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현 칼럼] 외갓집 풍경

수필가 김국현(金國鉉)


경북 예천의 금당실 마을은 내 어머니의 친정집이 있는 곳이다. 친정집은 마을 입구 첫 집으로, 가지런히 잘 정돈된 세 갈래 길이 모이는 곳에 있어 방문객의 눈에 잘 띈다. 그 집에는 ‘덕을 지닌 용’이라는 뜻을 가진 ‘덕용재(德龍齋)’라는 택호가 붙어 있다. 집 대문에 들어서니 오른편 담 쪽에 있는 향나무가 나를 반긴다. 수령이 백 년은 됨직하니 집채보다 더 크고 가지와 잎이 무성하여 예전의 풍요롭던 집안 분위기에 걸맞다. 지금은 다른 성씨 집안에서 매입하여 살고 있는데, 허허로이 넓은 마당에 진돗개만 한가롭게 집을 지키고 있다.


초가집 한 채가 대문을 대신하여 앞에 섰고, 마당 너머로는 기와집이 미음(ㅁ) 자를 하고 있다. 집은 문설주와 대청마루에 세월이 검게 내려앉았고 지붕 위에는 푸른 이끼가 자욱하다. 처마 끝 아래의 땅에 빗방울 떨어진 자국이 선명하고, 부엌 앞 작은 마당에는 따뜻한 기운이 감돈다. 안으로 들어서니 안채에서 어머니가 나를 반기며 달려 나오실 것만 같다. ‘니가 이 집에도 다 와보고. 어서 들어온나.’ 그러시는 소리가 귓전에 맴돈다. 사랑방에서는 근엄하고 자그마한 외할아버지가 나와서 나를 맞아주시려나 싶다. 어릴 때 나의 고향 집에서 몇 차례 뵌 적이 있는데, 어머니가 극진히 모시며 정성스레 큰절을 올리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곳은 어머니의 향수가 깊이 서려 있지만, 나에게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치는 곳이다.

 

그 집은 근래까지 장남인 큰외삼촌이 외조부를 모시고 살았다. 큰외삼촌은 젊어서 작은 외숙모를 소실로 두셨는데, 자식이 많은 데다 모두 한집에 같이 살면서 갈등이 깊어져 집이 조용할 날이 없었다고 한다. 친정집이 편치 못하니 어머니도 마음 졸이는 세월이 참으로 길었다. 늘 한숨과 걱정에 때로는 원망도 많으셨다. 어머니가 친정 소식에 가슴앓이하는 건 그만큼 부모와 형제들 간에 사랑이 지극했던 까닭이 아니겠는가. 


내가 찾은 금당실 마을은 따뜻한 햇볕에 구름도 쉬어 가는 한가로운 오후였다. 이 마을은 정감록에 나오는 십승지지(十勝之地)의 하나답게 고즈넉하고 평화롭기 그지없다. 마을 뒤로는 병풍처럼 산이 둘러쳐 있고 앞으로는 회룡포로 가는 금곡천이 유유히 흐른다. 오수를 즐기다 나그네 발자국 소리에 마을 전체가 잠에서 부스스 깨어난다. 집 앞에서 동네 이장님을 만났다. 마을뿐 아니라 외갓집 내력도 훤하다. 큰외삼촌이 하시던 묘목 사업이 어려워지자 가세가 기울어 외조부님이 돌아가신 후 집을 팔고 타지로 이사를 갔다고 전한다.

 

마을 곳곳에는 말라버린 담쟁이와 장미 넝쿨이 담을 타오르다 지쳐 턱을 괴고 엎드렸고, 어느 대갓집 앞뜰에는 빨간 산수유 열매가 대롱대롱 달려 있다. 황톳길은 정갈하여 지나는 사람들도 조심스러운데, 돌담은 길을 따라 낮게 드리워져 자그마한 어머니 모습이 연상되니 살갑기 그지없다. 근심 걱정이 끊이지 않아도 늘 마음이 평온하여 말이 없으시던 어머니 모습이 이곳에 투영되어 있다. 주어진 환경을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삶의 태도를 어머니는 이곳 금당실에서 배운 것이리라. 이 마을은 이백 가구가 넘는 기와집이 즐비한 데다 담장도 닮고 골목길이 깊어 한 번 들어가면 쉽게 돌아오기 어렵다. 어머니의 삶 또한 마을 길을 닮지 않았을까. 여유롭지 못한 살림살이가 힘들었지만 슬기롭게 인내하며 당신의 지혜로 극복하셨다. 가정사가 늘 실타래같이 얽혀도 하나씩 풀어가며 어려운 일을 잘도 해내셨다. 작은 몸으로 거인의 역할을 하신 것이다.

 

금당실 건너편 산을 돌아가면 ‘맛질’이라는 마을이 나온다. 그 마을은 어머니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다. 어머니가 출가하고 난 뒤 외갓집은 금당실로 이사 갔으니 어머니는 친정에 일이 있으면 줄곧 금당실로 내왕하셨다. 비록 생가는 허물어지고 터만 남았지만 지금도 마을 앞으로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고 기와집들이 정갈하게 앉아 있다. ‘금당과 맛질을 합하면 서울과 흡사하다.’는 말이 있을 만큼 두 마을을 이으면 근사한 옛 도회지를 이룬다. 그러니 어머니의 친정집을 세상에 내놓고 자랑할 만하지 않겠는가.

 

금당실 마을 어귀에서 구슬픈 아리랑과 즐거운 농요 소리가 이어진다. 이 고장에는 예로부터 소리꾼이 많았다. “노세 노세 갱마쿵쿵 노세…”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세상천지 못할 짓은 남의 집 종살이…” 어머니는 일을 하실 때나 음식을 장만할 때 흥얼거리곤 하던 특유의 곡조가 있었다. 이제 보니 그 노래가 맛질과 금당실에서 익힌 건 아닐까 싶다. 어머니의 구슬픈 노래 소리가 친정집 안채에서 낭랑히 새어 나오는 것 같다. 가던 길을 멈추고 잠시 귀를 기울인다. 나는 이 집을 떠나지 못하고 앞마당에서 한참을 서성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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