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현 칼럼] 진도 여행기

정혜미 기자
2020-07-09


수필가 김국현(金國鉉)


진도는 다도해의 비경과 명량해협인 울돌목이 있는 곳이다. 여행 출발 전날, 낯선 여정에 대한 기대감으로 잠을 설쳤다. 아침 하늘은 더없이 청명하고 꽃바람과 다순 햇살도 예사롭지 않다. 가방을 꾸리는 동안 한줄기 상큼한 바다 내음이 코끝을 스치고 지나간다. 이제 진도행 천 리 길로 접어든다. 해남이 땅끝이라지만 육상으로 갈 수 있는 우리 영토의 서남쪽 맨끝에는 진도가 있다. 진도는 예로부터 강직한 선비들의 유배지요, 일본과 몽고군 등 외세를 죽음으로 물리치고, 세월호의 슬픔을 가슴에 안고 있기에 빈손으로 방문하기에는 자못 스스럽다. 이번 여행으로 나라 사랑의 뿌듯한 마음을 가슴에 새기고 문화 예술의 멋과 맛까지 알게 되려니 구경만 하고 돌아온다면 진도에 빚만 지게 될 것 같다. 하지만 여행이란 빈손으로 갔다가 추억을 한 아름 안고 돌아오는 거라는 말에 위안 삼는다.


진도는 곳곳이 명승지다. 진도의 상징인 진도대교와 진도타워, 울돌목과 강강술래터 등 이순신 장군 유적지를 비롯해 소치(小痴) 허련 선생의 화실인 운림산방, 진돗개 테마공원과 분양지, 바다가 아름다운 세방 낙조와 신비의 바닷길, 다도해 관광지인 관매도와 도리산 전망대, 그리고 팽목항이 있다. 거기다 미스트롯 가수인 송가인은 예향의 고장 진도 사람들의 자랑이다. 그녀는 진도의 풍속과 음률을 한 몸에 받아 국민가수가 되었다. 이제 아리랑 마을이 조성되면 진도아리랑과 씻김굿, 강강술래를 전승하는 훌륭한 문화 탐방지로 자리 잡을 것이다.


첫 번째 기착지는 진도대교, 멀리서 홀연히 달려온 나를 다정한 손길로 반기며 길을 활짝 터 주었다. 그 아래를 흐르는 명량해협의 폭이 좁아 먼바다를 바라보던 잠깐 사이에 훌쩍 넘어간다. 다리를 건너면 바로 왼쪽 편 언덕 위에 장군처럼 우뚝 서 있는 진도타워에 오를 수 있다. 타워 전망대에서 바라본 울돌목의 소용돌이가 시공을 초월하여 하얀 포말을 그린다. 이순신 장군이 외로운 육신에 혼을 다 바쳐 싸웠던 바로 그 역사적 현장이다. 400여 년 전 이곳에서 거북선이 위용을 떨쳤고, 충성스러운 수군과 백성들이 합세하여 일본의 대군을 격퇴했다. ‘일휘소탕(一揮掃蕩) 혈염산하(血染山河), 한바탕 휘둘러 쓸어버리니 산하가 피로 물드는구나.’ 장군의 호령 소리가 산천을 울리는데, 수장된 왜군들의 혼령이 울돌목의 바다 우는 소리와 겹쳐져 나의 귓전을 맴돈다. 당시의 승전보가 장군께서 척박한 환경을 무릅쓰고 불과 17일의 진도 체류 중에 일어난 일이었으니 어느 누가 큰일 하는데 시간 없음을 한탄할 수 있겠는가. 


