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현 칼럼]노숙자의 꿈


뉴스리포트 4월호

수필가 김국현(金國鉉)  


겨울 혹한에 온 세상이 얼어붙고 사람들은 몸을 외투 속에 깊숙이 파묻은 채 총총 걸음으로 분주하다. 서울역 지하도에 남대문경찰서로 나가는 통로 뒤로 여러 갈래의 줄이 길게 늘어섰다. 마치 갯벌 속에서 분탕질을 한 시커먼 문어발 같다. 

 

끝이 어딘지 보이지도 않는다. 거기에는 노숙자 행색을 한 노인 수백 명이 오전 내내 목을 빼고 기다리고 있었다. 어디서 그리 모였을까. 대열에서 이탈하지 않으려고 모두 초조하게 앞만 바라보고 있다. 

 

 마음씨 좋아 보이는 할머니에게 물었다. “할머니, 지금 뭐하려고 여기 서 계세요?” 할머니는 주름이 깊은 눈꺼풀을 깜박이며 대답했다. “나도 몰라. 남들이 서 있으니 나도 따라 서 있어.” 그 연유가 더욱 궁금해졌다. 나중에 알고 보니 ‘꽃동네’에서 생활이 어려운 분들에게 겨울 외투를 공짜로 나눠준다는 소문을 듣고 사방에서 몰려온 사람들이다. 

 

‘꽃동네’는 한 사람도 버림 받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어느 신부님이 설립한 복지시설의 이름이다. 웅성거리는 기척이 들리는가 싶더니 앞쪽에서 몇 사람이 뛰어 나가자 줄이 잽싸게 흐트러지며 서로 먼저가려고 난리다. 어떤 이는 절뚝거리며 뛰어가고 어떤 사람은 앞 사람 어깨를 움켜잡으려 허우적댄다. 두 눈을 부릅뜬 건 분명 생존의 몸부림이었다. 나는 하마터면 몰아치는 인파 속에 휘말려 바닥에 넘어질 뻔했다.


노숙자는 우리 사회의 병들고 어두운 그림자이다. 사업에 실패하여 살 집을 잃었던지 변변한 직업 하나 없어 수입이 바닥났거나 질병을 앓고 가족에게 버림받은 사람들이다. 이 현상은 모두 사회 안전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당연한 귀결임에 틀림없다.


나도 찬바람 부는 겨울날 산기슭에서 하룻밤 노숙을 한 적이 있다. 군 복무 중에 작전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잠자리가 여의치 않으니 극한 상황에서 무엇을 못할까. 부끄러움이나 창피한 것도 없었다. 동네 논바닥에 눕혀 둔 볏단을 한 아름씩 짊어지고 평평한 나무 아래에 둥지를 텄다. 겨울 밤하늘이 그리 멀고 아득한 걸 그때 알았다. 그날 밤 품속이 따뜻했던 까닭인지 내 가슴 속으로 별이 날아오는 꿈을 꾸었다. 아침이 나른하기에 하루 더 지내고 싶었지만 오전에 철수하여 부대로 돌아간다니 한편으로 섭섭하기까지 했다.

 

이 사회의 노숙자들도 세상 근심과 끈적한 인연에서 떨어져 있으니 영혼이 자유롭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건 아닐까. 포기하는 게 많으면 배짱도 생기는 법이다. 한 번 선택으로 그런 생활에 젖어 습관이 되는 건 순식간이다. 그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면 평생을 그렇게 살다 간다.


노숙이란 말은 원래 ‘바람 속에서 먹고 이슬을 맞으며 잔다’는 풍찬노숙(風餐露宿)에서 나온 말이다. 광화문 네거리 지하 통로에 밤이 어스름할 때면 어김없이 박스 종이 몇 조각 들고 잠자리를 찾는 사람들이 있다. 잠시 주위를 살피다 한쪽 구석에 자리를 깔고는 세상을 등지려고 벽 쪽으로 돌아눕는다. 헤진 침낭과 컵라면 한두 개가 전부다. 그들은 차디찬 바닥에서 밤을 지새우며 무슨 생각을 할까. 그나마 자리에서 털고 일어나 가족을 만나거나 본래의 자기 모습을 찾으러 가는 꿈을 꿀까, 아니면 아무 생각 없이 배고픈 것도 잊으려 잠만 청하고 있으려나. 오늘은 단지 누가 옆에 와서 자리를 떠나라고 해코지나 하지 않을까 그게 염려될 뿐이다.


 그들에게 신체가 건강하면 뭐라도 하고 살아야지 마냥 게으르고 자포자기해서야 되겠냐고 등을 떠미는 건 배부른 자의 무책임한 소치다. 그들의 입장이 되어보기 전에 어떤 생각을 하고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노숙자의 절반은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다.


지하철역 올라가는 계단에서 구걸하는 사람을 만났다. 지갑에서 천 원짜리 지폐를 하나 꺼내 녹슨 스테인리스 그릇에 살며시 올려놓았다. 지나가는 사람이 ‘교회 다니세요?’라고 묻는다. 내 모습이 그렇게 보였나보다. 바닥을 뚫고 들어갈 듯 고개를 깊숙이 숙인 모습이 세상을 향해 꼿꼿이 서려면 아무래도 시간이 꽤나 걸릴 것 같다. 그들에게서 강가에 있는 갈대가 연상되었다. 지금은 비록 뿌리가 약해 바람이 불면 속절없이 흐느적거리지만 언제든 다시 일어서는 꿋꿋함을 보고 싶은 까닭이리라.


카프카가 살던 집에 다녀온 어느 작가의 여행기를 읽은 적이 있다. 조그만 방 하나에 숲이 보이는 창문이 전부였다. 작은 책상 하나 없고 살림살이도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그는 거기서 사색을 하고 글도 쓰고 바깥세상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나의 집은 비록 작지만 방이 있고 소파가 놓인 거실도 있다. 서재는 없지만 안락한 식탁이 있어 글을 쓰고 책도 읽는다.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누울 자리가 있고 아내가 차려주는 따스한 밥 한 그릇에 김치 깍두기와 된장찌개면 족하지 않는가.

 

오늘따라 잠자리가 유난히 포근하다. 작은 담요 한 장 덮었는데 온 세상이 나를 감싼 듯하다.  노숙자들도 따뜻하게 몸을 녹이며 좋아하는 별자리 꿈을 꾸었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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