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현 칼럼] 서해의 일출

수필가 김국현(金國鉉)


이른 봄 한가한 날에 당진의 왜목마을에서 하룻밤을 지냈다. 서쪽 바다에도 해가 뜬다. 숙소에서 바라보는 바다 건너편에서 붉은 해가 떠오른다. 여기는 이름 그대로 왜가리 목처럼 지형이 남북으로 가늘고 길게 뻗어 바다를 동서로 나누고, 해안이 동쪽으로 튀어나와 있어 동해안처럼 일출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새벽의 여명이다. 칠흑 같은 장막이 옅어지면 숨어있던 세상이 조금씩 드러난다. 수평선과 맞닿은 하늘에 주홍빛이 어리는가 싶더니 바다에도 데칼코마니처럼 붉은색 물감이 풀어져 물이 들기 시작한다. 어저께 석문산으로 넘어갔던 해가 밤을 샌 뒤 이곳의 바다 끝자락으로 올라와 초승달 같이 납작한 이마를 빼꼼 내민다. 가슴이 벅차고 숨이 막힌다. 살아가면서 이처럼 자연경관에 감동받은 적이 얼마나 있었던가.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눌러보지만 순간의 장면만 담을 뿐 부활의 명증을 기억하기엔 역부족이다. 

 

어젯밤 나는 마을의 해변을 거닐었다. 봄기운에 바람은 아직 차가운데 수평선은 어둠 속에 감춰져 있고 하늘 한 편으로 달무리가 졌다. 청량한 갈매기 울음소리가 간간한 파도 소리와 어울리니 배경 음악이 있는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젊은이들이 모래톱에서 개구쟁이처럼 바다를 향해 폭죽을 터트렸다. 그들에게 밤은 새벽을 기다리는 여망의 대상일 뿐이었다. 해가 오를수록 붉은 빛이 드넓은 하늘을 짙게 물들이고, 밤새 어둠 속에 잠들었던 바다가 부스스 깨어나고 있다. 해가 온 몸을 동그랗게 들어낼 즈음엔 해변에서 물끄러미 바라보던 갈매기도 날개를 보듬는다. 갈매기는 아침 바다 위로는 높이 날지 않고 활강만 한다. 새 아침을 맞는 상쾌한 기분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어서다. 왜가리 형상의 조형물인 ‘새벽왜목’이 바다에 발을 담그고 있는데, 갈매기들과 길동무 되어 금방이라도 꿈을 향해 먼 바다로 힘차게 날아갈 모양새다. 


어느새 해변에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이고 저마다의 소원을 빌며 아름다운 정경 속에 가슴을 적신다. 캠핑 족들도 이른 기상을 하고 텐트 문을 연지 오래고, 크고 작은 낚싯배들은 밤 새워 드리우던 그물을 걷어내고 해맞이 채비를 끝냈다. 섬들도 나지막이 엎드린 채 태양이 둥실 떠오르길 기다리다 이제야 고개를 들고 조용히 아침을 맞는다. 부지런한 배 한 척이 시동을 걸었다. 먼 바다로 기나긴 항해의 출발이다. 왜목마을은 그들이 있어 하루의 시작이 활기차다. 짧은 아침 시간이지만 바다의 모습은 시시각각 변하고 있었다.  태양의 그림자가 물길이 되어 어느덧 내가 서 있는 해변까지 깃들었다. 주황빛 잔무늬가 물결 따라 아른거리지만 멀리서 보면 하나로 이어진다. 하늘의 오작교가 일찌감치 내려앉은 듯하다. 이처럼 태양이 수평선 근처에서부터 비단결 같은 붉은 카펫을 길게 깔고 나에게 길을 터준 건 무슨 까닭일까. 먼 바다로 출항을 준비하며 힘차게 나아가라는 뜻이 아닐까. 나는 세상으로부터 귀한 초대를 받은 것이다. 초대받은 손님답게 기품 있고 슬기롭게 살아가란다. 내 마음은 벌써 쪽배를 타고 바다 건너 태양을 맞으러 가고, 태양은 큰마음으로 나를 품는다.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솔뫼성지와 필경사가 있다. ‘솔뫼’는 ‘소나무가 우거진 동산’이라는 뜻인데, 한국 최초의 사제(司祭)인 김대건 신부의 생가가 있는 곳을 천주교 성지로 조성했다. 그는 평생토록 이웃을 사랑하고 참된 진리를 얻기 위해 고난의 길을 가신 분으로, 순교 직전 자신의 죽음이 곧 영생의 시작이라는 말을 남겼다.  필경사(筆耕舍)는 소설가 심훈이 농촌계몽소설인 <상록수>를 집필한 집이다. ‘필경’이란 ‘조선인들의 마음을 붓으로 논밭 일구듯 표현하다’는 뜻을 가진다. 선생 또한 고향이 당진으로, 소설의 모델이 된 심재영, 최용신과 함께 이곳에 터를 잡고 농민교육과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다 젊은 나이에 병사했다. 이 고장이 많은 사람들의 흠모의 대상이 된 건 이들의 희생과 열정이 한몫했으리라. 육신이 썩어 한 알의 밀알이 되면 역사에 길이 남는 자가 된다. 그들도 아침마다 펼쳐지는 서해의 일출을 바라보며 새 희망에 부풀었을 것이다. 


당진 여행길을 회상하며 나는 옷깃을 여민다. 지금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과연 무엇인가. 태양은 그토록 밝은 길을 내고 나를 반기는 데 나는 어디를 향하고 무엇을 이룰 것인가. 이번 나들이는 나의 인생 일기장에 새로운 도전의 출발점으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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