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동천 엄기철 서예가, 강렬한 필치의 맑고 담백한 사유세계

정혜미 기자
2021-03-17

판본체 총18m작품중 제1쪽, 제9쪽./사진=추예랑


[뉴스리포트=정혜미 기자] 동천 엄기철 서예가는 30여 년간 추사체에 천착해 독자적 화풍을 구축해온 한국 서단의 대표작가다. 그는 한국 추사체의 최고봉인 故 연파 최정수 선생이 집대성한 자료를 근간으로 추사체의 진보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동시에, 추사의 발자취가 후대에 계승·발전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아울러 금강경(金剛經)에 매료된 이후, 수행자의 자세로 금강경 작업을 지속해 4차례에 걸친 특별전시를 개최하며 세인의 주목을 받았다.



작업실 겸 갤러리 '추예랑', 아날로그적 감성이 담긴 예술공간

서울 송파구에 자리한 갤러리 겸 작업실 ‘추예랑’은 동천 선생의 예술혼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곳이었다. 은은한 묵향이 배인 공간, 벽면 가득 채워진 작품들과 겹겹이 쌓인 서적들은 예술과 학문에 대한 선생의 집념과 열정을 대변하고 있었다. 또 작업실 한쪽 공간에는 ‘7080 통기타 사랑방’이 자리해 아날로그적 감성이 숨 쉬고 있었다.

선생은 1955년 충북 충주시 동량면에서 태어났다. 역사적 혼란기에 학창시절을 보내면서 열악한 살림에 배를 곯기 일쑤였다. 8세에 부친을 여읜 후엔 학업은 물론 생계유지도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일찍이 남다른 예술적 재능과 학업역량을 인정받아 어렵게 학업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선생은 졸업 후 대기업에 입사한 뒤 1988년 본격적으로 서예에 입문했다. 직장생활을 하던 중에 붓글씨를 시작한 선생은 “가정을 이루고 자식들을 키우며 미래를 설계하던 중, 은퇴 후에도 풍요로운 삶을 이어가야 한다는 마음과 일과 공부를 병행하며 열심히 사는 모습이 교육적 측면에서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 붓을 들었다”고 전했다. 퇴직 후엔 금강경 작업을 비롯한 추사 작품에 매진하면서 후학양성에 기여하고 있다.


추사의 독특한 필치에 매료   

선생은 서예를 시작하고 다양한 서체를 익히던 중, 추사만의 독특한 필치의 매력에 빠졌다. 하지만 대다수 서예인이 추사체의 기이함과 난해함에 접근을 꺼리고, 배움을 기피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더욱 배움의 열망이 커졌다고 말했다.

“한국 서단은 중국의 서체에만 집중돼 있고, 추사체에 대한 인식이 낮은 편입니다. 추사 선생이 일궈놓은 업적들은 후학들에게 많은 가르침을 전달하는데도 불구하고, 추사체를 하는 서예가들을 조롱하거나 대다수 공모전에서 추사체를 원칙적으로 배제하는 뼈아픈 현실을 경험하면서 나부터 추사체를 지켜야겠다는 굳은 사명감을 가지게 됐습니다.”

선생은 추사체에 심취한 이후, 연파 선생이 남긴 추사 관련 자료들과 서적들을 통해 추사체의 기본기를 밀도 있게 다져나갔고, 탁월한 예술성을 바탕으로 각종 공모전에 출품해 훌륭한 성과를 남겼다. 선생은 특히 송곳처럼 강렬한 필치, 법고창신(法古蒼新)에 기반한 기운생동(氣韻生動)한 필획을 완성하면서 서단에 각인됐다. 현재 선생은 추사체를 중심으로 전통과 현대의 융합적 서예술을 펼쳐나가며, 각종 서예 단체에서 중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금강경(추사체)총11m작품중 제1폭./사진=추예랑


