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덕천(德泉) 이병권 작가, 찻사발에 한국 정체성 담는 도예가

이양은 기자
2021-03-10


사진= 이병권 작가

 

[뉴스리포트=이양은 기자] “민족의 정체성 위에서 정치와 경제가 올바르게 꽃필 수 있습니다. 그런 철학이 없다면 사회적 혼란과 함께, 장기적인 성장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전통 다도(茶道)와 같은 우수한 문화유산을 되살려 사회 근간의 베이스로 자리 잡게 해야 합니다.” 신년 인터뷰를 통해 만난 덕천(德泉) 이병권 작가(명지대학교 산업대학원 교수)는 한국다도의 기본정신을 우리 문화의 정체성으로 제시했다. 다도가 사회의 중심철학이 되었을 때 일본, 중국과도 다른 우리 민족만의 정체성이 더욱 확고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대한민국 도예명장 도천 천한봉 선생을 사사한 이 교수는 전통도자 기법과 한국의 혼이 담긴 찻사발 작품으로 국내외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던 젊은 도예가다. 도예 이야기로 시작한 인터뷰는 민족의 정체성을 거쳐 예술과 클래식 음악을 지나 마침내 삶의 행복으로 귀결되었다. 코로나19로 예정된 해외 전시가 줄줄이 보류 상태지만 시종일관 미소를 잃지 않았던 이 교수는, 총망 받는 도예인 이전에 행복한 예술가였다. 

 

문화와 예술이 한국만의 현대적 정체성 만들어야

눈이 날리는 명지대학교에서 신년 인터뷰로 이병권 교수를 만났다. 웃음을 머금은 편안한 인상의 그는, ‘눈’ 이야기로 시작한 인터뷰를 ‘불’ 이야기로 옮겼다.

“계절마다 날씨마다 쓰는 찻사발이 달라요. 오늘처럼 눈이 많이 오는 추운 날은 찻물이 잘 식지 않는 깊고, 옴폭 들어간 찻사발이 좋고, 더운 여름은 입구가 넓은 찻사발이 적당하죠. 눈처럼 하얀 빛을 가진 자기도, 흙빛을 가진 찻사발도 모두 불 속에서 태어납니다. 흙이 물과 만나 불 속에서 새롭게 태어나기 때문에 하나의 도자기로에는 자연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웃음)”

이 교수는 다도(茶道)를 했던 모친의 영향으로 찻사발을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도예 작업 베이스는 항상 다도였다. 그가 화려하지 않고 자연의 색에 가까운 도자기를 추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현대 도자기가 범람하는 이 시대에 전통 다도와 찻사발은 어떤 의미로 해석해야 할까. 이 교수는 빠르게 변하는 물질 만능의 시대이기 때문에 다도와 전통 도예가 더욱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고 전했다. 그는 “급변하는 사회를 하나로 모아주는 정체성이 부족해 안타깝다”고 말하며, “이런 시대에 문화와 예술이 한국만의 현대적 정체성을 정의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이 교수는 전통적인 방식 위에 현대적 도예를 구현해왔다. 그래서 현대 생활과 감각에 맞게 대중들에게 어필하고 쓰일 수 있는 작품으로 예술세계를 만들었다. 그는 다도의 기본정신을 바탕으로 도자기를 구웠고, 그 정신이 한국 사회의 뿌리가 되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했다. 더불어 도자기가 하나의 도예 작품의 틀을 초월해 문화의 일부로서 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면면히 내려오는 다도에 담긴 정신이 한국 문화와 연결된다면, 세계로 나가는 K-컬처의 뿌리가 더 견고해질 수 있지 않을까요. 중심이 없는 문화가 중구난방 흩어지는 것을 우리는 무수히 보아왔습니다. 이에 우리는 다도의 정신을 바탕으로 민족 문화와 K-컬처의 기반을 더욱 공고히 다져야 할 것입니다.”

  

사진= 이병권 작가


또 하나의 자연, 도예

이 교수의 예술철학은 자연에 가장 가까운 작품을 구현하는 것이다. 다양한 작품에 심플하면서도 자연색에 가까운 색상을 입히고 이를 도예의 기본으로 유지해 왔다. 세 개나 되는 전통 장작가마를 활용하며 도자기를 빚는 흙과 유약을 직접 만들어 사용하는 이유다. 도자기용 흙을 만드는 ‘수비’ 작업을 위해서는, 먼저 거친 흙에서 미세한 돌까지 걸려내야 한다. 흙 앙금을 가라앉힌 후 발로 밟아서 공기를 빼고, 다시 토련을 거쳐 도자기용 흙을 만든다. 여기에 전통 장작가마를 사용하는 것은 현대가마보다 몇 배나 어려운 작업이다. 하지만 이 교수는 “어렵고 힘든 작업일수록 나만의 차별화된 작품이 될 수 있다”며 웃었다.

“오롯이 나만이 만들 수 있는 특별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선 그만큼의 고통과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게 없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평범한 작품이 돼버리고 말지요. 실제로 직접 만든 흙을 전통 장작가마에서는 구우면, 현대가마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자연의 칼라가 비로소 나옵니다. 그 빛깔을 위한 모든 노력은 가마에서 나온 도자기를 바라 볼 때 하나도 힘들지 않죠.”

  


스승 도천 천한봉 선생과 이병권 작가(명지대 산업대학원 교수/한국미술협회 부이사장)/사진=이병권 작가


도예, 가슴 떨리는 ‘설레임’ 

도예작업을 하며 클래식을 즐겨 듣는다는 이 교수는 음악에 비유해 작업과정을 설명했다. 일반인은 아마추어의 첼로 연주와 요요마(Yo-Yo Ma, 세계적 첼로 연주자)의 소리를 구분하기 힘들지만, 음악을 잘 아는 소수의 사람은 듣자마자 엄청난 차이를 알 수 있다고 한다. 즉 비슷한 찻사발이라도 전통재료로 만들어져 전통가마에서 구워진 작품은 비교할 수 없는 깊이를 가진다는 것이다.

 

이 교수가 도예를 선택한 이유는 죽는 순간까지 가슴 떨리는 ‘설렘’을 평생 갖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교수의 은사인 도천 천한봉 선생이 작품을 조금이라도 빨리 보고 싶다는 설레는 마음으로 뜨거운 장작가마에 서둘러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평생 ‘설렘’을 유지할 수 있는 전통 도예을 위해 살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도자기의 완성은 결국 흙과 불, 즉 자연의 힘이다. 이 교수는 전통 장작가마는 어떤 작품이 나올지 자연과 신만이 알 수 있기에 매번 작업마다 설레고 행복하다며 미소 지었다. 기자는 인터뷰를 마치며, 스승인 도천 천한봉 선생이 지어주었다는 이 교수의 아호(雅號) 덕천(德泉)은 문자 그대로 ‘덕이 솟는 샘’이 아닐까 상상해 보았다. 도예 그 자체가 이 교수의 행복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예술을 통해 한국의 정체성 형성에 기여하는 이 교수의 미래 활동을 기대해본다.

 


덕천(德泉) 이병권 작가 프로필 

홍익대학교 대학원 졸업/도천 천한봉 선생 사사/(현)명지대학교 객원교수/키르기스스탄 국립예술대 초빙교수/(사)한국미술협회 부이사장 /개인전 13회, 단체전 및 협회전 270여 회/2018 제5회 경남찻사발 전국공모전 대상/2018 제11회 대한민국 올해의 명다기 품평대회 용상/ 2017 7개국 국제미술전 국제예술대상/2016 동북아 3개국 국제미술전 최우수작가상 수상/2015 제4회 대한민국 향토문화미술대전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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