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현 칼럼] 매창을 그리다

수필가 김국현(金國鉉)


세상에는 사랑을 소재로 하는 가요나 문학 작품이 참 많다. 그중에 사랑하면서도 서로 만나지 못해 마냥 그리워하다 죽음을 맞는 사연은 듣는 이에게 안타까움을 준다. 그건 실제 일어난 일이기도 하고 작가의 상상력으로 창조되기도 하지만, 진실한 사랑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고 작품의 배경이 된 풍경이 궁금해지기도 한다. 북유럽에 있는 노르웨이는 음악이 있고 사랑과 낭만이 넘치는 곳이다. 여행 중에 <솔베이지의 노래>의 무대이자 작곡가 그리그의 고향인 오타(Otta)를 들렀다. 양지바른 산자락의 작은 마을인데 그 앞으로 작은 개울이 송네 피오르로 향해 굽이쳐 지나간다. 깊은 산마루의 빙하가 녹은 맑은 물이 시내가 되었다. 내가 타고 가던 버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으며 그걸 즐겨 부르던 대학시절의 풋풋한 추억이 되살아난다. 이루지 못한 사랑의 상처를 가요로 승화시켰지만 곡조가 그윽하고 아름다워 들을수록 여운이 남는 곡이다.



겨울 지나고 봄 돌아오면 봄 돌아오면

그 여름이 시들어 세월 흐르네 세월 흐르네

그대 돌아오리 오리라 오리라 나의 그대여

나 기다리겠네 우리 약속했듯이 그대 기다리리 (중략)

이 노래는 그리그가 극작가인 입센의 부탁으로 작곡한 <페르귄트> 모음곡 중 일부에 해당하는 것으로, 서정적이고 슬픈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가난한 농부 페르귄트는 아름다운 소녀 솔베이지와 사랑하여 결혼을 약속한 후 돈을 벌기 위해 집을 떠나고, 십여 년의 갖은 고생 끝에 지친 몸으로 고향에 돌아온다. 하지만 어머니가 살던 오두막집에는 사랑하는 솔베이지가 백발이 되어 혼자 페르귄트를 맞는다. 늙고 병든 페르귄트는 솔베이지의 무릎에 누워 조용히 눈을 감는데, 솔베이지도 꿈에 그리던 페르귄트를 안고 이 노래를 부르며 연인을 따라간다. 만남과 이별은 사랑의 진수(眞髓)다. 이별이 죽음 때문이라면 그 사랑은 더욱 애달프다. 노르웨이에 페르귄트와 솔베이지의 사랑이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유희경과 매창의 사랑이 있다. 두 이야기는 모두 기약 없는 기다림과 서로에 대한 그리움, 죽음으로 끝나는 애잔함이 같고, 한 남자에 대한 여인의 절개와 가슴앓이가 시가 되어 음률로 표현된 게 또한 닮았다. 솔베이지의 노래가 매창의 거문고 소리였고, 노래의 가사는 매창과 유희경이 사랑을 고백하며 나눈 시문(詩文)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신분이 다른 남녀 간의 사랑은 금기로 여겼기에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이야기가 많이 있다. 그중에 으뜸은 비록 천민 출신이지만 자신의 노력으로 양반의 반열에 오른 유희경과 시문에 능한 부안의 명기 매창의 사연이다. 지인의 부름으로 찾아간 부안의 기방에서 유희경은 매창을 처음 본 순간 연정을 느꼈다. 두 사람은 시를 짓고 풍류를 즐기며 사랑이 싹텄는데, 헤어진 후 한참 지나서야 변산 지역에서 재회의 기쁨을 나누었다. 하지만 예를 중시한 유희경은 기생을 첩으로 데려갈 수 없어 홀로 떠났고, 그 후 그들은 다시는 만날 수 없었다. 한평생 부안을 떠나지 않은 매창은 고독과 질병에 시달리다 마흔도 안 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유희경은 매창의 죽음을 안 후 망연자실하다 그녀의 무덤 앞에서 오열했다고 전해진다. 해후 과정에서 서로에게 느낀 애틋한 감정은 다음의 시에서 엿볼 수 있다. 두 번째 시는 매창의 유희경에 대한 그리움의 극치로서, 시간적 배경은 비처럼 쏟아지는 오월의 배꽃이다.

그대의 집은 부안에 있고
나의 집은 서울에 있어,
그리움 사무쳐도 서로 못 보고
오동나무에 비 뿌릴 제 애가 끊겨라

-유희경 <매창을 생각하며>

이화우 흩뿌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낙엽에 저도 날 생각는가
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매

-매창 이계랑 <이화우 흩뿌릴 제>


사랑은 보고파 하는 그리움이요 애타는 기다림이다. 진정한 사랑은 그리움이 있기에 기다릴 수 있고 다시 만난다는 희망이 있어 아름답다. 하지만 이야기 주인공들의 인연은 죽음밖에 떼어낼 수 없기에 슬픈 것이다. 이번 봄에는 부안 매창공원에 있는 매창의 무덤을 찾을까 싶다. 거기에 시비(詩碑)도 있다 하니 매창을 기리고 유희경과의 사랑을 추모하기에 적당하리라. 시는 전해오지만 임을 그리던 매창의 거문고 소리는 세상에 남아 있지 않으니 어떤 곡조였을지 더욱 궁금해진다.


글/김국현 전 한국지방재정공제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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