2020년 ‘길상사’ 초대로 법정스님 입적 10주기 추모전을 개최

선생은 지난해 5월 서울 성북동 ‘길상사’ 초대로 법정스님 입적 10주기 추모전을 개최했다. ‘법정스님의 향기로운 글 & 금강경 모음전’의 테마로 열린 이 전시는 2013년 입적 제3주기 추모전에 이은 두 번째 초대전이다. 추사체를 연구하며 금강경 전문작가로 활동하는 서예가로서 법정스님이 남긴 주옥같은 명문장을 발췌해 쓴 작품 40여 점을 선보였다. 또 대승불교, 대한불교조계종의 기본 경전인 금강경의 대표작품 및 게송 20여 점, 반야심경을 비롯한 일반작품 20여 점 등 총 80여 점의 전시작으로 호평을 받았다. 금강경은 본문만 5,307자에 이르는 방대한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선생은 2013년 첫 개인전에서 금분(金粉)으로 쓴 8폭 병풍 작품을 출품해 주목받았으며, 이후 3차례에 걸친 전시를 통해 제각기 다른 구도의 금강경 작품을 선보이며, 독창적인 서풍을 구축했다.

“금강경 작업의 계기는 불자로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면서 봉사하는 아내와 자주 함께하지 못하는데 미안한 마음이 반영됐습니다. 또 무엇보다 나 자신의 흐트러진 자세를 재정비하고 새로운 각오를 다지고자 수행에 임하는 마음으로 금강경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선생이 발표한 금강경 작품은 구도와 형태가 제각각 다른 개성을 지녔다. 추사체로 쓴 가로 90cm×세로 2m(12폭 연결족자), 총 길이 11m 작품이 가장 큰 작품이며, 한글로 풀어쓴 “금강반야바라밀경” 판본체(고체)작품은 가로 길이가 18m를 상회한다. 이밖에도 가로 길이 10m에 육박하는 작품이 한문·한글로 두 작품이 있으며, 극세필(한 글자당 9mm)로 표현된 작품들도 여러 형태로 있다. 선생은 “작품 대부분의 선을 붓으로 처리했다는 것이 큰 특징이며, 구도를 잡으면서 한칸 당 1mm 오차도 허용치 않고 붓으로 완벽히 처리하는 연습을 오래전부터 해온 것이 섬세한 작업에 큰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동천 엄기철 서예가./사진=뉴스리포트 


금강경 작업에 매진,  ‘부수별 상용한자 1800자’ 출간 계획 


선생은 향후 추사체 발전·보급을 위해 정진할 것이며, 그간 이어온 금강경 작업에 매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추사체로 쓴 “부수별 상용한자 1800자”를 비롯해 “칠언절구 800선” “논어와 명심보감” 등 그간 집필해온 자료들을 엮어 출간 계획을 세우고 있다.

“금강경 작업의 다양한 구도와 형태잡기 등의 설명을 곁들인 『추사체로 금강경 도전하기(가칭)』를 출간해 후학들이 추사체에 접근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아울러 금강경의 구도 잡기와 선 긋기, 작품에 옮기기 등에 관심 있는 서도인들을 위해 추예랑 작업공간을 활용해서 정기적인 교육과 지도에 힘쓸 예정입니다.”

선생은 독자적인 필체와 감성이 담긴 ‘동천 추사체’를 구축해 나갈 것이며, 추예랑의 원훈인 ‘학불염 교불권(學不厭 敎不倦)’의 정신으로 서예의 깊이를 쌓고, 겸손한 자세로 학문을 닦아 후학양성에 공헌하겠다는 뜻을 펼쳤다.


한국 국보문학 수필가 등단, 수필 '상전벽해' 신인상 수상

한편, 지난해 연말 한국 국보문학에서 수필 부문 신인상을 수상하며 수필가로 등단한 선생은 현재 자서전 집필에도 열의를 쏟고 있다. 어려웠던 시절을 회상하면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글 ‘상전벽해(桑田碧海)’란 작품은 짧은 수필 한 편으로 그의 인생을 녹여냈다는 평을 받는다. 고난의 세월 속에서 가슴 속에 묻어왔던 추억일기를 자서전으로 엮어 삶의 진정한 의미를 후세에게 전달하려는 진심을 담고 있다.

“항상 든든한 힘이 되어주는 아내와 두 딸 덕분에 작품 활동에 전념할 수 있었고, 뒤늦게 대학에 진학해 만학도로서 불교학을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늘 용기를 주는 가족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고희전을 목표로 작품 활동에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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