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현 칼럼] 감자 심는 날

수필가 김국현(金國鉉)


밀레의 작품 중에 <감자 심는 사람들>이라는 그림이 있다. 소 한 마리가 바구니에 담긴 아기 곁을 지키고, 밭에서는 부부가 농사일을 하고 있다. 남편은 땅을 파고 아내는 감자를 심는다. 그 그림이 세상에 나오자 사람들은 ‘가난’을 떠 올렸다고 한다. 그 당시 감자는 동물 사료로 쓰였는데 이 부부가 빵 대신 감자를 식탁에 올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겐 비록 가난하지만 한 가정의 단란하고 행복한 모습이 보일 뿐이다.


내가 어린 시절, 시골 과수원 밭에서 키운 감자와 고구마를 광에 넣어두었다가 온 가족이 겨우내 꺼내 먹었다. 연탄불에 구워 먹기도 하고 쌀이 귀한 탓에 감자로 끼니를 때울 때도 있었다. 나는 감자를 무척 좋아했다. 삶은 감자 중에 크고 잘생긴 놈을 서너 개 골라 그릇에 담고 짓이겨 평평하게 하고는 숟가락으로 한 숟갈씩 떠서 먹는 맛이 일품이었다. 그런데 그 감자를 내가 직접 심었다.


그건 정말 행운이었다. 농부가 농사짓는 모습이 그리 보기 좋을 수 없었는데, 내게도 마침 기회가 왔다. 내가 사는 동네에 은퇴자들로 구성된 사회봉사단이 있다. 그 모임에 가입하고 나서 얼마 지난 후 텃밭 가꾸기 행사에 참여하였다. 단원 중 한 분이 희사한 밭에서 추수한 감자와 고구마를 교회나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일이다. 텃밭은 비행장 건너편 산 중턱에 있는데 예전에 자갈이 많아 버려진 땅을 일구어 제법 밭 모양을 갖추었다.


겨울 동안 황폐하고 단단해진 밭을 갈고 감자를 심었다. 삽과 곡괭이로 땅을 파서 고랑을 내고 흙을 올린 후 그 위에 거름을 얹고 흙과 섞어 봉긋하게 예쁜 이랑을 지었다. 씨감자를 준비했다. 종자상회에서 박스로 구입하여 크기에 따라 싹이 상하지 않게 등분을 한다. 거름을 묻은 이랑을 비닐로 씌운 후 윗부분에 구멍을 내어 씨감자를 하나씩 넣고 흙을 덮는다. 거기에 물을 주면 작업이 끝난다. 처음 해 보는 일이라 만만치 않았다. 서투른 삽질과 곡괭이질로 허리가 아프고 어깨도 쑤셨다. 서로 도우며 함께 하다 보니 한나절 동안 일곱 이랑을 일구었다.


일하면서 요철의 원리를 배웠다. 비닐 아래의 흙을 파낸 자리 위에 판 흙을 덮으면 비닐이 고정되어 바람이 불거나 비가 와도 유실될 염려가 없다. 잘못된 일을 나무라고 마음을 상하게 하더라도 바로 위로하고 다독여주면 관계가 돈독해지고 허물어진 가슴도 단단해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리고 연작(連作)을 피해야 한다. 올해 감자를 심으면 내년에는 그 자리에 고구마를 심는 원리다. 토양은 정직하다. 흙은 충분한 영양소를 만들어 작물을 키우는 데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다. 텃밭 가장자리에 판자로 된 울타리가 둘러쳐 있다. 그 아래에 호박 구덩이를 파고 거름을 주었다. 호박은 거름을 많이 먹기에 구덩이를 크고 깊게 파야 한다. 덩굴을 넓게 뻗으며 많은 열매를 맺으니 그 터가 되는 자리는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감자밭이 호박 덩굴과 어울리니 풍족한 가을걷이를 기대할 만하다.


드디어 감자 싹이 올라왔다. 씨감자를 심은 지 스무날이 지났다. 감자 심은 다음날 비가 왔는데 그 덕분에 씨감자가 힘차게 태동을 시작했나 보다. 잎 모양이 억세 보이기는 하지만 올망졸망하니 앙증맞기는 다른 채소의 어린잎과 매한가지이다. 이제 줄기가 굵어지고 뿌리가 자리를 잡으면 투박한 흙 속에서 서로 엉키며 기운찬 생육으로 몸부림치리라. 때로는 자갈도 만나고 큰 바위도 마주치겠지만 온갖 장애를 이겨내며 성큼성큼 자랄 것이다.


감자가 주렁주렁 달리는 모습은 일상에서 얻은 작은 영감이 깊은 고뇌와 사유의 과정을 거쳐 주제 의식을 가진 한 편의 글을 완성하는 것과 닮았다. 흙이 거름과 하나 되어 작물을 더 잘 자라게 도와주는 건 작가의 체험을 소재에 대한 애정과 지혜의 자양분과 합할 때 좋은 글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고, 거름을 준 이랑에 비닐을 덮는 건 글의 초안을 잡은 후 숙성시키는 과정과 같다. 작은 씨감자가 척박한 환경 속에서 알토란같은 감자를 키워내는 것 또한 작가 자신의 삶이 비록 메마르고 고단하여도 순수한 감성의 열매를 맺는 것과 견줄 만하다. 그러기에 감자 심는 일은 그 열매가 세상을 풍요롭게 하고 뭇사람의 기분을 넉넉하게 하기에 글쓰기만큼 숭고하다 아니 할 수 없다.


밭작물은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고 하니 물도 주고 고랑도 보살피러 감자밭에 틈만 나면 다녀가야겠다. 비닐에 덮인 이랑을 바라보며 올 여름의 풍성한 결실을 꿈꾸어 본다. 요즈음은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다.


글/김국현 전 한국지방재정공제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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