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현 칼럼]내 이름은 산천어

 수필가 김국현(金國鉉)  


강원도 깊은 산기슭에 자리 잡은 양식장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그때만 해도 우리는 행복했다. 어미에게서 헤엄치는 기술을 배우고 때맞춰 던져주는 먹이를 즐겼다. 그러던 사이에 비늘도 자라고 유선형의 아름다운 몸매에 살도 적당히 올랐다. 주인이 외출한 날에는 우리끼리 뷰티 축제를 열었다. 순서에 따라 몸을 한 바퀴씩 돌기도 하고 은빛 비늘이 햇빛에 반짝이면 꼬리를 흔들어 보이며 서로를 격려했다. 물 위로 스며드는 계절의 향기도 즐기고 나무에 앉은 새들과도 동무되어 노닐다가 지나가는 구름 그림자를 따라 다니며 빠끔빠끔 입질도 했다. 바람에 이는 물결이 지느러미에 닿을 때면 부드러운 감촉으로 기분이 참 좋았다.


어느덧 우리들의 보금자리에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가 싶더니 물 위로 낙엽이 쌓이면서 서서히 추위가 닥쳐왔다. 우리는 물 속 깊은 곳으로 파고들며 잠을 청해보기도 했다. 그러다 언제부턴가 먹이를 한 끼도 못 먹는 날이 거듭되었다. 배가 고프지만 참았다. 어느 아침나절 머리로 그물망이 던져진 이후 우리들의 고난 여행은 시작되었다. 난데없이 나타난 물차에 태워진 채 쉬지 않고 출렁이는 물결 따라 이리저리 부딪히고 흔들리며 정처 없이 떠났다. 곁에 있던 친구는 한쪽 구석으로 휩쓸려가고, 나도 자세를 바로잡으려 애를 써 보지만 몸을 가누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차가 정지하고 한참 잠잠하다 싶더니 갑자기 문이 열리고 우리들은 물에 휩쓸려 속절없이 바깥으로 쏟아졌다.



나는 하마터면 미끄러져 얼음 바닥에 나뒹굴 뻔했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물고랑 사이로 쏜살같이 들어가 한숨을 돌리며 서늘한 물속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먹잇감을 찾는 맹수마냥 눈알에 광채가 났다. 이제 배불리 먹을 것도 생기고 자유를 찾아 넓은 세상으로 나아간 줄 알았다. 그 안이 바다 속 같기도 하고 흐르는 강물인가 싶기도 했다. 수많은 사람들의 노리개 감이 되었다는 건 꿈에도 몰랐고 여기가 죽음의 축제장인 건 상상도 하지 못했다. 바로 곁에 있던 친구가 갑자기 사라졌다. 눈앞에서 아른거리며 둥둥 떠 있는 찌를 물던 모습을 본 게 끝이다. 그를 찾아 돌아다녔지만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혼자서 얼음 밑을 몇 바퀴 돌고 있는데 위에서 차 소리가 들리더니 물이 쏟아지면서 나와 닮은 물고기들이 통로 쪽으로 곤두박질하며 들이닥쳤다. 서로 낯이 설고 환경이 생소하지만 우리는 그런 걸 살펴볼 겨를이 없었다. 사방에서 얼음에 구멍 뚫는 소리가 들렸다. 힐끗 쳐다보니 빛이 새 들어오고 그 너머로 동그란 하늘이 빼꼼 얼굴을 내밀며 무심히 안을 들여다본다. 얼음 위에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났다. 처음에는 우리의 날쌔고 멋진 모습을 구경하러 온 줄만 알았다. 조금 지나자 새끼 생선들이 물속을 오르락내리락한다. 가느다란 줄에 매달린 것처럼 보였는데 그게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햇빛에 어른거리는 내 모습이 문득 스치고 지나간다. 입은 헤졌고 비늘은 군데군데 벗겨지고 짓이겨졌다. 얼마 전 고향집에 있을 때 내 모습과는 너무나 다르다. 같이 지내던 친구들은 온데간데없고 마땅히 먹을 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럭저럭 고향을 떠난 지 달포가 된 듯싶다. 그동안 사람들 손에 잡히지 않고 용케도 살아왔다. 기적이다. 하지만 그게 어디 살아도 산목숨이던가. 지옥이 따로 없었다. 여기저기서 낚싯줄에 아가미나 주둥이가 걸려 올라가는 친구들을 수도 없이 보았다. 그 모습이 예사롭지 않았다. 꾀가 났다. 배가 고파도 참으면서 입을 꼭 다물고 줄 사이를 피해서 다녔다. 얼음 위에는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잡았다”고 환호성을 질러댄다. 건너편 웅덩이에서 철퍽거리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사람들이 물속에 들어와 맨손으로 고기를 잡느라 아우성이다. 친구들은 도망가고 사람들은 쫒아다닌다. 어떤 사람이 맨손으로 한 마리 잡더니 자기 입에 넣고 두 손을 치켜들며 소리를 질러댄다. 그 친구의 부릅뜬 두 눈알에는 핏기가 서렸다.


그렇게 지난 시간이 얼마나 되었을까. 갑자기 얼음 밑에 있던 물이 빠지고 커다란 비닐봉지가 보이는가 싶더니 힘쓸 겨를도 없이 거기에 담겨져 꼼짝할 수 없었다.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나도 모르게 공중으로 들려지는 느낌이 들었다. 목이 말랐다. 햇살이 그렇게 따가운지 처음 알았다. 온몸에 힘이 빠지고 나른한 기운이 감돌더니 금세 잠이 온다. 꿈인지 생시인지 내가 먼바다를 항해하며 자유롭게 헤엄을 치고 있었다. 생기가 조금 나기에 바깥을 내다보니 어느덧 밤이 으슥하여 어디가 어딘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다시 피로가 몰려오더니 의식이 몽롱하다. 환한 불빛에 눈이 부셔 잠에서 깼다. 어느 식당 앞이다. 사람들의 두런거리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린다. 나를 흥정하는 소리 같다. 여기가 나의 끝이란 말인가. 나는 이제 어디로 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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