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암 박상권 서예가, “추사체는 세계적으로 가치를 인정받는 진일보한 서체다”

성암 박상권 서예가·추사서화예술원 회장./사진=뉴스리포트

 

[뉴스리포트=정혜미 기자] 2021년 신축년 새해,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의 문자향(文字香)이 담긴 특별 전시가 열린다. 오는 1월 22일부터 27일까지 대전중구문화원에서 열리는 이 전시는 성암 박상권 선생의 교사 정년퇴임 기념 개인전이다. 추사서화예술원 회장이자, 한국 서단의 중진작가인 그는 37년간 몸담아온 교직에서 명예롭게 물러나, 전업작가로서 제2의 인생 이모작을 펼칠 예정이다.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박 회장은 “조선 후기 명필인 추사 선생이 남긴 숭고한 업적을 기리며, 추사체의 진보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있다”고 밝힌 뒤 “추사체는 융합적 사상의 진일보한 서체로서, 세계적인 가치를 지닌다. 추사 선생의 훌륭한 발자취가 후대에 계승, 발전되도록 열정을 쏟을 것이다”라고 포부를 전했다.

 

추사서화예술 6집 발간 및 전시회 성료 

추사서화예술원(이하 예술원)은 연말 코로나19 속에서도 회원들과 준비한 ‘추사서화예술 6집 발간 및 전시회’를 성공리에 마무리했다. 올해 창립 15주년을 맞은 예술원은 가산 최영환 선생을 필두로 10명의 정회원이 구성돼 있으며, 금번 전시에는 노철 홍철군 명예원장을 비롯한 초청회원과 정회원이 80여 점을 출품해 풍성한 전시를 꾸몄다. 

“연일 어려운 상황에서도 격조 높은 작품을 출품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한 마음입니다. 여건상 오픈 행사를 치르지 못하고, 더 많은 관객에게 선보이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지만, 코로나19가 하루빨리 퇴치돼 마음 놓고 작품활동을 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합니다.”

예술원 정회원은 전국의 초대작가 및 서실을 운영하는 지도자급으로 구성돼 있다. 우리 고유 서체인 추사체를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발전·보급해 전통문화예술 창달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정기적으로 매월 둘째 주 토요일 추사 서법을 익히고 있으며, 연 2회 서화예술집 발간을 위한 서화작품과 발표문을 준비해 연수를 실시한다. 지난 2018년부터는 격년제로 서화예술집을 제작해 발표하고 있다. 2020년에는 캘린더를 제작해 보급했고, 현재 중국서법문화원(원장 홍철군) 초청으로 한중서화교류전을 추진 중이다.

“전 세계가 코로나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우리 예술원 회원들은 위기 속에서 기회를 만들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 나갈 것입니다. 동도상애(同道相愛) 일인백보불여백인일보(一人百步不如百人一步), 즉 가고자 하는 길이 같다면, 혼자가 아닌 함께 가면 어려움 없이 도달할 수 있다는 뜻으로서 우리 정회원들과 합심해 추사체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침체된 서단의 활성화와 후진 양성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이어 가산 선생은 “올해 기획됐던 한중서화교류전이 보류돼 아쉽지만, 보이지 않는 실력이 중요하므로 이럴 때일수록 내면의 실력을 갖춰야 한다. 개구리가 멀리 뛰기 위해 움츠리는 것과 같이, 탓을 할 것이 아니라 환경과 여건에 맞게 열심히 노력하면 좋은 지혜를 얻게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嘉言集句, 70×205cm 


가산 문하에서 추사체에 매료돼 임서에 매진     

충북 옥천 태생인 성암 선생은 유년 시절 붓글씨를 즐기던 부친의 영향으로 서예를 시작하게 됐다고 회고했다. 

“향교 전교를 지낸 아버지께서는 늘 붓을 가까이하셨습니다. 그런 부친의 모습을 보면서 자랐기에 자연스레 묵향에 빠져들었던 것 같습니다. 이후 초등학교 습자시간에 붓글씨에 재능이 있다고 말씀하신 담임 선생님의 격려로 오늘날까지 붓을 놓지 않고 필법을 익히며 노력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성암 선생은 초교 6학년 때 참가한 충남대학교 주최 ‘전국서예실기대회’에서 입상한 것을 시작으로 중학교 시절 옥천군 교육장상과 ‘자유교양경시대회’에서 충청북도 서예 부문 1등을 거머쥐면서 특출한 서예 재능을 인정받았다. 이후 공직에 몸담아 가산 선생 문하에 입문하면서 본격적으로 서예를 연구했다. 기초 필법부터 지도를 받은 그는 자유롭고 변화무쌍한 추사체에 매료돼 지금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우는 듯 웃는 듯, 춤추는 듯 성낸 듯, 세찬 듯 부드러운 듯, 천변만화의 조화가 숨어 있다."

추사 선생 글씨에 대해 미술사학자 김용준이 감탄하면서 평한 말이다. 지난해 중국국가미술관에서 열린 '추사 김정희와 청조 문인의 대화' 展에서 추사 작품 117점이 중국에서 최초 공개되자, 현지 반응이 뜨거웠다. 하루 평균 5000명, 두 달간 관람객 30만 명이 다녀갈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이후 추사 작품들은 금의환향해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동명(同名)으로 개최됐다. 추사의 현판·대련·두루마리·병풍·서첩 등의 대표작과 추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20세기 작품까지 120여 점을 선보여 시선을 끌었다. 

