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창학 조각가, 제주 바다를 품은 신비한 유리 조각 예술

이문중 기자
2020-05-14

현대적 조형 기법으로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는 성창학 작가./사진=뉴스리포트


[뉴스리포트=이문중 기자] 조각가 성창학은 현대적 감성의 유리 조각으로 독보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한 제주 향토 조각가다. 그는 새로운 예술 영역을 개척하려는 열망으로 제주 바다의 아름다움과 심연에 담긴 자연의 신비성을 시각적으로 완성해냈다. ‘군집’과 ‘심연’을 키워드로 함축할 수 있는 성 조각가는 작품 속 물고기의 군집을 ‘집단성’, 즉 인간의 본성으로 나타난다. 다양한 가능성이 공존하는 심연의 공간을 유영하는 물고기 군집은 저마다 개성적인 인간의 자화상으로 풀이된다.


조각에 심취, 삶의 전부가 되다 

성 조각가는 제주도 태생으로 어린 시절부터 회화에 강한 흥미를 느꼈고, 자연스럽게 화가를 꿈꾸며 미대 진학을 준비했다. 이후 그는 입시를 준비하면서 제주대학교 미술학과의 신설과 전공 세분화 소식을 접하게 된다. 그리고 조각 전공이 신설됐다는 것을 알게 된 성 조각가는 새로운 분야에 대한 도전 욕구로 조각 분야에 첫발을 들이게 된다.

“미술적 재능을 직감한 이후 막연히 회화에 전념하다 우연히 조각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그러나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하고 체력 소모가 큰 조각의 현실을 경험하게 되면서 짧은 방황기를 겪게 됐습니다. 군 전역 후 비로소 조각에 재미를 붙이게 됐고, 그때부터 완전히 조각에 빠지게 됐죠.”


조각가라면 누구나 재료에 대한 고민이 크기 마련이다. 성 조각가 역시 대학원 재학 당시 자신이 천착할 재료를 탐색했고, 처음에는 타이어에 착안했다. ‘잉여 인간’으로 대표되는 그의 타이어 작업은 작가적 근면함과 노력의 결과물인 동시에, 형태에서 벗어나 성 조각가의 철학과 사상을 고스란히 드러낸 도전적 작품이었다. 그의 ‘잉여 인간’은 개념미술이 유행하던 당시 미술계로부터 크게 주목받았고 현재 경기도 곤지암 도자공원에 설치돼있다.

“어느 날 타이어를 붙잡고 씨름하던 제게 교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노가다는 예술이 될 수 없다’고요. 그 말씀이 제가 작품 노선을 바꾼 결정적 계기가 됐습니다. 제 예술철학을 온전히 담는 동시에, 더 대중적인 재료가 필요하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하게 된 것이죠.”


제주 바닷속 물고기 군집에 인간 사회 투영

성 조각가는 유리 공방에서 아르바이트하던 중, 한쪽 벽에 겹쳐 세워진 판유리들에서 깊고 오묘한 색채를 보고 감흥을 얻었다. 그리고 새로운 소재를 유리로 결정해 새로운 작품세계를 구축해나갔다. 

“한 장의 유리는 투명할 뿐이지만 여러 장이 겹칠수록 에메랄드빛의 색채와 깊이감을 더해갑니다. 저는 이러한 현상을 보고 마치 어린 시절 놀던 제주도 바다를 떠올렸고, 유리를 소재로 작품활동을 펼쳐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처음 성 조각가는 제주의 풍광을 유리에 담으며 그만의 개성적 작품세계를 구축해갔다. 여러 장의 유리에 표현코자 하는 것을 음각으로 새기고, 색을 채워 라미네이팅 기법으로 겹쳐가며 완성해가는 표현기법의 원형이 이 시기에 완성됐다. 이후 그는 무리를 지어 바다를 유영하는 물고기에 천착했다. 다양한 몸짓으로 헤엄치는 물고기들이 같은 곳을 향해 움직이는 모습을 멀리서 보면, 마치 하나의 거대한 무언가로 재탄생한다. 이는 각자 다양한 개성과 외형을 지닌 인간들이 이념, 집단, 가치관에 따라 집단을 이루는 것을 연상케 한다. 

“20년간 저는 유리 조각에 집중해왔습니다. 4번의 개인전을 거치면서 더 발전된 작품과 새로운 시도를 관람객들에게 보여드리려 노력했죠. 그간 저는 타이어와 유리 등 다양한 소재들을 거쳐왔지만, 주제만큼은 ‘인간성’에 집중해왔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인간성에 관한 탐구와 여기서 얻은 통찰을 유리를 통해 보여드릴 것이며, 새로운 소재와 기법 연구에도 노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제주 조각가 교류의 장, 제주조각가협회

제주조각가협회에는 현재 50여 명의 조각가가 활동하고 있다. 제주대학교 미술대학 출신자들을 중심으로 전국의 조각가들이 참여하고 있는 본 회는 매년 협회 전시회를 개최, 도내 작가들의 작품 역량 향상을 견인하고 있다. 

“지난해 창립 30주년 아카이브전 ‘제주조각의 오늘’을 통해 그간의 행적을 돌아보고 제주도 조각가들의 현재와 미래를 주제로 대중들과 소통했습니다. 아울러 도내 조각가들의 근작들과 현황을 책자로 정리해 발간했습니다.”


성 조각가는 2년간의 준비를 거친 30주년 아카이브전을 성공리에 마무리하는 동시에 회원 간의 결속을 한층 단단하게 다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제주조각가협회는 지금까지 그러했듯, 앞으로도 회원들의 최근작을 충분히 대중에 공개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인터뷰 말미, 성창학 조각가는 제주 돌담을 차기 작품에 반영하고 싶다는 포부를 전했다. 저마다 다르게 생긴 돌덩이들이 모인 돌담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이를 작품 속에 구현하고자 하는 것이 그의 목표다. 제주의 질박한 정서와 유리 특유의 세련미라는 상반된 이미지를 변주해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겠다는 것이다. 두 개의 상반된 이미지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가능성은 성창학 작가의 정체성과 흡사하다. 그는 제주 향토작가로서 과거 타이어 작품을 했었지만, 지금은 유리를 작업하는 등 제주의 정서와는 상반되는 현대적 작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의외성은 성창학 작가의 향후 작품이 기대되는 근본적 이유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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