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현 칼럼] 나의 귀향

수필가 김국현(金國鉉)


요즘 매스컴에서 <안동역에서>라는 노래가 자주 흘러나온다. 그 가요가 처음 나왔을 때 고향 노래라 내심 반가웠다. 하지만 가사가 첫 눈 내리는 역 광장에서 오지도 않는 연인을 기다리는 내용이라 나와는 별 상관없는 노래지 싶었다. 그런데 노래를 반복해서 듣다 보니 고향 생각이 새록새록난다. 내가 어릴 적 눈 내리는 날이면 나는 늘 싸리비를 들고 집앞 골목길을 쓸었다. 그땐 눈이 참 많이도 왔다. 사람들이 지나가다 미끄러질까 싶어 눈이 오는 도중에도 쓸었다. 눈은 계속 내리고 내가 쓸고 간 길에 또 쌓이곤 했다. 바깥에 나가면 눈을 흠뻑 맞고 들어왔지만 그땐 그게 당연히 내가 할 일이라 생각했고, 더욱이 눈 맞는 게 그리 즐거울 수 없었다. 


고등학교 다닐 때는 대구역에서, 대학 시절에는 청량리역에서 출발하여 열차 타고 고향 가는 길은 언제나 정답고 포근했다. 만나는 사람들은 대개가 고향 분들이고 출발할 때 잘 듣지 못하던 사투리가 안동역이 가까워질수록 크게 들렸었다. 가장 친숙한 게 고향이지만 막상 고향에 들를 때면 나 자신이 나그네 같다는 느낌이 들곤 했다. 어릴 때 고향을 떠나 반평생 타향에서 살아 온 나에겐 아직도 낯설기만 하다. 어쩌다 고향 가면 일을 보고 바로 상경했으니 여유롭게 추억 여행을 해 본 적도 별로 없다. 오늘은 고향 노래를 듣다가 문득 나의 귀향길을 그려본다. 개성이 고향인 소설가 박완서는 그녀의 산문 <내 식의 귀향>에서 고향을 향한 사무치게 그리운 마음을 이렇게 달래고 있다. 


나는 내 식으로 고향에 가고 싶다. (…) 나 홀로 고개를 넘고, 넓은 벌을 쉬엄쉬엄 걷다가 운수 좋으면 지나가는 달구지라도 얻어 타고 싶다.  아무의 환영도 주목도 받지 않고 초라하지도 유난스럽지도 않게 표표히  동구 밖을 들어서고 싶다. (…) 나도 내 인생의 허무와 다소곳이 화해하    고 싶다. (…) 깨끗하게 늙은 노인의 얼굴에서 내 어릴 적 동무들의 이름을 되살려낼 수 있으면 나는 족하리라. 


그녀는 결국 고향 땅을 밟아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내가 나중에 나이 들어 고향을 찾을 때는 어떤 모습일까. 눈이 어두워지고 멀리 걷기도 힘들 터이니 열차를 타야 할 것 같고, 귀밑머리의 흰 머리카락이 보일 듯 말듯 한 빵모자를 눌러쓰고 동행 없이 혼자 가고 싶다. 열차가 안동역에 가까워지면 예전에 마중 나오시던 아버지 모습도 그려보고, 수학여행 갈 때 배웅 나왔던 작은 누나의 정다운 얼굴도 기억하고 싶다. 계절은 오늘처럼 싱그러운 유월의 아무 날이든 상관없지만 시간은 일몰 무렵이면 더 좋겠다. 어스름 달빛 속에서 옛 추억을 회상하기에 좋은 시간이기 때문이다. 

 

안동역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내가 태어난 집을 가 볼 터이다. 그곳은 역 앞 철길 건너 철도관사의 첫 번째 집이다. 내가 태어나던 날, 어머니의 산고가 길어져 형과 누나들이 엄마 돌아가실까봐 서글피 울었었다. 그때 큰누나가 형들을 데리고 동네 어귀에 한참 앉아 있다가 저녁 무렵 집에 돌아와 보니 어머니가 무사히 나를 낳고 누워 계시더란다. 철길 근처에 살았으니 내가 아기 때는 증기 기관차의 칙칙폭폭 소리를 들으며 자랐을 것이다. 나의 가장 어린 추억은 동네 친구들과 벌인 세발자전거 경주이다. 그 시합에서 나는 한눈팔다 출발이 늦어 꼴찌를 했다. 그땐 간혹 기차가 지나가면 철길 쪽으로 달려가서 손을 흔들며 소리를 질렀고, 기차 안의 승객들도 손을 흔들어보였다. 기차는 그때부터 내 삶의 동반자였다. 

 

지난 추억은 기억 속에 가뭇하지만 좋아했던 친구들 모습은 생생히 떠오른다. 내가 살던 정든 고향집, 친구들과 술래잡기하던 골목길, 가재 잡던 개울가와 비만 오면 잠겨버린 징검다리, 은행나무 무성한 학교 운동장, 수영을 배우려다 물만 먹고 허우적대던 낙동강, 걸어서 소풍 가던 백사장 길, 아버지와 보트 타던 호숫가에 가보고 싶다. 여름밤 고향집 툇마루에서 바라보던 하늘의 별자리도 궁금하다. 그땐 머리 위로 북두칠성이 또렷하고 산등성이 너머에는 샛별도 반짝였지만, 긴 세월이 흘렀으니 별들 중에 하나 둘은 사라졌을 지도 모를 일이다. 

 

나의 귀향은 그리움을 찾아 가는 길이다. 그리움의 뿌리는 부모님의 사랑이다. 그건 나의 삶을 지탱해 준 기둥이자 지혜와 용기의 근원이었다. 나만 보면 미소를 지으시던 어머니가 그립고, 안동역에서 금테 두른 모자를 쓰고 멋진 모습으로 근무하시던 아버지가 보고 싶다. 부모님 산소는 안동역이 바라보이는 금계동 선산 중턱의 양지바른 곳에 있다. 그때 귀향길에는 역으로 돌아가기 전에 부모님 찾아뵙고, 내게 아름다운 고향을 선물로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씀드릴 터이다. 나의 추억 여행은 안동역에서 시작되고 안동역에서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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