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누드화가' 김호남 화백, 절제된 관능미와 생명의 원초적 에너지


김호남 화백 자화상./사진제공=김호남 화백



[뉴스리포트=정혜미 기자] 한국화단의 중진작가 김호남 화백은 ‘인체의 신비’를 화두로 선과 색에 천착해 독자적 화풍을 구축해온 인물이다. 일제강점기 영향으로 일본 회화에 뿌리를 둔 한국 인물·누드화의 정형화된 틀에서 탈피, 감각적인 채색과 신선한 구도를 구현한 작품으로 주목을 받는다. 동서양 기법이 공존하는 조형성을 창조해내는 김 화백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자유로운 인물화의 세계를 추구한다. 선과 색, 기법과 재료를 뛰어넘어 시대 변화에 걸맞게 융합적 예술을 선보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윤동주 시인 인물화 53.0 X 45.5cm Oill On Canvas 2021./사진제공=김호남 화백


윤동주 시인의 청춘 그리다

빛나던 미완의 청춘이자,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름 ‘시인 윤동주’. 꿈에 그리던 조국의 광복을 6개월 남짓 남기고 이국의 감옥에서 참혹히 옥사한 망국의 시인이 환생했다. 원로화가 김호남의 캔버스 속 학사모를 쓴 앳된 청년 윤동주는 온화한 표정 속에 숭고한 인류애와 애국심을 표출하며 다시금 역사의식을 되새기게 한다.

2012년 7월 25일, 종로구 창의문에 ‘윤동주문학관’이 개설됐다. 윤동주문학관 돌벽에는 ‘가쁜 숨으로 일상을 살아가는 시민들을 위해 폐쇄된 수도가압장에 윤동주의 시세계를 담아 영혼의 가압장 윤동주문학관을 만들었다’라고 적혀있다. 시인은 식민지 지식인으로서 겪어야 했던 정신적·윤리적 고통을 섬세한 서정과 투명한 시심(詩心)으로 노래했으며, 현재까지도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중 한 명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시인은 떠났지만, 그의 발자취와 세상을 향한 시선을 기억하고자 ‘윤동주문학관’을 다시 찾은 김호남 화백. 그는 8.15 광복절을 앞두고 시인의 영원한 청춘을 화폭에 담아내 후세에게 전달하겠다는 강한 의지로 붓을 들었다.

“윤동주 시인은 지적이고 온화하며, 잘생긴 얼굴입니다. 유약한 얼굴도 있지만, 징용 당시 그의 머리를 깎은 모습을 보면, 일본인 특유의 야만인 같은 인상도 있어 ‘두 가지 얼굴’을 지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윤동주 시인의 인물화 작업을 하면서 작가의 개성, 시대적 아픔과 문학적 심상까지 담아내고자 노력했습니다.”

김 화백은 선과 색, 구도로 결정짓는 여타의 미술과는 달리 인물화는 표정과 분위기에서 인물의 특색을 파악하고, 감성과 내면 심리까지 담아내야 하는 고도의 화법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김호남 자화상(목우회 입상작, 피카소의 청색 시대 영향으로 감흥받아 그린 작품) 1963./사진제공=김호남 화백


다양한 접근방식으로 인물을 재현

김 화백은 화단에서 개성이 뚜렷한 작가로 정평이 나 있다. ‘누드화’하면 그를 떠올릴 만큼 누드화를 중점적으로 작업해왔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누드만을 그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사생을 다니며 자연풍광을 즐겨 그리는가 하면 코스튬 작업도 한다. 이미지의 풍경화를 병행하고 있음에도 불구 각종 전시회를 통해 발표되고 있는 작품이 대체로 인물화다. 그렇기에 대중들에게는 ‘인물화 작가=김호남’ 등식이 친숙하다. 김 화백의 붓끝은 일반적인 시각에서 벗어난다. 모델이 가진 개성을 부각하기 위한 노력이다. 인체 해석에 적극적인 태도를 취함으로써 아름다움을 극대화하는 방법을 고민한다. 또 주어진 조건을 그대로 수용하기보다 ‘해부학’에 근간을 두고 인체를 다양한 기법으로 재현해내는 그는 전통적인 누드화와는 차별화된 조형미를 드러낸다.


