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현 칼럼] 마중물


 수필가 김국현(金國鉉) 


요즘 행정부나 정치권에서 ‘마중물’이라는 말을 종종 사용한다. 정부 예산을 확보하는 명분이나 정책의 타당성을 설명하고 국민의 동의를 얻기 위해서다. 예를 들면 남북협력기금이 남북 간 경제협력을 위한 마중물이라는 논리이다. 마중물이란 원래 땅속에 있는 지하수를 끌어올리기 위해 펌프에 붓는 물을 말한다. 샘물을 ‘마중하러 가는 물’이라는 뜻이다. 어릴 적 할머니가 사시는 큰댁 마당에는 펌프가 있었다. 펌프에서 나오는 물은 늘 맑고 깨끗하여 주로 식수로 쓰였는데, 더운 여름날 등목을 하면 그리 시원할 수 없었다. 겨울 추위에 바닥이 얼어있으면 그 위에 더운물을 붓기도 하고, 한동안 쓰지 않고 두었을 때는 물을 바가지째로 부어 펌프질을 여러 번 해야 물이 나왔다. 나는 하얀 물방울을 튀기며 콸콸 쏟아지는 모습이 신기하기도 했지만, 위에서 넣은 물이 어디로 갔는지 늘 궁금했다. 아무래도 지하수를 뿜어내고는 자신은 땅속에서 사라지거나 새로 나온 물에 섞여 흘러나오다가 바깥으로 버려지는 것 같았다. 완전한 자기희생의 실천자인 셈이다. 그러고 보니 정부나 정치권에서 사용하는 마중물이라는 용어는 본래의 의미를 다소 과장해서 사용하는 건 아닌가 싶다.


세상의 마중물이 되라는 교훈적인 말이 있다. 여행 중에 어느 가족이 가평 인근에서 마을에 버려진 펌프를 찾았다. 펌프에 펌프질을 하여 물이 나오는 모습에 신기해하는 어린 손자들에게 할아버지가 “얘들아, 마중물 같은 사람이 되어라”고 말했다. 얼마나 순수한 바람인가. 마중물이 되려면 무엇보다 남을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 손자들이 그럴 수 있기를 할아버지는 간절히 소망했을 것이다. 부부의 경우도 이와 같다. 자신보다 배우자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참 부부의 모습이다. 어느 연예인의 주검 앞에서 미망인이 조문객들을 향해 “아내에게 잘하세요. 그러면 기쁨이 옵니다.”라고 했다. 남편에게 얼마나 한이 되었으면 그런 말을 했을까.


마음이 닫혀있는 사람이 자신의 아픈 감정을 위로하거나 공감해주면 가슴 속 응어리를 스스로 풀어내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때로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거나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상담사가 우울증 환자를 치료할 때도 이런 방법이 적용된다. 이럴 때는 위로와 공감이 일종의 마중물이 아닌가 싶다. 마중이 이루어지려면 마중하는 사람의 마음에 사랑이 있어야 한다. 마중이란 인간 사랑에 그 뿌리가 있다. 동구 밖에서 자식을 기다리는 어머니나 유명 인사를 환영하러 공항에 나간 팬들, 출근한 남편을 기다리는 신혼의 아내…. 그들의 기다림에는 사랑이 있기에 쉽게 지치거나 싫증을 내지 않는다. 자식을 만나 함께 집으로 들어오는 어머니의 얼굴에는 기쁨이 넘쳐 있고, 신혼의 아내는 기다리던 남편을 포옹하며 자기 사랑을 확인한다. 마중물은 때로는 낚시와도 같다. 낚시는 세월에 물음을 던져 놓고 답을 건져 올리기 위해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기에 마중물은 ‘물음’이라 해도 맞지 싶다. 마중을 나가도 오고 안 오고는 상대방의 마음에 달렸다. 하지만 기다림에 지극 정성이 있다면 만남이라는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 마련이다.


물을 먹고 싶다면 마중물을 부어야 하듯 대접을 받고 싶으면 먼저 남을 대접해야 한다. 세상이 자기를 사랑하고 유익을 주기만을 기다리기보다 자기 스스로가 세상을 향해 사랑과 도움을 주러 나서면 사람들이 다가와서 행복을 안긴다. 인간관계란 좋은 파트너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파트너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주변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값진 선물은 이력서에 써넣을 성과물이나 보기 좋은 상품 따위는 아닐 것이다. 우리의 행복한 모습이나 즐거운 표정이 진짜 선물이자 값진 보물이다. 


마중물 역할 중에 어느 것보다 나서기 어렵고 남다른 용기가 필요한 게 있다.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들춰내 변화를 유도하고 바람직한 사회를 만드는 일이다. 어떤 때는 반대하는 집단의 방해 때문에 어려움이 있지만 인내와 끈기로 사회의 녹슨 펌프를 움직여 대중의 호응을 이끌어내기도 한다. 그들의 노력과 숭고한 정신이 있기에 우리 사회는 살만한 세상이 된다. 하지만 샘물이 마른 곳에는 마중물을 아무리 부어도 소용이 없다. 마중물이 제 구실을 하려면 땅속에 샘물이 넘쳐나야 한다. 우리 사회는 부조리가 만연하고 사회 곳곳에 병폐와 고장 난 곳이 많이 남아 있다. 무엇보다 정의를 우선하고 상식이 통하는 사회, 자신의 유익보다 이웃 사랑을 소중히 여기는 사회가 된다면 용기 있는 마중물은 곳곳에서 살아나리라. 남을 위한 희생정신과 나라 사랑이라는 따뜻한 샘물이 사회 저변에 흐르고 그것을 서로의 발전을 위해 공유하는 사회, 그런 사회는 아직 유토피아 같은 희망 사항에 불과한 일일까. 오늘은 나도 세상의 마중물이 되고 싶어 내 마음의 작은 촛불 하나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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