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정수 작가, 전통 조경 예술을 선도하다

이양은 기자
2020-04-17


한국 전통 조경 회복을 강조한 정정수 작가/사진=뉴스리포트

 

[뉴스리포트=이양은 기자] 정정수 작가는 “조경은 땅 위에 그리는 그림”이라고 정의했다. 아티스트가 캔버스 위에 그림을 그리듯, 자연 속에 존재하는 조경 재료를 근간으로 새로운 작품을 창조한다는 얘기다. 그의 손을 거친 바위, 식물, 흙 등 자연재료들은 물, 공기 그리고 사람과 만나 새로운 공간예술로 재탄생한다. 그가 설계한 파주 벽초지 수목원은 여전히 영화와 드라마, CF 등 600여 회가 넘는 촬영장소로 사랑받고 있고, 예술 총감독으로 조성했던 순천만 국가 정원은 세계적인 명소로 손꼽히고 있다. 이에 본지는 산자수명(山紫水明)한 산정호수에서 공간 아티스트 정정수 작가를 만나 그의 예술적 지향점과 조경 철학을 들어봤다.


실용학문과 협력하는 예술인 많아져야

정정수 작가는 홍익대 회화과 출신으로 서양화가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자연주의 철학을 가진 조경가이자, 대학에서 ‘예술 조경’을 지도한 교육자로서 한국 조경의 혁신을 선도하고 있다.

“좋은 조경은 기술보다는 꽃과 식물 등 자연 그대로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조경은 단순히 돌과 식물을 배치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에 미적 가치를 더해주는 예술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자연의 편안함을 전해 주고 싶다는 생각에서 조경을 시작했습니다.”

정정수 작가의 조경 작품은 생태학적으로 설계돼 있다. 식물끼리 경쟁하고 상생하며, 바위와 물, 흙은 조화롭게 생명을 감싸 안는다. 그래서 그의 조경은 기존 형식에 비해 5~10% 정도의 관리만으로도 유지가 가능하다.


“저처럼 그림을 공부하는 사람도 새로운 조경 문화를 창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회화를 전공한 사람이 조경을 감각적으로 연출하는 경우가 많지만, 조경 전문가 중에서 그림 전공자만큼 잘 그리는 경우는 많지 않거든요. 오늘날 한국의 도시나 조경을 보면 예전보다는 많이 개선되었지만, 예술가로서 아직 아쉬운 부분이 많습니다. 앞으로 조경 분야에 순수 미술인들이 많이 유입된다면, 조경도 하나의 작품으로 인식되는 세상이 더 빨리 오지 않을까요.”


한국 전통 조경의 회복 강조

“진정 아름다운 것은 자기다운 것이죠. 한국의 대표적 정원인 소쇄원을 보면 자연의 원래 형태를 존중하는 선조들의 지혜가 담겨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일본의 조원(造園) 방식을 답습했고, 지금도 많은 곳에서 일본식으로 다듬고 깎는 정원이 유지되고 있죠. 오늘날 일본 조원을 상징하는 ‘가이쓰카 향나무’ 대신 품위 있는 소나무를 선호할 만큼 국민의 식견이 높아졌지만 아직 가야 할 길은 멀다고 생각합니다.”

정정수 작가는 일본식 ‘조원’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조경의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그래서 학문적 연구를 통해 우리 조경 본연의 아름다움을 되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립현충원 등 민족의 혼이 깃든 장소에도 일본식 조경의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이런 잔재들이 말끔히 해소될 수 있도록, 법률과 제도로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국회 법안을 발의할 협의체를 만들고 싶습니다. 저와 생각이 같은 분들과, 깨어있는 젊은 조경학자 및 교수들과의 포럼을 가지면서 유의미한 결과를 만들고 싶습니다.”

그는 현재 지자체 사업으로 지리산 운봉읍 ‘동편제 마을’ 개발 프로젝트를 맡아 진행하고 있다. 또한, 화순 민족의학촌 조경프로젝트, 강원도 리조트 조성 등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한국 전통 조경을 추구하는 조경 철학이 공공기관은 물론 민간기업에 알려졌기 때문이다.


사진제공=정정수 작가


최고의 스승은 자연

“이 세상에 자연만한 스승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연 속에서 함께 사는 삶은 인간이 가야 할 방향과도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담도암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었지만, 자연적으로 병을 고칠 수 있는 기회를 통해 완치의 결과를 얻었습니다. 현상에만 국한된 의술이 아니라 근본적인 치료기회를 내 몸에 주고 싶었고, 마침내 암을 이겨내고 건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제가 추구하는 조경도 사람에 의해 관리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감당하도록 기회를 주는 조경입니다. 제 힘으로 암을 극복했듯 제 조경 작품도 자연의 힘을 가진 공간으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정 작가는 기회를 누구에게 주느냐의 문제에서 자연의 본질을 깨달아야 한다고 전했다. 암의 치료와 자녀의 교육에서, 그는 자연의 법칙을 기반으로 한 선택을 했고 결과도 모두 긍정적인 방향으로 도출됐다.

“자연만 한 스승은 없고, 그 스승에 대한 믿음으로 올바른 길을 실천했을 뿐이죠. 주입된 지식은 일부분만 알 수 있지만, 자연에서 깨달은 지혜는 성숙한 삶의 철학을 만들어줍니다. 제가 추구하는 조경이 자연의 법칙을 따르는 이유입니다.”


가장 아름다운 것은 자기다운 것

정정수 작가는 언젠가 잡초를 활용해 아름답게 가꾸어진 조경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전했다. 잡초와 정원수를 나누는 것은 인간이 만든 기준일 뿐 잡초도 자연계의 중요한 요소라는 설명이다. 넓은 공간에서 잡초가 다양한 식물과 자연스럽게 융합되는 작품을 만들어, 어울리고 치유하며 함께 살아가는 자연의 철학을 구현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가장 아름다운 것은 자기다운 것입니다. 나다운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기 때문에 남이 되려고 해선 안 됩니다. 우리 조경도 자기다움을 되찾고,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조경이 되어야 합니다.”


정 작가는 경계를 만드는 인위적인 조경보다는, 개발로 인해 파괴된 자연 복원을 위해 모든 조경인들이 노력해야 한다고 설파했다. 사람과 자연의 경계가 명확히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깍지를 끼듯 연결돼 소통해야만 자연과 사람 모두가 행복할 수 있다고 전했다. 자연주의 조경의 계승자 정정수 작가가 제시하는 공간 철학이 주목받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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