진도 하조도 오손바위 53.0X45.5cm Oil on canvas 2008./사진제공=김호남 화백


강건한 생명의 에너지 ‘김호남 누드화’

김 화백의 누드화 중에서 가장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작품은 <피아노>다. 켄트지에 크레파스로 작업한 이 그림은 90년대 작품이다. 화폭에서 여인과 소녀의 중간쯤 나이로 보이는 이 여인은 피아노 앞에 앉아 무심한 표정으로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다. 그리움이 담긴 눈빛과 자태는 고혹적이다. 그의 작품에 대해 한 미술 평론가는 ‘그리움이 솔솔 풍겨 나오는 애틋한 누드’라고 평하였다. 이 모델이 된 여인은 당시 20세였으니 어느새 지금은 50대 여인이 됐다. 하지만, 이 그림은 당시의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하고 있으며, 100년 후에도 영원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김 화백은 인물화의 존재 가치를 설명했다.


피아노 100.0X80.3cm crayon on kent paper 1990./사진제공=김호남 화백


권세은양 53X45.5cm Oil on canvas 1990./사진제공=김호남 화백


그간 김 화백이 발표해온 일련의 인물화들은 재현의 진정성과 개성적 분위기, 그리고 모더니즘적인 형식 실험이 어우러져 신비로움을 자아낸다. 대상의 외형을 분명하게 재현하면서 시선은 생동감과 함께 호소력을 지닌다. 특히 정묘성과 추상성을 동시에 갖춰 인물의 성격이 지닌 심리적 측면까지도 포착하려고 한 점이 독특하다. 또 화폭에 담긴 여체는 강건한 이미지다. 탐미적인 아름다움보다는 절제된 관능미가 두드러진다. 김 화백은 여체가 가진 성적 매력 자체보다는 신체의 역동성, 진정한 생명의 아름다움, 그 본연의 가치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는 여인의 그리움, 사랑, 모성 같은 감정에서 무한한 감동을 느낀다. 그렇기에 인물화에서 이 감정들을 유추해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감상자들이 이 감정들을 공유하게 된다면 화가로서 기쁘고 보람될 것”이라고 말했다.


갈등 145.5X 112.1cm  Oil on canvas 1972 추상./사진제공=김호남 화백  


예술적 성취를 위해 변화 모색

“피카소의 어록에서 ‘나는 매일 아침 드로잉을 잊지 않고한다. 드로잉을 매일 하는 것은 기계를 돌릴 때 기름칠을 하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은 기계와 달라 여러 번 입력하고 활동하지 않으면 예민하고 날카로운 감각이 무뎌지는데 오랜시간이 걸리지 않기 때문이죠. 저 또한 피카소처럼 매일 드로잉을 하면서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습니다.”

인터뷰 말미, 김 화백은 코로나19로 위기를 겪고 있는 미술인들을 향해 “모두가 어려운 시기다. 이럴 때일수록 좌절하지 않고 순수한 열정을 가지고 작업하길 바란다”고 조언했다. 현재 팔순전을 앞두고 작품연구에 매진하고 있는 김 화백은 향후 지속적인 변화를 추구하면서, 그만의 예술 사조를 구축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저작권자 © NEWS REPORT(www.news-report.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0




상호명 : 뉴스리포트 NEWS REPORT 사업자번호 : 728-34-00398  발행인 : 정서우 편집인 : 장찬주  청소년보호책임자: 정서우

주소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15-16(국회대로 66길 23) 산정빌딩 7층 ㅣ 이메일 : korea_newsreport@naver.com

대표전화 : 02-761-5501 ㅣ 팩스 : 02-6004-5930 ㅣ 등록번호 : 서울, 아 05234 등록일 : 2018.06.04

뉴스리포트의 모든 콘텐츠(영상, 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며, 무단 전재와 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

COPYRIGHT © 2018 뉴스리포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