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현 칼럼] 3분 드라마


수필가 김국현(金國鉉)


요즘 우리나라는 트로트 열풍에 휩싸였다. 텔레비전에는 <트로트가 좋아> <보이스 퀸> <미스 트롯>이 절찬 중에 방영되고 있다. 시청률은 웬만한 프로를 훨씬 능가한다. 가수와 관중들이 한마음으로 즐기면서 박수를 치고 흥에 겨우면 일어나 춤을 춘다. <미스 트롯> 대회에 이어 <미스터 트롯> 경연이 펼쳐졌다. 스타가 되는 관문이기에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가수나 가수 지망생들이 구름같이 몰려드는 꿈의 무대이다. 대회는 유소년부와 현역부 등 그룹별로 나누어 예선을 치르고 팀별 대항과 맞수 대결 그리고 결승전으로 이어진다. 출연자들의 경연이 진행될 때마다 당락의 결과로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이곳은 공개된 장소에서 심사위원과 방청객이 한 몸 되어 ‘트롯 맨’을 발굴하는 축제의 현장이다. ‘피겨의 여왕’ 김연아는 “피겨는 7분의 드라마이며, 13년의 꿈과 땀과 열정을 짧은 순간에 보여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단 7분에 승부수를 던지는 것이다. 가요에도 ‘3분 드라마’가 있다. 노래 한 곡을 부르는 3분 동안 자신의 실력을 마음껏 발휘해야 한다. 일 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다.


나는 가수가 꿈인 시절이 있었다. 수많은 관중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꿈도 종종 꾸었다. 가수 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가수 생활이 얼마나 힘든 삶인지, 그런 건 상관하지 않고 오직 노래 부르는 게 좋았고 노래하는 가수들이 참으로 부러웠다. 어릴 때 꿈이지만 아직 희망을 버리지 않았기에 지금도 꾸는 꿈이다. 나는 가요 중에도 트로트를 유달리 좋아했다. 내가 트로트를 처음 접한 건 나이 5살 때였다. 철도역에 근무하시는 아버지를 따라 누나와 함께 한적한 시골집에서 살았다. 틈만 나면 누나에게서 옛날 노래를 배웠다. 내가 처음 알게 된 노래가 명국환씨가 부른 <아리조나 카우보이>였는데 가사 내용도 모르면서 끝까지 부를 줄 알았다. 초등학교 봄 소풍 때 보물찾기에 이어 장기자랑 순서가 되면 선생님과 친구들 앞에서 갈고닦은 실력을 뽐내 보이곤 했다. 집에서도 혼자 있으면 쉬지 않고 흥얼거렸다. 그때 즐겨 부르던 노래는 <섬마을 선생님> <동백 아가씨> <신라의 달밤> 등이었다. 중학교 시절에는 노래 경연에 학급 대표로 나갔고, 고등학교와 대학 신입생 때도 전국노래자랑 지역 예선에 참여하기도 했다.


가요 중에 트로트는 세월에 농익은 소리가 어울리는 장르다. 창공을 나는 독수리의 활강은 숱한 실패의 결과이고, 달콤한 과일도 계절을 넘나드는 인내의 결실이듯 노래도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는 삶의 깊이를 표현할 때 울림이 있다. 대회 출연자들은 인생에서 다시는 오지 않을 기회라는 심정으로 혼신을 다했다. 노래하는 시간만큼은 결과에 상관하지 않고 자신의 모든 걸 보여주는데 만족할 뿐이었다. 어떤 가수는 땀을 흘리며 태권도 시범을 보이고 어떤 이는 마술을 하면서 열창한다. 그들의 열정을 어느 누가 말릴 수 있겠는가. 십수 년 또는 이십여 년 무명가수의 한을 풀어보려는 그들 앞에는 오로지 자신과의 싸움이 있을 뿐이다.


트로트는 세월 따라 흘러가는 유행가이고 나이 든 사람의 몫이라는 건 분명 편견이었다. 오히려 젊은이들이 더 좋아하고 잘 불렀다. 출연자 중에 초등학생도 있는데, 그들의 이야기가 눈물겹다. 아버지가 수술 중에도 자신에게 용기를 주셔서 감사하다 하고, 폐암인 할아버지에게 노래를 선물로 드리고 싶다고 울먹였다. 아이돌 가수들도 트롯을 불렀다. 원래 노래에 춤이 필수인데, 트롯을 하면서도 현란한 춤사위가 어우러진다. <아씨> <너무합니다> <황진이>는 내가 좋아하는 노래들이고, <빈 지게>를 부르는 중저음 가수의 목소리가 꼭 내 스타일이다. 그중에 <봄날은 간다>는 절절하여 듣는 내 가슴이 후련해진다. 좋은 노래는 감정을 녹여내어 듣는 이가 편안해야 한다. 색깔과 기교보다 순수한 원음이 더 아름답다. 학창 시절 나도 그 노래를 학우들 앞에서 목청껏 구성지게 불렀다. 친구들은 막걸리에 취한 채 가락에 맞추어 아무 죄도 없는 술상을 나무젓가락으로 힘차게 두드리곤 했다.


다음은 신동(神童) 출신 차례다. 그들은 어릴 때 신동 소리를 듣고 난 후 지난 십수 년을 트롯에 열중했다. 역시 수준급이다. 여유와 끼가 돋보이고 표정과 목소리와 감정이 흠잡을 데 없다. 이들이 있어 우리의 트롯은 살아있다. 이젠 더 이상 예전의 흘러간 장르가 아니다. 대기실에서는 출연자들이 수고했다고 서로를 치켜세우며 안아주고 토닥인다. 같은 취미를 가지고 노래 인생을 함께하는 이들은 모두가 친구요 선후배이다. 다음 단계 진출자가 정해질 때면 합격을 해도 기쁨보다 미안해하는 마음이 더 아프다. 하지만 승부의 세계는 냉혹하다. 스타가 된다는 희망이 있기에 그래도 지금이 노래 인생의 클라이맥스이자 가장 행복한 시간이 아닐까. 어떤 후보자는 가사를 잊어 현장에서 탈락하고, 음을 놓친 가수는 눈물을 흘리며 통곡을 한다. 이제 누군가 ‘미스터 트롯’으로 선발되면 스타가 될 것이고 나머지는 그 자리에 주저앉게 된다.


그들은 3분에 모든 인생을 건다. 이름도 없이 거리를 헤매는 수많은 가수들은 오늘도 3분에 울고 3분에 웃는다.


저작권자 © NEWS REPORT(www.news-report.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0




상호명 : 뉴스리포트 NEWS REPORT  l  사업자번호 :728-34-00398  발행인 : 정혜미 편집인 : 정연우 청소년보호책임자: 정연우

본사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15-16(국회대로 66길 23) 산정빌딩 7층 ㅣ 이메일 : korea_newsreport@naver.com

부산취재본부 : 부산광역시 남구 문현동 815 한일빌딩 17층 뉴스리포트 ㅣ 본부장 서성원

대표전화 : 02-761-5501 ㅣ 팩스 : 02-6004-5930 ㅣ 등록번호 : 서울, 라 00595 등록일 : 2018.11.19

뉴스리포트의 모든 콘텐츠(영상, 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며, 무단 전재와 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

COPYRIGHT © 2018 뉴스리포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