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현 칼럼] 번제(燔祭)

 

수필가 김국현(金國鉉)  


영화 <항거: 유관순 이야기>를 보았다. 3.1만세운동 이후 일본 헌병에 체포되어 서대문 형무소에서 1년여 간 옥살이를 하다 방광파열과 영양실조로 순국한 유관순 열사의 마지막 삶을 그린 영화다. 


유관순은 옥사에서 갖은 고문과 핍박 속에서도 일제와 당당히 맞선 진정한 용사였다. 그녀는 세 평 남짓한 좁은 감방에서 30여 명의 죄수들과 함께 지냈다. 속옷도 없이 옷 한 벌로 사계절을 보내며 다리가 붓지 않으려고 온종일 방을 돌고 잠도 번갈아가며 자면서 서로 감싸 안으며 차디찬 겨울을 견뎌냈다. 그녀는 “만세를 시킨 사람은 바로 일본 때문이다”라고 하며 스스로가 죄수임을 거부하였다. “최후의 일인까지, 최후의 일각까지 떳떳하게 외치라”고 하면서 감방에서도 만세운동을 주동했다. 이 영화는 차가운 시대 상황과 조국 독립을 향한 뜨거운 가슴이 한데 어우러진 독특한 구성과, 죽는 순간까지 일제 침탈에 저항한 열사와 그 주변 인물들의 민족의식을 펼쳐보임으로 관객들이 숨을 죽이며 감동하기에 충분한 작품이다. 


성경에는 ‘번제(燔祭)’라는 말이 나온다.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께 올리는 제사에 살아있는 소나 양을 잡아서 태우는 의례가 있었다. 동물의 피는 속죄(贖罪)의 의미를 가졌고 태우는 것은 그 향기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뜻이 있었다. 그 중에도 번제란 버리는 것 없이 전부를 태우는 제사로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바치는 완전한 헌신과 희생을 상징한다.  그 후 신약 시대로 접어들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시고 인간의 죄를 대신 지심으로 동물을 죽여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는 끝이 났다. 이처럼 번제에는 반드시 희생 제물이 따른다. 십자가를 지고 돌아가신 예수님이 희생 제물이고 십자가는 번제단(燔祭壇)이었다. 역사적으로도 어려운 상황에 처한 민족이나 인류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몸과 마음을 바친 분들이 있다. 아프리카 선교사로 노예를 해방시킨 영국의 리빙스턴, 생명을 경외한 의사 슈바이처, 인도의 평화주의자 간디는 고난당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구제한 위대한 인물들이다. 우리나라에는 안중근·윤봉길·유관순 같은 독립운동가와 시인 윤동주, 김주열·박종철·이한열 등 민주화운동 희생자들도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극복하고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 


그 외에도 국민의 안전을 지키다 희생된 구조대원과 의인들, 목숨이 다할 때까지 교단을 지킨 교사, 전쟁이나 훈련 중에 전사한 군인, 일제에 항거하다 순교한 성직자들이 있다. 그들의 이상은 영원한 생명력을 갖고 지금도 우리 곁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어느 목사님 말씀처럼 의로운 자의 죽음은 우리 죄를 대신하는 대속(代贖)의 능력이 있다. 우리는 그들에게 빗진 자의 의식으로 살아야 하고, 다른 사람이 우리를 위해 희생하였듯 우리도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할 수 있어야 한다. 영화 <항거>를 통해 우리 곁으로 다가온 유관순 열사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어릴 때부터 고집이 세고 자기주장이 강한 성품을 지녔다. 잔 다르크처럼 나라를 구하고 나이팅게일 같은 천사가 되기를 원했다. 그 소망대로 열사는 죽는 날까지 조국과 민족 사랑의 꽃을 피웠다. 그녀는 인류를 구원하러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본받아 조국 독립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바친 희생양이었다. 일제 탄압에 허덕이는 우리 민족을 지켜낸다는 숭고한 이념의 실천자였다. 그러기에 유관순은 예수님을 닮아 희생과 헌신의 본이 된 현 시대 번제의 표상이다. 


올해는 3.1 만세운동 100주년이 된다. 순국선열의 넋을 위로하고 그들의 희생정신을 기려 민족의 자긍심을 높이는 뜻 깊은 해다. 이제 그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하는 일이야 말로 살아있는 우리들의 책무이다. 하지만 지난 100년 동안 과연 우리는 무엇을 하였는가. 언제까지 그들의 희생을 기억하는 데만 열중하겠는가. 최근 우리 사회에는 국론이 분열되고 좌우 이념 대립이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한 민족 단합이라는 3.1 정신은 사라져가고 자기만 옳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상황이다. 그러기에 지금이야말로 3.1 만세운동의 민족정신을 되새기고 다시 실천할 때다. 우리도 유관순 열사처럼 국가와 사회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번제의 삶을 살아야 한다. 무엇부터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는 국민 각자의 몫이다.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요?” 감옥에서 단식하던 유관순에게 급식을 넣어주던 한국인 죄수가 물었다. “그럼 누가 합니까” 열사는 그렇게 대답했다. 이것이 항거요, 자기희생의 실천이다. 


글/김국현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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