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영 작가, 소나무 천년의 숨결을 그리다

이양은 기자
2020-12-07

김순영 작가/사진=뉴스리포트


[뉴스리포트=이양은 기자] 김순영 작가는 소나무 그림을 통해 화단에 반향을 일으킨 예술인이다. 그의 사실 묘사는 시각적 아름다움을 넘어 내면 세계를 반영한다. 특히 소나무 이면에 작가의 의식세계가 투영돼 캔버스에 펼쳐지기 때문에, 감상자들은 마치 이상향에서 소나무와 대화를 나누는 착각을 할 정도다. 기네스에 오른 ‘한국의 소나무’(1.6m×27.42m)’와 ‘세한설송(歲寒雪松)’ 등 대작을 통해 소나무 그림의 지평을 개척한 김 작가는, 나무에 담긴 겨레의 혼을 캔버스 위에 표현했다는 평가다. 화실에서 만난 그는 “소나무는 한민족의 역사와 선비정신이 깃든 나무”라고 전하며 “우리의 정서와 심성을 닮은 소나무의 기개와 장엄함에 반해 소나무를 그려왔다”고 밝혔다. 소나무 그림을 통해 미술계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김 작가는 한국미술협회 이사직과 노원미협 부회장을 맡으며 예술 발전에도 기여하고 있다. 인터뷰를 통해 소나무가 이야기하는 천년의 숨결을 잠시나마 엿볼 수 있었다.


기상, 116.8cm x 80.3cm, Oil on canvas


혼신의 노력이 투영된 소나무

“아직 부족해요. 새로운 작품을 완성할 때마다 더욱 혼을 담아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최고의 작품은 제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완성된 작품이 되지 않을까요. 그날을 위해 더 혼신의 노력을 다하는 사람이 되려고 합니다.”

국내 최고의 소나무 화가로 꼽히는 김순영 작가의 인터뷰 첫 일성(一聲)은 겸손과 노력이었다. 이미 소나무 그림으로 평단에서 호평을 받고 일가를 이뤘지만, 그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며 손사래 쳤다. 소나무 그림 획 하나, 점 하나마다 천년의 심도를 더하는 김 작가의 작업은,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소나무를 느끼는 ‘심안’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스스로 완벽에 대한 부족함을 느낀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색감이 아름답고, 보기 편안하며, 때로는 강한 생명력을 내뿜는 그의 작품은 이미 화단에서 독보적이다. 실제로 그의 작품을 접한 이들이 크게 감탄하거나, 쉽게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것은 소나무가 지닌 천년의 숨결이 고스란히 담겨있기 때문이다.

김 작가의 많은 작품들이 회자되지만, 특히 대작 세한설송(歲寒雪松)은 미술사에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평가된다. 경북의 대왕송, 강원도 청령포 관음송, 전남 천년송, 제주도 산천단 곰솔군, 충북의 정이품송, 서울 남산 소나무 힐링숲 등 전국을 대표하는 소나무가 9.2m×2.7m에 달하는 대작으로 만났기 때문이다. 김 작가는 이 작품을 위해 화실 벽면 전체에 캔버스를 설치하고 사다리에 올라가 작업하며 작품을 완성했다. 그가 그린 소나무 그림은 700여 점(소나무 5천 그루)으로 도전한국인본부 최고기록인증원으로부터 최대, 최다 기네스 기록을 인증받기도 했다.


존재, 116.8cm x 72.7cm, Oil on canvas


소나무의 정신세계와 미를 탐구

우리 민족은 소나무와 함께 살아왔다. 소나무로 만든 집에서 태어나 소나무 금줄을 걸었고, 평생 소나무의 기상을 보면서 살다가, 죽어서도 소나무 관에 묻혔다. 소나무는 한민족과 함께하며 살아서는 미학적 즐거움을 주고, 죽어서도 실용적 혜택을 주었다.

“척박한 땅에서도 소생하는 소나무는 강한 생명력과 끈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다른 이들과 상생할 줄 아는 영물입니다. 옆에 다른 소나무가 다가오면 자신을 휘어서 양보하는 습성이 있을 정도예요. 위풍당당한 기운을 가졌지만 주위를 돌아볼 줄 아는 소나무, 강건하면서도 주변에 아름다움을 전하는 소나무. 저는 소나무의 정신세계와 미를 닮아간다면 더 아름다운 세상이 될 수 있다는 진리를 그림을 통해 보여주고 싶어요.”

