 담겨있는 국화와 나팔꽃이 우리 것처럼 보였고, 국수를 채소와 곁들여 먹는 분짜(Bun cha) 맛이 담백한 칼국수를 연상케 한다. 동그스름한 산의 모양이 같고 산 능선과 들판을 타고 전선을 연결한 것도 우리와 똑 닮았다. 그런 까닭에 나는 이제부터 베트남을 제대로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


하노이 중심부에 자리 잡은 시장통 테마 거리로 들어왔다. 마치 4D로 된 공포영화를 보는 듯싶다. 골목마다 시내를 가로지르는 승용차와 오토바이 행렬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우회도로를 설치할 엄두가 나지 않은 건가. 건널목이 따로 없어 우리 일행은 안전요원의 안내로 달리는 오토바이와 자동차들 사이를 비집으며 나아갔고, 차량은 뒤섞여 서행하며 우리를 잘도 비켜 갔다. 안내원은 이를 두고 ‘무질서 속의 질서’라 표현했다. 차들이 사람을 피해 다니고, 신호등도 없는 거리에 사고가 나지 않는 게 신기할 뿐이다.


이 나라는 언제 질서가 잡히고 개발이 완성될 것인가. 수많은 피를 흘려 통일국가를 이룩했으면 경제를 안정시키고 국민들이 행복한 삶을 살게 하는 게 국가의 책무일 것이다. 이제는 게으른 열대지방의 국민성을 깨우는 국가 리더십이 발휘되어야 한다. 이러한 바람이 내가 베트남을 사랑하는 나만의 방식이다. 40여 년 전 쪽배에 실려 고국을 떠났던 베트남인들의 마음도 이와 같을까. 어느새 <헬로우 베트남>이 나의 애창곡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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