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현 칼럼] 야간수업

수필가 김국현(金國鉉)


내가 사는 아파트 위층에는 젊은 부부가 산다. 그 집에 어린 남매가 있는데, 초등학교 1, 2학년생들이다. 오후만 되면 쿵쾅거리며 아이들 뛰어노는 소리가 들린다. 거실 바닥이 그리 넓지 않을 텐데, 아이들은 어디든 공간만 있으면 좋은 놀이터가 되는가 보다. 저녁 시간이나 밤에도 소란스럽다. 가구 옮기는 소리로 시작해서 뛰어다니는 소리로 이어지다가 샤워 소리로 끝이 난다. 그 광경에 나는 ‘야간 수업’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학교 수업이 끝나고 저녁에 집으로 돌아와 실습을 겸한 방과 후 수업을 하는 것이다. 


며칠 전 내가 “한 번 가서 구경이나 할까?” 했더니 아내가 정색을 한다. 그 집 식구들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괜히 이웃 간에 마음이 상해 관계가 소원해 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집은 작년 이맘 때 새로 이사를 왔다. 주인아주머니가 귤 한 상자를 가져와서 “애들 때문에 성가시지요?” 하며 미리 정중히 사과한 적이 있다. 아이들이 학교 다녀올 시간이 지나면 여지없이 거실을 뛰어다니는 소리가 난다. 학교 갔다 와서 기분이 좋은가 보다. 오늘도 야간 자율학습이 시작되었다. 운동과 곁들인 수업이 아무 탈 없이 진행되려면 준비 운동도 필요하겠지. 나도 보이지는 않지만 그 분위기에 맞추려고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있다. 

 

재작년에는 위층에서 강아지 짖는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 조용해 주기를 부탁한 적이 있는데, 집주인에게서 죄송하다는 말만 들었을 뿐 별로 달라진 게 없었다. 주인이 외출하는 날은 여지없이 개 짖는 소리가 새벽까지 이어졌다. 데리고 다니기도 어렵고, 다른 집에 맡기기도 힘들었었나 보다. 지금 이 집은 우리 심정을 먼저 알아주어 우리가 위로라도 받았으니 그나마 참을 만하다. 슬픈 동물 소리보다 즐겁게 노는 사람 소리가 그래도 나은 건가.  예전에 큰아들이 손주들 키울 때는 거실과 바닥에 푹신한 매트를 깔아서 소리가 덜 나게 했다. 아래층을 배려하는 마음은 이웃 사랑의 시작이고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사회적 책임이다. 우리는 집안에서 발자국 소리만 내도 아내가 조심시킨다. 그 덕에 아직 한 번도 아래층에서 소음으로 하소연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있다. 나는 아예 상상을 하면서 즐기기로 했다. 오늘은 놀이터가 어떻게 바뀌었을까. 놀이 기구는 뜀틀과 시소가 있을 것 같고, 천장에 풍선이 달려 있고 거실 가운데는 매트를 깔아 두었겠지. 아마 아이들이 체조 선수가 되고 싶은 걸까. 가구 옮기는 소리가 자주 나는 걸 보면 아이들 방에도 놀이기구가 있어 방이 좁으면 거실로 내 와서 놀기도 하겠지. 


엘리베이터에서 아이들을 우연히 만났다. 귀엽고 깜찍했다. 아내가 “너희들 놀 때 아줌마가 잠을 못자니 조금 조용히 놀면 좋겠다.”고 했더니 “네, 죄송해요.” 그런다. 그런 날 저녁에는 조용한가 싶다가도 다음 날부터 소음이 다시 시작되었다. 그 시간에 부모들은 어디 있을까. 저녁이나 밤중에 뛰어다니는 날은 부모가 일이 있어 늦게 들어오던지, 아이들이 부모 말을 듣지 않거나 부모가 관대하기 때문이라 짐작해 본다. 문제는 조용하던 집이 갑자기 시끄러워질 때는 깜짝깜짝 놀라 짜증이 날 때가 있다. 그런데 어제는 모처럼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가족들이 함께 외박해서 집에 들어오지 않았나 보다. 어쨌든 시끄럽던 집이 밤새 조용하니 퍽이나 다행스럽다. 


바닥에 소리가 난다는 건 젊음이 있다는 표시다. 노부부가 사는 집은 소리가 나지 않는다. 그저 무서운 정적만 있을 뿐이다. 가구 옮길 일도 없고 자신감 넘치는 발자국 소리도 나지 않는다. 요즘 집에서 내려다보이는 큰길에 터널을 만들고 그 위로 공원을 조성하는 공사가 한창이다. 지금은 약 2km의 거리에 기둥을 촘촘히 세우고 지붕을 올리고 있다. 이럴 땐 공사장 밑은 어떨까. 지구 곳곳에는 오늘도 땅이 몸살이 난다. 하루도 쉬지 않고 어디에선가 집을 짓거나 다리를 놓고 둑을 쌓는다. 소음과 진동이 끊이지 않으니 땅밑은 조용할 날이 없다. 


지하 세계에 사람이나 동물이 산다면 그들은 어떤 느낌을 가질지. 사람들을 원망할까, 아무 일 없다는 듯 무심할까. 그렇다고 지구가 늘 조용하다면 삭막하기 그지없을 것이다. 땅을 파고 누르고 다지는 게 인간 생활의 발전을 의미하는 것이니 그나마 낫지 않는가. 고요한 것만이 최선은 아니다. 때로는 소음도 들려야 사람 사는 맛이 난다. 다만 무엇이든 지나치지 않아야 한다. 위층에서 소리 들릴 때가 지났는데 아직 잠잠하다. 오늘따라 아이들이 무얼 하고 있을까, 그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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