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현 칼럼] 오감의 역설


수필가 김국현(金國鉉)


잣나무가 우거진 작은 숲 속에 새들이 둥지를 텄다. 나뭇가지에는 한 떼의 비둘기가 모였는데 “구우구우 꾹꾹”하며 묵연한 대화가 간간히 이어진다. 참새 한 마리가 사뿐히 내려앉아 땅 바닥에서 먹이를 쪼다 서먹하게 돌아간다. 이제 비둘기들이 건너편 소나무 숲으로 날아가고 그 자리에 참새들이 짹짹거리며 다시 날아든다. 숲속에는 주인이 없다. 어느 누구도 잠시 왔다 가는 나그네일 뿐이다. 나무 아래에 서 있다 보니 나도 어느새 그들과 하나가 된다. 새들의 유희를 바라보고 나뭇가지 사이로 불어오는 산들바람을 맞으며 자연의 소리도 들을 수 있으니 여기가 바로 별천지다. 오감(五感)을 활짝 열고 주변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보고 즐기기엔 딱 좋은 곳이다. 

  

오감이란 신체로 느낄 수 있는 시각, 청각, 미각, 후각, 촉각이니 몸이 아프거나 감각이 둔해져 이 중 하나라도 제 역할을 못하면 삶의 의욕을 상실하거나 생활에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우리 사회도 이런 상태에 있는 분들을 장애인으로 구분하여 크고 작은 도움을 주고 있으니 오감이야말로 소중하다 아니할 수 없다.  친지 한 분이 강원도 정선을 다녀왔다기에 당연히 아우라지에 가서 아리랑 한 곡조 들었으리라 짐작했는데, 그건 고사하고 여행 중에 마주한 새소리에 매료되어 행복에 겨워했다. 거기서 들은 새소리가 맑고 경쾌하여 참으로 독특하고 아름다웠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여행 내내 ‘내가 내는 소리는 세상에 어떤 메아리로 울려 퍼질까?’ 하는 생각에 잠겼다고 한다.

  

앙드레 지드의 소설 ≪전원 교향악≫에는 소설의 주인공인 목사와 눈먼 소녀 사이에 이런 대화가 나온다.

“대지는 새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정말 그렇게 아름다운가요? 왜 사     람들은 그 이야기를 더 해주지 않나요? (…) 저는 새들의 노랫소리에 담긴 이야기들을 모두 알아들을 것만 같거든요.” 

“눈이 보이는 사람들은 너만큼 새들의 소리를 잘 듣지 못한단다.” 


눈먼 소녀는 시력을 되찾고 난 후, 보지 못했던 시절에 상상하던 것보다 훨씬 아름다운 세상에 감동하면서도, 수심으로 가득 찬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놀라며 우리가 저지른 과오와 죄를 발견하고 실망한다. 사람은 흔히 오감이 충족되어야 행복하다고 생각하지만, 그중 일부의 감각만 가졌더라도 안 좋은 것이나 불만스러운 것을 느끼지 못한 만큼 더 행복해질 수 있다. 우리는 살면서 보거나 듣고 싶지 않아도 참고 견뎌야 하는 일들이 참으로 많기 때문이다. 소설의 눈먼 소녀가 듣는 세상은 참으로 아름다운데, 우리는 눈으로 볼 수 있어 누리는 행복도 깨닫지 못한 채 그것 때문에 불행해지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오감의 역설(逆說)이다.


신체적 결핍이 오히려 부족한 것에 대한 절실함으로 이어져 놀라운 기적을 이룬 사람들이 있다. 오감 중 세 가지에 장애가 있던 헬렌 켈러는 장애가 자신을 초월하는 능력이 되어 작가와 사회운동가로 활동하며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았다. 그녀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보이거나 만져질 수 없다. 그것들은 오직 마음속에서 느껴질 것이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재미교포인 강영우 박사는 눈이 멀었기에 자신의 심력(心力)을 키우고 온갖 역경을 극복하여 장애인 재활분야의 세계적 지도자가 되었다. 


모든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이해와 느낌은 오감이 그 통로가 되고, 감각으로 얻은 정보는 두뇌에서 분석된다. 이러한 과정은 모두 육체 안에서 일어나기에 선이나 정의와 같은 관념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오감이 덜 발달되거나 장애 있는 자가 오히려 세상을 더 깊이 느끼고 이해하기도 한다. 그들의 상상력이 사물을 아름답게 인식하고 본성에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육감(六感)이라는 게 있다. 사물의 본질을 직감적으로 포착하는 심리적 감각 작용이다. 하지만 육감이 발달되었다고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 특출한 능력이 오히려 거기에 얽매이는 족쇄가 될 때도 있다. 그러기에 나는 육체적 감각보다 현실을 초월하는 사유의 세계를 갈망하지 않을 수 없다.


현대 문명의 발달로 인류는 수명이 늘고 풍요를 누리며 생활에 편의성도 높아졌다. 그렇다고 우리가 과연 예전보다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오감이 만족스러워도 무언가 허전하고 가슴이 비어있다는 생각을 져버릴 수 없다. 신체적 감각에서 얻은 만족은 물질의 풍요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찌해야 하는가. 이에 대한 답은 진리를 터득하여 마음에서 우러난 참 기쁨을 누리는 데 있다.  요즘도 새소리가 그리우면 나는 서슴없이 비둘기와 참새가 노니는 잣나무 숲으로 간다. 이제부터는 가만히 눈을 감고 새들이 속삭이는 소리를 들으며 그들의 이야기를 상상이나 해 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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