김 작가가 그림을 그리면서 밝은 색감을 사용하는 것은 모든 사람이 함께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작품 속 소나무가 붉은 기운을 뿜어내는 것도, 거칠고 단단하며 아름다운 외면 속에 불같은 열정과 이타심을 감춘 소나무의 내면을 표현하기 위함이다. 김 작가의 그림을 소장한 이들은 그가 구현한 소나무의 정서와 기운을 자자손손 물려주기 위한 소중한 작품으로 간직한다고 한다. 소나무의 기상과 평화로움이 집안에 행복을 깃들게 하는, 진정한 명품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는 소나무 전문작가로 손꼽히지만, 사실 꽃이나 풍경 등 다른 소재의 작품을 통해서 일찍이 화단의 인정을 받았다. 지난 2018년 강원도 인제에서 열린 인제산림문화박람회 행사장에 원대리 자작나무숲의 사계를 주제로 한 그림들을 전시해 호평을 받아 인제군 홍보대사로 선임됐으며, 인사동 경인미술관 2019년 특별기획전에서는 소나무, 무궁화로 나라 사랑을 표현한 3.1절 100주년 기념대작 ‘동방의 빛, 대한의 기상’을 선보여 화제가 되었다. 김 작가는 2000년 초 충남 아산 봉곡사 ‘천년의 숲’ 솔밭에서 일제에 의해 송진을 채취당해 상처가 무성했던 소나무를 처음 만나 소나무를 그리게 되었다. 민족을 상징하는 소나무가 상처를 품고서 끈질기게 살아남은 모습을 보며 영혼의 울림을 느낀 그는 곧바로 돌아와 캔버스에 그려냈다. 상처를 이겨낸 소나무의 의연한 모습에서 우리 겨레의 혼을 투영한 작품이 탄생했고, 그의 작품세계는 그때부터 또 한 번의 도약을 이뤄냈다.


현재 김순영 작가는 한옥형 목조주택으로 유명한 최문섭 건축가와 협력해, 소나무 목조주택 속에 소나무 그림을 전시하는 힐링의 공간을 국민에게 선물하고 있다. 최 건축가가 구현한 한옥형 목조주택 ‘슈필라움’은 독일어 ‘놀이(spiel)’와 ‘공간(raum)’의 합성어로 자신의 삶을 재창조하는 힐링 공간을 뜻한다. 11월 1일 김 작가와 최 건축가의 협력으로 속초에서 개관식을 가진 ‘슈필라움’은 힐링의 공간으로 반향을 일으키고 있으며, 그림 판매금 일부는 코로나 19 봉사 의료진에게 기부할 예정이라고 한다.


빛을 그리다, 160cm x 227cm,  Oil canvas


소나무를 닮은 사람

김 작가는 “예술의 시작은 도전이고, 도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탄생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그는 장르를 불문하고 다양하게 도전한다고 밝혔다. 기자는 “그림에 인생 모두를 걸었다”는 김 작가의 금언에서, 빛나는 모든 것들은 허투루 탄생하지 않는다는 진리를 다시 확인했다. 기자가 만난 김 작가는 밝고 맑은 기운으로 가득한 사람이었고, 함께 하는 이에게 활력을 전해주는 예술인이었다. 가장 믿기지 않는 사실은 김 작가가 어릴 때부터 약한 체력 때문에 힘든 시간이 많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밤샘 작업을 하면서도 붓만 들면 기운이 샘솟았고, 소나무 대작들을 그리면서 더욱 강건해졌다고 한다.


앙드레 지드는 ‘오랫동안 꿈을 꾸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고 했다. 감히 추측해 보건대, 소나무의 장엄한 절개와 선비정신을 화폭에 담고 싶었던 김 작가는 소나무의 본질에 가까워져 있었다. 소나무가 가진 군자의 마음을 담고 싶었던 그는 소나무의 숨결을 캔버스에 담으며 자신도 소나무의 기운과 함께한 것은 아닐까. 소나무와 물아일체가 되어 한민족의 정신성을 전하는 김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대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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