울돌목이 내려다보이는 진도대교 앞에서./사진=김국현 


강강술래터는 울돌목이 내려다보이는 망금산 봉우리에 있다. 망터의 흔적을 지나 유적지로 향하는데 서해랑 길섶에 피어있는 진달래의 붉은빛이 영롱하다. 계절은 지났지만 이곳의 진달래꽃이 아직까지 피어 있는 건 서슬 퍼런 적군 앞에서 손에 손을 잡고 강강술래를 하던 아낙들의 붉은 마음이 살아서 맺힌 것이리라. 세방리 해안도로에서 낙조를 맞았다. 다도해에 겹겹이 쌓인 섬과 섬 사이로 빠져드는 일몰은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나중에 진도가 그리운 건 이곳의 고즈넉한 밤 풍경 때문일 것 같다. 바다에는 주홍색 실루엣을 길게 내리고 하늘에는 단풍보다 붉은빛을 장식하며 태양은 하루 일과를 마감하고 있다. 해는 수평선에 가까워질수록 더 속히 넘어간다. 사람들의 마음은 애가 타는데, 지는 해는 아무런 미련 없이 붉은 여운만 남기고 훌쩍 떠난다. 낮 동안 찬란했던 자기 모습을 자랑하지 않고 세상에서 사라짐을 슬퍼하지도 않는다. 우리네 인생도 이래야 한다.  


아침에 일어나 숙소 근처에 있는 조그만 식당을 찾았다. 소갈비 뜸북국을 시켰는데 건더기가 제법 푸짐하고 국물 맛이 깊고 맛깔스럽다. 해초류인 뜸부기를 넣은 이 고장의 토속 음식이다. 주인아주머니에게 조리법이 무어냐고 물었더니 나를 쳐다보며 싱긋이 웃기만 한다. 주방 옆에 잘린 오가피나무가 봉지에 가득하니 뜸부기를 우려낸 데다 적당한 약초와의 배합이 맛의 비결인가 보다. 진도는 육지 풍경도 아름답다. 나는 속으로 진도 땅에 ‘작은 제주’라는 별명을 붙였다. 동네마다 산기슭을 따라 유채꽃이 만발하고, 길가에는 야자수가 줄을 지어 녹색 잎을 하늘로 뻗고 열매도 풍성하게 맺었다. 


푸른색이 하늘과 꼭 닮은 바다는 잔잔한 바람에 물결만 일고, 내가 탄 차가 산마루를 넘을 때마다 고요한 자태를 빼꼼 내밀어 보인다. 진도아리랑의 가사에 ‘아리랑 고개에다 집을 짓고 우리 님 오시기만 기다린다네’라 하였으니, 아리랑 고개는 지금 내가 넘는 고개이고, 기다리는 ‘님’은 바다에 고기 잡으러 간 어부가 아닐까 짐작해 본다. 읍내의 운림산방에는 허련 선생의 매화도가 있다. 그림의 여백에 쓰인 ‘澹洦自能知我意 幽間元不爲人芳, 담백은 절로 내 마음을 알고 그윽함은 본디 남에게 뽐내려 함이 아니다.’라는 글에 매료되어 매화 한그루 찾으려 했지만 가는 길이 촉박하여 뜻을 이루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 진돗개 테마공원과 신비의 바닷길을 휘돌아 귀갓길에 진도대교 아래 울돌목을 다시 바라보았다. 군사를 지휘하는 이순신 장군 동상이 멀리서도 또렷하다. 진도 여행 후 명량해전 유적지가 자꾸만 떠오르는 건 나에게 애국 애족하는 마음이 깊어진 까닭일까.


저작권자 © NEWS REPORT(www.news-report.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0




상호명 : 뉴스리포트 NEWS REPORT 사업자번호 : 728-34-00398  발행인 : 정혜미 편집인 : 정연우 청소년보호책임자: 정연우

주소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15-16(국회대로 66길 23) 산정빌딩 7층 ㅣ 이메일 : korea_newsreport@naver.com

대표전화 : 02-761-5501 ㅣ 팩스 : 02-6004-5930 ㅣ 등록번호 : 서울, 아 05234 등록일 : 2018.06.04

뉴스리포트의 모든 콘텐츠(영상, 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며, 무단 전재와 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

COPYRIGHT © 2018 뉴스리포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