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남 화백, 엄혹한 사회 속 강한 집념과 삶의 의지 '행상여인'

정혜미 기자
2020-03-11


박 남 화백, 한국미협 고문./사진제공=박 남 


[뉴스리포트=정혜미 기자] 엄혹한 환경 속에서 강인한 생명력을 발산하는 행상여인들의 모습, 생존을 위해 거리로 뛰어나가 삶을 주도적으로 이끄는 원초적 에너지가 관능적이기까지 하다. 서양화가 박 남의 화폭 속 여인들은 낡은 치맛자락에 가슴을 훤히 드러낸 채, 삶의 애환과 강한 집념의 감정선을 희망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그가 천착하는 행상여인의 이미지는 어쩌면 우리의 본질일 수 있는 질박한 삶의 숨결을 전달하는 동시에, 호사로움과 안일로 오만해진 현대사회에 경종을 울린다. 이렇게 그가 창조해낸 행상여인은 그늘진 도심의 인간상이자, 서민의 애환이라는 감상적 사고를 초월해 암담한 현실에서도 초연하게 삶을 지켜나가는 여인들이 무언 속에 항변하는 형체로서 나타난다. 


행상여인, 위대한 생존력 지닌 여인의 형상  

박 화백의 작품세계는 ‘행상여인’ 시리즈로 대표된다. 이는 머리에 자배기를 인 여인들을 세워 그린 그림들이다. 겨드랑이까지 보일 듯, 앞섬을 풀어헤친 듯한 행상여인의 자세는 양손을 쳐들어 자배기를 떠받치는 모습이다. 자연히 치마와 저고리 사이에 생겨난 틈새는 건강한 여인의 가슴이 드러난다. 하지만, 이런 모습은 망측하지도 부끄럽지도 않다. 오히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어머니의 따뜻하면서도 강한 생활력을 표출한다.

허리를 곧추세우고 똬리 끈을 입에 문 여인들은 당찬 걸음걸이로 골목을 누비면서 가가호호(家家戶戶) 행상을 했다. 그것은 민초가 살아가는 모습이며, 어려운 가장을 대신해 거리로 나선 우리네 어머니의 힘이었다. 사회 환경이 어렵고, 척박할수록 어려움에 맞닥뜨렸을 때 가장 강해지는 사람이 여인이자, 어머니였다. 그런 여인들을 테마로 작업한 것이 박 화백의 행상여인이다. 

화폭에 등장하는 여인들은 정면을 향해 서 있는 조형이 특징이다. 간혹 이를 ‘벌서는 여자들의 모습’으로 잘못 해석하는 이들이 있는데, 이들은 ‘상품성’을 기준으로 작품을 논하거나, 틀에 박힌 사고를 지닌 미개한 계층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머리에 자배기를 이고 정면을 응시하는 여인들의 모습은 그림을 보는 감상자를 향해 행상여인이 맞서게 하는 의도된 구성이며, 강인함과 절박함을 전달하려는 작가의 뜻을 담고 있다. 


행상여인 100.0X80.3cm oil on canvas1990


현세 안일에 대한 작가로서의 익살 

박 화백은 1986년 롯데미술관에서 개최한 개인전에서 첫선을 보인 이래로 약 35년간 일관되게 행상여인 연작을 중심으로 화업을 이어왔다. 

“실제 행상여인들은 마치 풍속도처럼 기억 밖으로 정지해 있지만, 집요하게 그림 속에서 되살리고 싶은 것은 풍요로운 삶으로 인해 정작 삶의 처절한 고충과 인내를 헤아리지 못하는 현세의 안일에 대한 내 나름의 익살이다. 또한, 야사가 없는 한 역사의 단면으로서, 살기 위해 거리로 나섰던 당대 어머니들의 강인한 생존력을 기리고 싶기 때문이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여인의 얼굴은 윤곽이 뚜렷하지 않고 매우 단순하게 표현돼 있다. 세파에 시달리면서 세상을 살아온 이 세상 평범한 여인들의 모습을 정형화한 것으로 보인다. 세상 어딘가에서 삶을 지탱하며 살아온 수많은, 이름이 중요하지 않은 여성들이 가지는 익명성의 상징 기호와 같다. 평론가 황정수는 “행상여인들의 지워진 얼굴과는 달리 여인의 가슴과 건강한 하반신의 여성적 상징이 뚜렷이 부각 돼 있다. 여성의 가슴은 아이의 탄생과 성장의 모체다. 행상여인들은 비록 세상의 이름 없는 ‘어머니’의 존재이지만, 결국 세상을 존재하게 만드는 ‘모성의 상징’이다. 