그간 추사체는 필법이 난해해 대가들도 접근하기 어렵고, 대다수 ‘추사체는 추사이기에 가능하다’고 지도를 꺼려왔다. 하지만 故 연파 최정수 선생이 추사체의 필의를 모아 정립했고, 가산 최영환 선생이 추사체의 보급에 기여한 결과 오늘날 추사체를 연구하는 후진들이 양성됐다. 성암 선생은 추사체는 서예사 전개 맥락에서 볼 때 왕희지(王羲之)를 중심으로 전개돼온 기존 첩학(帖學)을 토대로 왕희지 이전의 전(篆), 예(隷)의 성과 즉 비학(碑學)을 일생에 걸쳐 녹여낸 비첩 혼융의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이어 추사체는 예서 뿐만 아니라 해서, 행서, 파체서까지 확장 가능한 것으로 이는 서단에서 연구해야 할 과제임을 강조했다.

“언어의 전달이 문자라면, 문자 예술이 서예일 때 추사체는 서예를 예술로 승화시킨 가장 진일보한 글씨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이는 추사 선생의 천재성과 더불어 오서수부족언 칠십년 마천십연 독진천호(吾書雖不足言 七十年 磨穿十硏 禿盡千毫) 즉 ‘내 글씨는 아직 말하기에 부족함이 있지만, 칠십 평생에 벼루 열 개를 갈아 바닥에 구멍을 뚫었고, 붓 일천 자루를 털이 다 닳은 붓으로 만들었다’는 그의 기록처럼 부단한 노력의 결과물이었습니다.”


四字成語,  35×135cm 


교사는 교실에서 승부를 건다, 항상 열정과 노력 기반해    

“신임 발령을 받고 교직 생활을 시작한 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정년퇴임을 앞두고 보니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논산 쌘뽈여고 초임 시절부터 ‘교사는 교실에서 승부를 건다’는 마음으로 늘 열심히 수업을 준비하고 학생들과 소통했습니다.”

정년을 앞둔 지금도 교실에 들어설 때 설렘과 두려움이 앞선다는 성암 선생은 교사의 말 한마디는 학생의 장래를 결정지을 수 있고, 학생과의 원활한 교감은 교육의 시작이기 때문에 늘 무거운 책임감으로 교직생활을 이어왔음을 밝혔다. 

한편, 과학 교사인 성암 선생의 수업은 학생들에게 특히 반응이 좋다. 그 이유는 수업의 차별화 덕분이다. 매시간 수업이 시작되면 5분씩 한자를 가르쳐준다. 손수 붓글씨를 써서 컴퓨터 화면에 띄워 뜻을 풀이하면, 학생들의 집중도가 높아진다고. 흥미로운 화제로 수업에 활기를 주면서 한자공부도 시키는 교사, 이렇듯 그의 독특한 수업은 학생들의 창의성과 인성교육에 도움을 주는 교내 인기강의로 손꼽히고 있다. 

“1988년부터 정년까지 교직 생활을 이어온 대전중앙고에서 수많은 성과를 남겼지만, 특히 ‘대한민국학생창의력올림피아드’에 출전한 팀이 시예선 및 전국대회 1등을 획득하고, ‘장영실상’을 수상한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당시 저도 지도교사로서 특허청장상을 받았고, 이후 모범교원으로 스승의 날을 맞이해 2012년 국무총리상 표창을 받았습니다.”

 

서예와 문인화, 한국화 등 풍성한 작품 선보일 것  

“현재 정년퇴임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는데요, 그간 각종 단체에서 출품했던 작품들을 모아 선보일 예정입니다. 30여 년이 지난 현재의 눈높이에 맞는 결과물은 아니라 부끄럽기도 하지만, 오랜 세월 공부한 흔적을 정리하고, 새롭게 도약하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용기를 내었습니다.”

박 회장은 이번 개인전에서 가산 선생의 지도를 받은 추사체 임서 및 창작작품을 전시하고, 문인화와 한국화는 작고한 故 호산 이완종 선생에게 사사한 작품들로 구성했다. 

“각종 공모전 초대작가이자 운영위원과 심사위원을 역임하면서 한국 서화예술 발전을 위해 활동하는 지금도 칭찬에 마음 설레던 그 제자이며, 최고이기보다는 최고를 향해 노력하는 학생일 뿐입니다. 언젠가는 서화를 통해 옛 선비의 문기(文氣)가 있는 삶의 기품을 진작시키고, 미풍양속과 전통문화 발전을 위해 노력해 열매 맺는 날이 오겠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여전히 꽃을 감상하며 열매를 기다리는 자세로 붓을 들려고 합니다.”

그간 서예를 비롯해 문인화와 한국화 초대작가로서 왕성히 활동해온 성암 선생이 교육과 예술 을 겸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지난날을 되돌아보며, 일과 후 짧은 시간이라도 야간 공부를 꾸준히 해왔다고 말했다. 이어 서예는 단시일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30여 년간의 긴 세월 동안 묵묵히 적극 지원해준 아내 신정숙 씨와 딸 유진과 혜빈, 아들 희웅 씨의 든든한 격려가 큰 힘이 되었다고 진심을 전했다.

“현재 서예나 순수미술은 지원율이 낮아 대학 정원을 줄이는 실정입니다. 전업작가의 경제 상황은 나날이 악화일로에 있죠. 그 나라의 전통예술은 보존할 가치가 있는 것이고, 우리 모두 지켜나가야 합니다. 향후 초중고 교육과정에 서예 교과 편성 운영, 졸업생을 위한 지원 대책, 국가 예산 확보, 전업작가 및 청년작가에 후원 등 국가 정책적으로 다양한 방안이 마련되길 바랍니다.”

우포의 가을 / 60×5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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