하반신 여성성의 표현 또한 가슴과 마찬가지로 여성이 가진 생명력을 나타낸 것이다. 그의 그림이 민중의 모습을 담았으면서도 처절하게 아프지 않은 것은 여인들의 여성성을 강조한데서 나온 결과”라고 평한 바 있다. 박 화백은 “근래 행상여인의 강인한 생존력과 더불어 여성성과 성(性)적인 아름다움을 표출하기 위해 다양한 기법들을 시도하고 있다”고 밝힌 뒤 “에로틱한 분위기를 유도하면서 화면구성을 기획하는 등 새로운 조형성을 다각도로 연구해 작품의 변모를 꾀하고 있다”고 밝혔다.


행상여인 45.5X38.0cm oil on canvas  2019 


대중의 취향을 의식하지 않고 내 길을 가겠다  

“미술이 상업성을 갖게 되면 지역성에 결국 굴복하게 됩니다. 즉 수준이 낮은 감상인구 속에서 출중한 작업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뜻이죠. 미술사의 적당한 지식과 발전된 문화적 토양 위에서 조성된 감상인구를 대상으로 할 때, 진정한 창조작업이 가능한 것입니다.”


박 화백은 “작가주의는 곧 대중과는 멀어지는 것”이라며 “작품의 시장성이 미술품의 가치를 결정 짓는 척도가 될 수 없다”고 설명했다. 한때 대중에게 외면받았으나 세계적인 화가로 거듭난 모네, 세잔, 고흐 등의 작품이 ‘명화’로서 인정받는 것처럼, 박 화백은 자신의 행상여인 작품이 훗날 관객에게 공감과 감동을 주는 작품이길 바라는 것이다. 


이처럼 박 화백은 당대가 아닌 후세에 환영받는 작품이길 바라는 투철한 작가정신을 통해 고단하지만 독보적인 작품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그는 “앞으로도 대중의 취향에 휘둘림 없이 내가 추구하는 세계를 창조하겠다”라며 소신을 밝혔다.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자기만의 주관을 지키면서 한국적 정체성을 담은 작업에 몰두하는 박 남 화백. 그의 지치지 않는 열정에 박수를 보내며, 앞으로도 그만의 독창성을 담은 작품세계를 펼쳐나가기를 기대한다. 


profile 

박 남 화백은 1934년 일본출생이다. 서라벌예대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총 9회(광주, 서울롯데백화점미술관, 현대백화점미술관, NewYork Pharos Gallery, 세종호텔갤러리, 베이징 Space DA 등)를 개최했다. 1961~62년 제4·5회 조선일보 현대작가전, 1992년 일본 청추전초대한일전(도쿄도립미술관), 1997년 서양화 100인 초대전(서울갤러리), 1997년 루마니아정부 초청 한국현대회화전(루마니아국립미술관), 1999년 뉴욕 현대미술의조명전, 2000년 UNESCO Miro 미술과초대 한국의 빛깔전, 2002년 자유표현전 창립전, 2003년 서울원로중진작가전(과천현대미술관), 우리시대 삶의 해학전(세종문화회관미술관), 2006년 한겨레를 위한 현대미술 120인전, 2008년 남북미술전(한국미술관), 2009년 상하이한국현대미술전, 2016년 중앙대 용의 비늘전(예술의전당) 등 다수의 단체전, 그룹전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전업미술가협회, 무진회, 국전작가협회 고문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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